소설리스트

콜사인 (1)화 (1/320)

1화

공장 신축 건축건설현장.

화르륵!

평소와 달리 한쪽에 불이 붙어 거칠게 위쪽으로 타올라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돌발적인 화재였다.  

2층 구조로 건축 중이었단 걸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대형 창고나 공장에 비하면 화재 규모가 상당히 작았지만 화염은 만만치 않았다. 

이미 여러 명의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그중 한 소방대원이 보였다. 

180센티에 달하는 훤칠한 키에 굵은 얼굴선을 가진 청년. 

20대 중반을 갓 지난 듯 아직 혈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오른쪽 가슴에 이름표가 선명하게 시선을 끌었다.

-강태건.

검은색 명찰에 하얗게 이름 세 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태건은 뜨겁게 불타는 화재 현장을 보며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우. 오늘은 좀 뜨겁겠네.”

목소리에 어딘지 모르게 긴장보다 여유가 흘러나왔다.

그 옆에 선 남자.  

척 봐도 강인한 인상이 돋보였다. 

단단한 팔뚝 근육만큼 강렬한 눈매가 더더욱 시선을 끌었다. 

왼쪽 가슴 명찰에 선명히 달린 이름. 

-이채용.

그는 구디소방서 화재2팀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최소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란 의미였다.  

특징적으로 커다란 코는 어디서든 그를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시선을 잡아챈 널찍한 어깨는 너무도 듬직해 보였다. 

가장 인상적인 건 날카로운 눈매였다. 

그 표정처럼 화재 현장에서 신출귀몰하다 해서 일명 불귀신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살짝 태건을 노려봤다. 

“강태건, 소풍 왔냐?”

“아닙니다.”

“제정신 맞아?”

“아주 좋은 정신건강 상태입니다.”

태건은 얼른 대답했다.

그걸 보고야 이채용 팀장의 눈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너, 이제 겨우 현장 진입 허락난 거 알지?”

“물론입니다.”

“까불다 뒤진다.”

“걱정 마십시오.”

강태건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영 못미덥다는 듯 바라보던 이채용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믿음이 안 가.”

그도 잠시, 이채용 팀장은 다른 소방대원들에게 시선을 돌린 후, 다시 말문을 이었다. 

“용접 중 불똥이 다른 기계에 튀면서 쇼트가 발생, 바로 화재로 이어졌단다.”

“네!”

“아직 공사 중이었으니 가연제가 많아. 각별히 유의하면서 진압한다. 그럼 투입.”

“안전하게 진입!”

모두가 크게 소리쳤다.  

현장에서 주의하자며 외치는 응원이자 다짐이었다.

이내 모두 현장으로 투입됐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선배들이 화학약품을 섞어 방수 중이었다.

촤아악!

“왼쪽으로 더!”

“앞에서부터 잡아가!”

호흡 좋은 선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태건도 그 속에 함께였다.

뒤쪽에서 소방호스를 서포트하고 있었다.

“크으.”

무게가 무게인 만큼 손이 묵직했다. 

그러나 아직 젊은 패기로 뭉친 태건에게는 넘을 만한 산에 불과했다.  

쏴아아.

물길이 쏟아졌다. 

화재 진압팀은 조금씩 입구 쪽 불길을 밀어냈다.

하지만 내부가 더 문제였다.

화르륵.

얼핏 봐도 빨간 불길이 넘실거렸다.

게다가 화재 특유의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득 막아섰다.

활활.

불길은 거침없이 널따란 내부를 급속도로 잠식해가고 있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다.

태건은 안으로 들어오자 포지션을 바꿨다.

소방호수 대신 커다란 쇠갈퀴를 쥐고 있었다.

아직 소방 경력이 짧은 태건이 할 일이란 사실 단순했다.

불씨 처리.

삭! 삭!

쇠갈퀴로 불씨를 긁어 잔불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름 중요한 일이다.

만약 불이 다시 살아난다면 큰일이다.

사실 다른 소방관들의 퇴로를 확보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그런 태건의 눈에도 넘실거리는 불길이 가득 보였다.

“어후…….”

절로 탁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재 현장의 열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런 불길 속에서 소방관들의 활약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엄청난 불을 조금씩 억누르며 진압해 갔다. 

그러나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이채용 팀장이었다.

불귀신.

그 별명이 딱 어울렸다.

그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불이 뒤로 밀려나는 듯 했다.

정확한 지점에 방수해 포인트를 공략하고, 절대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제압해 갔다.

그렇게 자신보다 수십 배는 커다란 불길을 정면으로 맞섰다.

멋모르는 태건의 눈에도 그건 보였다.

‘멋지다.’

진심이었다.

불과 사투를 벌이는 이채용 팀장의 모습.

태건이 늘 그리던 워너비였다.

그걸 보고 가슴이 멈춰 있을 수가 없었다.

쿵쾅쿵쾅.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동기부여와 자극도 됐다.

‘이럴 때가 아니야.’

손이 근질거렸다.

자신도 이 화염 속에서 뭔가 해내고 싶었다.

태건은 들고 있던 쇠갈퀴에 힘을 줬다.

스윽.

고개를 돌린 태건의 눈에 계단이 보였다.

방금 물이 쓸고 간 자리였다.

그 계단을 향한 태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2층에 먼저 올라가서 안전한 장소를 확보해 놓으면 어떨까.

그럼 2층을 공략하기 쉬워질 터였다.

그 자체가 활약이다.

꼭 소방호스를 잡아야만 불과 맞서는 게 아니었다.

슬슬 유혹의 손길이 태건을 사로잡아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태건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올라간다면?

이채용 팀장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얼굴에 작렬할 건 너무도 분명했다. 

사실 그 주먹보다는 이어질 잔소리 폭탄이 더 두려웠다. 

바로 생각을 바꿔먹고 다시 쇠갈퀴를 들었다. 

“불씨가 어디 있나?”

사방을 번뜩거리는 태건의 시선이 어딘지 모르게 공허했다.  

한편.

이채용 팀장은 불길이 조금씩 밀려나자 팀원들에게 힘차게 지시했다.

“흩어져서 이대로 몰아붙여!”

“알겠습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절대 혼자 앞서지도 마. 뭐가 떨어질지 모르니까 머리 위도 조심해. 바로 움직여!”

“네!”

힘껏 대답한 팀원들은 서서히 간격을 넓혔다.  

동시에 태건도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낑낑.

어디서 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

고개를 갸우뚱하던 태건이 2층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태건이 중얼거리며 움직이려는 순간이다.

낑낑.

분명히 들렸다.

아직 어린 강아지 소리였다.

분명히 2층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태건이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화재진압에 정신없는 모습이다.

달리 말해 다른 곳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태건이 2층을 봤다.

아직 불길이 1층에 머물러 있는 탓인지 진입에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그 순간.

끼잉.

애처로운 강아지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대로라면?

불에 타죽기 전에 유독가스로 인해 강아지는 죽는다.

그건 확실했다. 

순간 태건이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걸었다. 

“저 녀석도 생명이잖아. 게다가 말 못하는......”

태건은 더 이상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마 2층으로 가는 길이 아직 안전해 보인 탓이다.

몰래 올라가 강아지만 데려오면 될 일이다.

‘지금이야.’

기회를 포착한 태건은 뒤로 슬쩍 물러났다.

스륵.

태건이 모습을 감췄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다들 화재진압에 정신이 팔린 때였다. 

알았다면?

귀싸대기 수십 대는 기본으로 각오해야 했다. 

혼자가 된 태건은 어느새 계단 앞에 도착했다.

치익, 치이익.

달궈진 쇠가 녹았다가 식은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치이익.

뒤집어쓴 물 탓인지 수증기가 어마어마하게 일어났다.

사실 검은 연기보다 더 짙은 거 같았다.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아직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후딱 갔다 오자.” 

척. 척.

바로 계단을 올랐다.

수증기가 자욱했지만 계단을 딛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저벅저벅.

반복해 계단을 오르던 중이었다.

“어?”

태건은 이색적인 광경을 마주했다.

검은 연기와 하얀 수증기가 뒤엉키는 모습이었다.

마치 용트림처럼 허공으로 치솟는 모습이 신비로울 정도였다.  

“끝내준다.”

그만큼 장관이었다.

화재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일 터였다.

“아차.”

넋을 잃고 보다가 얼른 정신을 차린 태건이 2층으로 날렵하게 올라갔다.

낑낑.

다시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 얼른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개 줄에 묶인 아직 한참 어린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가 바동거리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줄을 물어뜯으려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쯧.”

태건이 혀를 찼다.

아마도 건축 인부들이 데려온 모양이다.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불은 언제 덮칠지 몰랐기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저벅저벅.

태건이 서둘러 다가섰으나 강아지는 이미 공포에 질린 탓인지 이빨부터 드러냈다.

으르렁.

아직 어린 강아지인지라 그 모습조차도 귀엽다면 귀여웠다.

“자식이, 너도 진돗개라고.......”

태건은 나름 두꺼운 소방장갑을 믿고 덥석 안았다.

와락.

순간 강아지가 태건 손목을 물었다.

“어쭈.”

태건이 피식 웃었다. 

두꺼운 소방장갑 위라 감촉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자식이, 은인도 모르고.”

깽깽.

강아지가 놀라 바둥거리는 사이 얼른 목줄부터 풀었다.

태건이 히쭉 웃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인마, 이빨 집어넣고 시원한 공기 마시러 가자.” 

태건은 잠시도 지체 없이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저벅.

막 첫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우지직.

뭐가 크게 뒤틀어진 소리가 들려오며 계단이 들썩거렸다.

“어, 어어?”

태건은 당황했다.

이게 무슨 소리고 신호란 말인가.

…….

다행히 그 간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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