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태건은 놀란 가슴부터 진정시켰다.
정말 계단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도 아직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훅훅.”
너무 큰 긴장감에 숨이 가빠왔다.
그러던 태건은 반사적으로 아래를 봤다.
쉬익.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짙은 수증기 탓에 계단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안 좋아.’
태건은 불길한 예감이 불쑥 들었다.
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엄습한 불안감이 계속 머물고 있었다.
“내, 내려가면 괜찮아. 그럼 돼.”
스스로 최면까지 걸었다.
태건은 날을 뾰족하게 세우고 또 한걸음 내려갔다.
터억.
바로 그때였다.
후두둑.
무언가 부서지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는 게 없었다.
혹시 위?
휙!
태건은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런 태건의 눈엔 천장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어, 어…….”
태건은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불덩어리를 피했다.
그 낙하물은 마치 유성처럼 계단을 직격했다.
터더덩!
떨어진 낙하물들은 불덩어리 자체였다.
커다란 건 사람보다 더 길었다.
게다가 합성제품인지 낙하 충격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번졌다.
화르륵!
태건의 주변이 금세 불타올랐다.
“……헉!”
태건은 불길에 놀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내려가는 계단과 그 일대가 이미 불바다로 변해 있었다.
“일 제대로 꼬이네.”
가슴은 떨렸지만 태건은 애써 침착을 찾았다.
곧바로 탈출로를 찾아 눈동자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이거 뭐야!”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활활.
사방이 불꽃이다.
피해서 탈출하기엔 계단의 공간은 너무도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아직 공사중이라 더더욱 움직일 공간이 적었다.
낙하 충격에 수증기가 흩뜨려 드러난 아래쪽도 절망적이었다.
화르륵.
금방이라도 태건을 집어삼킬 듯 거세게 치솟았다.
공장이라 층고가 높았다.
거의 5미터에 육박했다.
그 높이를 불길이 거세게 타올라 거의 올라가는 모양새였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낙하물의 충격이 계단에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끼긱, 끼끼긱.
쇠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이 점점 기울어진다.
즉, 계단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었다.
태건은 애써 침착을 찾으려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지금 당황하면?
곧바로 죽음이다.
소방학교에서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경고였다.
당연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계단과 함께 추락할 터였다.
그렇다고 다시 올라가기도 불가능했다.
화르르륵!
이미 계단 위는 불타는 낙하물들로 가득했다.
정확히 말해 태건이 서 있는 자리만 멀쩡했다.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였다면 벌써 육신을 버리고 훨훨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하늘은 태건의 편이 아닌 모양이었다.
사방에서 일어난 불길에 방화복 안쪽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뜨겁다!
이러다간 타죽는다.
혀가 바짝 말라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진퇴양난.
아니, 사면초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죽음까지 딱 한 걸음 남은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강아지를 품에 꼭 안았다.
혹시 강아지가 타죽을까 봐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태건도 슬슬 직감이 왔다.
‘죽음.’
지금까지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였다.
그런 죽음이 지금은 태건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얼른 고개를 털어 죽음을 밀어내려 했다.
살고자 하는 이유?
지금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삶.
그 자체가 이유고 목적이었다.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청춘이다.
벌써부터 이런 곳에서 덧없이 죽을 순 없었다.
“아직 길은 있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좋았다.
코끼리를 바늘구멍에 넣으라고 해도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절박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살아야 한다.
아니.
살고 싶었다.
태건이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내려 강아지를 봤다.
강아지는 품에 안겨 그저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이 녀석 때문에?
태건은 고개부터 저었다.
자신이 한 선택?
옳은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태건이 피식 웃었다.
“그래 니가 무슨 죄니.”
아주 짧은 여유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죽음은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기긱, 기기긱.
계단이 뒤틀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우두둑!
그 진동이 두 다리에 가득 느껴졌다.
무너진다.
진짜 죽는다.
…….
안 돼.
순간 태건은 결심했다.
뛰어내리자.
5미터가 넘는 층고 아래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는 모른다.
아차하면?
뛰자마자 공사 잔재나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려 그대로 황천길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확실한 건 여기 그냥 있으면 확실히 죽는다.
뛰면?
살 확률이 그나마 있다.
짧은 시간 생각을 마친 태건이 막 뛰기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강태건 기다려!”
동시에 어디선가 물줄기가 날아왔다.
촤아악!
그 물줄기는 태건을 위협하는 불길부터 밀어냈다.
그리고 태건의 혼란한 머릿속까지 씻어줬다.
물의 느낌에 태건이 번쩍 눈을 떴다.
“물?”
정말 물이었다.
쏴아악.
낙하물에 부딪친 물줄기들이 태건을 샤워하듯 적셨다.
흐릿한 정신이 바짝 들었다.
동시에 저 앞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태건을 향해 방수하는 소방관.
척 보는 순간 알아봤다.
바로 이채용 팀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아니, 나빴다.
후두둑.
주변 가득 낙하물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쿵.
활활.
곧바로 붉은 화염이 그의 주위에 가득했다.
아차하면?
통구이 신세가 될 심각한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미동 없이 태건만 바라봤다.
“…….”
촤아악.
방수되는 물줄기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곧게 날아왔다.
그걸 본 태건의 눈동자는 한 번 더 격하게 떨렸다.
이채용 팀장은 자신의 위험 따윈 안중에 없었다.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채용 팀장도 지극히 위험해 보였다.
파르르.
태건의 어깨가 순간적인 갈등으로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피하세요. 위험, 위험해요!”
결국 소리쳤다.
하지만 호흡기 커버에 막혀 멀리까지 날아가지 못했다.
그런 태건에게도 해결되지 않은 위험이 남아 있었다.
우지직!
바로 무너지는 계단이었다.
물줄기까지 얻어맞아 뒤틀림이 더 빠르게 진행됐다.
이대로는 백 퍼센트 아니, 천 퍼센트 무너진다.
“제길.”
그런 태건의 귀에 천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건아, 아래!”
휙!
내려다본 태건의 눈동자가 또 한 번 흔들렸다.
박성규다.
박성규가 직사각형으로 생긴 높은 작업대를 계단 옆에 놓고 힘껏 붙들고 있었다.
“아.”
“새꺄, 꾸물대지 말고 빨리 뛰어. 어서!”
“……에이씨!”
휙!
태건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대로 계단 밖으로 몸을 던졌다.
일초라도 망설인다면?
그대로 통구이 신세란 걸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쉐엑.
스산한 소리와 함께 거센 화염이 태건이 있던 곳을 폭풍우처럼 덮쳤다.
늦었다면?
태건과 강아지는 그대로 통구이였다.
붕 떠오른 몸은 순식간에 낙하했다.
높다란 작업대라 금세 떨어졌다.
쿠웅!
“커어억!”
등에 진 산소통에 부딪쳤는지 등에서 말도 못할 충격이 몰려왔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태건은 작업대에서 쉽게 내려오지 못했다.
사실 작업대를 향한 선배들의 시선이 썩 좋지 않았다.
촤아악.
다들 계속 방수를 하며 불길을 밀어내는 중이었다.
아직 화재진압이 완료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 다가가지는 못하고 투덜거렸다.
“으이그, 저 새끼.”
“언제 한 번 사고 칠 줄 알았어.”
“알았으면 말렸어야죠.”
선배들의 험담소리에 이채용 팀장이 바로 나섰다.
“불 다 끄고 떠드냐?”
“…….”
“한 시간 내로 마무리 짓지 못하면 니들 몸뚱이 굴려서 꺼버린다.”
“……서둘러!”
멈칫한 선배들이 다시 진화작업에 집중했다.
“…….”
이채용 팀장은 태건 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말없이 불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태건은 그제야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고 품 안에 있던 강아지를 봤다.
“사니까 좋지? 근데 난 이제 깨질 일만 남았어.”
걱정은 됐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했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구한 생명을 보니 뿌듯했다.
지금도 이런데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했다.
태건은 연신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시간 후.
화재는 모두 완전히 진압됐다.
푸슈슈.
빨간 불꽃 대신 하얀 수증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화재팀원들은 현장을 둘러보거나 정리하고 있었다.
태건은 그런 현장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 태건의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처억.
멈춰선 그는 이채용 팀장이었다.
그는 방화장비를 벗고 기동복 차림이었다.
흠뻑 젖은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첫마디를 꺼냈다.
“후우. 역시 밖이 시원하지?”
“…….”
“우리 막내, 더위 많이 먹었나?”
스윽.
이채용 팀장은 질문하며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태건은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채용 팀장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 살려주셔서 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