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3)화 (3/320)

3화

이채용 팀장은 미소를 지으며 태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처억.

“짜식, 인사할 정신은 있나 보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더 말하지 않아도 돼.”

“…….”

태건은 입을 다물었다.

이채용 팀장은 개의치 않는지 이어서 말했다.

“강아지 구하러 간 거야?

“그, 그게…….”

“구하러 갔다가 같이 갈 뻔한 건 알지?”

“압니다, 죄송합니다.”

태건은 순순히 인정하고 잘못을 시인했다.

꼬옥.

들려올 질책에 대비해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질책은 들려오지 않았다.

슥슥.

대신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트리는 손길이 먼저 느껴졌다.

이어서 이채용 팀장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충고해줄 때 귀담아 들었어야지.”

“정말 방심한 그 순간 덮쳐왔습니다.”

“불은 인정이 없어. 또한 경험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아.”

그 소리에 태건이 멈칫했다.

“경험이요?”

“그런 게 있어. 깊이 알려고 해봐야 너만 피곤해.”

이채용 팀장은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더 캐묻지 않길 원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 가지는 궁금했다.

“그때 무섭지 않으셨어요?”

“너한테 물 쏠 때? 꼬시다, 이러면서 쐈는데?”

“옆에 불덩이가 막 떨어지던데……. 팀장님도 다칠 수 있었는데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태건의 목소리와 눈빛이 조금 선명해졌다.

이채용 팀장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답을 말했다.

“전혀.”

“왜요?”

“거기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너였으니까.”

“그게 전부입니까?”

“그 외에 뭐가 또 필요하지?”

이채용 팀장이 반문했다.

그에 대해 태건은 딱히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태건아, 세상에 목숨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

“난 없다고 봐. 아니, 없어. 억만금이 있어도 죽으면 그뿐이야.”

이채용 팀장은 확신에 찬 몇 마디를 꺼냈다.  

태건은 그 말에 가슴이 잔잔하게 울렸다.

몸소 경험했기에 더욱 와 닿았다.

“......” 

“어떤 신념을 품어도 괜찮아. 그런데 그 속에 꼭 하나는 담아둬라. 그건…….”

이채용 팀장이 뒷말을 이어가려 할 때였다.

이번 대화에서 처음으로 태건이 한 박자 빨리 말했다.

“사람 목숨만큼 귀한 건 없다…….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 그런데 한 사람을 구한다는 의미를 알아?”

“무슨 말씀이신지?”

태건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채용 팀장이 빙그레 웃었다. 

“한 사람을 구하면 나아가 그 사람 가족을 구하는 거야.” 

“네?”

“그 사람이 죽었다면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 미래는 어쩌겠니?”

“아! 알겠습니다.”

태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채용 팀장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훗. 녀석. 슬슬 하산해도 되겠네.”

“아직 이른 거 같습니다. 일러도 너무 이르네요.”

“뭐 알아서 하고……. 그보다 지금은 어때?”

이채용 팀장이 넌지시 충격이 가셨는지 확인차 물어왔다.

태건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뭐 견딜만은 합니다.”

“쯧쯧. 하긴 그게 그렇게 쉽게…….”

“술 한 잔 마시면 나아질 거 같습니다.”

태건이 바로 덧붙여 말했다.

그 순간 이채용 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지금 술 사달란 거냐?”

“아니요. 제가 사야죠. 성규 선배도 같이요.”

“흠……. 그래. 그래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마셔야지.”

“감사합니다.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해주셔서요.”

스윽.

태건이 두 다리를 내리고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이채용 팀장이 한마디 했다.

“잘했어.”

“네?”

“강아지도 생명이야. 잘 구했다고.”

“감사합니다.”

“대신 다음에 또 이러면 국물도 없어. 각오해.”

이채용 팀장의 마지막 말이 으스스했다. 

그날 저녁.

퇴근한 태건과 이채용 팀장, 박성규가 순댓국집에 모였다.

순댓국을 앞에 둔 태건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더 좋은 걸 사드려야 하는데…….” 

“짜샤. 진짜 대접은 말이다. 백첩 반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내가 마시고 싶은 물 한 잔 떠다 주는 거야. 알간?”

찡긋.

이채용 팀장은 진하게 눈짓했다.

거기에는 박성규도 크게 공감했다.

“저도 팀장님 말씀에 한 표 행사하겠습니다.”

“역시 성규가 뭘 아네. 그런 의미에서 추가 설명도 해줘라.”

“네……. 태건아. 화려하고 부담스러운 거 보다, 소박해도 같이 즐기고 웃을 수 있는 게 더 좋지 않니?”

박성규가 넌지시 물었다.

태건도 듣고 보니 그쪽으로 마음이 흘렀다.

“그러네요. 마음 편한 게 제일인 거 같습니다.”

“대신 술은 한 잔 받고 시작하자. 나 오늘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 자!”

스윽.

박성규가 술잔을 기세 좋게 들어올렸다.

그런 그의 잔 위에 이채용 팀장이 자기 잔을 올렸다.

“어허, 장유유서.”

“그럼요. 팀장님이 먼저시죠. 따르겠습니다.”

졸졸.

태건은 두 사람의 잔을 꾹꾹 눌러 가득 채웠다.

말로는 부족한 고마움을 이렇게라도 표현해 보였다.

술잔이 차자 이채용 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갈망한 내일이라더라.”

“…….”

“그러니까 숙취는 내일의 나에게 미루고, 오늘 우리는 술이나 퍼붓자. 마셔!”

“마셔!”

쨍.

힘차게 술잔을 부딪치고 함께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한 잔 들어간 술은 다음을, 또 다음을 불렀다.

술 한 잔 마시고, 국밥 한 수저 떠먹고.

언제든 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상 중에 하나였다. 

쪼르륵.

태건이 한 번 더 두 사람의 빈 잔을 채웠다.

그때 술잔에 불과 싸우던 이채용 팀장의 모습이 설핏 지나갔다.

“…….”

태건은 순간 멈칫했다.

그걸 봤는지 이채용 팀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팀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불을 잘 끄십니까?”

“뭐?”

이채용 팀장이 어이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태건은 진지했다.

“진심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이 자식이 대놓고 밑천 빼가려고 그러네.”

“안 되나요?”

태건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때 이채용 팀장이 술을 입에 털어넣고 답했다.

“크으. 불은 살아있어.”

“살아있다고요?”

“잘 생각해 봐. 그게 내 밑천이니까.”

이채용 팀장은 싱긋 웃었다.

태건과 박성규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살아있다라.”

“무슨 의미인진 알겠는데…….”

“나중에 생각하시죠. 일단 오늘은 술부터.”

스윽.

태건이 술병을 들며 생각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박성규도 동감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오늘은 마시자.”

“팀장님도요.”

“어이구, 챙겨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하하. 또 한 잔 꺾자!”

“삶을 위하여!”

쨍.

부딪치고 마시고.

밤이 깊어갈 때까지 세 사람의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어지간히 술기운이 오른 태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왜?”

“저 구하러 오실 때 사실 규정 위반 아닌가요?”

“미친놈.”

이채용 팀장이 피식 웃자 태건이 바짝 다가섰다. 

“맞잖아요?”

“태건아.”

“네.”

“사람이 죽어가는데 무슨 규정 따져야 해?”

이채용 팀장의 반문에 태건이 움찔했다. 

“.......”

“규정 그거 최소한이야. 사람이 죽어가는데 규정은 개뿔.”

“팀장님.”

“그래도 넌 안돼 새꺄. 아직 병아리잖아. 난 살아나올 길을 찾아놓고 가기나 하지.”

이채용 팀장이 나지막이 한마디 하자 태건이 눈빛을 번뜩였다. 

“두고 보십시오. 머잖아 뒤를 따르겠습니다.”

“하하. 이거 큰일 날 놈이네.”

이채용 팀장이 크게 웃었다. 

거기에 발끈한 태건이 얼른 나섰다. 

“진짜입니다.” 

“까불지 마. 아직 기지도 못하는 새끼가.”

이채용 팀장이 가볍게 무시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태건은 현실을 무겁게 인정했다. 

“전 아직 팀장님처럼 못합니다.”

“당연하지. 병아리가 무슨.”

“그런데 두려움을 이기는 건 뭘까요?”

이채용 팀장이 소주잔을 비우며 조용히 말했다.

“난 성질이 더러워서 사람이 있으면 규정이고 뭐고 그냥 가지.”

“정말 위험하지 않습니까?”

“새꺄, 위험하지. 근데 내가 안 가면 그 사람이 죽으니까.”

“그런데 왜.......”

태건이 조심스럽게 묻자 이채용 팀장이 씩 웃었다. 

“난 소방관이니까, 공무원이기 전에 소방관이니까.”

“팀장님.”

“자식, 그래도 조심은 해. 자.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이채용 팀장이 귀찮단 듯 손부터 흔들었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음날 아침.  

선배들은 태건을 대하는 모습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여, 출근 했냐.”

“컨디션, 굿?”

“쓰레기통은 그때그때 비우자.”

아무 일도 없단 듯 똑같이 대하고 잔소리 했다.

이채용 팀장이 입단속시킨 덕분이었다.

-괜한 소리해서 분위기 개판내면 죽는다.

-네.

-선배들이 그걸 품어주는 아량을 보여야지. 그래야 나중에 괄시 안 받아.

-괄시는 모르겠고, 아량은 품겠습니다.

선배들은 그렇게 약속했고, 그걸 훌륭하게 지켜냈다.

*  *  *

그 후로도 어느새 한 달이란 시간이 쑥 흘러버렸다.

태건이 출근한지 4달째 접어들었다.

규정상 소방사시보는 6개월 후에 진급이다.

그럼 소방사가 된다.

그에 대해 조금 이르지만 선배들이 먼저 챙겨줬다.

“이제 오십 며칠 남았냐?”

“군대 전역 세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매일 알려주냐.”

“태건아, 소방사 달면 좋을 거 같지? 눈 감아봐. 까맣지? 그게 바로 소방사의 미래야. 푸하하하.”

매일매일 놀리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 같았다.

*  *  *

철컥.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에 구디소방서 지하 식당 문이 갑자기 열렸다. 

저벅저벅.

동시에 기다렸단 듯 열린 문틈으로 한 무리의 건장한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모두 주황색 상의에 검은 하의인 유니폼 차림이다.

다들 상의가 땀으로 물들어 축축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식당 안에서 온몸 가득 탄내가 진동했다. 

한 사람이 얼굴에 마른 땀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다리를 살짝 절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부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갑자기 모두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에라이!”

“젠장!”

쓴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텅 빈 조리실 모습에 짜증이 솟구친 듯 했다.

원성 가득한 팀원들 목소리가 식당을 가득 울렸다.  

  

이채용 팀장의 시선이 슬며시 불만 가득한 팀원들에게로 돌아갔다. 

그 사이 눈치 빠르게 육각수 3개의 소방교 계급장을 단 팀원이 나섰다.

최정균.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순한 느낌이다. 그런데 커다란 덩치만큼 힘이 좋아 현장의 팔방미인이었다.

최정균은 이 중에서 이채용 팀장과 가장 오래 일했다.

그만큼 척하면 척이었다. 

최정균이 거친 목소리를 거침없이 뱉어냈다. 

“아무리 늦었어도 좀 너무하는 거 아니야? 뭐 빠지게 출동하고 왔는데 밥은 줘야지. 밥은!”  

“그러니까 말입니다. 아이씨, 한 집 식구들끼리 좀 끈적끈적하게 챙겨주는 맛이 있어야죠!”

곧 다른 팀원의 불만도 연달아 들려왔다.

가만히 듣던 이채용 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균아.”

“네. 팀장님!” 

“여기서 떠들지 말고, 뭐 있나 좀 보고 말해.”

“제가요? 제 짬밥에요?”

최정균의 눈이 커지자 이채용 팀장이 심드렁하게 지시했다. 

“니가 하시던지, 애들 시키시던지, 그건 알아서 하세요.”

“알아 모시겠습니다……. 막내야, 우리 싱그러운 막내 어디 있니?”

최정균이 다정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갑니다.”

“얼른 뛰어와.”

그러자 팀원들 사이에서 강태건이 불쑥 튀어나왔다. 

도착과 동시에 태건은 최정균을 향해 빙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막내 여기 있습니다!”

“이제 뭘 해야 할까나?”

“밥하고 반찬 남겨둔 거 확실히 확인하겠습니다!”

“아주 건전한 태도야. 실시.”

최정균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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