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4)화 (4/320)

4화

타다닥!

태건은 거의 반사적으로 배식대 쪽으로 달렸다.

그게 당연하단 표정이었다.

상명하복?

그런 딱딱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자진해 움직이고 있었다.

왜? 

소방서에서 하루만 있어 보면 안다.

온갖 위험이 가득한 현장으로 몇 번이고 출동한다.

그 시간을 매일 이겨온 선배들이다. 

그리고…….

꼬르륵.

‘먹을 거, 먹을 거.’

자신의 위장 속도 텅텅 비었다.

눈에 불을 켜고 돌아보던 태건이 허탈한 얼굴로 소리쳤다.

“없습니다!”

“뭐?”

“남겨 놓은 게 없습니다!”

“잘 찾아 봐, 자식아!”

최정균이 조금 전과 달리 인상을 확 찡그리며 재촉했다.

그때였다.

스윽.

이채용 팀장이 바로 손짓했다.

“막내야. 냉장고에서 김치 꺼내와. 나머지는 컵라면 준비하고.”

“또 컵라면이요?”

동시에 팀원들이 앓는 소리를 했다.

이채용 팀장은 가까운 식탁 의자에 앉으며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먹어. 언제 또 출동 떨어질지 모르는데 빨리 쑤셔 넣자.”

틀린 말이 아닌지라 팀원들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먹고 올 줄 알았겠지.”

“어디서요!” 

“이 자식들이.”

“준비하겠습니다.”

팀원들은 더 항의 못하고 돌아섰다.

욱하는 이채용 팀장을 더 이상 보고 싶진 않았다. 

사실 소방관들에게 이런 순간이 제일 힘 빠진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할 때면 못내 삼켜둔 불만까지 고개를 들었다.

그때 이채용 팀장이 흘리듯이 말했다.

“끝나고 삼겹살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굼뜨면 사주고 싶은 마음이나 들겠어?”

들으란 소리라 모두가 들었다.

쫑긋!

귀가 꿈틀거리며 난리가 났다.

세상에 고기 싫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의 표정이 동시에 다부지게 변했다.

“뭐 하냐, 빨리 컵라면부터 뜯어!”

“두 놈은 비닐 벗기고, 두 놈은 뚜껑 따!”

“뜨거운 물 있어?”

“확인 중입니다!”

우당탕!

언제 기운이 빠졌냐는 듯 다들 번개 같이 움직였다.

그 사이 태건이 김치 통을 들고 왔다.

텅.

서둘러 식탁 위에 놓자 이채용 팀장이 슬쩍 힐끔거리며 한 마디 했다.  

“인마. 막내.”

“네, 팀장님.”  

“넌 컵라면 두 개 먹어. 알지?”

찡긋.

윙크까지 내보였다. 

그때였다.

턱.

태건의 직속 선배인 박성규가 수저통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이제 막 신입 물이 빠진 소방관이었다. 

“제가 옆에서 딱 지켜보겠습니다.”

“얼씨구. 성규야, 인마. 너도 두 개 먹어.”

“저 막내 아닌데요?”

“도토리 자식들이 얼마나 차이난다고.”

이채용 팀장은 어이없단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가만히 듣던 태건은 슬쩍 농담을 건넸다.  

“그건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야, 강태건. 너 이 자식, 많이 컸다?”

“키는 제가 좀 더…….”

“그 얘기가 아니잖아. 아오, 왜 또 키 얘기를 하는데!”

키가 작은 박성규는 울컥한 얼굴로 따졌다.

이채용 팀장은 막내 라인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불쑥 한 마디 했다.

“우리 항상 이렇게 웃자.”

“…….”

태건과 박성규가 침묵했다.

그 한마디가 의미하는 바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둘을 보던 이채용 팀장이 얼굴을 살짝 굳혔다. 

“그렇다고 현장에서까지 웃지 말고.”

“당연하죠.”

“현장에서 얼빠진 모습만 보여 봐. 내 발이 네놈들 엉덩이 쿠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거니까. 알간?”

이채용 팀장이 찡긋거리며 답을 원했다.

태건과 박성규는 얼른 기합 가득한 얼굴로 힘차게 답했다.

“네!”

“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채용 팀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들아. 니들은 배도 안 고프냐? 빨리 좀 준비하자!”

그의 재촉에 팀원들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식사 준비가 끝났다.

모두 뚜껑 덮인 컵라면을 하나씩 앞에 놓고 있었다.

꼬로록.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그때 참을성이 조금 부족한 최정균이 결국 손을 움직였다. 익은 정도를 확인하던 그는 결심한 듯 퉁명하게 말했다.

“이 정도면 먹고 안 죽어!”

그 소리가 신호탄이었다.

“먹자!”

“잘 먹겠습니다!”

촤악!

인사와 동시에 뚜껑을 열었다.

뽀얀 김이 솟아오른 후 뻘건 국물과 덜 풀어진 면발이 보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입으로 향할 때다.

“그럼…….”

기세 좋게 한 젓가락 들어올렸다.

후르륵!

꿀맛, 아니 천국의 맛이다.

“하우우. 좋다!”

입김 펑펑 뿌려가며 뜨끈한 행복을 만끽했다. 

그 행복한 시간은 잠시였다.

에에엥!

귀를 찌르는 벨소리가 울렸다.

아주 귀에 익은 화재 출동벨 소리다.

동시에 모두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젠장, 좀 먹고 살자!”

“빌어먹을, 하필이면!”

원망의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입만 그랬다.

몸은? 

벌떡.

번개 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순간 태건이 아쉽단 듯 컵라면을 잠시 응시했다. 

툭.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최정균이 씩 웃고 있었다.  

미련을 놓은 태건은 빈손으로 일어나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지 컵라면을 바라봤다.

“돌아오면 우동 되겠네.”

“그럼 식기 전에 돌아오자.”

독특한 의견에 고개를 돌려보니 최정균이 웃고 있었다.

태건도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우동 먹자고요?”

“다시 끓여 먹으면 되지. 다른 건 몰라도 컵라면은 많잖아.”

“그런데, 일단 출발해야지 않습니까.”

태건이 볼멘 목소리로 현재 어떤 상황인지 곱씹어줬다.

그제야 다들 황급히 움직였다.

“자자, 가자!”

“뛰어. 달려!”

타다닥. 우당탕.

뒤엉켜 밖으로 뛰어나가면서도 다들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좋았다. 

막상 현장에 뛰어들면 누가 죽을지 누가 살지 몰랐다. 그러기에 서로를 향하는 마음에서는 아무런 억하심정이 없다. 

오로지 서로를 위한 애틋한 동료애 그뿐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신이 뿌듯했다.

다다닥.

생각과 달리 복도를 질주하는 팀원들의 눈빛에 긴장함이 가득했다. 

1분 후.

태건을 비롯한 화재2팀은 동시에 차고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들만 출동하는 게 아닌지 차고에 소속 소방관들이 가득했다.

“1팀 서둘러!”

“3팀 먼저 출발합니다!”

에에엥!

빨간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차고를 나섰다.

그 사이 화재2팀은 차고 뒤쪽 방화복 거치대로 달려갔다.

가장 맨 뒤에서 달리던 태건의 귀에 앞서 달리는 최정균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소방서 대원들 전부 출동하는 겁니까?”

“그런 모양이야.”

이채용 팀장의 긴장한 말투가 이어지자 최정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느낌 싸한데요?”

“닥치고 뛰어.”

이채용 팀장이 대뜸 면박부터 날렸다.  

하지만 그도 같은 생각인지 표정이 어느새 심각하게 굳어졌다.

다른 팀원들 표정도 한결 무거워졌다.

한층 더 긴장된 분위기가 태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마디로 뒷골이 싸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자기 앞가림하기도 벅찼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차에 오르자마자 다급하게 챙겨온 장비들부터 다시 확인했다.

척, 척.

“도끼 챙겼고, 경보기 있고…….”

좁고 불편한 자세지만 쉬지 않고 확인을 이어갔다.

목숨이 달린 점검이기에 몇 번이고 해도 모자랐다.  

텅!

느닷없이 태건의 머릿속이 울렸다.

헬멧을 강타한 건 옆에 자리한 최정균의 솥뚜껑 같이 커다란 손이었다. 살갑게 부르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묵직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굵고 짧게 물었다.

“정신 들어?”

“네!”

태건은 목이 터져라 대답했다.

소방차 내부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최정균의 굳은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슬쩍 태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불렀다.

“막내야.”

“네. 선배님.”

“자식. 컵라면 반이나 먹었어?”

“두 젓가락이요.”

태건이 쓰게 웃으며 답하자 최정균이 짓궂은 충고를 했다.

“이 짓 계속하려면 빨리 먹는 습관 키워.”

“노력하겠습니다.”

“근데 위장병은 책임 못 진다.”

최정균의 진담 섞인 농담에 동승한 다른 팀원들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

“맞는 말이지.”

웃음이 긴장을 풀었다.

화재 출동이란 늘 극한 위험 속을 향해 직행으로 달려가는 열차와 같았다.

언제나 현장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반대로 도착 전까지 잠시라도 긴장을 푸는 게 이들의 방식이다.

오늘은 그 장난 대상에 태건이 걸렸을 뿐이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후였다.

다시 한 번 복장을 점검하던 태건의 귀에 이채용 팀장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주목.”

“네!”

“제일정유 원유저장소에서 불났대.”

이채용 팀장은 마치 남의 일처럼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듣던 팀원들 눈은 휘둥그레 떠졌다.

“어, 어디요?”

“제일정유면…….”

모두 황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말이 주는 의미를 너무도 잘 아는 탓이다.

이채용 팀장은 흔들림 없이 이어서 말했다.

“부천 IC 근처에 있는 거 맞아.”

“거기 공장하고 주택 밀집지역 아닙니까?”

“그렇지.”

이채용 팀장이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팀원들의 걱정은 더욱 커져갔다.

“그래도 저희 관할하고는 거리가 상당한데요. 설마.”

“그래 생각대로야.”

“심각한 모양이네요.”

“아까 대응 2단계 떨어졌어. 부천소방서부터 부평, 김포, 강서, 양천 등등 죄다 그쪽으로 집결 중이야.”

“…….”

다들 침묵한 채 머릿속이 복잡해진 표정으로 변했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대응 2단계.

심각한 화재현장이란 소리였다.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장비가 투입될지 쉽게 셈이 되지 않았다.

더불어 위험도는?

그야말로 대박이란 이야기였다.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에에엥!

사이렌 사이로 또 다른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순간 태건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경인고속도로를 일부 통제한 모양이다. 

앞뒤로 각종 소방차량들이 줄줄이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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