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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5)화 (5/320)

5화

그 장관에 태건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우와.”

사실 이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화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당연히 목숨이 극도로 위험한 화재현장이란 의미기도 했다. 

태건의 긴장감은 거의 극으로 치달렸다. 

그때 이채용 팀장이 모두를 불렀다.

“주목.”

“…….”

시선을 마주한 모두가 움찔했다.

이채용 팀장의 두 눈이 거칠게 빛나고 있던 탓이다. 그는 그 강렬한 눈빛으로 모두에게 경고했다.

“이번 현장에서 까부는 새끼, 내 손에 확실히 뒤진다.”

싸늘한 목소리.

진심이다.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으로 가득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태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태건은 소방차 속도가 느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이채용 팀장이 어깨에 달린 무전기를 잡으며 말했다.

“모두 무전기 켜.”

“네!”

띠릭.

태건은 거의 반사적으로 무전기를 켰다.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띠릭. 1팀, 도착했으면 빨리 판 깔아, 이 새끼들아!

-띠릭. 어디로 쏩니까?

-띠릭. 북북동에서 정북 방향으로! 그리고 3팀, 통구이 될래? 뒤로 물러나, 라인 맞춰!

낮은 목소리 톤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운 명령소리였다.

물론 귀에 익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걸 들은 최정균이 슬쩍 물었다.

“서장님까지 출동입니까?”

“대응 2단계가 놀이터 불장난이냐?”

“아니요. 그래도 좀 놀랍네요.”

“아니더라도 서장님 성격상 우리만 보낼 분이야?”

이채용 팀장의 짧은 질문 속에 구디소방서장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물론 최정균도 인정하는 바였다.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아무래도…….”

“불만 있으면 나중에. 잡담은 여기까지.”

이채용 팀장의 마지막 목소리 톤이 변했다.

이제 농담할 여유를 접을 때란 의미였다.

눈치 챈 태건이 장비를 움켜잡았다.  

“…….”

그리고 긴장감을 높이 끌어올렸다.

현장 투입 직전이다.

정신을 아무리 바짝 차려도 모자랐다.

에엥.

10여 분 후, 소방차가 연이어 화재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다른 지역 소방서에서 몰려왔는지 수십 대의 소방차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태건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이 정도 규모라면 절대 만만치 않았다. 

“서둘러.”

소방차가 멈추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태건은 얼핏 화재현장을 보곤 흠칫했다.

역시 예사 화재가 아니었다. 

우선 일반 불이 아니다.

화르륵.

시뻘겋다 못해 새파란 화염이 넘실거리는 곳.

제일정유 원유저장소가 시퍼런 화염에 잠겼다.  

화학제가 타면서 엄청난 고열이 넘실거렸다.

가까이 가면?

몇초 안에 그대로 통구이가 될 거 같은 강렬한 화염이었다. 

살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야말로 소방관이 된 후 본, 가장 최악의 화재였다.

기름이 활활 타는 불이란 진압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애써 냉정을 되찾은 태건이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엥엥.

소음을 찢어져라 뿜어내는 수십 대의 소방차.

그리고 수백 명의 소방관이 기를 쓰고 화재를 진화하려 진땀을 뽑았다.

쏴아.

짧은 시간이 지나자 물줄기 수십 개가 화염 속으로 쏟아졌다.

마치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화학소화제가 섞인 물줄기의 향연이 화염 속으로 거침없이 달렸다. 

불을 지우고 다시 평화롭게 만들려는 소방관들이 신념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펑펑.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들렸다. 

물을 만난 불은 더더욱 기승을 부리며 화염 세례를 퍼부을 뿐이다.   

“젠장.”

태건은 오늘 화재진압은 상상 외로 어렵단 생각에 가슴이 무거웠다.

이대로라면 밤샐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밤샘이라고 봐야 했다. 

“쫄쫄 굶게 생겼네.”

작은 투덜거림이 절로 나왔다.

그때 멀리서 구디소방서장의 긴박한 고함이 들렸다.

“화학탱크를 막아. 거기 터지면 끝이야. 이봐, 이 팀장, 그쪽으로 가.”

“네, 서장님.”

“조심해. 아차하면 큰일 나.”

“염려 마십시오. 아직 저승길 갈 때가 아닙니다.”

“여차하면 후퇴하고.”

“에이 서장님도, 저 아시잖아요.”

이채용 팀장이 짐짓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말뿐이다. 

타다닥.

다급한 지시에 이 팀장을 비롯한 소방관들이 잽싸게 움직였다. 

태건이 시선을 돌려보니 화학탱크 주위로 불길이 서서히 다가서는 모양이었다. 

‘안 좋아.’

태건이 마른 침을 삼켰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지만 소방학교에서 봤던 화염이다.  

이건 힘든 싸움이다. 

내부에 있는 화학제가 문제였다.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녀석이었다. 

거기에 불이 붙으면?

대형 참사였다.

주변에 주택과 건물들이 일순간에 쑥대밭으로 변한단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다행히 아직 그쪽엔 불길이 번지지 않아 아직은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불이란 언제 어디서 다시 발화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때였다.

이채용 팀장이 아주 잠깐 생각한 후 태건에게 말했다.

“태건아.”

“네, 팀장님.”

“너 화학소화제 공급해. 쉬지 말고 날라.”

“어딜요?”

어리둥절한 태건에게 이채용 팀장이 대뜸 면박부터 줬다. 

“어디긴, 우리 가는 쪽이지.”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태건의 힘찬 목소리에 이채용 팀장이 경고부터 날렸다.

“단, 입구 이상 들어오면 죽는다.”

“명심하겠습니다.”

“뭐하나? 얼른 두 개씩 들고 따라와.”

너무도 태연한 이채용 팀장 말에 태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겠어요?”

“식은 죽 먹기지. 불담만 쌓으면 돼.”

불담.

산불 번지는 걸 막는 일이었다. 여기선 화염이 화학탱크로 못 오게 소화제로 쳐 바른단 이야기였다.

태건은 왠지 불길한 예감에 조심스레 말했다.

“조심하세요.”

“너나 조심해. 자식, 경력도 비실거리는 녀석이.”

이채용 팀장이 피식거리며 빠르게 뛰었고 그 속도만큼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잠시 바라보던 태건이 정신을 차리고 얼른 소방차로 가 화학소화제를 두 개 들고 재빨리 이채용 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부터였다.

한 번.

두 번.

정신없이 화학소화제를 이채용 팀장에게 전했다.

“여기 왔습니다.”

벌써 열기에 얼굴이 붉게 타오른 이채용 팀장이 버럭 소리쳤다. 

“야, 인마. 더 빨리 가져와.”

“알겠습니다.”

태건은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헉헉.”

숨이 턱에 차도 뛰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아직 안전하다 하지만 상당히 두려운 곳이다. 

이채용 팀장이 있는 곳은 그야말로 화약고였다.

아차하면 터진다.

터지면?

주변 주택가까지 쑥대밭으로 변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걸 막기 위해선 화학소화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는 진압에도 벅차 화학소화제를 나를 시간도 없었다.

결국 자신이 늦으면 두 사람의 목숨이 위험했다. 

어느새 푸른 화염이 이채용 팀장 주위로 넘실거렸다.

그래도 이채용 팀장은 여유 만만했다.

“거, 상당히 뜨겁네. 막내야, 소화제 다 써간다.”

“기다리십쇼.”

태건은 다시 뛰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 

그러나 불운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막 소화제를 전하고 다시 소방차로 뛰려는 순간이다. 

펑.

폭음이 들리자 반사적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헉. 저긴.”

분명히 이채용 팀장과 동료 소방관이 뛰어든 곳이었다. 이미 시뻘건 화염이 넘실거리는 불지옥으로 변한 후였다.

불과 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다. 

순간 태건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순간적으로 이성 자체가 마비된 탓이다.  

화학탱크가…….

터졌다.

폭발의 여파로 주변 시설이 무너지고 쓰러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땅이 울리는 폭음이었다.

모두가 들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소방관들이 기겁하며 고함을 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화학탱크!” 

“뭐해? 저쪽부터 쏴. 다 쏟아 부어!”

촤아악!

수많은 물줄기들이 동시에 그쪽으로 날아갔다.

-에에엥!

화학차와 펌프차의 일부도 그쪽으로 이동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순간이다.

그들 모두 동료를 위해 사력을 다해 물줄기를 퍼부었다. 

무전기에선 박민석 서장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띠릭. 이채용이 응답해라, 박성규, 당장 대답해, 무전하란 말이다!

-띠릭. 서쪽 건물로 전 인원 당장 집결하라! 부어 다 부어 새끼들아.

물줄기가 조급한 사람들 마음을 아는 냥 미친 듯이 쏘아졌다.

촤아아, 퐈아아!

그러나 보통 불이 아니다.

정제된 화학불길의 생명력은 너무도 끈질겼다.

아무리 쏟아 부어도 불은 그리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방해하는 물이 다가오자 반발하듯이 더더욱 기승을 부렸다.

콰르륵!

그에 맞서는 소방관들도 필사적이었다.

“앞으로 전진!”

“더는 갈 수 없습니다!”

“한쪽이라도 뚫어. 그리고 진압조 대기하고 있어!”

“이야야야!”

촤아아, 푸아악!

붓고 또 붓고, 있는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폭발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퍼버벙!

다시 한 번 폭음이 들리며 건물 잔해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불의 광란.

정말 불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 모든 걸 보고 있던 태건이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쏴아아.

물줄기가 조급한 사람들 마음을 아는 냥 미친 듯이 쏘아졌다. 그러나 일반 불이 아닌 것이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쏟아 부어도 불은 그리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아무리 화학소화제가 섞인 물이라해도 역부족이었다. 

아니 오히려 방해하는 물이 다가오자 반발하듯이 더더욱 기승을 부렸다.  

펑.

물줄기를 얻어맞자 화학제 불길이 하늘 높이 불줄기를 뿜어냈다. 그래도 지금은 물줄기가 유일한 생로였다.

비틀.

모든 소방관들이 강한 수압에 비틀거리면서도 악착같이 물줄기를 밀어냈다. 

펑.

다시 한 번 폭음이 들리며 건물 잔해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불의 광란.

화학제가 타며 솟아오른 불길.

섭씨 천도가 훌쩍 넘은 고열이었다. 

그 속에 사람이 뛰어든다면?

뼈까지 녹아내리는 데 불과 몇 십초?

두렵다.

태건은 전신이 떨리도록 무서웠다.

“꿀꺽.”

침이 절로 말랐다. 

그러나 저 안에 사람이 있다.

그것도 조금 전까지 라면으로 투닥거리던 사람들이.

게다가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채용 팀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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