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이대로 돌아선다면?
태건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태건아. 이 개새꺄, 힘내.”
피가 터지도록 입술을 물었다.
두 다리가 떨리도록 두려웠지만 가야 할 곳이다.
소방관이자 동료이기 전에 혈육처럼 챙겨주던 사람들이 저기 있다.
멋모르고 소방서에 첫 출근했을 때 따사롭게 감싸주던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생명의 은인까지.......
눈에 힘이 들어갔다.
시선을 내리깔자 손에 든 화학소화제 한통이 보였다.
그리고 또 한통.
덜덜.
손이 미친 듯이 떨렸다.
순간 이를 악물었다.
슥.
집어가는 손에 용기를 가득 실었다.
이제부터 화학소화제 두 통에 젊은 생명을 걸어야 했다.
“간다.”
타닥.
태건이 미친 듯이 불길 앞으로 뛰었다.
소방관들은 그런 태건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저 새끼 누구야?”
“어……. 엇! 강태건입니다!”
“뭐? 2팀 막내?”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뭐하는 짓이야. 얼른 안 돌아와!”
귀에 익은 고함소리가 귀를 먹먹할 정도로 울렸다.
태건은?
짤막하게 무전했다.
“저기 팀장님과 선배님이 있습니다.”
“닥치고 멈춰.”
“…….”
깔끔하게 무시했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앞만 봤다.
그때 방화복을 입고 현장을 지휘하던 구디소방서장의 목소리가 따끔하게 울렸다.
“강태건이. 돌아온다, 실시. 이리 오란 말이다!”
구디소방서 최고 책임자의 명령이다.
그러나 깔끔하게 무시하고 더욱 속도를 붙였다.
“저, 저, 저…….”
다들 어이없어 했다.
물론 무작정 비난만 하진 않았다.
한편으로는 태건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모두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또 다시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는 이 자리에서 물을 뿌려야 했다.
서장이 표정을 잔뜩 굳히고 소리쳤다.
“뭐해, 이 새끼들아. 쪽팔리지도 않냐!”
그 따가운 질책 소리와 동시였다.
무슨 의미인지 직감한 소방관들 중 일부가 물길을 바꿨다.
촤아악!
그 물줄기들은 태건이 향하는 장소의 불길을 밀어냈다.
길을 터주는 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준비해!”
뒤에서 보조하던 소방관들이 소방차로 우르르 향했다.
절대 혼자 보내지 않는다.
이 또한 소방관들만의 철칙이었다.
태건이 가까이 가자 불길이 화끈하게 얼굴부터 느껴졌다. 뜨거운 열기가 금방이라도 삼킬 듯 이글거렸다.
태건도 사람인지라 순간 주춤거렸으나 짧은 시간 내에 냉정을 찾았다.
“휴.”
작은 한숨이 태건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불을 두려워하면 오히려 더 가까이 보이기 마련이다. 차분한 시선으로 노려보았으나 입구가 연기에 가려 흐릿하게 보였다.
이대로라면 더욱더 연기가 심해져 아예 들어가기도 불가능해 보였다.
후욱.
산소마스크를 얼른 쓰고 그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불길이 아직 출입구까지 넘실거리진 않았다.
머뭇거리면 영원히 발길이 여기서 멈출 것만 같은 예감에 힘겹게 앞으로 전진했다. 후끈한 열기가 점점 얼굴에서 시작돼 온몸으로 번졌다.
이미 내친 발걸음이라 태건은 이판사판인 심정으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화르륵.
불길이 제일 먼저 태건을 반겼다.
백화.
불 중에서 최악이라 일컬어지는 놈이었다.
섭씨 1,000도가 넘어야 피어난다는 하얀 불꽃, 즉 백화였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삽시간에 숯덩이로 변할 정도의 위력을 지닌 놈이었다.
이 순간.
차라리 두려움은 사라지고 한 가지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생명의 은인인 이채용에 대한 보답도 아니었다.
컵라면.
비록 퉁퉁 불어터졌을지라도 같이 먹고 싶었다.
소박하지만 이 순간, 너무도 간절한 소망이었다.
“저번엔 제가 있어서 오셨다 했지요.”
태건 눈에 힘이 들어가며 한번 더 말했다.
“이번엔 제가 거기 팀장님이 있어서 갑니다.”
태건이 딱딱 끊어서 한마디 했다.
그 마음을 가득 담아 버럭 소리쳤다.
“팀장님, 어딥니까?”
“......”
아무런 대답이 안 들렸으나 태건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강태건입니다. 어딥니까?”
화르륵.
시뻘겋다 못해 퍼레진 화염이 넘실거리는 곳. 얼마나 두려운지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도 잊어버렸다.
그때였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어서 나가!”
“태건아, 어서 나가서 선배들 불러와.”
저쪽 화염 저쪽. 두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 두 사람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태건이 마주 소리쳤다.
“어떻게 혼자 갑니까!”
“그럼, 미친놈아 이리로 올래?”
저쪽과 이쪽 사이에는 두께가 3m는 훨씬 넘어 보이는 화염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치지직.
타들어가는 나무,
녹아내리는 쇠.
족히 1,000도는 넘는 맹렬한 화염이었다.
거기다 화공약품 공장. 화공약품이 타면서 유독가스와 맹렬한 화기가 그들 세 사람을 뒤덮고 있었다.
“빨리 나가!”
저쪽에서 고래고래 고함치는 이채용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오라고 했다면?
살려달라고 고함이라도 쳤다면?
어쩌면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발길을 꽉 잡았다.
꽈악.
태건이 입술을 앙 다물자 진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가보겠습니다.”
“왜? 오기도 전에 죽고 싶냐?”
틀린 말은 아니다.
이 화염을 뚫고 저쪽에 가기 전에 활활 불타 백골로 변할지도 몰랐다.
“시도는 해보고요.”
“닥치고 어서 피해!”
“이거!”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화염은 넘실거리며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이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가...”
화르르르륵!
갑자기 눈앞에 다가온 불길에 시력이 순간 멀어버릴 거 같은 뜨거움을 느꼈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어디서 난 용기인지 모를 정도로 소리쳤다.
“선배님, 갑니다.”
“이 미친 새끼야. 오긴 어딜 와.”
“띠블,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까는 소리 말고 화학소화제나 더 가져와.”
이채용 팀장이 침착하게 달랬으나 태건은 요지부동이었다.
“갔다 오다보면 그 시간 동안 선배님들 다 죽어요.”
“안 죽어.”
“팀장님.”
“여기 그나마 버틸만 하니깐 어서 서둘러.”
태건이 순간 주춤했다.
그 순간.
이채용 팀장이 무섭게 냉정한 얼굴로 옆에 있던 박성규에게 말했다.
“무섭냐?”
“저도..... 사람입니다.”
“우리 힘든 거 알지?”
“네.”
박성규가 정말 힘겹게 대답하자 이채용 팀장이 하얀 웃음을 내보였다.
“재수하곤.......”
“하하.”
박성규가 허탈하게 웃자 이채용 팀장 눈빛이 번뜩였다.
“저 미친 자식이라도 살리자.”
“.......”
“실시.”
침묵하는 박성규를 보며 이채용 팀장이 손수건을 꺼내 입에 물었다.
무슨 의미인지 눈치 챈 박성규가 죽을힘을 다해 씩 웃었다.
“오늘이군요.”
“아마도.”
이채용 팀장의 담담하지만 살 떨리는 말을 들은 박성규가 똑같이 손수건을 물었다.
놀라운 건.
화학탱크.
터지면 주변이 쑥대밭으로 변할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대형 화학탱크가 온통 소화제로 뒤덮여 있단 사실이다.
그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는 목숨을 걸고 대량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곧바로 이채용 팀장은 버럭 소리쳤다.
“강태건, 어서.... 나가!”
“팀장님.”
“화학탱크는 조금은 버텨. 어서 진압하라 해.”
지시를 마친 이채용 팀장이 피식 웃었다.
“성규야?”
“네.”
“바로 탈출했으면 살 수 있었을까?”
“거의 불가능이라고 봅니다.”
박성규가 고개부터 젓자 이채용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인생이었어?”
“전엔 아닌데 지금은 괜찮네요.”
“후후.”
이채용 팀장이 덧없는 웃음만 날렸다.
그리고 곧장 화학용 소화기를 한쪽으로 뿌렸다.
옆에 있던 박성규도 씩 웃으며 같은 방향으로 쏘아냈다.
이상한 광경이긴 했다.
두 사람을 향해 사나운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는 화학탱크에 미친 듯이 소화액을 발사했다.
너무도 당연한 건 불길이 두 사람을 비켜갈 리가 없단 사실이다.
이채용 팀장이 이를 악물었다.
이미 온몸이 뜨겁다 못해 따가웠다.
마지막 화학소화제를 쓴 후 이채용 팀장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정도면 버틸까?”
“아마도요. 밖에 있는 동료들이 몽땅 바보가 아닌 이상 해낼 겁니다.”
“더는 힘.....드네.”
이채용 팀장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미 불길은 거의 근처까지 왔다.
사람인 이상 고통을 안 느낄 리가 없었다.
이채용 팀장이 허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씨블 놈의 불덩이, 더럽게 지랄하네.”
화르륵.
갑자기 불꽃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불길은 곧바로 이 팀장과 박성규에게도 쏟아져 들어갔다.
곧 하얀 불꽃이 두 사람에게 들이쳤다.
푸스스스.
방화복이 급격히 타들어갔다.
퍼엉!
호흡기 커버가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하얀 불의 파도가 두 사람에게 그대로 몰아쳤다.
몸이 타들어간다.
“크으읍!”
“으으!”
손수건을 찢어져라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며 비명을 지르지 않는 이유.
저 건너편에 있는 태건을 위해서였다.
아직 젊은 태건이 앞뒤 가리지 않고 들어온다면?
자신들은 몰라도 태건은 개죽음이다.
그걸 알기에 버텼다.
둘 다 이미 직감했다.
이제 미지의 세계로 떠날 시간이었다.
‘살아, 끝까지, 무슨 수를 쓰던 살아남아.’
‘태건아, 털고 일어나.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들의 마지막 소망은 그거였다.
한편 태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갑작스런 불길을 본 탓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태건이 비명처럼 외쳤다.
“안 돼!”
저쪽, 두 사람 쪽으로 화염이 뒤덮이고 있었다.
그런데.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순간 뭔가 직감한 태건 얼굴이 삽시간에 사색으로 변했다.
주춤거리는 사이에 어느새 이쪽으로 밀려오는 화염이 보였다.
역시 무섭고도 두려운 백화.
바로 그놈이었다.
활활.
하얀 불꽃이 금방이라도 태건을 덮칠 듯이 날름거렸다.
그야말로 죽음의 사신 같은 모습이다.
“으.”
태건이 절로 신음을 토했다.
솔직히 너무나 두려워 바지에 실례할 지도 모를 정도로 오금이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