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머리를 쇠망치로 맞은 기분이 들었다.
저쪽에 두 사람이 화염에 뒤덮여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채용 팀장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했는데.......
순간 태건이 지극히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팀장님도 했어.”
꽈악.
태건이 화학용 소화기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쏴아.
하얀 분말이 앞으로 쏟아졌다.
그 순간 이채용 팀장의 충고가 생각났다.
-태건아.
-네.
-만약 정말 두려운 순간이 오면 소방관의 기도 알지?
-압니다.
-그걸 외워. 아마 약간은 견딜 만할 거야.
“해보겠습니다.”
태건은 외우다 못해 머리에 강하게 박힌 소방관의 기도를 읊조렸다.
신이시여!
열심히 훈련했고 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 사슬의 한 부분입니다.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시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불길이 다가왔다.
뜨겁다 못해 지글지글한 화염이 눈앞이다.
지글지글.
어느새 소방복 어깨가 녹아내렸다.
동시에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용기는 사라지고 두려움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때 태건의 입은 또 다시 열렸다.
내 형제가 추락하거든 내가 곁에 있게 하소서.
화염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갖게 하시고
그에게 목소리를 주시어
신이시여 내가 듣게 하소서.
신이시여 내 차례가 되었을 때를 준비하게 하시고
불평하지 않고 강하게 하소서…….
희한했다.
죽음이 바로 코앞에 보였지만 용기가 되살아났다.
“가자.”
태건의 입가에 강한 신념이 걸렸다.
쏴아아.
오로지 휴대용 소화기 하나를 믿고 전진했다. 누가 보면 미친 짓이라고 고함칠 일이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태건이 크게 소리쳤다.
“컵라면 먹어야지요.”
“…….”
물론 대답은 없었다.
태건은 다가오는 불길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니 시선만 간 건 아니다.
손에 든 화학소화제를 미친 듯이 쏘아댔다.
“해보자고? 오냐, 해봐.”
악에 받친 목소리만 이어졌다.
얼마나 갔는지 본인도 몰랐다.
찌익.
신발이 열기에 녹아 바닥에 눌러 붙었다.
얼굴은 강한 화염에 고스란히 노출돼 붉게 타올랐다.
저벅.
찌익.
이 순간 태건은 강한 두려움도 잊고 앞으로만, 앞으로만 나갔다.
내부는 한 마디로 불바다였다.
넘실거리는 불이 제 세상이란 듯 활기를 치고 있었다.
빨간 불꽃, 그보다 높은 파란 불꽃.
주황색과 노란색 불꽃까지.
심지어 백화도 보였다.
불 중에서 최악이라 일컬어지는 놈이었다.
그 정도로 온갖 색상의 불꽃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만큼 호흡기 커버를 뚫고 들어오는 열기가 어마어마했다.
“크으으.”
얼굴이 익어버릴 거 같았다.
“으윽. 젠장!”
악으로 깡으로 온몸에 힘을 줬다.
절박하면, 그리고 절실하면 목적 외엔 모두가 사소했다.
찌릿!
머릿속이 번쩍하며 냉정을 찾았다.
정면을 치면서 측면을 조심한다.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던 이채용 팀장의 조언이었다.
쉬이익.
태건은 소화액을 앞에, 그리고 옆으로 뿌리며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불과 몇 미터가 이렇게 긴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시에.......
“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이채용 소방복이 마치 윤활유처럼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 속에 몸부림치는 두 사람이 보였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은 이성을 거의 마비시켰다.
입안에 손수건을 물고 필사적으로 참으려 했지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고통에 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 위로 화염이 물결치며 파노라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화르르륵!
화염은 한 치의 인정도 없었다.
“팀장님.”
눈에 핏발이 선 태건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거의 이성을 잃은 태건이 화학소화제를 미친 듯이 뿌리며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엔 꺼먼 숯덩이 두 개만 보였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동료였지만 지금은 새까만 숯덩이였다.
게다가 몸 안에서 연기마저 피어올랐다.
“안 돼.”
절규하는 목소리.
“신, 이 개새끼.”
이를 악문 태건에게서 피눈물이 쏟아졌다.
이미 까만 시신으로 변한 두 사람.
삶의 흔적인 호흡은커녕 코가 어딘지도 모를 어두움뿐이었다.
“엿 같네. 인생 더럽게 엿 같네.”
태건이 미친 듯이 악을 썼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이곳에 둘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웃고 떠들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이대로라면 뼈조차 녹아내린다.
데리고 가야 했다.
온전한 시신이라도 장례식장에 보내야 했다.
그 하나만 기억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태건의 시야에 달아오른 손수레 하나가 보였다.
생각하고 자시고할 여유가 없었다.
치익.
손수레에 소화제를 잔뜩 뿌렸다.
그냥 실으면?
시신이 활활 타오를 정도로 달아올랐다.
연기와 함께 손수레가 순식간에 식어갔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하나를 업고 하나를 끌었다.
막 이채용 팀장의 몸을 억세게 잡아간 순간.
찌릿.
온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왔다.
“윽.”
그러나 이내 사라진 고통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지?’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그뿐이다.
지금 한가하게 고민만 할 처지가 아닌 탓이다.
영차.
다시 탈출로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축 늘어져 무거운 체중보다 더한 삶의 무게가 온몸을 짓눌렀다.
“뜨거워서 어쩝니까?”
까맣게 탄 시신.
전에 숨 쉬던 사람이라곤 차마 말하기 힘든 형체였다. 태건은 피눈물을 삼키며 다시 움켜잡았다.
“시원한 데 갑시다.”
푸숙.
검은 연기가 탄 소방복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덥지 않으슈? 얼렁 이 뜨거운 곳에서 나갑시다.”
마치 산 사람에게 말하듯 외치곤 힘차게 까맣게 탄 시신을 손수레에 실었다.
이제 나가야 했다.
삐그덕.
고무바퀴가 이미 녹아내려 잘 끌리지도 않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치익.
화학 소화제를 뿌리며 사력을 다해 생로를 뚫었다.
사방이 넘실거리는 화염과 시꺼먼 연기뿐이다.
섭씨 1,000도를 넘나드는 화공약품 타는 열기가 온몸을 태울 듯 사나운 독아를 드러냈다.
콜록.
호흡하던 중 갑자기 매콤함이 들이쳤다.
“큭!”
호흡기라인 연결 부위가 뜨거운 열에 녹아 미세한 틈이 생긴 모양이다.
독기 가득한 태건이 씹어뱉었다.
“젠장, 싸구려 장비. 사선에 보내고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주냐.”
저주어린 한 마디는 이미 지났다.
이젠 살아서 나가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쏴아.
CO2 소화기를 곧장 불벽에 쏘았다.
그 차가움도 거대한 불벽을 밀어내긴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불길이 이쪽으로 밀려왔다.
화르르륵!
소화기는 곧 모든 소화액을 다 쓴 채, 작동을 멈췄다.
이제 한통 남았다.
이게 마지막 남은 하나다.
태건은 아찔했다.
한통 가지고 탈출?
어림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태건은 절망하지 않았다.
“아직 살아있어.”
마지막 오기와 용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읊조렸다.
‘그 누구도 불 속에 두고 나가지 않겠습니다. 약속합니다.’
화르륵.
손수레를 끌고있는 태건에게 불길이 여기저기서 들이쳤다.
금방이라도 태건을 잿더미로 만들려 혀를 날름거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손수레를 버리고 탈출한 생각?
솔직히 들었다.
너무 두려움에 갇혀 든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쓰레기 같은 생각 버려.”
스스로에게 소리칠 뿐이다.
이제는 살거나 죽거나 같이 나갈 생각뿐이다.
“구멍을 찾아야 해.”
탈출구를 찾아내느라 태건은 온 힘을 다해 눈을 부라렸다.
그때였다.
태건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화마도 리듬이 있어.”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상한 기억이 떠올랐다.
-맹렬한 불길 그 후엔 잠시 휴식이 있어. 그 틈을 노려 벗어나야 살아. 명심해.
듣도 보도 못한 기억이지만 정신이 번쩍 났다.
“호흡을 찾아야 해.”
불길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지금 유일한 생존의 동아줄은 오로지 시력뿐이다.
그때였다.
펑.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빛이 태건의 눈동자를 찌를 듯 다가섰다.
“윽.”
심한 고통에 태건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눈이 송두리째 타들어가는 통증이란 정말 참기 힘들었다.
태건이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사소한 통증에 괴로워할 시간이 없단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필사적으로 눈을 떴다.
눈이 시렸다.
아니 시린 정도를 넘어 눈물이 마구 쏟아져 시야를 가렸다.
태건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따끔한 통증과 함께 그나마 앞이 보였다.
여전히 불길은 태건을 집어삼킬 듯이 다가왔다.
남은 시간이 없었다.
느낌상 화학소화제 분사 유지 시간은 불과 10여초 정도 남았다.
그 후에는 맨몸으로 불길을 막아야 했다.
태건은 심장이 아주 작게 조여든 기분이다.
이대로 죽는 건가?
강렬한 공포가 머리를 치고 전신을 뒤덮었다.
그때였다.
“저쪽.”
태건의 입에서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한 마디가 새어나왔다.
움찔.
태건이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피식 웃었다.
평소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맞으면 살고 틀리면 죽는다.
이판사판인 태건은 화학소화제를 미친 듯이 뿌리며 그쪽을 파고들었다.
후끈한 열기.
금방이라도 불에 덮일 듯한 두려움.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이다.
쏴아악.
소화액이 뿜어졌다.
치익.
거의 떨어져 간다.
아주 짧은 10여 초의 시간이었지만 태건에겐 영원보다 긴 시간이었다.
신기한 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마음은 오히려 평온했다.
하는 데까지 해본다.
그 이외에는 아무런 잡념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