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그런데.
불길 속에서 작은 길이 만들어졌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 작은 숨구멍 같은 느낌이다.
“가자.”
태건은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손수레를 끌면서 전진했다.
질질.
어깨가 천근만근이고 끄는 손에 힘이 점점 빠졌다.
게다가 후끈한 열기가 얼굴에 느껴진다.
아니 차라리 뜨거웠다.
저벅저벅.
얼마나 사투를 벌였을까.
마침내 들어오는 문이 희미하게 보였다.
거기에 한 명의 소방관이 보였다.
직감이 갔다.
자신처럼.
미친놈처럼 뛰어든 동료였다.
얼굴을 보니 누군지 금방 알아봤다.
조규찬의 모습이다.
쏴아악.
그가 화학소화제를 뿌리며 출입구를 사수하고 있었다.
소방복은 군데군데 탄 건지 너덜너덜 거렸다.
아차하면?
조규찬도 죽는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눈빛을 번뜩거리며 우뚝 서있었다.
조규찬은 연신 비틀거리면서도 악착같이 출입구를 지켰다.
그가 마침내 태건을 봤다.
그리고…….
보는 순간 온몸을 떨었다.
“야, 이 씨블놈아.”
“선배. 저기 화학탱크를 팀장님과 성규 형이…….”
“어서 나가. 어서.”
조규찬이 흔들거리는 몸으로 출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또 다른 동료들이 필사적으로 소화액을 뿌리고 있었다.
한 눈에 알아봤다.
가장 선두에 선 이들, 바로 화재2팀원들이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컵라면을 두고 아웅다웅하던 그들이 분명했다.
그들도.
목숨을 걸고 화염 바로 앞으로 다가선 모습이다.
이미 소방복은 그을려 군데군데 검은 얼룩 투성이였다.
“호스 더 가져와.”
“위험해요.”
“이 새끼가. 누굴 바보로 아나? 버텨 새꺄.”
화학탱크 바로 코앞에 불길이 넘실거렸다.
아차 하면 터진다.
터지면?
다 죽는다.
그걸 모를 동료는 없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끝내 해냈다.
하지만 태건은 기쁨 따윈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뜨거웠다.
쌓이고 쌓인 열기가 너무 뜨거워 미쳐버릴 거 같았다.
“끄으으.”
악다문 치아 사이로 신음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이미 반쯤 감긴 눈은 주변의 상황이 어떤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화악!
기다렸단 듯 끼얹어지는 하얀 분말이 쏟아졌다.
“더 뿌려!”
“뭐해. 애들 받아!”
“어떻게 혼자서 두 사람을…….”
“지금 뭘 따져 새꺄!”
따가운 외침들이 태건의 귀엔 멍하니 울렸다.
그리고,
쑥쑥.
손수레에 실려온 이채용 팀장과 끌고나온 박성규를 누군가 데려갔다.
“안……돼.”
허우적.
지칠 대로 지친 태건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 쏟아지던 하얀 분말이 멈췄다.
그리고 태건에 다가온 동료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 자식아.”
“두 사람……. 어디…….”
“걱정 마, 데려갔어. 그런데 어떻게, 이게, 어후!”
“저긴 너무 뜨거워요.”
부들부들.
태건은 요동치는 손길로 불타는 현장을 가리켰다.
그 모습과 손짓에 결국 누군가의 울음 섞인 절규가 터져 나왔다.
“씨바알. 으아아!”
태건은 힘없이 웃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겁나게 뜨겁더라고요.”
휘청.
일순간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걸 본 동료 소방관들이 얼른 손을 뻗었다.
“애부터 잡아!”
“호흡기하고 방화복 벗겨. 어서!”
터더덕.
일순간 태건의 몸에 수많은 손들이 오갔다.
그리고 곧 안전헬멧과 방화두건, 호흡기가 동시에 벗겨졌다.
쑥.
몽롱한 태건이었지만 시원한 공기는 느꼈다.
“하아아…….”
스윽.
주변을 둘러봤지만 흐릿해진 두 눈으로는 누가 누군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젠 그저 쉬고플 따름이다.
태건이 축 쳐지자 모두 난리가 났다.
“이 개새끼들아, 구급차 어디 있어!”
“어서 병원으로!”
동료 소방관들의 소리를 아련한 메아리처럼 들으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구급차에 실어.”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태건이 번쩍 들리며 침대 위에 떨어졌다.
“힘들어, 자고싶.....어.”
“어서 병원으로!”
동료 소방관들의 아우성 소리를 아련한 메아리처럼 들으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 * *
이틀 후.
어두운 병실 창가 병상에 태건이 누워 있었다.
얼굴부터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런 태건은 악몽을 꾸는지 식은땀이 가득하고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으으…… 팀……. 팀장님……. 안 돼…….”
바들바들.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도 했다.
어떤 꿈인지 가히 상상이 될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번뜩!
태건이 갑자기 눈을 뜨며 헛숨을 들이켰다.
“허억!”
그렇게 기나긴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태건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바짝 주며 거칠게 비틀려 했다.
“하으으, 으으윽!”
부들부들.
그런데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이, 불이!”
탁한 목소리를 쥐어짜 영문 모를 소리를 흘렸다.
바로 그때였다.
“엇, 태건……. 눌러!”
“빨리!”
터더덕!
순식간에 다가온 손들이 태건의 팔다리를 우악스럽게 제압했다.
그래도 태건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안 돼, 이딴 불 따위……. 가야 돼. 팀장님, 성규 선배!”
“태건아, 정신 차려. 강태건!”
턱턱.
태건의 가슴을 안쓰럽게 다독이는 손길이 가늘게 떨려 왔다.
그래도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그 충격에 태건의 혼란스런 눈빛이 일순간 확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어억, 헉헉!”
“태건아, 나 보여? 강태건, 인마!”
간절히 다그치는 목소리.
태건의 눈동자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자신을 부른 상대는 조규찬이었다.
그를 본 순간 태건은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파르르.
불 속에서 만난 순간들이 연속되는 모양이다.
태건은 다급히 조규찬에게 소리쳤다.
“규찬 선배. 제 몸이 말을 안 들어요. 저는 놔두고 얼른 들어가세요. 늦기 전에 어서요!”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강태건, 짜샤.”
“저기, 저기 분명 팀장님하고 성규 선배가……. 엇!”
휙!
재빨리 고개를 돌린 태건은 그제야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당황했다.
여긴…….
병실이다.
4인실로 보였고, 세 개의 병상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화재2팀 선배들이 보였다.
최정균, 서순영, 표인철.
조규찬까지 포함해, 그들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태건의 사지를 누르고 있었다.
태건의 발작은 진즉 멈춘 상태였다.
“…….”
스윽.
조규찬이 눈짓하자 선배들이 억누른 태건의 신체를 풀어줬다.
반면 태건은 보고 있으면서도 믿지 못했다.
“여기가, 왜……. 왜 병원입니까?”
“뭐?”
“꿈……. 이었나 보네요. 그러네요. 꿈이었네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두의 표정이 더 깊은 걱정으로 물들어갔다.
태건은 그런 줄도 모르고 홀로 안도했다.
“휴. 진짜 지독한 꿈이었습니다. 하! 어이없게도 글쎄 팀장님과 성규 선배가……. 어후. 다시 떠올리기도 싫습니다.”
“…….”
“그런데 두 분은 어디 가셨나요?”
태건이 선배들을 크게 둘러보며 물었다.
“…….”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태건의 시선을 피했다.
태건은 그런 그들의 반응이 너무도 의아했다.
“왜 그러세요. 두 분만 출동 갔을 리는 없잖아요.”
“태건아. 네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무슨…….”
“차분히 생각해 봐……. 괴로워도 생각해 내야 해. 의사 선생님이 그게 좋다고 그랬어.”
조규찬은 흐려지는 목소리를 억지로 뱉어냈다.
태건은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피잉!
머릿속 기억창고가 열린 듯 수많은 장면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어? 어어…….”
휘몰아치는 기억들이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정유공장 화재현장.
갑작스러운 폭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
화학탱크를 등지고 소화액을 분사하던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
마지막으로 까맣게 변한 모습까지.
“…….”
태건의 눈이 태풍 만난 나무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어서 마치 뻣뻣한 기계처럼 고개를 돌린 태건은 벌게진 눈으로 말했다.
“제 머릿속이 이상해요.”
“…….”
“꿈이 막 현실 같이 느껴지고, 분명 아닌데 그런 거 같고…….”
“태건아.”
스윽.
조규찬이 어깨를 묵직하게 짚으며 불렀다.
그러나 태건은 아직 혼란 속에 있었다.
“이거 아니잖아요. 규찬 선배도 그때 막……. 막……. 그 속으로 들어오셨는데…….”
“그래. 맞아.”
“진짜 사실이라면 더 말이 안 되죠. 제가 그 불 속에서 대체 어떻게 나왔습니까. 네?”
“…….”
조규찬은 입술을 꾹 깨물며 침묵했다.
그때 최정균이 도저히 더 봐줄 수 없겠던 모양이다.
눈에 힘을 가득 주고 태건의 어깨를 양손으로 거칠게 붙들었다.
턱.
“야, 강태건. 정신줄 안 잡냐. 앙!”
“정균 선배.”
“새꺄. 네가 모시고 나왔잖아. 그 두 사람 네가 업고 끌고, 그 지옥에서 나왔잖아. 쓰벌!”
“네? 아닌데, 그거 꿈인데…….”
태건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그 순간 최정균이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피하지 마. 내 눈 봐.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아닌, 정말 그거 아닌데…….”
“강태건, 너 잠든 이틀 내내 소방관의 기도만 읊었어. 그거 채용이 형이 시킨 거잖아. 두려울 때, 무서울 때 외우라고 한 거잖아!”
버럭 소리친 최정균의 눈시울도 어느새 벌게져 있었다.
태건은 ‘소방관의 기도’를 듣는 순간 정신이 팍 깨어났다.
와장창.
머릿속 생각을 가린 뿌연 유리창이 산산이 조각나며 현실이 나타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