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9)화 (9/320)

9화

그 모든 게 사실이라고.

“그 끔찍한 현장이, 그 두 분이……. 그게 모두 사실이라고요.”

“그래. 인마.”

“그럼 두 분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여기 장례식장.”

최정균이 억지로 입을 열어 답했다.

그 말을 끝으로 병실엔 침묵이 흘렀다.

“…….”

“…….”

태건도, 선배들도 쉽사리 이 무거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 사이 태건의 머릿속 혼란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현장 속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뒤죽박죽 꼬였던 기억도 차례로 정리가 됐다.

태건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이내 어렵사리 입을 열어 물었다.

“다들 여기 계실 때가 아니네요. 어서, 흐음. 어서 가보세요.”

“태건아.”

“지금 제가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그게 아니지.”

“전 괜찮습니다. 말로만 괜찮은 게 아니라,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가보세요. 후우우.”

태건은 떨리는 숨소리를 가늘게 내뱉었다. 

선배들 중 유독 그런 눈치가 빠른 표인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선배들, 태건이 말대로 식장으로 가시죠.”

“너까지 왜 그래.”

“누구나 동굴에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태건이가 지금 그때인 거 같습니다.”

동굴이란 혼자만의 시간을 의미하는 거였다.

오롯이 혼자 있고 싶은 순간, 또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순간이기도 했다.

다들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리고 동의했다.

“그래. 일단 가자.”

“한숨 더 자고 있어. 갔다가 이따 또 올게.”

툭툭.

선배들은 가볍게 다독이고 병실을 나갔다.

곧 병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남은 건 고요함뿐이었다.

“……”

점점 짙어진 고요함은 이내 숨 막히는 적막에 이르렀다.

그리고.

풀럭.

태건은 얇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후엔.......

이불이 거칠게 흔들릴 뿐이다.  

잠시 후.

태건은 병상 등받이를 세우고 기대 앉아 있었다.

그저 앞만 보고 있었다.

그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하얀 벽이 자리해 있었다.

태건은 그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태건의 눈빛은 의외로 선명했다.

멍하니 있는 게 아니란 의미였다. 

지금 태건은 하얀 벽에 그때 기억을 비춰보고 있었다.

두 눈이 영사기처럼 벽에 영상을 그렸다. 

곧 꾹꾹 닫혀 있던 태건의 입술을 비집고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난 도대체 그 불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온 거지?”

탈출하던 그 순간만 몇 번을 떠올려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거기였을 거다.

그만큼 어마무시한 불길이 수도 없이 몰아쳤다.

그 불길을 뚫고 나왔다.

그것도 두 사람의 시신과 함께였다.

태건은 몇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모르겠다.

“대체 어떻게!”

퍽!

답답함에 매트리스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예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감각에 이끌리듯 움직였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본능?

아니다.

분명히 불길 중에서 약한 곳이 보였다. 

거길 뚫고 또 뚫어서 살아나왔다.

왜?

태건이 답답해하는 부분도 그 지점이었다.  

태건의 되뇜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해가 될 때까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그 탈출 순간을 곱씹었다.

그럴수록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만 했다.

“푸우우.”

벅벅.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그래도 역시나 제자리였다.

“처음부터 다시.”

벌써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걸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그런 태건도 참으로 지독했다.

하지만 태건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거긴 가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왔는지는 설명해야 할 거 아닌가.

무엇보다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위해 끝없이 다그쳐 가며 되짚는 거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드륵.

병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그런데 화재2팀원이 아니었다.

화재1팀장인 오광휘 팀장이었다. 

그는 거친 인상과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을 가진 팀장이었다. 

물론 화재현장에서는 냉철한 판단과 배짱으로 유명했다.  

다가온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태건을 살피며 물었다.

“깨어났단 소식 듣고 왔어. 그래, 좀 어떠냐?”

“괜찮습니다.”

“그래, 애들이 걱정하는 거 보다는 상태가 나은 거 같네.”

오광휘 팀장이 쓴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태건이 그를 바라봤다.

휙!

구디소방서에서 장난기와 엉뚱함의 대명사로 통했다.

하지만 소방관으로 10년 넘게 근무한 노하우를 지닌 인물이다.

누구도 그를 무시하거나 얕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채용 팀장과 초임 시절을 같이 보낸 선배라고 했었다.

태건은 그의 경험을 빌리기로 했다.

“팀장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가 나한테? 일단 뭔지 들어나 보자.”

“제가 어떻게 살아나왔을까요.”

태건은 진지하게 물었지만 설명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그런지 오광휘 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 개……. 푸우. 아니, 이 정신 나간 자식이 지금 뭐라고 씨불이고 있는 거야!”

“네?”

“그럼 세 명 들어갔으니까 세 명 다 죽었어야 됐냐. 새꺄, 누가 너 살아 나왔다고 지랄하디? 어떤 태워죽일 새끼야!”

오광휘 팀장은 병원을 뒤엎어버릴 듯 광분했다.

태건은 그제야 아차하며 질문을 좀 더 자세히 정정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개잡놈이 그딴 엄한 말을……. 어? 뭐라고?”

“그때를 떠올리면 구름을 걷는 느낌이랄까요. 기억은 있는데, 뜨거운 것도 다 기억나는데……. 설명할 수 없는 뭔가에 끌린 듯 나왔습니다.”

태건은 두 번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최대한 풀어서 설명했다.

오광휘 팀장도 그걸 듣고야 난동을 멈췄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열을 먹었는데 뭔 정신이었겠어. 아마 그래서 그럴 거야.”

“그래도 그 불구덩이를 빠져나왔단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태건은 아직도 찾고 있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언급했다.

그때 오광휘 팀장이 태건의 다리를 짚었다.

그리고 객쩍은 얼굴로 말했다.

투욱.

“강태건이. 넌 평생 복권 사지 마라.”

“네?”

“평생 쓸 운을 다 쓰고 살아나왔으니까 이제부터 용꿈을 꿔도 무조건 꽝이야.”

가볍게 말했지만 의미까지 가볍진 않았다.

태건도 비유적 표현을 알아듣고 미간을 굳히며 물었다.

“그저 운이었던 걸까요?”

“솔직히 운만은 아니지.”

“그럼…….”

“네가 그 두 녀석 끌고 나왔을 때, 나도 거기 있었어.”

“…….”

태건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오광휘 팀장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방화복에서 연기 풀풀 나는 네가 우리 앞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더라.”

“그랬습니까.”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 녀석, 사선을 넘어왔구나.’라고 말이야.”

“…….”

“너 또한 필사적이었던 거야. 사람은 그럴 때 잠재 능력이란 게 발휘된다더라. 그 순간이 모두 기억나면 잠재 능력이 아니겠지. 안 그래?”

오광휘 팀장이 나름대로 해석을 내렸다.  

태건은 솔직히 그의 말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되려고 해준 말이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 같네요. 그나마 좀 이해가 됩니다.”

“머리 아프게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쉬어. 그래도 돼.”

“가봐야죠.”

“자식. 걸음마부터 떼고 가라. 그래도 떠드는 거 보니까 컨디션이 최악은 아닌가 보네. 그럼 됐어.”

툭툭.

가볍게 태건의 다리를 다독인 그가 떠나려는 폼을 잡았다.

태건은 바로 이불을 제치며 나서려 했다.

풀럭.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난 출근길이야. 인마.”

“그럼 데려다주십시오. 부축만 해주시면 됩니다.”

“와, 이 녀석 뻔뻔하네. 네 마음은 알겠는데 좀 더 걸을 만해졌을 때 움직여. 장례식장에서 쓰러지는 흉한 꼴 보이지 말고. 알았지.”

오광휘 팀장은 확답을 듣고 싶어 했다.

그의 말이 확실히 일리가 있기에 태건은 군말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간다. 회복 잘해라.”

“감사합니다.”

태건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예의를 보였다.

그렇게 몸을 돌리던 오광휘 팀장이 멈칫하며 다시 바라봤다.

“아, 마지막으로……. 혼자 살아나왔단 뭐 같은 생각은 하지 마.”

“…….”

“우리는 아니, 모두는 네가 살아줘서, 또 두 녀석을 데리고 나와 줘서 정말 고마워. 그럼 간다.”

스윽.

오광휘 팀장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떠났다.

이내 태건은 다시 혼자가 됐다.

오광휘 팀장이 해준 말들이 솔직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례식.

가야 한다.

걸을 만해졌을 때?

그땐 늦어도 한참 늦을 터였다.

태건은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끄응.”

터덕!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곳곳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니 아직 무리인 모양이다.

하지만 태건은 이를 악물며 일어나려 발버둥쳤다.

장례식장 입구.

턱. 턱.

태건은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병원 복도에서 자꾸 쓰러져 빌린 거였다.

아직 자신의 상태도 제대로 몰랐다.

그래도 와야 했다.  

전광판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떠 있었다.

-이채용, 박성규.

그걸 본 태건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푸우우우.” 

곧 태건은 합동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했다.

소방정복과 기동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입구부터 바글바글했다.

근조화환도 길게 줄지어 있었다.

불귀신, 이채용 팀장을 추모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터였다.

그만큼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유명했다. 지방에 순환근무 갔을 때도 활약이 대단했다고 들었다.

간간이 박성규의 이름도 보였다.

턱. 턱.

태건이 근조화환 사이를 묵묵히 걸어 들어갔다.

서로 대화하던 소방관들이 크게 멈칫했다.

“저 환자…….”

“표정하며, 분위기하며, 맞는 거 같은데.”

“혼자 살았다며?”

“신삥이라던데, 그래도 살아와줘서 고맙지.”

“고맙긴한데, 뭔가 그래.”

서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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