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0)화 (10/320)

10화

그런 그들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스스슥.

화재2팀 선배들이었다.

“야, 니들 어디 애들이냐.”

“이 새끼들이 미쳐가지고, 제정신으로 그딴 소리가 나와?”

“당장 나와 이 개새끼들아.”

터억!

과격한 최정균은 다짜고짜 상대 어깨부터 움켜쥐었다.

그 흉흉한 분위기에 태건을 험담하던 이들이 아, 뜨거워라하며 움츠렸다.

“우리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씨블. 그럼 내 귀가 지랄병 났냐?”

“그, 흐음.”

“우리 막내까지 뒤졌어야 했냐. 대답해봐. 그게 같은 옷 입은 놈들이 할 말이냐고. 이 개새끼들아!”

훅!

최정균은 눈이 뒤집혀 주먹을 들어올렸다.

당장 내리칠 기세였다.

그걸 직감한 조규찬이 얼른 막았다.

“정균아, 여기까지만 하자.”

“선배, 이 말을 듣고 참으라고?”

“여기 어딘지 몰라?”

“……푸우. 니들 제발 부탁이니까 밖에서 꼭 우연히 마주치자.”

찌릿.

최정균이 다행히 이성을 찾아 경고만으로 끝났다.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와준 모든 이들의 스케줄이 하나 더 늘어날 뻔 했다.

그 소리가 태건의 귀에 닿지 않을 리가 없었다. 

‘선배들.’

원망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감싸주고 보호해주니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태건은 모른 척했다.

자신까지 나서면 정말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던 탓이다.

“…….” 

무엇보다 인사 온 길이다.

어렵게 왔다.

마지막 가는 길에 소란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태건은 묵묵히 목발과 함께 한 걸음씩 걸어갔다.

턱, 턱.

안쪽에 들어서자 수십 쌍의 시선이 날아왔다. 

“…….”

순식간에 고요해지며 태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태건은 주변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묵묵히 걷고 걸을 뿐이었다.

이내 저 앞에 두 사람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검은 띠를 사선으로 두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젠 인사하고 명복을 빌어주는 일만 남았다.

척, 척.

두 번 절을 올렸다.

이채용 팀장, 박성규.

이제 마지막 인사가 될 터였다.

‘소주는 나중에 한 잔 올리겠습니다.’

태건은 시큼털털한 뇌까림을 속으로 삼켰다.

고인들에게 인사를 마친 태건은 유족들에게 다가갔다.

하얀 소복을 입은 이채용의 아내 정지희가 보였다. 아들인 이세찬은 다른 유족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두 눈에 눈물자국이 너무도 짙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쓰읍.’

태건은 거친 숨을 얼른 들이켰다.

이세찬만큼은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없었다.

어느새 정지희 앞에 도착한 태건은 절을 올리려 했다.

스윽.

몸을 굽히려는 그때 정지희가 아무런 감정 없는 시선을 보냈다.

척.

태건은 말없이 꿋꿋하게 절을 했다.

정지희는 맞절을 하지 않았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태건만 바라볼 뿐이다.  

정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았다.

어쩌면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

소방관의 숙명.

그건 동료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이었다.

유가족들은 어떤 경우였더라도 순직했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내 절을 마친 태건은 정지희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

“저…….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 왔습니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건은 거부의 뜻인 걸 알면서도 재차 입을 열었다.

“팀장님은 마지막까지 소방관이셨습니다.”

“…….”

“그리고 죄송합니다. 저만 살아나왔습니다.”

“흐읍.”

정지희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몸을 감싼 두 손으로 소복을 비틀듯 쥐었다.

꾸욱.

하지만 그녀는 끝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태건이 돌아서려 할 때였다.

아니, 돌아선 순간이었다. 

눈에 보인 건 박성규의 어머니였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다가섰다. 

“우리 성규 마지막 봤나요?”

“네.”

“어땠나요?”

“최고였습니다.”

“.......”

박성규 어머니는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했다. 

태건도 차마 다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멍하게 서있다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새벽.

영결식이 끝나고 두 대의 운구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동시에 배웅을 나온 모두가 거수경례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일동 경례!”

“…….”

척!

구호는 생략됐다.

그렇게 운구차들이 저만치 멀어지고 유가족들을 태운 전세버스가 뒤따랐다.

부웅.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모두가 경례 자세였다.  

동료가 떠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고결한 죽음이다.

그 숭고한 희생에 대한 경외를 표하는 자그마한 예의였다.

같은 시각.

운구차들이 병원 정문을 나섰다.

부웅, 부웅.

신호등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

환자복을 입은 그는 홀로 조용히 거수경례를 올렸다.

태건의 모습이었다. 

*  *  *

며칠이 지나 회복한 후, 퇴원한 태건은 곧바로 보금자리로 향했다.

‘며칠 더 안정을 취하는 게 좋습니다.’

의사의 조언이 귓가에 맴돌았다.

스스로도 부정하기 힘든 몸 상태인 건 인정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쉴 생각은 없었다.

주말만 지나면.

그럼 한결 나아지리라 믿었다.   

“아직 젊잖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 빌라 앞에 도착했다.

여기 반지하 집이 태건의 보금자리였다.

무심코 빌라 입구로 향하던 태건이 멈칫했다.

반지하의 창문이 열려있던 탓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집 밖을 나갈 땐 항상 닫고 다녔던 창문이다.

놀란 태건은 얼른 집으로 향했다.

타다닥.

계단을 내려가던 태건의 눈에 열린 현관문이 보였다.

‘누가?’

마저 향하려던 순간 태건이 절로 멈칫했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냄새.

이건 어머니의 주특기인 불고기 냄새였다.

태건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세상 어떤 불고기를 가져와도 구분할 수 있었다.

“…….”

두 다리가 갑자기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사고도, 입원도 알리지 않은 탓이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이내 태건은 반대로 생각했다.

“모르시니까.”

자신만 입조심하면 될 일이다.

마침 기동복 차림이라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태건은 자신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마저 움직였다.

그렇게 태건은 집안에 들어섰다.

작고 아담한 투룸형 구조였다.

거실에 속한 부엌에 어머니 뒷모습이 보였다.

치지직.

프라이팬에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가 진하게 코를 간질였다.

태건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런 순간이 참 오랜만이었다.

“어머니.”

무심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어머니가 얼른 돌아봤다.

“에그머니나, 어휴. 둘째야.”

“언제 오셨어요. 오시면 오신다고 말씀을 하시지.”

태건은 슬그머니 넉살을 부리며 들어갔다.

어머니는 불고기를 마저 뒤적이며 잔소리부터 했다.

“집이 아주 엉망이더라. 빨래 좀 제때하지.”

“한다고 하다가 그만. 하하.”

“밥 다 했으니까 옷 갈아입고 나와.”

그 소리에 태건이 갸웃거렸다.

“제가 언제 올 줄 알고요.”

“……소방서 갔다 왔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부엌 한 귀퉁이에 보자기가 곱게 접혀 있었다.

태건은 그 한마디로 앞뒤 정황을 모두 그릴 수 있었다.

‘이런.’

반찬을 전해주러 오셨다가 소식을 듣게 된 게 틀림없었다.

“…….”

말없이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엔 세탁을 마친 옷들이 건조대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방바닥부터 반짝일 정도로 깨끗했다.

…….

벌써 집안 청소를 마친 모양이었다.

태건은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거실로 향했다.

잠시 후.

밥상엔 빈 접시만 가득했다.

배가 불룩해진 태건은 물로 입가심을 했다.

이어서 행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역시 어머니 음식이 최고네요.”

“잘 먹었으면 됐어.”

“어머니.”

“얼른 일어나. 주미 오기 전에 설거지 해야지.”

어머니의 표정이, 목소리가, 그리고 분위기가 딱딱했다.

태건은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달그락.

때마침 어머니가 접시를 걷기 시작했다.

태건이 손을 내밀어 어머니의 손을 붙들었다.

“어머니. 별 일 아니에요. 보세요.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

“연락 안 드린 건 죄송합니다. 금방 퇴원할 거라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그런 건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태건이 진심어린 몇마디를 건넸다.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불편한 마음을 덜어드리고픈 심정이었다.

그런데 태건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하박에서 팔꿈치까지 길게 이어진 화상자국이었다.

이번 사고에서 생긴 상처 중 하나였다.

물론 그나마 방화복이 막아줘 깊은 화상이 아니라서 시간이 가면 지워질 흔적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그걸 본 모양이었다.

스윽.

어머니의 손이 화상자국을 조심히 덮었다.

태건은 그제야 아차했다.

“그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머니는 축 가라앉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는……. 엄마는 우리 둘째한테 오래오래 밥해주고 싶어.”

“…….”

그 말이 태건의 마음을 진하게 울렸다.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던 어머니가 얼른 붙든 손을 슬그머니 밀며 말했다.

“얼른 치우고 일어나야지.”

“…….”

“그래야 너도 좀 쉬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곧 설거지를 시작했다.

달그락, 터덩.

설거지 하는 중간중간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건은 그런 어머니를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봤다.

소식을 전해들은 어머니 심정은 오죽할까.

상처를 직접 본 기분은 또 어떠할까.

어떤 변죽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어머니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할 터였다.

“…….”

이내 태건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다가가 뒤에서 부드럽게 안았다.

스윽.

어머니가 멈칫하며 한소리했다.

“얘가 왜 이래.”

“그냥요. 그냥 이러고 싶어서요.”

“징그러.”

“벌써 징그러우면 어째요. 오래오래 엄마 밥 먹어야 되는데요.”

“…….”

어머니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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