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1)화 (11/320)

11화

태건은 개의치 않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나중에 딴소리하시면 안 됩니다.”

“…….”

“음, 엄마 냄새. 너무 좋네요.”

태건은 다소 가벼운 혼잣말을 꺼냈다.

어머니의 마음까지 가볍게 여긴 건 절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안심하실 수 있게.

조금이라도 씩씩하게.

짙게 드리운 걱정을 덜어드리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어머머, 별꼴이야.”

열린 현관문으로 늘씬한 미녀가 들어오며 황당해했다.

어머니와 많이 닮은 이목구비였다.

그러면서도 태건과 흡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바로 삼남매의 막내 강주미였다.

태건은 놀랍지도 않은지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아들이 엄마 안는 게 뭐 잘못이냐?”

“언제부터 그렇게 끈끈하셨어?”

“원래 끈끈했어.”

태건이 따박따박 말을 받자 강주미가 어이없단 표정으로 변했다.

“엄마, 엄마 아들 왜 저래?”

“넌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어머머. 엄마까지.”

“유난 떨지 말고 들어오던가, 아니면 나가서 기다리던가 해.”

어머니는 조금 퉁명하게 말했다.

오붓한 시간을 방해 받은 탓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보다 목덜미까지 빨개진 민망함이 더 큰 모양이었다.

태건은 후끈해진 어머니의 온기로 직감했다.

그래서 얄밉게 어머니 편에 찰싹 붙어 강주미를 타박했다.

“애가 참 눈치 없어.”

“우, 우와. 내가?”

“어머니, 쟤는 하는 짓이 형이랑 똑같아요. 그렇죠?”

태건이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본인 험담에 강주미가 더 격분했다.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주미야, 여기 공동주택인데 조용히 해야지.”

“왜 나한테만 그래. 히잉.”

강주미의 얼굴이 곧 울상으로 변했다.

태건은 신경 쓰지 않고 어머니를 더욱 포근히 안았다.

어머니도 무심한 듯 했지만 은근히 태건에게 기댔다.

“…….”

오가는 말은 없었다.

아니, 필요하지 않았다.

백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태건이 집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자그마한 승용차 조수석에 어머니가 올라 있었다. 

태건은 아쉬움을 가득 담아 말했다.

“좀 더 있다가 가시죠.”

“원래 주미 이사한 집 청소하러 온 거였어. 반찬만 전해주고 가려다가…….”

어머니는 뒷말을 일부러 삼갔다.

태건도 찔리는 게 있어 슬쩍 말을 돌렸다.

“종종 연락드릴게요.”

“엄마가 한 말, 한 번 더 생각해 보렴.”

“네? 하하.”

태건은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했다.

곧 차가 떠나갔다.

태건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젠 그럴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에 호응할 수 없어 죄송한 마음이었다.

*   *   * 

이틀 후.

태건은 구디소방서에 출근했다.

사고 후 첫 출근이었다.

끼익.

화재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화재1팀 소방관들이 대기 중이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무척 가라앉아 있었다.

사고 후 고작 며칠 지났을 뿐이다.

아직 예전으로 돌아가기엔 그들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다.

이내 모두의 앞에 선 태건은 먼저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출근했습니다.”

다들 그 인사를 기다렸나 보다.

그제야 굳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그래, 고생했다.”

“상처는 다 나았어?”

“입원 처음이었지. 병원 밥 괜찮았냐?”

시시콜콜한 농담도 들려왔다.

그때였다.

벌컥.

오광휘 팀장이 무심코 문을 열고 들어오다 화들짝 놀랐다.

“다들 뭐하고……. 아이고 깜짝이야. 태건이 아니냐.”

“팀장님, 염려 덕분에 잘 회복했습니다.

“잘 회복했는데 왜 면상은 대충 회복한 거 같냐?”

그의 질문에 태건이 멈칫하며 되물었다.

“네?”

“인상 펴. 그리고 2팀은 잠시 가동 중단됐고, 넌 이제 1팀이야.”

“2팀이 왜요?”

태건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광휘 팀장은 가볍게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일단 컴다운하고.”

“…….”

“새로운 2팀장 선정될 때까지 만이야. 후보를 물색 중이니까 곧 다시 가동되겠지.”

“새로운…….”

태건이 말을 곱씹을 때였다.

턱.

오광휘 팀장이 등을 다독이며 일부러 자극했다.

“짜샤. 언제까지 절이다 만 배추처럼 늘어져 있을 거야?”

“아닙니다.”

“막내는 당분간 사무일…….”

그의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스스슥.

태건의 눈에 힘이 들어가며 오광휘 팀장에게 묵직하게 말했다.

“저도 현장 나갈 겁니다.”

“인마.”

“절인 배추처럼 늘어져 있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이 자식, 내 말투를 바로 써먹네.”

오광휘 팀장이 어이없단 눈빛과 함께 말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좀 더 강하게 어필했다.

“몸 멀쩡합니다. 그러니까 퇴원하고 출근한 거 아닙니까.”

“누가 몸 말해? 여기 말이야. 여기.”

꾹.

가슴 한가운데를 정확히 눌렀다.

태건은 미동도 없이 말했다.

“마음은 지금도 아픕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그런데 화재가 제 마음까지 알아주는 건 아니잖습니까.”

태건의 당돌한 대답에 오광휘 팀장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 녀석 봐라?”

“출동하겠습니다.”

“어쭈.”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누구도 다시는 불 속에 두지 않겠다고요.”

태건의 덧붙인 말이 끝났다.

“…….”

오광휘 팀장은 물론 모두 입을 다물었다.

누구에게 약속했는지 듣지 않아도 알 거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더욱 얼어붙나 싶을 때였다.

오광휘 팀장이 태건의 등을 세게 두드렸다.

턱!

“윽!”

“짜식, 다들 잘 들었지. 막내한테 뒤처지기 싫으면 정신줄 꽉 붙들어라.”

“제가 어떻게…….”

“시끄럽고, 이제 가서 네 자리 채워.”

툭.

오광휘 팀장은 태건의 등을 밀어버렸다.

떠밀린 태건은 곧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런 태건의 눈에 조규찬이 보였다.

“어? 선배.”

“나도 1팀이야. 정균이, 순영이, 인철이는 3팀이고.”

“아……. 그렇군요.”

“곧 다시 만날 건데 아쉬울 거 없잖아.”

“그럼요.”

태건은 가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이어서 자신의 자리에 도착했다.

그릉.

의자를 빼던 중 옆 책상에 하얀 국화가 놓인 걸 발견했다.

저 책상의 주인은 박성규였다.

그리고 좀 더 멀리 시선을 두자 이채용 팀장 자리에도 역시 국화가 놓여 있었다.

하얀 국화의 꽃말은 ‘감사’였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었다.

“…….”

무겁게 바라본 태건은 우선 자신의 책상에 자리했다.

척.

그리고 복사용지를 앞에 두고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 사이 사무실 앞에 선 오광휘 팀장이 공지사항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주의사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장 출동 시 수칙을 준수하고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이도록.”

“네.”

“그리고 또……. 쟤 뭐해?”

“갑자기 무슨……. 어? 태건아.”

휙!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태건은 어느새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박성규 책상으로 걸어가더니 하얀 국화를 과감하게 들어올렸다.

“…….”

스윽.

그 모습에 다들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야, 뭐하는 거야.”

“강태건.”

“쟤 왜 말이 없어?”

“어어, 쟤 어디 가는 거야?”

선배들 모두 영문을 몰라 갸웃거렸다.

그 사이 태건은 이채용 팀장의 자리로 옮겨갔다.

스윽.

똑같이 하얀 국화를 들어올렸다.

그 꽃들은 창가에 빈 꽃병에 가지런히 꽂았다.

그리고 빈 책상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복사용지를 세모로 접어 만든 일종의 안내판이었다.

거기엔 굵은 글씨가 반듯하게 쓰여 있었다.

-장기 출장 중.

태건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박성규 책상에도 똑같은 걸 올려놓았다.

척.

이내 책상으로 되돌아온 태건은 홀로 미소 지었다.

“이게 맞아.”

모두 그런 태건의 행동을 지켜봤다.

처음엔 말리려 했다.

이미 엉덩이를 쭉 빼고 일어나려는 선배들도 있었다.

그런데 태건의 행동을 지켜본 선배들은 결국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

침묵한 채 안내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로 자리를 옮긴 하얀 국화들도 번갈아 바라봤다. 

그때 오광휘 팀장이 모두를 대표해 물었다.

“강태건이. 두 녀석, 출장 중이냐?”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너무, 너무 장기 출장이라 다시 만나기 힘들겠지만……. 그렇지만 분명 출장 가셨습니다.”

태건은 흐려지는 목소리를 억누르고 명확히 마무리 지었다.

오광휘 팀장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오늘 따라 왜들 이렇게 우중충하냐. 누가 죽기라도 했어?”

“팀장님.”

“출장 갔다잖아.”

“…….”

“그 빈자리 우리가 채워야지 않겠냐. 내 말 틀려?”

오광휘 팀장이 단단한 목소리로 독려했다.

그러자 서로를 바라보던 선배들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옳습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조금은 가벼웠다.  

그렇게 우울하기만 하던 사무실 분위기에 약간의 변화가 생겨났다.

*  *  *

그런데 그런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에에엥!

화재 출동 소리였다.

태건은 크게 동요했다.

“출동이라고?”

화재, 그리고 사고.

실타래처럼 엉켜 머릿속이 꼬여갔다.

각오를 단단히 굳혔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몸이 바짝 굳어졌다.

그때의 사고.

머릿속에 지금도 선명했다.

그 순간 태건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가자.

가야한다.

그 속에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짐했잖아.”

짧게 내뱉은 말이 나오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타다닥.

조금도 거침없이 차고로 신속하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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