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2)화 (12/320)

12화

30분 후.

펌프차와 물탱크차, 사다리차가 순차적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상황실에서 전달받은 대로 공사장이었다.

검은 연기가 꽤 굵직하게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끼익.

소방차들이 정차하자마자 완전 무장을 갖춘 소방관들이 우르르 뛰어내렸다.

동시에 공사장으로 시선이 향했다.

화재1팀원 중 눈썰미 좋은 팀원이 바로 손짓하며 외쳤다.

“3층에서 시작된 거 같습니다!”

역시 정확했다.

신축 7층 건물인데 3층에 빨간 불길이 설핏 보였다.

3층이면 소방호스로 충분히 쏠 수 있었다.

대략적으로 건물을 살피고 상황을 판단 내리는 건 단 몇 초면 충분했다.

태건도 그 현장을 눈에 담고 있었다.

“달라.”

같은 장소가 아니다.

화재의 규모도, 위치도 전혀 달랐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때 오광휘 팀장의 목소리가 박력 있게 터져 나왔다.

“중간라인 호스 깔고 바로 방수, 고참들 좌우 건물에서 소방용수 끌어와, 막내라인 현장 통제하고 위험요소 제거, 서둘러!”

“네, 움직여!”

사삭!

외침과 동시에 소방관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태건은 당연히 막내라인이었다.

그리고 원래 화재1팀 막내인 김후연과 한 장소에서 만났다.

이번 달에 소방사로 진급한 두 달 선배였다. 

“태건아, 긴장 풀어. 괜히 삽질하다 걸리면 각오해라.”

“경광봉 챙겼습니다.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저, 저 자식이……. 야, 태건아. 같이 가!”

챙겨주려다가 외려 한방 먹은 김후연이 허둥지둥거렸다.

한편,

태건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둘러보니 주변에 탈출한 공사장 인부들과 구경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통제를 위해 다가가 빠르게 양해를 구했다.

“조금만 더 뒤로 물러서 주세요. 조금만 부탁드립니다!”

“뒤로 갑시다. 좀 물러나자고요!”

사람들은 군말 없이 뒤로 조금씩 양보했다.

소방과 관련된 일에는 상당히 협조적인 경우가 많았다. 소방관들이 눈앞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보여서일지도 몰랐다.

태건은 출근 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소리 마시고, 빨리 좀 부탁합니다.”

“저 아직 막내입니다. 중간중간 몰래 진행사항을 알려드리긴 할게요.”

스윽.

어깨에 걸린 무전기를 건드리며 찡긋거렸다.

그런 태건의 말에 다들 반색했다.

“아이고, 그래요. 그래줘요. 고마워요.”

“대신 협조 잘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자자, 다들 더 물러납시다!”

누군가 자진해서 모두를 독려하기에 이르렀다.

‘얼라라.’ 

태건이 순순한 협조에 고마워 미소 지을 때였다.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방수!”

“방수!”

푸아악!

두 개의 굵직한 물줄기가 펌프차과 연결된 소방호스를 통해 건물 3층으로 쏘아져 갔다.

두툼한 두께만큼 이번에도 2인 1조로 진화작업 중이었다.

태건은 그걸 확인하며 사람들의 통제를 계속 진행했다.

슬쩍 상황도 전했다.

“일단 큰 불부터 잡고, 그 다음에 진입할 겁니다.”

“오, 그래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엄청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지. 아이고, 고생들 하시네. 고맙고 미안하고, 어쩌나.”

모두가 태건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듣고 고마워했다.

덕분에 태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허둥지둥 다가와 태건을 손짓하며 불렀다.

휙휙.

“저기요. 소방관님!”

다급한 목소리에 태건이 바로 그들을 보며 물었다.

“여기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어…….”

“왜 그러십니까, 그냥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태건은 최대한 부드럽게 권했다.

그래도 인부들은 다급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한 명이 안 보입니다. 저기서 작업하던 박 씨인데…….”

“혹시 전화는 해 보셨습니까?”

“지금도 하고 있어요.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습니다.”

스윽.

휴대폰 액정까지 보여줬다.

정말 신호가 가고 있는데 받지 않았다.

그때 인부 한 명이 중얼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잘못되면 안되는데, 이제 겨우 두 살배기 아들과 뱃속의 아기 때문에라도 안되는데.”

그 말 한마디에 태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만약 잘못되면?

졸지에 가정 하나가 풍비박산난다.

띵!

일순간 태건의 눈빛이 빛났다.

저 화재 속에 그가 있다면?

태건의 눈길이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곳이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요구조자가 살아있다면 저기다.

불길이 번졌다면 본능적으로 피할 장소란 느낌이다.

왜?

태건이 흠칫했다. 

자신이 아는 경험치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판단이 스스럼없이 나온 탓이다.

동시에 그 지독했던 화재 현장에서 살아나온 기억도 솔솔 되살아났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중얼거리던 태건이 아주 잠시 망설였다.

맞나?

아직 경험이 미숙한 자신에 대한 불신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사람이 저기 있다면 정말 위험하다.

그럼 구해야 한다. 

단지 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태건은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타다닥!

“이번엔……. 이번엔!”

비장한 혼잣말과 함께 불타는 공사장으로 내달렸다.

이미 완전무장 중이다.

필요한 건 호흡기 커버 착용밖에 없었다.

쑤욱!

“훅, 훅.”

순식간에 착용을 완료했다.

그 사이 공사장 입구에 다다랐다.

뻥 뚫려 있었다.

막는 게 없다면 멈출 이유가 없었다.

‘간다!’

그대로 돌진했다.

그렇게 막 공사장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강태건, 너 어디가!

오광휘 팀장 목소리였다.

태건은 반사적으로 어깨의 무전기를 누르며 소리쳤다.

띠릭.

“3층에 사람이 있답니다. 불길이 강해서 구조팀이 오긴 위험합니다. 명색이 진압팀인 제가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띠릭. 갑자기 뭔 소리야……. 김후연 뭐해, 애 잡아!

-띠릭. 가, 갑니다!

허둥지둥.

오광휘 팀장과 김후연이 공사장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태건은 거기 없었다.

벌써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 후였다.

타다닥!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린 후 태건이 3층에 도착했다.

“후우욱! 후우욱!”

화르륵.

화재, 그리고 자욱한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재빨리 몸을 낮춘 태건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황부터 파악했다.

쉬익, 쉬익.

‘소방용수 위치는?’

신중히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검은 유독 연기가 짙었다.

그런데 태건의 시선이 한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온통 시꺼먼 연기로 가득한 장소였다.

검은 연기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하던 태건이 낮게 읊조렸다.

‘방수는 저쪽……. 어?’

스스로 내린 결론에 순간 당황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저 느낌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화르륵.

불길을 향한 시선이 너무도 냉정했다.

철천지원수 같은 불꽃이다.

지금도 불길을 보면 가슴 속이 들끓었다.

그런데 머릿속은 차가웠다.

다시 집중해 불길을 살폈다.

그러던 태건의 입술이 비틀리며 희미하게 뇌까렸다.

“저쪽에서 저쪽으로 번지고 있어.”

흠칫.

동요한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지?’

휙휙.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누가 뒤따라왔나 싶은 마음 탓이었다.

…….

아무도 없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팀장님 3층 도착하셨습니까!

-띠릭. 지금 입구 들어섰어!

-띠릭. 아직도 태건이가 혼자라고요?

-띠릭. 가고 있잖아! ……강태건이, 현재 위치, 헉헉. 대답해 인마!

걱정 가득한 무전 소리에 이어 오광휘 팀장이 따가운 목소리로 호출했다.

태건의 손은 반사적으로 무전기로 향했다.

스윽.

막 무전기를 잡으려던 그때였다.

시선으로 줄곧 불길을 쫓던 태건이 멈칫했다.

“잠깐만, 이거……. 이런 상황이라면 요구조자는 저쪽에 있어. 시간이……. 에잇!”

다시금 제멋대로 중얼거린 태건은 다리를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불길 속이었다.

화르륵!

검은 연기를 내뿜는 불길이 기세를 키우고 있었다.

태건의 시선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거침없는 발걸음만큼 순식간에 도착했다.

“타앗!”

팔다리를 있는 힘껏 휘저으며 자욱한 연기와 불을 향해 뛰어들었다.

거의 느낌적으로 강한 불길을 피해 날렵하게 접근하는 발이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때였다.

한발 늦게 오광휘 팀장이 도착했다.

태건이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오광휘 팀장이 숨 고를 틈도 없이 경악했다.

“헉헉! 저 미친놈이 진짜!”

“팀장님, 헉헉. 여기서 소리 질러도 호흡기 커버 때문에 안 들릴 겁니다!”

뒤따라 올라온 김후연이 헉헉거리며 겨우 알려줬다.

아차 한 오광휘 팀장이 서둘러 어깨의 무전기로 손을 뻗었다.

“강태건 돌아와, 강태건!”

“씹는데요.”

“저 새끼 지가 불나방도 아니고, 썅!”

타다닥.

오광휘 팀장이 다리를 박찼다.

뒤에서 김후연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팀장님, 저는요?”

“따라와, 새꺄!”

“어어. 아, 네. 아이씨!”

김후연은 끌려가듯 달려갔다. 

한편.

불 속에 뛰어든 태건은 오광휘 팀장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불의 벽을 지나자 사방에 불길이 가득했다.

화르륵, 후루룩!

누구라도 몸부터 피할 기세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태건은 흔들림이 없었다.

쉬익, 쉬익.

숨을 쉬며 주변을 계속 둘러봤다.

태건이 시선으로 쫓는 건 불길의 흐름이었다.

후루루!

이리저리 몰아치는 모습이 마치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 떼처럼 보였다.

그런 불길들 중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텅, 텅.

마치 무언가에 막힌 듯 했다.

벽이라고 하기엔 거리상 맞지 않았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인위적인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뭘 더 생각해!”

결론이 났으면 움직이는 게 정답이다.

이런 불길과 연기 속에서 요구조자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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