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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3)화 (13/320)

13화

그때 무전기가 울리며 오광휘 팀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호스 하나 사다리에 묶어서 올려, 빨리!

-띠릭. 무슨 일입니까!

-띠릭. 강태건이 불 속에 뛰어 들어갔어. 어서 소방호스부터 올리기나 해!“

-띠릭. 뜨어억. 사다리 올려. 그 새끼 진짜, 아후씨!

짜증 소리가 태건에겐 익숙하게 들려왔다.

조규찬이었다.

‘조만간 주먹 날아오겠네.’

별로 두렵지 않았다. 

요구조자를 구한 후엔 얼마든지 감수할 생각이다.

터덕, 터덕.

자세를 최대한 낮춰 연기와 직접 접촉을 줄이며 이동했다.

후륵, 후르륵.

불길이 이리저리 몰아쳤다.

그 중 방향을 잃은 불길이 태건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크윽!’

방화복 안쪽에 열이 가득했다.

주르륵.

어느새 땀이 차 흘러내렸다. 

하지만 호흡기에 방화두건까지 착용한 상태라 닦을 수가 없었다.

“칫.”

따끔따끔.

땀이 눈에 들어갔는지 자꾸 눈을 찡그리게 됐다.

그럼에도 태건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채용 팀장의 사고 현장과 엇비슷해지는 상황에 집중력이 올라갔다.

터덕, 터덕.

‘방향은 이쪽이야.’

시꺼먼 연기 속인데도 태건은 무슨 기준인지 모를 이유로 나아갔다.

어느새 불길의 중심부를 지났다.

정확하진 않지만 태건이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치직, 칙.

바닥을 딛는 손과 무릎에 열이 차다 못해 아파왔다.

상관없었다.

‘이까짓 거!’

불 속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픔 축에도 끼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텅.

머리에 뭔가 부딪쳤다.

아픔보다 궁금증이 더욱 뇌리를 자극했다.

턱, 턱.

손으로 짚어보고 얼굴을 가까이 한 태건은 곧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건 작업책상?’

공사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철제 작업 책상의 상판이었다.

이게 불길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현재 태건의 뒤쪽에 있다.

그럼 책상 반대편은 화재, 그리고 연기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를 받고 있을 터였다.

‘혹시?’

터덕!

태건은 네 다리로 빠르게 기어 책상 뒤쪽으로 돌아갔다.

플래시도 켰다.

팟!

연기투과용이라 빛이 확실히 강했다.

바닥을 비춰보던 중 다리가 보였다.

‘헉, 찾았다.’

태건은 스스로 놀랐다.

분명 알고 들어온 거처럼 거침없이 행동해 놓고, 이제와 놀란 모습은 너무도 상반됐다.

스스로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생각에 빠질 여유조차 없었다.

구해야했다.  

요구조자를 발견한 걸로 끝이 아니다.

생존이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건 자신의 생존도 함께였다. 

태건은 재빨리 다리를 더듬어 상체로 옮겨갔다.

곧 상체를 지나 얼굴에 닿았다.

그 순간 초짜 소방관의 행동양식이 그대로 터져 나왔다.

흔들흔들.

“요구조자 발견, 의식 확인! 소방관입니다, 제 말 들리십니까!”

“흐으. 으으…….”

미약하게나마 흘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있다.

그러나 위험하다.

판단과 동시에 태건의 두 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요구조자 확보, 호흡 확인!”

턱.

바로 보조호흡기를 입에 댔다.

“힘껏 들이마셔요. 얼른!”

거칠게 다그쳤다.

효과가……. 있었다.

쉬익.

“쿨럭, 컥컥.”

보조호흡기 안쪽에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 태건이 입을 열었다. 

“사셔야 합니다. 당신이 아니라 자식들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으으.......”

태건 말에 요구조자가 처음으로 신음을 토했다. 

단지 신음이 아니다.

살고 싶단 절실한 바람이다.

그걸 확인한 태건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생존 확인, 안전 장소까지 이동!”

소리침과 동시에 곧장 어깨에 둘러멨다.

“푸우읍, 끙쌰!”

그런데 문제가 약간 발생했다.

요구조자를 어깨로 올리던 중 태건의 호흡기 커버가 틀어졌다.

자그마한 틈으로 연기가 밀려들어왔다.

아차한 순간이라 태건은 연기를 한 모금 들이켰다.

“커억, 쿨럭쿨럭. 케엑.”

스슥.

기침을 하는 동시에 호흡기 커버를 다시 제자리로 돌렸다.

하지만 이미 내부에 들어찬 연기를 조금 더 마실 수밖에 없었다.

“크에엑, 켁켁.”

얼마 되지 않은 양일 터였다.

그런데 목이 매캐하고 따끔따끔했다.

눈앞도 약간 어지러운 거 같았다.

이대로는 자신도 위험해진다.

자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돌아선 태건은 눈앞에 가득한 불길을 노려봤다.

“에라!”

파바박!

파고든 방향을 역으로 냅다 뛰었다.

불길이 태건이 지나가도록 비켜줄 리 만무했다.

오히려 자신을 방해하는 게 불쾌하단 듯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왔다.

화르륵! 콰르르!

불의 벽이 더 견고해지고 있었다.

반면 태건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어깨에 둘러멘 요구조자의 생명과 안전, 그 두 가지 외엔 그 무엇도 걸림돌이었다.

“꺼져 새꺄!”

투다다!

막무가내로 달려 밀어붙였다.

물론 자신의 판단(?)상 가장 안전한 틈으로 파고들었다. 

이상함?

목숨이 걸린 이상 관심도 없었다.

어느새 살벌한 불의 벽 앞까지 당도했다.

촘촘하게 방어벽을 만든 모습이었다.

그대로 뛰어들려던 태건이 순간 멈칫했다.

끽!

“안 돼!”

억지로 멈춘 이유는 요구조자 탓이었다.

태건은 방화복을 입고 있고, 요구조자는 얇은 옷차림이다.

불에 닿았을 때 서로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맞이할 터였다.

돌아갈 시간과 여유 따윈 없었다.

번뜩!

눈을 크게 뜬 태건은 재빨리 여기저기 둘러봤다.

그러다 약점을 찾았다.

불길은 자신을 키울 가연제가 없으면 흐름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흐름 덕분에 불의 벽에 구멍이 생겨났다.

저기.

타이밍 이즈 나우.

지체할 시간 따윈 곧 죽어도 없었다.

“차아압!”

화륵!

태건은 또 한 번 불의 벽으로 몸을 날렸다.

태건이 불길을 뚫고 밖으로 나온 바로 그때였다.

촤아악.

물이 태건에게 쏟아졌다.

굵직한 물줄기와 엄청난 압력은 바로 소방용수였다.

그걸 그대로 두들겨 맞은 태건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거 같았다.

“커어억!”

“헤에엑! 치워, 치워!”

휙!

다급한 목소리와 동시에 태건을 강타한 물줄기가 사라졌다.

그제야 태건도 눈을 뜨며 앞을 볼 수 있었다.

연기가 어느 정도 걷혔는지 소방호스를 든 오광휘 팀장이 보였다.

“팀장님?”

“너 뭐야. 어떻게 불 속에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요구조자부터!”

“어엇, 그래. 후연이 뭐해. 빨리 인계받아야지!”

터덕.

오광휘 팀장, 그리고 김후연이 재빨리 다가왔다.

그리고 태건의 어깨에서 요구조자를 내려 확인에 들어갔다.

“요구조자님, 이봐요!”

“보조호흡기……. 숨 쉽니다. 숨 쉬고 있습니다!”

“뭐해. 얼른 구급대원 호출하고 통로 확보해!”

오광휘 팀장의 목소리가 따갑고 날카로웠다.

태건은 ‘살아 있다’란 말을 듣자 모든 긴장이 풀어졌다.

“후후. 이번엔……. 해냈어.”

철푸덕.

주저앉은 태건은 힘없는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짧은 시간 불길 속을 드나든 탓에 기운이 쭉 빠진 모습이었다.

잠시 후.

삐용, 삐용.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태건은 방화장비를 반쯤 벗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른 건물 벽에 기대어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큰 문제없을 거라고.”

중얼거린 건 구급대원이 전해준 소식이었다.

씰룩, 씰룩.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요동쳤다.

살렸다.

요구조자가 살아있다.

그 사실이 자꾸만 자신을 미소 짓게 했다.

처음이다.

지금까진 강아지를 구조한 게 전부였다.

그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사람을 살린 이 순간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사람 살리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

그 말이 정답이다.

꽉 차오르는 가슴속 뿌듯함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꾸욱.

“푸하하하. 제가 해냈어요. 저도 살릴 수 있어요.”

주먹을 쥐고 말한 태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뿌듯함 속에 미어지는 심정이 스며든 탓이다.

이 기쁨을 그 사고에서 느껴야 했다.

그때 맛봐야 할 감동이었다.

그런데 한발 늦었다.

늦어도 너무너무 늦어버렸다.

“크으.”

파르르.

비통함이 흘러나오며 움켜쥔 주먹도 떨려왔다.

바로 그때였다.

차자작.

발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저기, 저분입니다.”

“저기 저 소방관이요?”

“맞습니다.”

타다닥.

발소리들이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쪽 방향이었다.

멈칫한 태건이 눈물을 재빨리 훔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

정말 자신을 향해 두 명이 뛰어왔다.

그중 한 명은 낯이 익었다.

조금 전 자신에게 요구조자 위치를 제보해준 인부였다. 그 옆엔 낡은 양복을 입은 낯선 중년인이 함께였다.

‘무슨?’

터덕.

태건은 영문을 몰라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이 태건 앞에 당도했다.

그 중 낡은 양복을 입은 중년인이 다짜고짜 다가와 태건을 끌어안았다.

와락!

“크으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느닷없는 인사말까지.

“에? 어…….”

태건은 당혹감에 얼떨떨했다.

그런 태건에게 같이 온 낯익은 중년인이 짤막이 설명해줬다.

“박씨 형님이시랍니다.”

“네?”

“박씨랑 연락이 되지 않아서 사무실에 전화해서 사고 소식 듣고 오셨답니다. 구급차 떠나기 전에 박씨랑 잠깐 얘기도 하셨다네요.”

그가 설명했지만 태건은 아직도 어리둥절했다.

“그럼 병원에 따라가셔야지 않을까요?”

“거긴 박씨 와이프가 가고 있다네요.”

“아, 네. 그렇군요. 그런데…….”

스윽.

태건은 낯선 아저씨가 안고 있는 이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상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내 몸을 떼더니, 이번엔 태건의 두 손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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