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4)화 (14/320)

14화

터억!

그의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그런데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우리 동생 살려주셔서, 뭐라고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일인데요.”

“이 옷이 이렇게 타도록……. 아무리 일이라도 생면부지 사람을 누가 이렇게까지 구해준답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

태건은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낯선 중년인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뭐로 보답을 드려야 됩니까.”

“아직 동생분 상태도 확실하지 않을 텐데요.”

“제 동생이 직접 말해줬습니다. 소방관님이 불을 뚫고 달려와 살려줬다고 말입니다.”

“아, 말씀을 나눴다고 하셨죠.”

태건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걸 본 중년남자가 얼른 입을 열었다.  

“말로만 이럴 게 아니라 이거 뭐라도 좀 준비를 해야…….”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긴요. 제 하나뿐인 동생 목숨을 빚졌는데 뭐가 아깝겠습니까.”

“정말 그런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태건은 사양부터 하고 봤다.

처음이라 당혹스럽기도 하고, 부담도 느낀 탓이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보호자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떠난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태건의 가슴 속에 분명히 남겨둔 게 있었다.

‘나에게……. 소방 일은……. 직업인데……. 그랬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

스스로에게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껴버린 지금은 뭔가 달랐다.

건물 불길을 잡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잔화 정리까지 마친 소방관들은 모두 현장을 떠나 소방서로 복귀했다.

*  *  *

잠시 후.

수납장으로 둘린 화재팀 대기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그리고 태건이 떠밀려 들어왔다.

“잠시, 억, 잠시만…….”

터덕.

뒷걸음질 치는 태건의 앞엔 오광휘 팀장과 조규찬이 차례로 들어왔다.

그런 두 사람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쾅!

조규찬이 대기실 문을 부서져라 닫았다.

그 사이 오광휘 팀장은 태건에게 바짝 다가가 으르렁거렸다.

“너 미쳤어?”

“아니요.”

“아닌 새끼가 복귀하자마자 불 속에 뛰어 들어가?”

“…….”

태건은 일단 함구했다.

대답하기에는 오광휘 팀장의 분위기가 너무도 살벌했다.

그는 그 사나움 그대로 태건을 계속 몰아붙였다.

“아직 시보 딱지도 못 뗀 녀석이 현장에서 그러는 게 말이 돼?”

“죄송합니다.”

“이 새끼야. 죄송하다고 주둥이만 씨불이지 마.”

“…….”

“너 까딱하면……. 어후. 썅. 넌 네가 그 사고를 겪고도 그러고 싶냐!”

쾅!

오광휘 팀장은 결국 수납장을 후려쳤다.

그 모든 건 태건을 걱정하는 질책이고 짜증이었다. 

그건 조규찬도 마찬가지였다.

턱!

오광휘 팀장 앞으로 나온 그가 태건을 더 강하게 나무랐다.

“뒤질려고 빽쓰냐. 왜 불구덩이에 널 던져버리냐고 이 새끼야!”

“…….”

“대답해. 내 눈 보고 똑바로 대답해 새꺄!”

터억!

조규찬은 태건의 가슴을 찔렀다.

불시에 당한 손길에 태건은 억눌린 숨을 터트렸다.

“큭.”

“인마. 네 책임 아니야. 그 사고가 왜 니 탓이야. 이 새끼야. 왜 너까지 왜 그래, 씨블!”

“그게 아니라…….”

“아니란 녀석이 그딴 짓을 저질러? 이 자식아. 둘 다 출장 갔다며, 네가 그랬잖아. 그래놓고 이러는 건 아니잖아!”

터억!

절규한 조규찬은 태건의 가슴을 힘없이 두드렸다.

“…….”

태건은 그 모습을 보고는 차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조규찬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꼼짝없이 당하면서도 뭔가 뿌듯했다. 

그때 격해지는 조규찬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조규찬, 너 뭐하냐?”

“팀……. 장님.”

“누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굴래. 뭐가 잘못됐는지, 왜 잘못됐는지 제대로 말해야 될 거 아니야!”

“…….”

“그럴 자신 없음 나가. 아니면 내 뒤로 빽 해.”

휙.

오광휘 팀장은 차가운 어조로 말하며 뒤를 가리켰다.

“…….”

턱. 턱.

조규찬은 무거운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태건과 오광휘 팀장이 마주했다.

기회를 엿본 태건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 잘못했습니다만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술 쳐 먹고 음주운전 아니란 소리랑 뭐가 달라!”

“잘못한 건 보고 없이 행동한 거고, 잘못하지 않은 건 요구조자를 구한 겁니다.”

태건은 소신껏 답했다.

그런 태건을 본 오광휘 팀장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다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서 또 불이고 뭐고 뛰어들겠단 거냐?”

“요구조자가 불 속에 있으면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태건이 반발하자 뒤에서 조규찬이 버럭했다.

“이 자식이, 그래도!”

“어허!”

“…….”

한 마디로 눌러버린 오광휘 팀장이 다시 태건에게 말했다.

“넌 괜찮을 거 같아? 넌 끝까지, 무조건 무사할 거 같냐고 물었어.”

“아니요. 그건 장담할 수 없겠죠.”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개소리야. 니가 이채용이야? 니가 불귀신이냐고!”

“……네?”

태건이 멈칫하며 묻자 오광휘 팀장이 더욱 으르렁거렸다.

“니가 한 짓이 채용이 스타일이란 거 몰라?”

“엇, 어…….”

“니가 그걸 대신하겠다고. 10년 넘게 근무한 새끼도 그렇게 됐는데? 고작 4개월짜리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태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눈이 흔들리는 게 뭔가 느낌이 온 모양이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오광휘 팀장은 분위기대로 해석했다.

“너도 말이 안 되는 거 같지. 넌 지금 무작정 그 녀석 따라하려는 거야.”

“…….”

“채용이가 네 우상이라 그 빈자리를 너도 모르게 채우려는 거야. 이해는 하는데, 그건 결국 네 생명을 갉아먹게 될 거야.”

“…….”

“반성이 좀 되는 모양인데……. 그래, 너도 이 정도 말했음 알아듣겠지. 차분히 정리하고 나와라.”

스윽.

오광휘 팀장은 몸을 돌리고는 조규찬에게 눈짓했다.

그 길로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탁.

그런데 태건은 그 소리를 듣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늘 현장에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파르륵 지나가고 있던 탓이다.

그땐 나중으로 미룬다고 했다.

곱씹을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

거기에 오광휘 팀장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채용 팀장 같다.

불귀신 같다.

곱씹던 태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설마…….”

혼란스런 두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사고현장에서 까맣게 그을린 이채용 팀장을 만졌을 때 그 짜릿한 느낌.

정전기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그 느낌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채용 팀장의 현장경험들이 전해져 왔다?

솔직히 말이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인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의심이 됐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가 없잖아.”

연기와 불의 흐름을 읽었단 건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랬다.

그게 태건을 혼란스럽게 했다.

…….

아무리 고민해도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돌렸다.

“다음 출동 가보면 알겠지.”

꾸욱.

빈손을 움켜쥐었다.

*  *  *

며칠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사이 안타깝지만 화재 출동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태건도 화재팀의 일원으로 출동했다.

어느 현장.

오광휘 팀장이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다.

“강태건이 어딨어!”

“에? 어디 갔는데요!”

“내가 묻잖아!”

“어어. 저기!”

터덕터덕.

태건은 불길 속에서 요구조자를 둘러메고 나왔다.

그걸 본 모두가 경악했다.

“저 새끼 또!”

“빨리 가서 도와줘!”

“아으, 진짜 쟤 왜 저러냐!”

선배들이 허둥지둥 태건에게 달려갔다.

그 다음 화재 현장.

오광휘 팀장은 극단의 조치를 강행했다.

척, 척.

태건과 자신의 팔을 로프로 묶은 거였다.

“넌 이거 푸는 순간 방댕이 걷어차일 줄 알아.”

“명심하겠습니다.”

태건은 확답을 했다.

그러나 30분 후.

오광휘 팀장의 뚜껑이 열려 있었다.

태건의 손에 묶여 있어야 할 로프가 땅에 질질 끌리고 있던 탓이다.

“이 씨부럴 새끼, 언제 튀었어!”

“묶었다면서요?”

“몰라 새꺄! 빨리 찾아!”

“어엇, 저기 발견했……. 또?”

모두 두 눈을 믿지 못했다.

그 후로도 태건의 돌발적인 행동은 반복됐다.

선배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소방서 어느 구석진 장소.

턱!

태건을 벽으로 밀친 선배들이 둘러쌌다.

그 흉흉한 분위기와 달리 축 쳐진 눈꼬리로 물었다.

“혹시 누가 너한테 이상한 소리를 했다거나, 그런 적 있어?”

“누구야. 누군지만 말해. 형들만 알고 있을게. 얼른 말 해봐.”

“없다고만 하지 말고, 진짜 괜찮아. 우리 선에서 해결한다니까.”

그렇게 어두침침한 곳까지 데려가 살살 구슬렸다.

하지만 그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태건은 여전히 불길을 헤집고 다녔다. 

보다못한 오광휘 팀장이 태건을 찾았다. 

“강태건, 너 정말 이럴거야?”

“거기에 살려달라는 요구조자가 있었습니다.”

그 말에 오광휘 단장이 울컥해 소리쳤다. 

“야 인마!”

“팀장님.”

“부르지도 마, 새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규정대로 따르면 구조대가 와야 하고 불길이 세면 접근도 못하고 시간 날립니다. 그러다 요구조자가 죽으면 그건 어쩝니까?”

“.......”

“오늘 현장이 그랬습니다. 진압팀인 우리가 안 가면 죽었을 겁니다. 팀장님도 아시잖습니까?”

“.......”

연이어 침묵하는 오광휘 단장에게 태건이 목소리를 점점 높였다. 

“눈앞에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다면 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우리 일 아닙니까?”

“태건아.”

오광휘 단장이 부르자 태건은 고개부터 저었다. 

“저 그런 거 못 배웠습니다. 제가 아는 건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빌어먹을 규정보다는 살리려고 애써야 한다는 겁니다.”

“그거 누가 몰라? 그렇다고 매번 규정 개무시할래?”

“할 땐 해야지요.” 

태건 말에 오광휘 단장 눈꼬리가 올라갔다. 

“우리는? 그런 널 바라보는 우리는?”

“팀장님.”

“왜?”

신경질적인 오광휘 단장 말투가 들렸다. 

그러나 태건은 흔들림 없이 따박따박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소방관입니다. 재난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입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소방관입니다. 이게 요새 제 가슴에 새겨진 소신입니다.” 

태건 말에 잠시 눈빛이 흔들리던 오광휘 팀장이 씹어뱉듯이 경고하며 자리를 떠났다.

“닥치고 들어. 앞으로 규정대로 안 하면 각오해.”

“.......”

태건은 그저 침묵했다. 

*  *  *

한 시간 후.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고민이 깊은 얼굴로 수화기를 들었다.

“강태건이 올려보내.”

간단한 지시를 내리고 다시 숙고에 빠져들었다.

“하.”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이미 오광휘 팀장에게 보고는 받았기에 상황은 안다.

알기에 고민이 깊어갔다. 

“사람은 구하는데........”

잠시 후 태건이 씩씩한 얼굴로 서장실에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거기 앉아.”

“네, 감사합니다.”

태건이 소파에 절도있게 앉자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상석에 자리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조용히 물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같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이 안 되는 거 아나, 그 병은 두려움이 먼저야.” 

“네?”

놀란 태건이 눈을 크게 뜨자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얼굴을 굳혔다. 

“불에 세게 당하면 공포심이 오지. 그래서 전처럼 쉽게 못 들어가.” 

“........”

“그런데 넌 미친놈처럼 들어가. 도대체 뭐야?”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의 지적은 폐부를 찌르듯 정확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태건이 잠시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제대로 말한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은 열망도 강했다.

게다가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숱한 경험치를 가진 대선배이기도 했다.

더불어 같이 출동하는 사이가 아니라 조금은 편한 기분이다.

그래 저지르자.

만약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이해하지 못한다해도 한 번쯤 꺼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정을 내린 태건이 조심스레 속마음을 꺼냈다. 

“지금 제가 하는 말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뭔데?”

“이채용 팀장님이 순직하신 이후로 제가 이상해졌습니다.”

“어떻게?”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관심을 보이자 태건이 천천히 속마음을 꺼냈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겪어보지 못한 상황들을 알 거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래서 믿기 어려우실 거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태건의 표정이 정말 진지했다.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어이없단 얼굴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분하게 말해봐.”

“실은........”

태건은 솔직하게 자신에게 닥친 일을 말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태건의 경험.

어디서 많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였다. 

바로 이채용 팀장의 생전 행동과 너무 닮았다. 

‘이게 말이 돼?’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자세하고 정확했다.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넌지시 넘겨짚기 시작했다.

“불길이 허공으로 치솟으면 어쩔건데?”

“그건........”

“요구조자와 사이에 백화가 피면?”

“백화를........”

태건이 술술 대답했다. 

순간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등골이 오싹했다. 

사실 지금 질문은 이채용 팀장이 살아있을 때 보고하면서 들은 이야기였다.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2년 전 백일방직 화재사건 때 요구조자가 사방이 화염에 갇혀 있었지. 그렇다면 넌 어찌 할래?”

“진입로가 막혔다면........”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내놓았다. 

순간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소름이 돋았다.

태건이 말한 건?

이채용 팀장이 보고한 거와 똑같았다.

더 놀라운 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내용도 있었다. 

오로지 자신과 이채용 팀장만 아는 사실이다.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놀란 가슴을 숨긴 채 다음을 물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태건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들을수록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몇 분 후.

겨우 안정을 되찾은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무거운 목소리를 냈다. 

“태건아.”

“네.”

“그래도 규정은 지켜야지.”

“서장님.”

태건 목소리가 대번에 커진 걸 보고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고개부터 저었다.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거야.”

“압니다.” 

“아는 녀석이 이러냐?”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문책하자 태건은 오히려 당당하게 나갔다. 

“규정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요?”

“그건.......”

“이채용 팀장님이 그러셨습니다. 사람이 먼저라고.”

“그러다 네가 죽는 수가 있어.”

“그건 부끄럽지 않은 일입니다. 기쁘게 맞이하겠습니다.”

말하는 태건의 표정에 한 톨의 흔들림도 없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한숨을 내뿜었다. 

“내가 해줄 말은 하나야.”

“말씀하십시오.”

“선배들 말 들어.”

“서장님.”

태건이 발끈하자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고개부터 흔들었다. 

“이건 명령이야.”

“.......”

“나가봐.”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의 말에 태건이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를 떴다. 

다시 혼자 남은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두통이 이는 듯 머리를 짚었다. 

“이건 도대체.......”

혼란스러운 눈빛이 가득할 뿐이다.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은 고민 끝에 휴대폰을 들었다.

“오 팀장, 태건이 조금 지켜보지.”

-서장님, 현장에 오시면 그런 말씀 안하십니다. 그게…….

“내 말대로 해.”

-못합니다. 금쪽같은 내새끼입니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오광휘 팀장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였다.

더 이상 이야기가 어렵다는 걸 안 박민석 구디 소방서장이 서둘러 휴대폰을 책상 위로 던졌다. 

“내가 미친건가? 아님........”

*  *  *

어느날.

화재팀 사무실 문이 열리며 화재1팀이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반겨주는 이들이 있었다.

화재3팀이었다.

“고생들 했어요.”

“교대 시간이 지나서 어쩝니까.”

“얼른들 뒷정리하고 퇴근하세요.”

살가운 인사말들이 훈훈함을 풍겼다.

그들의 말처럼 퇴근 시간이 어느새 지나있었다.

꽤나 빈번한 일이었다.

어떤 출동이든 현장이 상황종료까진 꼼짝마라였다.

소방관들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불 끄다 시간 됐다고 퇴근할 순 없었다.

그래서 퇴근이 늦어진데 대한 불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재1팀 소방관들은 이내 본인 책상으로 향했다.

기동복 군데군데 까만 그을음이 묻어 있고, 타들어 간 머리카락을 거칠게 털어내고 있었다.

“에헤이, 이거 또 탔네.”

“그러니까 방화두건을 왜 벗냐고.”

“저 선배는 가끔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큰 문제가 아니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그 중엔 태건도 함께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넌 수고 찾지 마.”

“네?”

“또 그렇게 뛰어들었잖아. 이걸 어디다 묶어 놓을 수도 없고, 어휴!”

선배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태건은 주눅 들지 않고 배시시 웃어보였다.

“조심하겠습니다.”

“말만, 또 말만!”

박유정이란 선배였다. 

과묵한 성격으로 유명한 선배이기도 했다.

그가 평소와 달리 애정과 타박을 담아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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