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그날 저녁.
인수인계 후 태건은 차고에 도착했다.
각종 소방차들이 24시간 출동 대기 중이었다.
그 뒤에 개인장비 거치대가 있다.
근무 중엔 소방차 안에 넣어두고 즉각 출동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근무 외 시간에는 이렇게 정비를 마치고 다음 근무 때까지 보관했다.
“여깄다.”
척.
태건은 대번에 자신의 개인장비를 찾았다.
그걸 모두 들고 차고 뒤로 향했다.
이내 태건은 소방서 뒷마당으로 나왔다.
한쪽에 장비들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초시계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시작.”
띡!
액정을 터치함과 동시에 개인장비를 입기 시작했다.
장비착용연습 1,000번.
1분 20초 안으로 개인장비 착용 완료.
이 두 가지가 소방서에 오자마자 이채용 팀장에게 한 약속 중에 하나였다.
그날이 잠시 떠올랐다.
똑같은 장소.
태건이 짙은 의구심으로 물었다.
“팀장님, 어차피 소방차에 비치해두는 건데. 이걸 왜 연습해야 합니까?”
“짜샤. 네 밥줄인데 네 몸 같이 다룰 수 있어야 될 거 아냐.”
“그거 아닌 거 같은데요. 혹시 직장 내 괴롭힘, 뭐 이런 거 아닙니까?”
“웃기고 있네……. 강태건이, 내 말 명심해.”
지잉.
이채용 팀장의 얼굴에 미소가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그리고 세상 다시없을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비 착용 시간을 1초 줄이면 현장엔 1분 먼저 도착할 수 있어. 그 1분이 바로 불의 기세를 꺾을 시간이고,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이야.”
“……네.”
“나중에 피눈물 흘리면서 연습하지 마라. 그러기 전에 미리 준비해서 한 번 더 웃자.”
이채용 팀장은 비장하게 조언했다.
그게 회상의 끝이었다.
그런 태건의 손은 멈춰 있었다.
…….
출동장비를 바라보는 시선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우중충함은 잠깐이었다.
절레절레.
얼른 털어버렸다.
언제까지 슬퍼만 할 순 없었다.
그럴 시간에 더 당당한 자신으로 거듭나는 걸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도 더 좋아할 거다.
그렇게 믿었다.
태건은 곧 숨으로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열의를 끌어올렸다.
“쓰읍, 후우. 처음부터 다시!”
띡!
초시계부터 제로 세팅 후 본격적으로 착용 연습을 시작했다.
이내 태건의 모습이 싹 바뀌었다.
“착용 완료!”
띡.
액정을 누르자 소요된 시간이 선명히 보였다.
-1분 32초.
약간 늦었다.
원인?
따질 생각도 없었다.
“다시!”
슥슥.
태건은 스스로를 자극하며 개인장비를 벗었다.
그리고 다 벗자마자 다시 반복했다.
두 번째 결과는?
-1분 27초.
빨라졌다.
하지만 신뢰하지 않았다.
“겨우 두 번 만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예상이 적중했다.
세 번째 출동 준비 소요 시간은?
-1분 35초.
갑자기 확 늘어났다.
시간 편차가 심하다는 건 그만큼 착용이 익숙하지 않단 증거였다.
“진짜 피눈물 나겠네.”
이제 1,000번 중에 3번째다.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었다.
몇 차례 더 반복하자 몸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겨우 이 정도에?”
스스로가 한심했다.
단련해온 근육이 다 물근육 같았다.
그럼 진짜 근육으로 만들면 될 일이다.
스윽.
팔로 대충 땀을 훑어낸 태건은 같은 행동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했다.
늦은 밤.
소방서를 떠나는 태건의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어그적, 어그적.
걸을 때마다 혹사당한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집에 파스가 윽, 있겠지?”
꼬르륵.
저녁 식사를 거른 반응이 먼저 울렸다.
“그래. 먹자. 먹어야 힘이 윽, 나지.”
너무 힘들어 입맛조차 뚝 떨어졌다.
그러나 태건은 24시간 해장국집을 향해 삐걱이는 몸을 이끌었다.
다음 날.
태건은 전신이 쑤시는 근육통을 느꼈다.
“흐어어어.”
후들, 후들.
제멋대로 움직이는 두 다리를 이끌고 차고로 향했다.
소방서도 출동 없는 시간이 존재했다.
그 한가한 틈새 시간조차 흘려보내지 않고 꾸역꾸역 연습을 이어갔다.
그렇게 태건은 개인장비 착용 연습을 거르지 않고 이어갔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허락되면 차고로 향했다.
그저 횟수 채우기가 아니었다.
한 번을 연습하더라도 제대로 갖춰 입었다.
그러나 매번 같을 순 없었다.
띡.
초시계를 멈춘 태건은 개인장비를 확실히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태건의 얼굴이 짜증으로 가득했다.
“시간에 쫓겨서 플래시를 허리에 걸었어. 이건 노카운트.”
현장에서도 문제없을 미미한 응용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태건은 가차 없었다.
연습만큼은 FM으로 한다.
스스로 세운 방침을 그대로 수행했다.
그 모습이 철두철미하고 독했다.
그렇게 연습하니 하루에 50회를 채우기도 어려웠다.
실제로는 100회 가까이 연습하는 거였다.
지겨울 법도 했다.
매일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 건 예삿일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오고, 탈진으로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럼에도 태건의 눈빛은 한 번도 꺾인 적이 없었다.
“아직 멀었어.”
그럴수록 이를 더 악물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태건을 아무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보이지 않게 응원해줬다.
스포츠음료, 초콜릿이나 간식을 몰래 두고 사라졌다.
그리고 차고 속이 잘 보이는 사무실 창가에 서서 지켜보기도 했다.
많은 소방관들 중에서도 오광휘 팀장과 조규찬이 특히 자주 그곳에 서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오광휘 팀장과 조규찬이 커피를 들고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태건은 지켜보는 줄도 몰랐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개인장비를 입고 벗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규찬은 그런 태건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식, 용쓰네요.”
“그럼 가서 멈추던가.”
“왜 저러는지 아는데 그럴 순 없죠.”
“채용이랑 약속이라지?”
“……그렇죠.”
조규찬은 얼버무려 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태건을 향해 있었다.
오광휘 팀장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안타까워?”
“아직 속도 정리되지 않았을 텐데, 저러는 걸 보니까 마음이 아프긴 하죠.”
“그래도 저 순간을 넘어서야 어딜 가도 소방관입네. 할 수 있어.”
“대견한 건 스스로 저러고 있다는 겁니다. 전 그때 사수가 두 달 동안 붙들어 놓고 강제로 시켰는데 말입니다.”
조규찬이 자기 경험을 말하자 오광휘 팀장도 자기 경우를 말했다.
“난 보름 걸렸던 거 같은데.”
“상당히 빠르신데요. 평균 두 달 안팎인데요.”
“내 성질머리가 미치게 아름답잖냐.”
오광휘 팀장이 스스로 그렇게 평가하니 조규찬은 썩 할 말이 없었다.
“…….”
“지금이 고비이지 않나 싶다.”
“그렇겠죠?”
“저렇게 힘 빼면 현장에서도 얌전하지 않겠냐. 요 며칠 근육통으로 현장 통제도 힘들어했잖아.”
“정답입니다.”
둘 다 희망 사항을 그렸다.
태건은 자신을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연습 삼매경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찌르릉!
-화재 출동, 펌프차, 물탱크차, 구급차…….
출동 연습 중인 태건의 귀에도 선명히 들렸다.
그 소리에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가자!’
생각하고 준비할 게 없었다.
이미 모두 갖추고 있었다.
펌프차로 곧장 내달리는 태건의 표정이 다부졌다.
태건이 펌프차 뒷좌석에 오르고야 다른 소방관들이 차고로 뛰어 들어왔다.
타다닥!
“빨리 움직여!”
“서둘러!”
“탑승!”
소방관들은 재빨리 지정된 소방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에에엥, 삐용삐용.
각자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으로 신속히 출동했다.
* * *
몇 시간 후.
출동한 차량들이 속속들이 차고로 돌아왔다.
주차가 되자 좌우에서 문이 열리며 지친 소방대원들이 내렸다.
여기저기 그을음이 가득이다.
…….
분위기가 다들 어딘지 모르게 무거웠다.
말수조차 적었다.
그런 선배들은 슬쩍슬쩍 태건을 엿봤다.
“에휴, 저 자식…….”
“결국 또…….”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측 가능한 푸념이 흘러나왔다.
태건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장비를 들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저벅저벅.
“…….”
그런 태건의 손에 들려 있는 방화복이 제일 시꺼멨다.
그리고 그걸 들고 있는 팔이 조금 앙상해졌다.
전체적으로도 마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훈련한 성과치고는 좀 이상했다.
이내 흡족한 장소에 도착했는지, 태건은 개인장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다음 출동을 위한 필수 코스였다.
치직.
잔류산소와 작동 상태를 확인하고.
척, 척.
플래시 배터리를 교체하고.
그런 태건의 손길은 부드럽고도 신속했다.
매일 연습한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거였다.
그렇게 태건이 장비를 이어갈 때였다.
불쑥 다가온 까만 두 손이 태건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채 밀었다.
텅!
벽에 그대로 등을 부딪친 태건의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윽! 팀장님.”
태건의 말대로 오광휘 팀장이 시퍼렇게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태건의 어깨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너 이 새끼. 왜 또 나대. 왜 또 멋대로 뛰어들어!”
“안에 사람이 있단 소리에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태건은 사실을 말했다.
오광휘 팀장 표정이 싹 굳어졌다.
“너만 소방관이냐?”
“아닙니다.”
“경고다. 한 번 더 그러면 장비 뺏고 현장 통제만 시킬 거야. 알았어?”
“…….”
태건은 침묵했다.
그 모습에 오광휘 팀장의 눈빛이 더욱 살벌해졌다.
“대답. 강태건이 대답한다. 실시.”
“장담 못하겠습니다.”
“너…….”
“앞으로 그 누구도 불 속에 남기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원하시는 대답을 너무도 잘 알지만 드릴 수 없습니다.”
대답하는 태건의 눈빛이 너무도 강렬했다.
말로 설득당할 기세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