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7)화 (17/320)

17화

줄곧 지켜본 오광휘 팀장이라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후우. 젠장.”

휙!

숨을 쓰게 내쉰 오광휘 팀장은 거칠게 돌아섰다.

그가 멀어져가자 조규찬이 나란히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오늘 현장으로 확실해졌습니다. 태건이는 아직 거기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 염병을 떨겠지.”

“…….”

조규찬이 침묵하자 오광휘 팀장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직 내 선에서 처리 가능해. 그런데 태건이가 계속 선을 넘으면 나도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해.”

“흐음.”

“아직은 괜찮다니까. 그러니까 좋아지길 기다려보자.”

툭.

오광휘 팀장은 조규찬을 가볍게 건드리고 멀어져 갔다.

조규찬의 시선은 정비 중인 태건을 향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있었다.

“녀석아, 그렇게 널 내던지면 우리는 어쩌라고……. 젠장.”

동료의 죽음.

그건 절대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갖은 방법으로도 나아지지 않는 태건의 행동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정작 본인인 태건은 어떨까?

결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깜깜한 밤.

반지하 방에 태건이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평온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으으.”

절레절레!

고개를 거칠게 좌우로 흔들고 두 손은 이불을 찢을 듯이 쥐고 있었다.

“아악!”

태건이 벌떡 일어났다.

주르륵.

얼굴 가득 맺힌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벌써 며칠 째인지 몰랐다.

몸이 마른 건 훈련 탓만이 아니었다.

타는 갈증에 태건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꺼낸 차디찬 물 한 컵을 들이마셨다.

꿀꺽, 턱!

“…….”

컵을 부술 듯 강하게 찍어 내려놓았다.

부족했다.

시원한 물도 뱃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꺼뜨릴 수가 없다. 미칠 듯한 목마름과 갈망,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다.

태건은 창가에 다가섰다. 

가물거리는 별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렇게 태건은 오늘도 해가 뜰 때까지 잠 한숨도 못 잔 채 창밖만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  *

며칠 후.

오랜만에 비번 날이다.

어제도 뜬눈으로 밤을 새운 태건은 이부자리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고롱.”

잠든 태건의 안색이 상당히 안 좋아 보였다.

살도 많이 빠진 듯 얼굴이 창백했다.

밤잠을 설치면서도 출동 연습을 강행 중인 탓이다.

거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을 나가야 했다.

복귀 도중 다른 출동 신고가 접수되어 방향을 바꾸는 일이 허다했다.

태건은 그 모든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극도의 피곤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만큼 살이 내리고 피폐해져갔다.

그나마 오랜만의 비번 날에, 간신히 잠들어 있었다.

그만큼 쉽게 깨고 싶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순간을 방해하는 소리가 머리맡에서 울렸다.

때르릉.

휴대폰 소리였다.

태건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귀가 쫑긋거렸다.

풀썩!

돌연 이불을 걷어차듯 젖힌 태건이 벌떡 일어났다.

뻘건 눈으로 고개 돌려 뒤집힌 채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발신자는?

-형.

단 한 글자만 가득했다.

두 살 터울의 친형인 강태영은 올해 초에 중견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태건과 형이 같은 시기에 취직에 성공해 부모님이 크게 기뻐했던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후.”

안도감에 짧게 숨을 내쉰 태건은 차분히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출동했냐? 왜 이렇게 늦게 받아?”

태건과 비슷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썩 정다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보통 형제 사이는 대부분 딱딱하고 건조했다.

이들도 현실 형제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태건의 목소리도 썩 곱지 않았다.

“비번이야. 자고 있었어.”

“이제 잠 좀 자냐?”

“그냥.”

“자식.”

형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잠시나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커다란 화재와 소방관들의 순직 소식을 가족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평소 아웅다웅했지만 피가 진하긴 진한지 퉁명한 목소리 속에 애잔함이 감돌았다.

태건은 오히려 그런 위로가 싫어 더 퉁명하게 대꾸했다.

“왜 전화했는데?”

“이 자식이. 어디서 성질을 부려?”

“왜 전화했냐니까.”

“돈 내놔.”

그 소리와 동시였다.

빠직.

태건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크게 돋아났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돈 타령이라니.

그러고 싶을까?

너무도 기가 막혀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없어. 됐지. 끊는다.”

“야, 내가 괜한 돈 달래냐?”

“그럼 뭐!”

태건의 대꾸가 퉁명스러웠다.

세상 가장 편한 상대라 목소리가 툭툭 튀어나오는 거였다. 하지만 짜증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강태영의 목소리가 덩달아 날카로워졌다.

“인마. 여행 경비 안 보내?”

“어?”

“너 정신없고 힘든 거 아는데, 그래도 까먹을 걸 좀 까먹어라. 부모님 결혼 30주년 축하 여행인데 말이야.”

“그……. 미안.”

“니가 하잔 거였잖아.”

강태영은 강하게 몰아붙였다.

태건은 잠이 확 깼다.  

“알아. 잔소리 그만해. 돈 보낼게.”

“갑자기 맥 빠진 척하기는. 나 퇴근하면 시간 괜찮은데, 넘어가서 한잔할까?”

강태영의 목소리도 덩달아 조심스러워졌다.

만나면 기다렸단 듯 으르렁거리기 바빴지만 큰일을 겪고 있은 동생이 걱정스럽긴 한 모양이었다. 

“술도 못 마시면서 술타령은.”

“야, 회사 들어와 봐. 술이 술술 늘어.”

“됐어. 피곤해.”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집에 연락 한번 해. 도통 연락이 없다고 걱정하시더라.”

형의 말에 무안해진 태건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냥 전화하시면 되지.”

“어디 부모님한테 전화를 하시라 마시라고 하냐? 이 싸가지 없는 자식.”

“형이 그런 말하면 안 되지. 재작년에 형 여자 친구한테 차여서 전화기 꺼놓고 잠수 탔던…….”

태건이 흑역사를 언급하자 강태영이 당황했다.

“시, 시끄럽고. 전화 드려, 알았어?”

“말 돌리기는.”

“끊어, 새꺄.”

뚝.

투덜거리면서 끊어진 통화를 태건이 어이없이 바라봤다.

통화 내용 중 기억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행 경비 입금이었고, 두 번째는…….

“말끝마다 새끼, 새끼. 내가 형 새끼냐? 엄마 새끼지.”

톡, 톡.

투덜거리면서도 휴대폰을 놀려 계좌이체를 했다.

정신이 없긴 없는 모양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일도 잠시 잊고 있었다.

이체를 마치고 난 후 태건은 잠시 휴대폰을 바라봤다.

“…….”

부모님에게 전화라.

왜 하고 싶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올까 봐.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여러 마음들이 뒤엉켜 그 흔한 안부 전화 한 번 마음 놓고 하지 못했다.

그런데 형의 말을 들으니 이젠 미루면 안 될 거 같았다.

“흐음.”

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피폐해진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그리기도 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고 또 끌어올렸다.

그리고 나서야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뚜루루.

신호가 가더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째니?”

딱 한 단어의 질문이다.

태건은 억지로 미소를 그리며 최대한 평소처럼 활달하게 말했다.

“네. 오랜만이죠?”

“오랜만은. 일하다 보면 다 그런 거지. 밥은 먹었고?”

“아직이요. 오늘 쉬는 날이라서 늦잠 좀 잤거든요.”

“혹시……. 아니다.”

어머니는 슬쩍 말을 돌렸다.

그 느낌이 뭔지 잘 안다.

태건도 어떤 질문일지 예상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괜찮아요.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 목소리 들어보니까 많이 좋아졌네.”

“그렇죠?”

“응. 이제 일어났다며, 얼른 밥부터 챙겨 먹어. 목소리 들었으면 됐어.”

“네. 또 연락드릴게요.”

태건은 차분히 인사하고 휴대폰을 내렸다.

태건의 목소리가 좋아졌다는 말도 거짓이고, 목소리 들었으면 됐단 말도 거짓이다.

오히려 선수 쳐서 태건을 안심시켜주는 말들이었다.

역시 어머니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당연히 매일매일 너무나 걱정이 많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소방관을 그만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건 아버지의 말이 컸다.

-이 일을 택한 게 네 선택이니, 놓는 것도 네 선택이겠지.

아버지가 매정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인이기에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란 의미였다.

뭔가 결심한 듯 태건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덜그럭.

잠시 움직인 태건은 한 상을 차렸다.

태건은 식사 후 밀린 집안일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났다.

“움직이자. 파이팅.”

쭈욱.

억지로 기지개를 켜며 자신을 끌어올렸다.

더는 쳐져 있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지만 태건은 바로 실천에 나섰다.

털털털.

세탁기로 밀린 빨래를 돌리고.

위이잉.

청소기와 걸레를 활용해 집안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치웠다.

창문도 활짝 열어 환기도 충분히 시키고, 방향제도 뿌려 반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도 향기로 바꿨다.

그 시간이 짧지 않았다.

모두 끝마치자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열심히 움직인 만큼 얹혔던 성과는 확실히 있었다.

짜안.

깨끗해지고 깔끔해졌다.

이제 마음에 드는지 태건은 오랜만에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개운하네.”

마음속 묵은 때도 조금은 같이 닦인 듯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잔잔해진 마음을 즐기던 중이었다.

때르릉.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다들 비번인 걸 아는지 밀린 전화가 걸려오는 모양이었다.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발신자를 확인한 태건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여자 친구의 전화였다.

정연미.

삼 년 정도 만났다.

화끈하던 시간이 지나 이젠 숯불처럼 은은해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근 여러 일로 연락을 자주 하지 못했다. 정연미도 그 일을 알고 있지만 잠시 무심했던 게 사실이라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응. 나야.”

“목소리가 좋네?”

“이제 좋아져야지. 그런데……. 집 앞이야?”

태건이 뜬금없이 물었다.

반지하 방 창문 밖에 하얀 바지가 슬쩍 보였다. 여자 친구의 옷을 몰라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태건이 제대로 알아봤는지 정연미의 약간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응.”

“소방서 다녀왔어?”

“아니, 전에 근무표 보내줬잖아.”

“아, 그렇지. 그럼 바로 들어오지 왜 전화, 아니다. 들어와.”

태건은 여러 말보다 얼굴을 보는 걸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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