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태건은 곧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치지직.
아직 열기가 남아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불씨들이 보였다.
이미 선배들이 흩어져서 작업 중이었다.
스릉, 스릉.
갈퀴로 잿더미를 뒤집어 불씨를 확인하고.
솨악.
얇은 물줄기로 열기를 차단하기도 했다.
태건은 지켜보지 않고 바로 할 일을 찾아 스스로 움직였다. 똑같이 불씨를 찾거나 물을 끼얹어 꺼뜨리기를 반복했다.
별생각 없이 둘러보며 순차적으로 움직이던 중이었다.
“여기서 불이 끊겨서 안 번졌네.”
문득 들려온 소리.
“흠!”
태건은 화들짝 놀라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바로 옆에 누군가가 보였다.
산소마스크 커버 속 이목구비를 보니 조규찬이었다. 태건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규찬에게 물었다.
“선배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뭐라고 그랬잖아.”
“제가요?”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면서 중얼거렸잖아.”
조규찬이 세세하게 말해주자 태건의 눈동자가 순간 갈 길을 잃었다.
“그…….”
“빨리 마무리 짓고 복귀하자.”
휙.
조규찬은 부드럽게 권하고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반면 태건은 주춤했다.
“내가 중얼거렸다고?”
정작 태건은 기억에 없었다.
* * *
찌릉, 찌릉!
평온한 소방서에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가 가득 울렸다.
화재 출동벨 소리다.
잠잠했던 소방서가 순식간에 바빠졌다.
“출동, 어디야?”
“찜질방이랍니다!”
“안 그래도 뜨거운 곳인데 뭘 불까지 내고 난리야!”
“일단 뛰어!”
다급한 발소리.
그만큼 분주한 모습들.
마지막으로.
에에엥!
사이렌을 울리며 빨간 소방차가 줄지어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화재1팀이 가장 먼저 출동했다.
뒤를 이어 구조대와 구급대까지 출동 대열에 합류했다.
구디소방서의 근무대원 대부분이 출동하고 있었다.
인원 하나만 봐도 화재 규모가 예사롭지 않은 듯했다.
화재 현장은 소방서와 그리 멀지 않았다.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할 정도로 화재 장소가 한눈에 파악됐다. 커다란 건물 가운데 층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솟구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방 가득 모여 그 현장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에에엥! 에에엥!
소방차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섰다.
시민들의 양보로 확보된 길을 따라 소방 차량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가장 먼저 멈춰선 소방차의 문이 동시에 열리며 화재1팀이 쏟아지듯 내려섰다.
완전히 복장을 갖춘 태건의 눈매가 번뜩였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다.
저 속에 요구조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있다면?
태건은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옆에서 오광휘 팀장이 아찔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찜질 더럽게 화끈하게들 하시네!”
“팀장님, 1팀 하차 완료했습니다! 소방용수 확보하고 현장 통제 시작하겠습니다!”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다들 긴장해라. 각오해!”
“네!”
모두 비장하게 대답했다.
오광휘 팀장은 바로 화재1팀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바로 손끝으로 한 명 한 명 지목하며 명령을 내렸다.
“너희 둘은 소방차, 너하고 너 구조대 지원받아서 주변 소방용수 죄다 끌어와.”
“네!”
후다닥!
지목받은 소방관들이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 사이 오광휘 팀장이 남은 인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전원 투입한다.”
“팀장님.”
“조규찬, 왜?”
“막내 여기 있습니다.”
조규찬이 걱정을 가득 담은 손길로 태건을 가리켰다.
바로 그때였다.
태건이 비장한 눈빛으로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소방관입니다.”
“…….”
“혼자라도 들어갈 겁니다.”
“이 자식이 또…….”
선배들 표정이 확 구겨졌다.
그때 오광휘 팀장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지금 여기서 니들끼리 노닥거릴 때야!”
“…….”
“강태건, 나한테서 5미터 이상 떨어지면 내 손에 죽는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살벌한 경고였다. 그러나 태건은 그 시선을 단 한 순간도 피하지 않았다.
현장 투입 허가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한술 더 떴다.
“끈으로 묶을까요?”
“염병.”
“그래서 언제 갑니까?”
“따라와 새꺄. 다들 뭐해, 오늘 밤에 이불에 오줌 안 지리려면 빨리 움직여!”
파바박.
오광휘 팀장이 따가운 재촉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그 뒤를 태건이 바짝 쫓고, 선배들이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뒤에서는 현장 통제가 시작됐다.
“거기 물러서세요!”
“구조대, 매트부터 깔아!”
“구급대 같이 도와!”
여기저기 소리치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구급대와 구조대.
그들이 든든히 뒤를 받쳐주고 있어 소방관들은 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태건은 곧 1층 현관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아아악!”
“으앙!”
비명, 울음소리는 기본이다.
사람들이 몰고 온 탄 냄새로 공기가 매캐했다. 그만큼 그을음이 묻은 찜질복 차림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도 있지만 목욕하다가 날벼락을 맞아 반쯤 헐벗은 사람들도 건물 밖으로 내달렸다.
그들 대부분은 엘리베이터를 사용 중이었다. 커다란 건물 규모인 만큼 몇 대가 존재했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이 혼란스러웠다.
다들 그쪽은 시선도 두지 않았다.
거기에 한 발 더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태건은 이상했다.
그 난리통을 보면서도 침착했고 시야까지 넓어졌다.
휙!
“팀장님, 비상구 저쪽입니다!”
“새끼, 상황부터 알려!”
“찜질방은 5층이랍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실례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태건은 그새 사람들을 비집고 거침없이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무전기 버튼을 눌러 상황 보고도 동시에 이어갔다.
띠릭.
“진압1팀 강태건입니다. 내부에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띠릭. 구조대가 곧 들어갈 거야!
“그리고 탈출구를 더 확보해야 합니다!”
-띠릭. 사다리차 막 도착했어. 매트도 깔고 있으니까 올라갈 생각만 해, 무전은 우선 여기까지!
무전이 뚝 끊어졌다.
외부도 정신없을 터였다.
그 사이 태건은 비상구 앞에 도착했다.
“꺄아악!
우당탕!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태건은 그 소리를 뒤집을 정도로 배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침착하게, 천천히, 한 분씩!”
“…….”
“한쪽으로 질서 지켜서 내려오면 더 빠릅니다. 그리고 저희가 올라갈 길도 열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우웅, 우웅.
태건의 외침이 비상계단 속까지 깊이 울렸다.
현장 통제로 쌓인 내공이 발휘된 외침이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사람들이 한쪽으로 질서 정연하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타다닥.
태건은 사람들이 열어준 계단을 박차고 올라갔다.
뒤따라온 선배들이 오히려 당황했다.
“쟤 언제 저렇게…….”
“따질 시간 없어. 일단 올라가!”
“저 새끼 뒤에 있으라니까. 왜 앞서 올라가는 거야!”
우르르.
화재팀이 확보된 비상계단을 서둘러 뒤따랐다.
같은 시각.
태건은 한 층씩 올라갈수록 솔직히 놀랐다.
2층, 3층…….
올라가는 내내 계단 한쪽이 비워져 있었다.
심지어 각 층의 비상구를 열고 잠시 몸을 피신해 있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탈출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소방관들의 앞길을 활짝 열어줬다.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분명했다.
또 한시라도 빨리 화재가 사그라들어 더 큰 피해를 줄이길 바라는 희망도 그 속에 함께였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태건은 생각한다.
‘누가 미개하다고 개소리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어떤 나라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사람들의 양보와 배려로 소방관들이 5층 찜질방에 도착했다.
어느새 호흡기 커버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뛰어온 길이지만 숨을 헐떡거릴 여유는 없었다.
이미 4층부터 연기가 옅게 피어오르고 있던 탓이다.
그건 발화가 일어난 5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뭉게뭉게.
검은 연기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천장에 뭉쳐 있었다. 연기층이 빠르게 두터워지고 있어 호흡을 위협하고 있었다.
촤아악!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물을 뿌려대고 있다.
그 덕에 바닥은 이미 흥건하게 젖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연기가 엄청나게 발생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광휘 팀장은 현장 파악과 동시에 재빨리 지시부터 내렸다.
“조규찬, 박성휘, 창문 다 때려 부숴!”
“네!”
타닥!
두 사람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오광휘 팀장의 지시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박유정, 김지성, 김후연, 너희는 옥내 소화전부터 찾아.”
“알겠습니다. 띠릭, 구조대. 건물 안전책임자 거기 있어? 있으면 소화전 위치부터 빨리 물어봐!”
다들 무전으로 떠들기만 하지 않았다.
그저 말보다 행동이 빠를 뿐이다.
그렇게 팀원들이 흩어지고 나자 오광휘 팀장 옆엔 태건만이 남아 있었다.
오광휘 팀장이 뭐라고 하려던 찰나였다.
휙!
태건이 손을 한쪽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저쪽이 찜질방 출입구 같습니다!”
“뭐?”
“저쪽이 확실합니다!”
타다닥!
태건은 또 먼저 달려갔다.
그런데 정말 그 추측이 옳은지 사람들도 그쪽에서 밀려 나왔다.
오광휘 팀장이 크게 멈칫했다.
“쟤 대체 오늘 뭐야? 아차차, 같이 가!”
허둥지둥.
이상하게 오광휘 팀장이 뒤따르는 꼴이 되어 버렸다.
밀려 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출입구로 접근이 쉽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부탁드립니다. 잠시만요!”
오광휘 팀장과 태건은 양해를 거듭하며 인파를 거슬러 이동했다.
그렇게 간신히 출입구에 도착했다.
역시나 찜질방 출입구에 쌓인 연기는 복도보다 더 심각했다. 거의 사람 머리 위까지 내려왔을 정도였다.
다행인 건 인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들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연기를 막기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누군가 안전교육을 받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연기를 모두 피할 순 없었다.
“쿨럭, 쿨럭!”
“살려주세요!”
기침 소리와 도움을 바라는 소리들까지 정신이 없었다.
앞서 움직인 태건이 먼저 도착했다.
“숨 쉬세요. 숨!”
“헤엑, 헥헥!”
호흡이 불안정하다.
그게 대부분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