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화 (21/320)

21화

태건은 곁을 지나는 사람들을 붙들었다.

“저기요. 같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저도 지금…….”

“쿨럭, 쿨럭!”

불안한 호흡이 결국 기침으로 이어졌다.

태건은 얼른 그의 입에 보조호흡기를 대줬다.

처억.

그 상태로 붙든 상대에게 한 번 더 부탁했다.

“경황없으시겠죠. 그래도 같이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요?”

“지금 가셔도 됩니다. 자자, 어서요!”

태건은 기침하는 요구조자를 얼른 떠맡겼다.

강제적인 행동이지만 떠맡은 상대는 더 이상 군말하지 않았다.

“어서 갑시다.”

기침하는 요구조자를 부축해 함께 이동했다.

태건은 이후로도 똑같이 행동했다.

“괜찮으신 분들, 도움이 필요한 분들 좀 부탁드립니다!”

“소방관들 투입됐습니다. 조금만 내려가시면 안전합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조금만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연거푸 소리쳐 모두를 독려했다.

그런 태건이라고 연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호흡기 커버가 들썩일 정도로 외쳐 연기가 살짝 안으로 들어갔다.

“쿨럭, 컥컥!”

기침이 터져 나오자 오광휘 팀장이 끼어들었다.

“혼자 다 해쳐먹지 말고 숨부터 좀 쉬어.”

“후욱, 후욱.”

“자자, 차분하게 갑시다. 조금씩만 양보하면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처억.

오광휘 팀장은 태건을 등으로 가린 채 독려했다.

이러는 이유는 사람들의 동요를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 기침하는 태건이 조금 안쓰러운 이유도 있었다.

현재 소방대원이라고는 두 사람뿐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에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발화점을 찾아가는 시간은 점점 지연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광휘 팀장과 태건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소방관의 일은 분명 불을 끄는 일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이다.

119 소방 강령에도 명시되어 있다.

- 어떤 상황이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잠시 후.  

타다닥.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역전의 용사들이 도착했다.

그들 또한 화재 현장에 맞게 방화복 차림이었다. 다만 재빠른 행동을 위해 장비는 최소한으로 줄인 모습이었다.

타다닥!

“구조대입니다!”

“저쪽으로, 유도선 따라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구조대원들의 등장에 혼란은 점차 줄어들었다.

구조대 중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영찬 구조대장이었다.

그가 오광휘 팀장에게 소리쳤다. 

“야, 문자 확인했어?”

“이 난리에 무슨 러브레터라도 보냈냐!”

“찜질방 설계도 보냈잖아!”

따끔한 그의 지적에 오광휘 팀장은 더욱 성질을 부렸다.

“여기서 장갑 벗고 문자 확인할까!”

“아무튼 남탕하고 여탕은 화재가 없다니까 찜질방으로 바로 달려.”

“이렇게 알려주면 될 걸!”

“야, 니네 막내 간다.”

스윽.

이영찬 구조대장이 손짓했다.

그걸 본 오광휘 팀장은 인상을 푹 찡그렸다.

“쟤 또 눈 돌아간 거 아냐!”

“얘 좀 잘 챙겨!”

“시끄러! ……강태건이, 거기 서!”

타다닥!

오광휘 팀장은 인상을 북북 쓰며 앞서 달리는 태건을 만류했다.

그러나 태건도 할 말은 있었다.

“5미터 안 벗어났습니다!”

“이 자식이.”

“반경 5미터라고 하셨잖습니까. 5미터 앞도 반경입니다.”

태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오광휘 팀장은 계속 앞서는 태건이 약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막내, 괜찮아?”

“아직이요.”

“뭐, 이 자식아!”

“빨리 오십시오!”

태건은 오히려 오광휘 팀장을 재촉했다.

그런 태건의 눈빛은 분명 강렬했지만 중심은 확실히 잡혀 있었다.

두 사람은 활짝 열린 찜질방 출입구를 앞다투며 들어갔다.

화르륵!

시뻘건 불꽃이 곳곳에 넘실거렸다.

특이한 건 입구로 나오는 탈출구가 막힌 모습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불길이 빨리 번진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바로 짐작할 수 있을 터였다.

오광휘 팀장이 인상부터 구겼다. 

“내부 인테리어를 나무로 한 모양이야.”

“저기 정자도 있습니다. 엄청 잘 타들어 가고 있고요.”

“아주 궁궐을 만들어 놓지!”

오광휘 팀장이 짜증을 낼 법했다.

정말 찜질방이 입구부터 시작해 전부 나무로 둘려 있었다.

화르륵!

시뻘건 불꽃이 꺼진 조명보다 더 밝게 비춰주고 있어 두 눈에 확연히 보였다. 거기에 곳곳에 쌓인 매트와 베개도 불타고 있었다.

아주 가연제 범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검은 연기의 일부는 안쪽에서 열린 창문으로 배출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아니라면 칠흑보다 짙은 어둠에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터였다.

현장은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길이 무식할 정도로 빠르게 번진 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스프링클러 덕분이었다.

촤아아악!

천장에서 살포되는 가느다란 물줄기는 연기를 어느 정도 막아주고, 불길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스프링클러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불길이었다.

이미 타들어가기 시작한 나무 내장재와 매트리스 같은 화학제품들은 가느다란 물줄기에 끄떡도 없었다.

여유롭게 둘러볼 틈은 없었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방수!”

촤아악!

저쪽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왔다.

소화전을 찾은 모양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퍽, 쨍그랑!

-띠릭, 여기, 여기로 쏴!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이어 무전기에서 호출하는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검은 연기가 빠져나가고, 또 그 밑으로는 밖에서 쏘아 올린 굵은 물줄기가 밀려 들어왔다.

1차적인 화재 진압 구성이 갖춰지는 순간이었다.

태건은 등 뒤가 안전해지는 느낌에 힘이 났다.

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

“내부부터 파고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나도 알아!”

“그럼 가시죠!”

타다……. 턱!

달려가려던 태건이 무언가에 잡혔다.

오광휘 팀장의 손이었다.

“어딜 자꾸 건방지게 앞서!”

“그럼 먼저 가십시오!”

“넌 뒤에 있어. 그리고…….”

오광휘 팀장이 무전기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어느새 태건이 한 박자 빨리 무전을 했다.

띠릭.

“강태건입니다. 화재팀장님으로부터 전언. 출입구부터 오른쪽으로 내부수색 진행할 테니까 서포트 부탁드립니다!”

“……이제 사칭도 하냐?”

“빨리 들어가기 위해선 더한 것도 할 겁니다.”

태건의 대답이 너무도 당당했다.

오광휘 팀장은 기가 막힌 얼굴로 쓰게 말했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투입부터!”

“알아 새꺄!”

척, 척.

오광휘 팀장은 자꾸 떠밀리는 상황에 인상을 푹 찡그렸다.

물론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생각했다.

태건은 분명히 전과 한 끗이 달랐다.

무턱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오광휘 팀장은 만족했다.

그리고 태건이 서두르는 대로 내부 수색은 제일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이었다.

도움이 필요할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더불어 가장 위험했다.

오광휘 팀장이 피식 웃었다.

“안 무섭냐?”

“무섭죠.”

“쫄리면 빠지던가.”

“버틸 만큼만 무섭습니다.”

대화하는 태건과 오광휘 팀장의 걸음엔 멈칫거림이 없었다.

화르륵!

위협 가득한 화마 따위는 이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두 사람은 내부 깊숙이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며 북적이던 장소다. 그러나 지금은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화재의 현장.

아무도 내딛지 않은 시뻘건 장소로 돌변해 있었다. 그 첫걸음을 태건과 오광휘 팀장이 내딛는 중이었다.

화르르륵!

뜨겁다.

곳곳에서 내뿜는 불의 열기가 호흡기 커버를 달구고 있다. 커버가 한 번 열기를 걸러 주는데도 얼굴에 느껴지는 열기는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뿌옇다.

새까만 연기가 바로 머리 위에서 넘실거렸다. 호흡기가 없으면 1분도 버티기 힘들 독한 연기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오광휘 팀장이 한숨을 가볍게 뿜어냈다. 

“잘 타네. 빌어먹을.”

“네?”

“보기만 좋지, 불나면 이렇게 대박인걸. 조심해.”

고개를 끄덕이는 태건의 눈빛에 긴장감은 숨길 수 없이 역력했다.    

그렇게 안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저벅저벅.

축축한 바닥을 딛고 또 디뎠다. 아무리 열기가 막아서도, 연기가 시야를 가려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이번엔 앞선 오광휘 팀장이 중간중간 태건을 불렀다.

“막내!”

“네!” 

“뒤에 있지!”

태건을 찾는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걱정의 마음 반, 불안함이 반이다.

태건도 물론 알고 있었다.

아무리 착실하게 대답해도 불안을 떨쳐낼 수 없을 터였다.

태건은 망설임 없이 당차게 말했다.

턱!

“팀장님 등 뒤는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까불지 말고 긴장해.”

“앞만 보고 가십시오, 오늘은 절대 뒤에 있겠습니다.”

태건은 평소보다 더 강렬하고 듬직하게 답했다.

“이 새끼……. 후우. 가자.”

척. 척.

오광휘 팀장은 애써 자신을 가다듬고 움직였다.

그의 걸음걸이에서 화재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둘 다 그저 앞만 보고 가는 게 아니었다.

시야에 닿는 모든 장소를 유심히 살폈다.

슥슥.

연기가 자욱했지만 꼼꼼히 둘러봤다.

내심 속으로 이미 모든 사람이 탈출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 수색작업이 무의미하게 끝나길 누구보다 진심으로 빌고 있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려는 걸음이었다.

곧 첫 번째 방이 나타났다.

-보석방.

이미 밖은 유독 연기가 그득했다.

유독 연기.

화재 현장에선 타죽는 사람보다 질식사가 많다.

달리 말해 요구조자가 있다면 유독 연기를 피해 보석방에 대피할 확률이 높았다. 

그걸 모를 두 사람이 아니다.

오광휘 팀장이 입을 열었다. 

“가능성 있어 보이지?”

“충분히요.”

“새끼, 소방학교에서 졸지 않았네. 준비해.”

두 사람은 문을 가운데 두고 좌우 벽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이젠 말이 아닌 손짓과 눈빛이 오갔다.

슥.

오광휘 팀장이 문을 손짓했다. 사인의 의미를 직감한 태건은 몸을 낮춰 나무 문에 장갑 낀 손을 댔다.

문의 온도를 측정하는 행동이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라서 이런 절차가 필요했다.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에서 절대 그냥 문을 열지 않는다. 

만약 내부에서 화재가 일어난 상황이라면 산소가 밀려들어가며 백드래프트(역기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던 탓이다.

비록 열전도율이 떨어지는 나무 문이라도 화마의 열기는 충분히 전달해준다.

그런 이유로 태건이 문을 먼저 확인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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