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다행히 온도는 높지 않았다.
끄덕.
태건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였다.
오광휘 팀장은 긴장한 얼굴로 꽉 닫힌 문을 힘을 써 잡아당겼다.“흐읍!”
그와 동시였다.
휘잉!
열린 문틈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내부와 외부의 기압이 균등하게 조율되는 소리였다.
바람 소리가 잦아들자 문은 자연스럽게 열렸다.
그 순간 오광휘 팀장과 태건이 좌우에서 동시에 내부를 들여다봤다. 전기가 끊어져 내부는 암흑천지였다.
비상 유도등만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바로 가슴 켠에 있는 플래시를 켰다.
팟!
돌덩이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구조다. 또 기밀성이 좋은 문인지 내부엔 연기가 거의 스며들지 않았다.
양쪽에서 구석구석 비추던 중이었다.
척.
태건의 플래시가 어딘가에서 멈춤과 동시에 높다랗게 소리쳤다.
“요구조자 발견!”
태건의 말 대로였다.
찜질복 차림의 대여섯 명이 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벽 쪽에 모여 있었다.
곧 플래시 빛을 본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여기요!”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리치며 애원하는 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절망을 던져버리고 희망으로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을 그냥 나오라고 할 순 없는 법이다.
최소한의 상태 확인은 해야 했다.
오광휘 팀장은 날렵하게 뛰어 들어가며 말하려 했다.
“내가…….”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들어가세요!”
태건이 선수 쳐 말했다.
“…….”
오광휘 팀장이 흘겨보며 앞으로 달려갔다.
태건은 벌써 무전기 버튼을 누르며 보고를 시작했다.
띠릭.
“진압팀 강태건입니다. 보석방에서 요구조자 다수 발견!”
-띠릭. 구조대장이다. 부상자는?
“확인 중입니다. 아, 현재까진 모두 무사하단 신호 왔습니다. 그리고 요구조자는 총 7명, 육안으로 보이는 부상은 없답니다.”
태건은 자신이 비춘 플래시 끝에 있는 오광휘 팀장의 수신호를 보며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바로 이영찬 구조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접수, 바로 우리 애들 보낼게. 그런데 접근은 용이한 편이야?
“아직 접근에 큰 무리는 없습니다.”
-띠릭. 수신 양호.
알아들었단 의미다.
무전을 마친 태건의 얼굴에 돌연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오광휘 팀장을 얼싸안고 고마워하는 모습이 플래시에 비쳤기 때문이다.
구조대는 1분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그들에게 인수인계를 마친 오광휘 팀장과 태건은 다시 몸을 움직였다.
요구조자를 발견하고 구조한 보람은 잠시 뒤로 미뤄뒀다.
그 이유를 오광휘 팀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첫 번째 방부터 발견됐다면 지체할 틈이 없어. 다음은…….”
“구조대장님이 문자 보내셨다면서요.”
“……그랬지. 그래, 저쪽이야.”
오광휘 팀장은 아차하며 신속히 휴대폰을 확인하고 앞섰다.
태건은 그 뒤를 바짝 뒤쫓았다.
그런데 상황은 두 사람의 우려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두 번째, 세 번째…….
하나씩 확인했지만 다음 요구조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쁘다고 할 일만은 아니다.
분명 좋은 일이다.
그래도 수색은 끝까지 이어져야 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불길도 당연히 진해졌다.
입구 쪽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화르륵, 후두둑!
불길에 타버린 건축자재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운데 우뚝 선 정자도 화마에 본격적으로 휩싸여 갔다.
심지어 철 구조물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다.
“젠장. 엄청 타들어가네.”
오광휘 팀장이 질린 얼굴로 쓴소리를 내뱉었다.
태건도 직감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안전은 쥐뿔.’
척 봐도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주변을 둘러보는 태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극도로 긴장을 곧추세운 모습이다.
두 눈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향해 있었다.
불길은 고요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넘실거리며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추상화 작가가 이리저리 붉은 물감을 흩트려 놓는 듯이 불규칙으로 가득 타오르고 있었다.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그 현란한 불길을 노려보는 태건의 표정도 범상치 않았다.
어떻게 보면 멍한 듯했다.
또 다르게 보면 눈동자가 불길을 따라다니는 듯했다.
그렇게 불길을 노려보던 중이었다.
태건의 귀에 문득 어떤 중얼거림이 들렸다.
“불길의 중심? 하지만 시작은 여기가 아니지 않나……. 음?”
태건은 깜짝 놀랐다.
전과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 중얼거림의 근원지를 분명히 알았다.
자신이다.
바로 자신이 읊조린 말이었다.
그런 태건의 앞에 오광휘 팀장 얼굴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야, 강태건, 인마!”
“엇!”
“왜 불러도 대답 없어. 정신 안 차려!”
“……어?”
대답하려던 찰나에 태건의 시선이 오광휘 팀장 뒤쪽으로 향했다.
어지러운 불길이 두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이곳은 대형화재 현장이라 이제 와 새삼스러울 게 없는 모습이다.
헌데 이상했다.
수없이 많은 불길들 중에서 유독 한 줄기의 불길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때였다.
화르르.
아래에서 휘몰아친 불길이 위쪽으로 솟구쳤다.
그 불길이 다른 불길과 맞부딪쳤다.
퐈아악!
폭발하듯 부딪친 불길이 심상치 않았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른 거처럼 양쪽으로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이쪽으로 온다.
오광휘 팀장의 등을 향해 뻗어왔다.
그는 앞만 보고 있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피해야 한다.
저 화마에 휩쓸리면 통구이가 될 수도 있었다.
앞에는 오광휘 팀장이 자신을 붙들고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이제 곧 아니, 찰나밖에 남지 않았다.
고민 따윈 사치였다.
‘에라!’
터억!
태건은 오광휘 팀장의 다리를 걸고 그대로 힘껏 밀어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같이 몸을 날렸다.
“팀장님!”
“뭐? ……윽!”
텅!
두 사람이 엉켜 넘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촤르르륵!
거센 불길이 태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면 불의 파도에 휩쓸렸을 터였다.
그에 대한 결과는 너무도 뻔했다.
엎어지듯 넘어진 태건의 두 눈은 얼떨떨한 상태 그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그때 이채용 팀장이 첫 출동에서 해준 조언의 일부가 머릿속에 둥실 떠올랐다.
-죽기 싫으면 무슨 수가 나겠지.
두근, 두근!
심장이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방금 그 불길에 휩쓸렸다면 정말 죽었을 거란 느낌이 이제야 왔다.
태건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때였다.
아래쪽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태건에게 떠밀린 오광휘 팀장이 움찔거리는 모양이었다. 이어서 턱밑에서 당혹감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태건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못 보셨습니까?”
“보길 대체 뭘 봤단 거야?”
“방금 불길이 확 스쳐 지나갔습니다.”
태건은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그러나 그걸 오광휘 팀장이 믿어줄 리 없었다.
“뭔 헛소리야……. 그나저나 너 오늘 뭔가 좀 이상한데, 아 유 오케이 하냐?”
“이 젠장맞을 찜질방 속에 있는 제가 괜찮냐고요?”
“……일단 일어나 새꺄. 끄응!”
터억.
오광휘 팀장은 위에 있는 태건을 떠밀어 버렸다.
태건은 믿어주지 않는 반응에 씁쓸해하며 일어났다.
처억.
“윽.”
같이 넘어진 여파가 아릿하게 남아있었다.
오광휘 팀장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크으. 그래서 불길이 어딜 어떻게 스쳤단 건데?”
척 봐도 믿지 않는 눈초리였다.
태건은 지체하는 게 낭비인 상황이라 말을 돌렸다.
“걸려 넘어졌습니다.”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잘 보고 가겠습니다. 이제 가시죠.”
“그래. 그리고 스키 타듯이 발바닥을 슥슥 밀면서 걸으면 덜 힘들어.”
오광휘 팀장은 깨알 조언을 건네며 몸을 돌렸다.
태건은 그런 그의 등을 바라봤다.
‘은근히 넓으시네.’
동료나 부하 화재팀원이 그를 따르는 이유가 있었다.
돌아선 오광휘 팀장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어서 바로 어깨에 걸쳐진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띠릭.
“화재팀장이다. 뭐 하는데 아직도 현장이 개판이야!”
-띠릭. 곧 올라갑니다!
“최대한 신속하게 정비해서 화재진압과 수색을 동시에 실시한다, 이상.”
그는 격하게 모두를 다그쳤다.
다른 팀장과 상의 없이 몰아치는 모습이 마치 폭군과 같았다. 하지만 이의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건 최전선에서 불과 맞서는 화재팀장에게 주어진 권한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그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오광휘 팀장은 태건에게 직접 그 이유를 말했다.
“애들 오면 입구 쪽으로 빠져.”
“팀장님.”
“당장은 아니야. 애들 도착할 때까진 같이 수색을 이어간다. 이상.”
휙!
오광휘 팀장은 차가운 아니, 뜨거운 바람을 풀럭이며 돌아섰다.
역시 방금 태건의 행동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태건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더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던 탓이다.
그런 와중에도 수색은 바로 이어졌다.
지체된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다. 단 1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복잡함도 수색에 나선 순간 어딘가로 밀어 버렸다. 화재 현장에서 수색은 긴장에 긴장을 거듭해도 부족한 탓이다.
태건은 그렇게 긴장감을 가득 끌어올려 수색에 임했다.
앞에 오광휘 팀장의 등도 그대로 보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뭔지 모르게 어색했다.
“…….”
“…….”
자잘한 대화 한 마디까지 사라졌다.
몇 걸음 더 걸어가기도 전이었다.
뭔가 달라졌다.
그건 바로 연기의 흐름이었다.
휘이익.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지 연기가 좌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촤아악, 촤악!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가깝고 또 다양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조규찬입니다. 창문은 다 열거나 깼고, 배연기 설치해서 연기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띠릭. 박유정입니다. 화재팀 집결해서 소방호스 3개로 늘렸고, 밖에서도 살수차가 서포트 중입니다.
-띠릭. 구조대장이야. 요구조자들 모두 구급대로 인계했고, 바로 진입해서 수색하도록 할게.
한 번 보고가 시작되니 줄줄이 이어졌다.
그 보고대로 호흡기 커버에 닿는 열기가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정자를 제외하고 곳곳에 불길도 약간 누그러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