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3)화 (23/320)

23화

현장에 도착한 지 이제 10분 남짓 시간이 흘렀다.

소방관들의 신속함과 체계적인 행동이 불길 진압에 탄력을 더했다. 그래서 그런지 흐르는 공기부터 달라졌다.

현장이 제대로 돌아갈 때 느껴지는 그 분위기였다.

분명 좋은 일이다.

당연히 이렇게 흘러갈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움찔.

태건이 반응함과 동시에 오광휘 팀장이 다가와 말했다.

“이제 뒤로 빠져.”

“네, 팀장님.” 

태건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무전기가 따갑게 울렸다.

띠릭.

-구급팀장이야, 구조팀장!

-네, 팀장님.

-실종자가 있다. 남자아이, 다섯 살, 실내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봤다고 한다.

-실내놀이터, 화재팀장, 혹시 그쪽 들렸어?

이영찬 구조팀장의 찾는 소리가 높이 들려왔다.

동시에 오광휘 팀장과 태건의 눈빛이 날카롭게 돌변했다.

실내놀이터.

조금 전에 지나쳐 왔다.

-확실해?

-지금 여기 난리야. 십 년 만에 시험관 시술 끝에 얻은 아들이라고 엄마가 들어가려는 거 막고 있어.

-들어오면 죽어.

-야, 자식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을 엄마가 어디 있어.

이영찬 구조팀장의 목소리가 죽어갔다. 

그 결과는?

턱!

오광휘 팀장은 날렵하게 무전기를 눌러 대답했다.

“화재팀장이야, 실내놀이터에 들어가 보지 못했어!

-띠릭. 못 들어갔다고?

“죄다 플라스틱 제품들이야, 그게 타들어가는데 그 속에 맨몸으로 들어가라고?”

-띠릭. 젠장, 알았어. 우리 애들 다시 보낼게, 화재팀 지원해줘!

이영찬 구조대장의 욕설은 안타까움과 다급함의 표현이었다.

그 사이 태건은 눈빛 자체가 변했다. 

아직 아이다.

게다가 이런 사연이 있다면?

혹시나 잘못되면 엄마가 제대로 살아갈지 의문스러웠다. 

있다면?

살려야 한다.

태건은 침착하게 지난 순간을 되짚었다.

둘이 수색한다고 건성으로 지나친 곳은 어디도 없었다.

실내놀이터도 마찬가지다.

분명 쇠가 녹을 정도로 강하게 불이 일어난 곳이라고 해도, 유독가스의 대부분이 거기서 나오고 있다고 해도 허투루 수색하지 않았다.

그 열기를 감내하고 연기투과용 플래시로 세세히 비춰봤었다.

분명히 없었다.

그리고 실종자는 5살 아이라고 했다.  

어느새 흐릿하던 태건의 눈빛이 날카롭게 되살아났다.

태건은 바로 오광휘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아무리 애라도 거기서 불이 다가오는 걸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강태건. 넌 빠져.”

“아니요.”

“인마.”

오광휘 팀장이 버럭 소리쳤으나 태건은 물러서지 않았다. 

“팀장님. 여기 사람이 있답니다.”

“…….”

오광휘 팀장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그래도 태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것도 엄마, 아빠 찾아 목 놓아 울고 있을 아이가요. 불이 무서워서 어딘가 꽁꽁 숨어 있을 아이가 있단 말입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오광휘 팀장이 버럭 소리쳤다.

그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태건이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제 정신상태가 그 아이보다 중요합니까?”

“…….”

“저 지금 여기 있습니다. 현장 가장 깊숙한 곳에 팀장님하고 같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 오길 기다려야 합니까?”

“…….”

“대답해 보세요. 팀장님!”

태건이 거칠게 다그쳤다.

그럴수록 오광휘 팀장 표정에 갈등이 짙어졌다.

하지만 그 시간은 찰나에 그쳤다.

어떤 순간에도 소방관의 제1원칙은 불변이다.

결정을 내렸는지 오광휘 팀장이 잔뜩 굳은 얼굴로 무전기를 잡았다.

띠릭.

“화재팀장이야. 오면서 발견 못 했으면 안에 있을 확률이 더 높아. 나랑 막내가 최대한 빨리 안으로 들어갈게.”

-띠릭. 지금 어디쯤이야?

“황토방.”

-띠릭. 우리는 반대쪽으로 돌게. 구조대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짧은 무전으로 순식간에 구역이 나뉘었다.

오광휘 팀장이 무전기를 놓을 때였다.

태건이 바로 지나치며 말했다.

“어서 움직이시죠.”

타다닥!

어느새 태건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는 오광휘 팀장의 표정이 복잡했다.

“저 녀석 안전핀 뽑힌 거 아니겠지……. 아니야, 지금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자신을 질책한 오광휘 팀장도 곧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선 태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아이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분명한 건 찜질방 내부에 있을 확률이 높다란 점이다.

찾아야 한다.

무조건 무사히 찾아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단 점이다.

압박감과 중압감이 밀려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터질 거 같았다.

그만큼 정면을 향한 태건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치적이나 상식적인 생각은 접었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이고 또 본능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실종자는 아이다.

그 시선에 맞춰 아이다운 입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최우선 수색 장소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미치겠네.’

태건은 성인이다.

부끄럽지만 아이의 순수함을 잊은지 오래였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래도 아이의 시선으로 생각하려 머리를 쥐어짰다.

태건의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생각만 하지 않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뭐든 눈에 담아 힌트를 얻으려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뭘 발견했는지 태건이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빠르게 다시 돌려 방금 스쳐 지나갔던 그곳을 다시 바라봤다.

활활 타오르는 정자의 반대편이었다.

저 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특이하게 생긴 문이 있었다.

때마침 뿌연 연기가 바람에 흘러가며 방의 이름이 희미하게 보였다.

-……스방.

“뭔, 스방. 어?”

태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찜질방에서 저런 명칭으로 불릴 장소가 딱 하나 떠오른 탓이다.

그건 바로 ‘아이스방’.

냉매를 순환시켜 온도를 낮춘 차가운 방이다.

연기와 불길에 가려 미처 못 본 아이스방이었다. 

아차한 태건이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아이의 시선이라면?

불, 뜨겁다.

얼음, 차갑다.

머릿속으로 단어를 맞춰보던 태건의 눈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이런, 스방!”

파바박!

자신의 추리에 만족하던 태건이 갑자기 그쪽으로 내달렸다. 아이스방의 출입문 아래쪽에 불길이 번진 탓이었다.

지체하면?

얘가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죽는다.

그걸 생각하니 한마디가 떠올랐다. 

-거기 사람이 있으니까, 그게 너였으니까.

그 앞엔 불타는 정자가 있다.

태건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불타는 정자 아래쪽을 가로질러 갔다.

같은 시각.

주변을 샅샅이 훑던 오광휘 팀장이 급히 뛰어가는 태건을 발견했다.

“야, 강태건!”

“…….”

태건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엇에 홀린 듯이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그 순간 직감했다.

“저 자식, 결국 눈 돌아갔어! 빌어먹을. 그런데 왜 또 불덩이 속에 다이빙질이야!”

버럭버럭 소리치며 짜증을 내뱉었다.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그도 바로 뒤따라 달렸다.

쏴아.

물론 소화액을 그득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꽈직, 후두둑!

불탄 천장 마감재가 떨어져 내렸다.

그 위치는 바로 오광휘 팀장의 코앞이었다.

“헉!”

그의 거침없던 발길이 저절로 멈췄다.

순식간에 허리까지 불길이 차올라 진로가 꽉 막혔다.

먼저 달려간 태건이 무사한 건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더 위험한 정자 아래를 관통하는 모습이 설핏 보였다.

미친 짓이다.

미친개라고 스스로 말하는 자신도 하지 않을 행동이다.

오광휘 팀장의 가슴속 화가 불길보다 더 강하게 솟구쳤다.

“으아악, 강태건이. 이 자식아!”

거칠게 짜증을 토해낸 오광휘 팀장은 재빨리 다른 이동 경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혼자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바로 무전기를 눌러 버럭버럭 소리쳤다.

띠릭.

“강태건, 이 새끼 당장 멈춰! 그리고 전 대원 정자 쪽으로 달려와. 빨리!”

-띠릭. 팀장님. 박유정입니다. 그런데 태건이가 또 왜요!

“불구덩이에 또 뛰어 들어갔어!”

-띠릭. 또요? 애 좀 잘 붙들고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일단 튀어와! 으아악! 강태건. 끝까지 대답 안 하냐!”

오광휘 팀장의 거친 재촉이 계속됐다.

한편.

불타는 정자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바로 태건의 얼굴이었다.

위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무전기에선 오광휘 팀장의 절규 어린 짜증이 울리고 있었다.

알고는 있지만 귀엔 닿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독단적이란 비난도 상관없었다.

아이다.

게다가 고작 5살이다.

아직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 어렸다. 

게다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렸다. 

“살리는 건 한 명이지만 따지고 보면 수십 명이야.”

그거 하나만 생각했다.  

그 심정으로 아이스방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있었다. 그 상태로 목적지를 향해 다시없을 속도로 거칠게 달려가고 있었다.

타닥, 탁!

이내 아이스방 근처에 도착했다.

“읏, 젠장!”

아이스방의 문은 철문이다. 

그런데 밀려온 불길에 아랫부분이 조금 녹아 있었다. 그 틈은 유독가스가 침투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태건의 손이 바로 움직였다.

팟!

연기투과 플래시를 다시 켜자마자 태건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안쪽으로 연기가 빨려 들어가는 게 생생히 보인 탓이다.

유독 연기를 마시면?

시간이 없기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중요한 건 이 방안에 아이가 있단 확신이 없었다.

그저 추측일 따름이다.

‘상관없어.’

속으로 읊조림과 동시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쨌든 수색해야 할 방들 중에 하나다.

그 생각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태건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치익!

“크윽!”

철이 녹을 만큼 들끓는 열기가 안전장갑을 뚫고 손에 그대로 전달됐다.

그저 화끈한 정도가 아니었다.

불을 맨손으로 잡은 듯이 환장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꽉 쥐며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휙!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백드래프트 현상도 없었다. 이미 철문의 아랫부분이 녹아 연기가 흘러 들어갈 정도로 틈이 있던 탓이어서다.

태건도 그 정도는 판단하고 문을 연 거였다.

아무리 다급해도 요구조자의 안전을 위협할 행동에 대해선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지만 내부는 이미 연기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화재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시원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건 상대적인 느낌이었다. 연기투과 플래시로 비춰보니 얼음은 모두 녹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러 온 길이 아니다.

태건은 관심을 두지 않고 연기투과 플래시로 내부를 이리저리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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