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5)화 (25/320)

25화

태건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이판사판이다.

그럴 바에는 앞서 자신을 살려준 그 느낌을 한 번 더 신뢰하는 게 차라리 좋았다.

“에라이!”

휙!

거칠게 외친 태건은 그대로 정자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였다.

우르릉!

정자가 무너지며 태건의 몸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한편.

오광휘 팀장과 화재팀은 전원 멘붕에 빠졌다.

태건이 무너지는 정자 속으로 뛰어드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한 탓이다.

와지직!

쓰러진 정자는 이미 불길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라 그대로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불길은 가라앉지 않고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태건아!”

“강태건!”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쳐 불렀다.

그때였다.

“물 쏴!”

“새꺄, 다 퍼부어.”

촤아악!

따가운 외침과 동시에 굵은 물줄기가 무너진 정자로 향했다.

오광휘 팀장이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푸아악!

바로 뒤따라 조규찬이 컨트롤하는 물줄기가 쏟아졌다.

다른 소방호스들도 그쪽을 집중공략했다.

불과 몇 분 후.

한 번에 쏟아진 물살로 무너진 정자의 불이 빠르게 꺼져갔다. 

그 자리를 화재팀원들 모두가 달려갔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공구가 들려 있었다.

꽈직, 우당탕!

노루발을 지렛대 삼아 나무를 들어 올리는 건 기본이었다. 망치로 두들겨 불씨를 부수는 모습도 흔히 보였다.

심지어 손으로 걷어내기도 했다.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열기에 안전 장갑에서 김이 풀풀 풍겨 올라왔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지 잔해를 미친 듯이 걷어냈다.

“안 돼, 안 돼!”

“이 새끼, 이 자식!”

“막내야, 인마!”

“그렇다고 아예 뛰어들어 버리냐. 새꺄, 아으씨!”

외침에 절규가 가득했다.

지난 사고로 상처를 입은 건 태건뿐이 아니었다.

모두의 마음에, 또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또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건 싫었다.

절대로 싫었다.

잔해를 걷어내고 또 들춰내는 화재팀에겐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만이 아니었다.

“빨리 투입해!”

“에라이, 빌어먹을!”

차자작!

거친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거의 모든 구조대원들이 삽시간에 투입됐다.

그들의 손길에도 더는 동료를 잃을 수 없단 간절함이 가득했다.

덕분에 소방관이 소방관을 구조해야 하는 엉뚱한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생각은 없었다.

태건을 빨리 구출해야 한단 일념밖에 없었다.

그런 모두 중에서도 조규찬의 모습이 가장 거칠었다.

“막내야, 막내야!”

시뻘건 숯도 막무가내로 손으로 집어 내던지고 있었다.

또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살아만, 살아만 있어. 이 자식까지 가면 어떻게 하라고!’

벅벅!

방화 장갑이 타들어가고 망가지도록 파고 또 파냈다.

그러던 중이었다.

묵직한 서까래 하나를 들어 올린 순간 조규찬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여기, 여기!”

그의 외침에 두 사람이 잽싸게 다가왔다.

오광휘 팀장과 이영찬 구조대장이었다.

머리를 맞댄 두 사람의 눈에 그토록 걱정한 태건이 보였다.

그런데 태건의 모습이 이상했다.

아니,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어디에 눌리거나 불탄 흔적이 거의 없었다.

약간 그을린 흔적과 후끈한 열기까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신기했다.

마치 태건을 위해 맞춤 제작된 공간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큰 정자가 무너졌는데 이렇게 무사하다는 건 기적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들 놀라 할 때였다.

스윽.

옆으로 누워 웅크리고 있던 태건이 서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켜보는 모두를 마주 바라봤다.

그런 태건의 안면근육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복잡한 표정이다.

그 표정 그대로 태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 요구조자 먼저…….”

스륵.

태건이 앞섶을 펼치자 꽁꽁 숨어 있던 아이가 보였다. 동시에 이영찬 구조대장이 손을 뻗어 받아들었다.

매사 침착한 그가 아이를 살펴보다 크게 동요했다.

“상처가 거의 없어.”

“구조대장, 뭐라고?”

“호흡은 불안정해. 애부터 데려갈게!”

휙!

이영찬 구조대장은 재빨리 아이를 안고 멀어져갔다.

그 순간에도 태건의 표정은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런 태건이 오광휘 팀장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 오래 살겠네요.”

“뭐?”

“기분 좋네요.” 

“강태건, 이 자식아!”

“정말 기분이 좋네요. 후후.”

태건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반면 오광휘 팀장과 조규찬 등, 선배들의 눈빛은 가늘어져 있었다.

*  *  *

그날 저녁.

소방서장실.

오광휘 팀장이 박민석 서장에게 건의 중이었다.

“저 자식도 곧 죽겠습니다.”

“푸우우, 젠장.”

박민석 서장 얼굴이 어두워지자 오광휘 팀장이 강하게 주장했다. 

“서장님, 태건이 휴직시켜야 합니다.”

“강제로?”

“그렇게라도 해야죠. 저러다 조만간 다시 큰일 터집니다.”

“흐음!”

박민석 서장 가슴이 순간 철렁했다.

또 다시 사고가 나면?

그야말로 아찔했다.  

당연히 결정은 빨랐다.

“나가보고, 강태건이 올라오라고 해.”

느닷없는 호출에 태건은 아무 생각 없이 서장실에 들어왔다.

박민석 서장 앞에 선 태건은 인사부터 했다.

척.

“안전, 부르셨습니까?”

“강태건이.”

그가 나지막이 불렀다.

태건은 순간 좋지 않은 느낌이 엄습했다. 

그래도 서장의 부름이라 대답은 칼같이 했다.

“네, 서장님.”

“제정신이야?”

“……”

태건이 침묵하자 박민석 서장은 눈빛을 사납게 빛냈다.

“최근 잠잠하더니 몰아서 사고치나?”

“아닙니다. 하지만…….”

태건이 말하려는 순간 박민석 서장 목소리가 한 박자 빨리 이어졌다.

“요구조자 구출은 장해. 하지만 그 외에는?”

“…….”

“강태건.”

“네. 서장님.”

태건이 무겁게 답함과 동시였다.

박민석 서장이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좀 쉬어.”

“네?”

“내 직권으로 어떻게 해볼테니, 1년만 쉬었다 와.”

“서장님.”

태건이 불렀지만 박민석 서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만 둘래, 아니면 쉴래?”

“…….”

“내일부터 나오지 마. 1년 후에 보자고.” 

박민석 서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얼굴 표정만 보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냉정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끼익.

의자를 돌렸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태건도 알고 있다.

그만큼 현장에서 잘못한 일도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이렇게 나가라면 누가 나갑니까.”

“누가 나가래? 쉬라고.”

“서장님!”

태건이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등을 돌린 박민석 서장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목소리만 들려줬다.

“네 목숨 아낄 때 다시 와.”

“아끼고 있습니다.”

“후우. 내 입에서 더 험한 말 나오기 전에 나가 봐.”

두 번째 축객령이었다.

그래도 태건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안 쉴 겁니다. 아니, 못 쉽니다.”

“네 자리 치우라고 했어.”

“서장님, 이러지 마십시오.”

“시끄럽다니까. 그리고 발령은 내일 날 거야.”

박민석 서장 말에 태건이 강하게 반발했다.

“휴직이 무슨 발령입니까?”

“격식이야. 더 들을 말이 있나?”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단 박민석 서장의 마음이었다.

계급이 깡패였다.

하지만 태건의 마음은 순순히 받아들이길 강하게 거부했다. 그걸 몇 번이고 호소했으나 박민석 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태건은 휴직을 통보받은 채 서장실을 나왔다.

복도를 걷던 태건의 눈빛이 조금 차갑게 변했다.

그 길로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잠시 후.

벌컥!

거칠게 사무실 문을 열어젖힌 태건이 소리쳤다.

“누가 그러신 겁니까!”

“뭘?”

“제 휴직 말입니다!”

태건이 이러는 이유를 명확히 알렸다.

그때 삐딱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오광휘 팀장이 손을 들었다.

“내가 그랬어.”

“팀장님!”

태건이 따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조규찬이 이어서 손을 들었다.

“나도.”

“나도 그랬어.”

“이하 동문.”

쑥, 쑥.

박유정부터 시작해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걸 본 태건의 얼굴이 멍해졌다.

“다라고요?”

“그럼? 말은 지지리도 안 듣지, 눈 돌아가면 선배고 뭐고 없지, 불나방처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놈을 어쩌라고.”

오광휘 팀장이 조목조목 따져 말했다.

태건은 그 말을 듣자마자 움찔했다.

그건 명백한 잘못이다. 

“팀장님, 우선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또 불을 봤다, 불길을 읽었다. 이딴 헛소리 하면 진짜 죽는다.”

“아니라면 어떻게 제가 정자가 무너졌는데 그 밑에서 멀쩡하겠습니까!”

태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단 표현이었다.

하지만 오광휘 팀장은 단호했다.

“넌 그렇게 말하겠지. 그런데 우리 눈에는 죽으려고 빽 쓰는 거 같아 보여.”

“그게 말이 됩니까!”

“아니라면 네 행동들이 옳아?”

오광휘 팀장이 얼굴을 굳히며 따져 물었다. 태건도 걱정과 우려를 알고 있지만 물러설 수 없어 항변했다.

“설령 그래도 제 목숨입니다.”

“장례식장은 우리가 가.”

오광휘 팀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태건을 향한 표정이 냉정하고 또 차가웠다. 그런데 전혀 어울리지 않게 눈빛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걸 본 태건도 더는 고집을 세울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하하.”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생애 처음 확실한 목표와 목적이 생겼다.

소방관.

누군가를 살리며 느꼈던 행복함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밀어내고 있었다.

이 넓은 소방서에 태건이 서 있을 곳이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도 가슴을 허탈하게 했다.

*  *  *

퇴근길.

매일 오가는 길이다.

그런데 태건에겐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내일 출근할 수 없단 사실이 익숙한 길도 생소하게 느껴지게 했다.

어느새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음료수 병을 바라보며 지금도 자신의 현실이 믿기지 않은 표정이었다.

“푸우.”

턱.

짧게 숨을 토해낸 태건은 간이 의자에 깊이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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