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하늘이 보였다.
별도, 달도 흐릿했다.
꼭 자신의 마음 같았다.
쓴 얼굴로 흐릿한 하늘만 올려다봤다.
구름이 지나가는지 뿌옇게 느껴지던 검은 하늘이 더욱 새까매졌다. 그런데 반대로 달과 별은 선명해지고 있었다.
초점 없이 바라보던 태건의 두 눈은 어느새 그 변화를 쫓고 있었다.
곧 눈빛도 선명해지고 표정도 단단해졌다.
그런 태건이 순간 팔을 들어 팔걸이를 무겁게 내리쳤다.
턱!
“제가 그렇게 물러터지진 않았습니다.”
뜻 모를 소리다.
그러나 하늘을 향한 태건의 두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다음 날.
소방서 화재팀 사무실은 인수인계 중이었다.
화재1팀과 3팀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오늘은 중요한 안건이 있는지 오광휘 팀장이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큼지막하게 써 놓은 전달사항을 세부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지한 대로 곧 2팀이 재가동될 예정이다.”
“네.”
“이런 상황에서 결원이 생겨 더 힘들겠지만…….”
오광휘 팀장이 격려와 응원의 말을 꺼내려던 중이었다.
끼익.
사무실 문이 열렸다.
말을 멈춘 오광휘 팀장을 비롯한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열린 문으로 놀랍게도 태건이 들어오고 있었다.
“…….”
“…….”
다들 놀란 눈빛이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태건은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민망한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진짜 일찍 나왔는데 버스 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됐습니다. 정말입니다. 흠흠. 그럼…….”
삭삭.
태건은 변명을 하며 얼른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오광휘 팀장은 아니었다.
순간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태건을 불렀다.
“강태건. 지금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변명이 길었습니다.”
“헛소리 말고. 누가 출근하랬어!”
버럭!
오광휘 팀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 그를 만류할 화재팀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오광휘 팀장과 같이 태건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막상 그 눈빛을 받고 있는 태건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팀장님도 참, 출근 시간에 출근해야죠.”
“얼렁뚱땅 넘어간다고 될 일이야?”
“…….”
태건이 순간 침묵했다.
그런 태건을 향해 오광휘 팀장은 더 따끔하게 물었다.
“휴직이 무슨 뜻인지도 몰라?”
“팀장님. 그…….”
“닥쳐. 이젠 아주 네 멋대로 하고 싶어?”
비난의 수위가 높아졌다.
태건은 그 압박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맞섰다.
“다시는 현장에서 까불지 않겠습니다.”
“늦었어.”
“그러지 마시고…….”
태건이 한 번 더 부탁하려던 순간이었다.
-찌르릉!
화재 출동 소리다.
태건에게 보내는 화재팀원들의 따가운 눈빛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근무 팀인 화재1팀이 벌떡 일어났다.
“출동!”
“남은 공지사항은 공문으로 확인해!”
“움직여, 빨리, 더 빨리!”
우당탕!
화재1팀은 번개같이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태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가야지!’
당연한 문제라 태건도 덩달아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 찰나 손이 붙잡혔다.
턱!
“억!”
진로가 막힌 태건이 고개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표정 하나 없는 서순영의 얼굴이었다.
원래 화재3팀 소속인 그는 불과 상극이라고 말할 정도로 차가운 성격에 거친 입담이 특징이었다.
서순영은 그 성격 그대로 태건을 나무랐다.
“어디 민간인이 나대고 지랄이야.”
“서, 선배.”
“몸에 힘 빼.”
“갈 겁니다.”
태건의 표정은 마음만큼 확고했다.
처억.
서순영이 두툼한 손으로 태건의 어깨를 무겁게 짚었다.
턱!
“강태건, 똑바로 들어.”
“…….”
“불에 미친놈은 언젠가 불에 먹힌다. 그게 지금 널 소방서에서 밀어내는 이유야.”
서순영이 무겁게 말하자 태건은 바로 반발했다.
“안 먹힙니다. 제가 잡아먹을 겁니다!”
“그 되도 않는 개소리가 문제라고.”
“아닙니다. 저는…….”
태건이 이어서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꾸욱!
서순영이 짚은 어깨에 서서히 힘을 주며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야. 그러다 뒤진 새끼가 한둘인 줄 알아?”
“…….”
“너는 아니라고. 너는 불을 잡아먹을 거라고. 고작 소방사시보 주제에? 순직한 대원들 중에 너보다 경력 없는 분이 계신 줄 알아?”
“…….”
“대답해봐. 그 잘난 주둥이로 씨불여 보라고, 이 자식아.”
서순영의 말에 태건이 막 반박하려는 순간이다.
따르릉.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바로 근처에 있던 화재팀원이 전화를 받더니 슬쩍 서순영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서 선배.”
“무슨 일인데?”
“태건이를 찾아온 분이 계시다는데요.”
그 소리에 서순영은 물론이고 태건의 표정도 의아하게 변했다.
“저를요?”
“누가 오기로 했어?”
“아니요. 이런 상황에서 누굴 오라고 하겠습니까.”
태건의 대답에 서순영은 바로 수긍했다.
“그렇지. 그게 더 이상하긴 하지. 그럼 대체 누구야?”
“저도 모르죠.”
“그렇지. 모르겠지.”
서순영은 이상한 데서 맹한 얼굴로 동의했다.
그때 수화기를 들고 있던 화재3팀원이 다시 조심히 물었다.
“서 선배, 뭐라고 할까요?”
“내려 보낸다고 해.”
서순영은 짤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태건을 바라보며 정리하듯 덧붙여 입을 열었다.
“태건아, 일단 누군지 몰라도 그분부터 만나고……. 집으로 가자. 알았지?”
“…….”
“1년만 쉬고 돌아와.”
“선배……. 제가 돌아올 자리는 있는 겁니까?”
태건이 묵직한 질문을 건넸다.
그 순간 서순영의 수더분한 표정에 작은 동요가 일었다.
“그, 그건…….”
“곤란하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곤란하지 않아. 돌아와, 네 자리는 그대로 있을 테니까.”
애써 답하는 서순영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결코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의 복잡함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순영만 그런 게 아니었다.
화재3팀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태건은 어색해지는 사무실 분위기를 대번에 눈치챘다.
스윽.
천천히 고개를 둘러봤다.
“…….”
“…….”
시선이 마주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모두 자신을 품 안에 싸고돌려고만 했다.
밀어내는 이유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알고 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허탈했다.
지금 사무실에 태건의 자리가 없단 말이 공허함으로 와 닿았다.
사용할 책상이 아닌, 마음의 자리란 표현이 더 옳을 터였다.
태건은 그걸 보고 마음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태건아.”
“1년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꾸벅.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그 길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태건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
돌아올 거니까.
이대로 방화복을 벗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태건은 곧 휴게실에 들어갔다.
안에는 처음 보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태건은 조금 의아했다.
분명히 처음 보는 낯선 남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오묘한 느낌을 받던 중이었다.
반대로 태건의 명찰을 본 그는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다가왔다.
“강태건 대원님, 맞으시죠?”
“그렇습니다.”
“어제 찜질방에서 아이를 구해주셨던 분, 그분 맞으신 거죠?”
그의 이어진 질문과 동시였다.
태건은 어디서 본 듯한 그 느낌의 이유를 간파했다.
아이스방에서 구조한 아이의 인상과 비슷했다. 상대의 질문 속에도 그 아이가 담겨 있기에 확신했다.
“네, 그 아이, 죄송합니다. 제가 이름을 듣지 못해서요.”
“이런 실례가, 박청수입니다.”
“그 아이가 박청수였군요.”
“아니요. 제가 박청수고요. 아들은 박지형입니다. 아무튼 이거, 후우. 이거 참. 아무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꽈악!
헷갈리게 자신을 소개한 박청수는 대뜸 태건의 손을 붙들었다.
태건은 조금 얼떨떨했다. 오죽하면 박청수의 머릿속이 남들과 조금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박청수의 얼굴은 지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태건만 바라보고 있어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였다.
‘날 만난 게?’
태건도 그런 상대의 격한 반응이 의아했다.
아무튼 인사부터 이어갔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지형이 일로 찾아왔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요.”
“아, 맞네요. 지형이는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태건은 아차한 얼굴로 박지형의 건강을 물었다.
후웅, 후웅!
박청수는 고개가 빠져라 크게 끄덕이며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네. 밤새 집중 치료 받아서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오! 정말 잘 됐습니다. 진짜 축하드립니다.”
“강 대원님 덕분입니다. 그때 위험한 상황인데도 끝까지 우리 애 지켜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해서…….”
꽈악.
박청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게다가 살짝 떨리는 게 격해짐이 느껴졌다.
툭 건드리면 눈물이 터져 나올 거 같았다.
태건은 얼른 분위기를 바꿔 달래기부터 했다.
“지금은 좋아졌다면서요.”
“아,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형이가 그때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렇습니까?”
“네. 그때 소방관 아저씨가 엄마한테 데려다준다고 그랬다고, 그리고 꼭 안아줬는데 참 따뜻했다고요.”
박청수는 가늘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아이의 심정을 전해줬다.
그런데 태건의 귀에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아이가 직접 웃으며 말해주는 거 같았다.
-아저씨, 엄마한테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참 따뜻했어요.
정말 그렇게 들려왔다.
지잉.
태건의 가슴 속에 커다란 뿌듯함이 진하게 울렸다.
‘짜식, 잘했네.’
스스로에 대한 칭찬까지 속으로 뇌까렸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소방관이란 직업의 가장 본질적인 매력을 엿봤다.
이런 보람의 맛이야 말로 불과 싸우고 이겨내려는 고집에 대한 뿌리기도 했다.
이런데 1년을 허송세월 보내라니, 그건 안 될 말이다.
‘서장님하고 담판 짓자.’
결심이 굳어지다 못해 차돌처럼 딱딱해졌다.
동시에 태건의 얼굴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차올랐다.
그때 박청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잘못됐으면 저나 아내, 살 자신이 없었을 겁니다.”
“.......”
“평생 아니, 죽어도 잊지않겠습니다.”
박청수가 진심을 담아 고개를 깊이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