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그렇게 감탄할 때였다.
“에그머니나, 니들 뭐하는 거니!”
“어머머, 그만두지 못해!”
타다닥.
저쪽에서 성난 외침과 함께 달려오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유치원생들의 어머니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얼른 아이들을 떼어놓고 본인의 아이만 살폈다.
“어머, 얼굴에 왜 이렇게 상처가 났어.”
“세찬이가 이랬니? 어휴, 속상해.”
“하여간 애비 없는 애들은 티가 난다니까.”
세 명의 아주머니들 모두 이세찬만 매도했다.
유치원생들도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에 얼른 설움을 쏟아냈다.
“허어엉. 저 아저씨가, 엉엉!”
“세찬이가 막 때리고, 흐윽, 흑!”
아주 연기에 꼼수까지.
두고 보면 볼수록 가관이었다.
“애들이 더 무섭다더니.”
태건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태건은 신경쓰지 않고 우선 이세찬부터 챙겼다.
“세찬아, 많이 아파?”
“아이씨. 쟤들이 아직 사과 안 했어!”
“그래도 잘했어. 아주 끝내줬어.”
“아니야. 내일 유치원에서 꼭 사과 받을 거야. 씨익, 씨익.”
이세찬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콧김까지 뿜었다.
그때 뒤에서 날이 잔뜩 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저기요. 우리 좀 봐요.”
“이건 이대로 못 넘어가겠네요.”
단단히 벼른 목소리들이었다.
독이 오른 이세찬이 움찔할 정도였다.
“삼촌.”
“괜찮아. 잠깐만.”
스윽.
태건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태건은 몸을 돌려 아주머니들과 마주섰다.
“말씀하시죠.”
그 말을 기다렸단 듯이 쏘아붙여 왔다.
“우리 애한테 들었는데 당신이 싸움을 부추겼다면서요?”
“당신 누구에요. 뭔데 이래요?”
“우리 애 얼굴에 흉지면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태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떤 분도 왜 이렇게 됐는지를 묻진 않으시네요.”
“우리 애한테 다 들었다니까요!”
“그럼 세찬이를 아버지 일로 놀리고 괴롭힌 것도 말하던가요?”
푸욱!
태건의 말은 아주머니들에게 비수처럼 날아가 꽂혔다.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던 아주머니들이 순간 멈칫했다.
움찔!
“아니에요.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어요!”
“괴롭히다니요. 뭘 잘못 알고 계시는 거 같네요.”
“그런 식으로 우리 애한테 덮어씌우려고 하는 건가요?”
부정과 반발의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들려왔다.
태건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방금 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그, 그래서요?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이러는 건데요!”
“이채용 팀장님 부하 소방대원입니다.”
“…….”
아주머니들 입이 순식간에 다물어졌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입을 열었다.
“어떤 사정인지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애들이 싸우는 걸 부추기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럼 놀리는 아이들은 잘한 겁니까?”
태건이 따져 묻자 아주머니들이 눈을 굴리며 애써 핑계를 댔다.
“애들이 뭘, 모르고…….”
“그럼 가르쳐야죠. 그게 어른이 할 일 아닙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아직 어려서…….”
“어리니까 괜찮다……. 그럼 저도 어머니들보다 어린데 막말 좀 할까요?”
태건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위축되는 걸 느끼던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자, 잠깐만요. 소방대원이면 공무원이잖아요. 이렇게 선량한 시민들한테 함부로 대하고 그래도 되나요?”
“그럼 선량한 시민들은 화재진압하다 순직한 소방팀장을 욕보이고 비난하는 자식들을 내버려 둬도 됩니까?”
“…….”
말문이 막혔는지 다들 침묵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항의를 하셔도 되고, 투서를 넣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이거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
“최소한, 정말 최소한. 이건 아닙니다.”
“…….”
“저보다 더 현명하신 분들이라 믿고,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하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태건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아주머니들 중 표독한 눈빛의 누군가가 경고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아요? 두고 봐요.”
“그래요? 요즘 학폭에 민감하다는데, 끝까지 가보시던지요.”
“허, 진짜 저 사람이! 증거 있어요? 어디서 되도 않는 협박을 하고 그래요!”
“…….”
스윽.
태건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거기엔 공원 CCTV가 떡하니 서 있었다.
그걸 보고야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왜 그런 말을 했어.”
“어머, 어머. 저게 왜!”
“얘, 세찬이 놀리고 흉보고 그런 적 없지?”
이윽고 본인 아이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흐아앙.”
아이들은 몰아치는 압박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태건의 관심은 이미 그쪽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세찬에게 슬쩍 손을 내밀었다.
“우리 이제 갈까?”
“응.”
“세찬이 뭐 먹고 싶어?”
“꼬기!”
저벅, 저벅.
유유히 어린이 공원을 나서는 모습이 영락없는 삼촌과 조카였다.
한 시간 후.
태건은 배가 빵빵한 이세찬과 고깃집을 나섰다.
이세찬의 찢어지고 터진 상처는 간단하게 응급처치가 되어 있었다.
그런 이세찬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헤에, 헤헤.”
“배불러서 좋아?”
“응. 고기 이렇게 디따 많이 먹은 거 오랜만이야. 랄라라.”
까딱까딱.
고개까지 좌우로 흔들며 즐거워했다.
친구들과 싸움은 뒷전으로 미룬 듯 했다.
그게 더 아이다웠다.
태건은 이세찬이 무심코 한 말에 애잔한 시선으로 변했다.
‘역시 생활이…….’
그 또한 가장의 부재로 인한 부정적인 여파였다.
난감해진 태건이 무심코 물었다.
“세찬이는 커서 뭐가 될거야.”
“소방관.”
“.......”
태건이 쓴 미소를 지을 때였다.
저쪽에서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며 이름을 불렀다.
“세찬아!”
“어? 어! 엄마다. 엄마!”
휙.
태건의 손을 그대로 내던진 이세찬은 앞으로 달려갔다.
일순간 손이 빈 태건은 쓰게 미소 지었다.
“애들이 그렇지 뭐.”
지구가 무너져도 엄마보다 더 소중한 삼촌은 있을 수 없었다.
저 앞에 이채용의 부인 정지희가 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후로 1년 만에 불쑥 찾아온 자신이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편 이세찬은 어른들의 사정을 모르고 정지희에게 자랑부터 했다.
“엄마, 막내 삼촌이 고기 이따만큼 사줬다!”
“얼굴이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이거? 애들하고 싸웠어.”
“싸우다니, 왜?”
“그게 그러니까…….”
이세찬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정지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정지희 표정은 다채롭게 변화했다.
놀람, 경악, 슬픔, 낙담까지.
하지만 이세찬을 꼭 안아줬다.
“엄마가……. 흐음. 아니다. 얼른 들어가서 숙제 해야지.”
“막내 삼촌 저기 있는데…….”
“엄마랑 할 얘기가 있어.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자. 어서.”
정지희는 차분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재촉했다.
태건은 가까이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다가온 이세찬이 뚱한 얼굴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
“삼촌, 안녕히 가세요.”
“얼굴에 심통이 가득한데 안녕히 가도 되는 거야?”
“엄마가 숙제하래요.”
“그래. 얼른 가서 숙제해. 삼촌이 다음에 또 놀러 올게.”
태건이 말하자 쀼루퉁한 이세찬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변했다.
“진짜 삼촌 또 올 거야?”
“그럼. 대신 엄마 말 잘 듣는지부터 확인한 후에.”
“삼촌 나 숙제해야 돼. 빠이빠이!”
휙휙.
이세찬은 손을 흔들며 빌라 안으로 쏙 들어갔다.
거기가 이채용 팀장의 집이었다.
태건도 몇 번 와본 적이 있어 지금도 기억이 생생했다.
태건이 잠시 빌라를 바라보던 중이었다.
스윽.
정지희가 지나쳐가며 말했다.
“자리를 옮기고 싶네요.”
“편하신 대로요.”
태건은 바로 그 뒤를 따랐다.
그렇다고 먼 거리를 걸어간 건 아니었다.
빌라에 목소리가 닿지 않을 십여 미터 정도만 움직였다.
척.
멈춰선 정지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등을 돌린 채 첫 마디를 꺼냈다.
“오실 줄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형수님.”
“왜 오셨나요.”
질문하는 목소리가 서글펐다.
태건은 각오하고 온 길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못다 한 말부터 꺼냈다.
“그날은 제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마음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혼자 힘으로는 손조차 닿을 수 없었습니다.”
“…….”
“지금이라면 어떨까, 또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매일 곱씹었습니다. 말씀드리는 이 순간도 생각합니다만……. 죄송합니다.”
태건은 사과의 말과 함께 고개를 깊이 숙였다.
태건은 그렇게 고개 숙인 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단화의 뭉뚝한 코가 보였다.
그리고 기다렸던 정지희 목소리가 한층 가까이서 들려왔다.
“고개 드세요.”
“…….”
스윽.
태건이 고개를 들며 그제야 정지희를 제대로 마주 봤다.
30대 후반에 단아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그런데 피곤함이 그녀만의 분위기를 상당히 가리고 있었다.
그런 푸석푸석한 얼굴에 혼란이 가득했다.
“저도 알아요. 태건 씨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
“…….”
“왜 혼란스럽게 해요. 이제 좀 살아가는 거 같은데, 왜요. 왜!”
“하지만 이 팀장님을 생각하면…….”
태건의 말이 이어지려던 찰나였다.
정희지가 울컥하더니 두 눈을 감싸며 흐느꼈다.
“흑흑. 오 팀장님도 그렇고 대체 다들 왜 그래요. 우리끼리 살아가겠다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한 번씩 찾아와서 속을 뒤집는 건데요.”
“선배들이 찾아왔었습니까?”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떠날게요. 우리가 사라지면 볼 일 없는 거잖아요. 맞잖아요.”
“그게 무슨 말씀……. 이사를 가신다고요?”
태건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때 정지희가 거칠게 손을 내렸다.
휙!
마르지 않은 눈물도 개의치 않고 독한 눈빛을 강렬하게 뿌리며 따졌다.
“그럼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여러분들 보면서 살라고요. 당신들은 한 번 왔다 가면 그만이죠. 우리는, 우리는…….”
“…….”
“허우우우. 그러니까 우리가 사라질게요. 그냥 그렇게 끝내요. 제발요.”
정지희는 진심인지 애원까지 했다.
태건은 그 말에 어떤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들은 얘기를 정리해보면 선배들이 이채용 팀장을 잊지 않고 한 번씩 찾아왔다.
그게 정지희에겐 고마움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된 모양이다.
‘그런 건가…….’
그때 정지희가 다시 태건을 지나쳐갔다.
스윽.
그녀가 향하는 곳엔 이세찬과의 보금자리가 위치해 있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