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슥, 슥.
태건의 손등을 연거푸 쓸며 자기 속을 달랬다.
“허우우.”
흔들리는 숨소리에 태건이 먼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지내시는 건 어떠십니까?”
“이제 그런가보다, 저 멀리 달나라 가서 연락이 안 되는 구나……. 그냥 그렇게 살아요.”
“제가 일찍 찾아뵀어야 했는데요.”
“다 들었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그건 좀 괜찮아요?”
툭. 툭.
박성규 어머니가 손등을 두드려주며 물었다.
그때부터 한시도 놓지 않았다.
태건은 그런 그녀의 행동이 정말 예상 밖이었다.
“그럭저럭……. 그런데 제가, 제가 밉지 않으십니까?”
“내가 뭘 안다고 미워해요.”
“이렇게 캐묻는 건 죄송하지만 들은 얘기들이 있으실 텐데요.”
태건이 오히려 궁금해했다.
하지만 박성규 어머니는 숨을 길게 내쉬고 말했다.
“후우우. 내 새끼 죽었다고 남 새끼도 죽으란 법이 어디 있어요.”
“아…….”
“사실 여러 소리가 들리긴 했어요. 그런데 시장에서 오래 장사하다보니까 소문을 잘 믿지 않게 되더라고요.”
“죄송합니다. 괜한 호기심 때문에.”
태건은 구태여 확인한 자신의 처사에 작아짐을 느꼈다.
오히려 박성규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요. 다만…….”
“궁금하신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사실만 답하겠습니다.”
“우리……. 후우. 우리…….”
같은 말만 입에서 맴돌았다.
“…….”
태건은 한 치의 보챔도 없이 꿋꿋하게 기다렸다.
몇 번의 되뇜 끝에 어렵사리 박성규 어머니가 질문을 완성했다.
“우리 성규, 어떻게……. 어떻게 갔나요?”
“한순간이었습니다. 정말 눈 깜빡하는 그런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흐으윽, 얼마나 뜨거웠을까.”
박성규 어머니는 울음을 억지로 참느라 숨이 들쭉날쭉했다.
그때였다.
꾸욱.
태건이 떨리는 손을 진중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외람되지만 성규 선배는 아프지 않았을 겁니다.”
“그 뜨거운 불 속에서, 크흐흡. 어떻게…….”
“불길이 너무 뜨거우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허으으으.”
박성규 어머니는 울음을 더 삼키지 못하고 결국 내뱉었다.
태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손을 한순간도 놓지 않고 붙잡고 있었다.
‘아, 성규 선배.’
이런 위로밖에 할 수 없어 박성규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박성규 어머니 울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
“쓰읍. 흉한 꼴 보였네. 미안해요.”
“아닙니다. 저 사실은 이거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스윽.
태건은 분위기를 전환할 겸 준비한 봉투를 꺼냈다.
그걸 본 박성규 어머니가 물었다.
“그게 뭔가요?”
“성규 선배가 예전에 맡겨둔 겁니다. 혹시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머니 전해드리라고요.”
“…….”
“이것도 전달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태건은 공손히 봉투를 내밀며 사과를 더했다.
그런데 그 봉투는 태건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다려도 그대로 있자 태건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강 대원, 앞으로도 얼마든지 찾아와도 돼요. 그냥 지나가다가 커피 마시면서 같이 성규 얘기해도 돼요. 그런데 이건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전달만 부탁을…….”
태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성규 어머니가 딱 잘라 말했다.
“거짓말 마요.”
“네?”
“나한테 비밀 하나 없던 애에요. 통장 비밀번호, 보험까지 전부 말해준 애였어요.”
그 말에 태건이 당황했다.
박성규가 그렇단 건 전혀 몰랐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이 제멋대로 꼬여갔다.
“그, 그런데 이거는 저한테 따로, 크흠, 그러니까 어머니 몰래…….”
“애쓰지 마요.”
“선배가 저에게만 따로 몰래 부탁한 거라니까요.”
“그럼 편지 있나요? 한 줄이라도 꼭 적어 보내는 아이인데요.”
박성규 어머니의 지적이 너무도 예리했다.
아니, 태건이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있는 건 억지로 우기기 작전밖에 없었다.
“그……. 진짠데.”
“강 대원이 이러지 않아도 돼요. 설사 진짜라면…….”
“네. 진짜입니다.”
태건은 반색하며 얼른 수긍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전혀 뜻밖의 권유였다.
“강 대원이 가져요. 그리고 가끔 놀러 와서 밥이나 같이 먹어요.”
“어, 어머님.”
“때론 아픔을 주는 돈도 있어요. 그 돈이 지금 나한테 그래요.”
박성규 어머니는 그렇게 봉투를 밀어냈다.
태건은 그 말까지 듣고는 차마 억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아픔을 주는 돈.
자신은 호의였는데, 그게 상대에겐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태건도 그건 지금 깨달았다.
그걸 느껴놓고 다시 권유할 순 없었다.
스윽.
결국 봉투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제야 박성규 어머니의 굳은 표정도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 후로는 대화를 나눴다.
박성규에 관한 시시콜콜한 대화였다.
주로 태건이 소방서에서 함께 보낸 일화들을 말해줬다.
박성규 어머니는 수시로 손수건으로 눈을 찍었다.
그러나 미소는 잃지 않았다.
“잘했네……. 어이구, 내 새끼…….”
짧게 추임새도 넣어줬다.
그 모습이 오늘도 떠올린 아들 생각에 가슴이 저려 왔지만,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거 같았다.
태건은 그런 박성규 어머니를 보며 참 많은 걸 느꼈다.
‘소금 얻어맞을 각오까지 했는데.’
그런 자신이 참 창피해진 시간이었다.
결국 태건의 품으로 되돌아온 봉투는 그대로 묻혀 버렸다.
* * *
태건이 서울로 다시 넘어온 건 오후였다.
그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근처 커피숍에 홀로 자리해 있었다.
잠시 후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정연미가 보였다. 단정한 오피스룩에 목엔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태건은 가볍게 손을 들며 자신을 알렸다.
“여기.”
“……아, 오빠.”
멈칫한 정연미는 애써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오랜 교제시간만큼 미묘한 정연미의 변화를 바로 눈치챘다.
‘흐음.’
그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어느새 정연미는 반대편에 자리하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한국에 언제 들어왔어?”
“어제.”
“그럼 전화하지. 데리러 갔을 텐데. 그보다 시간 빠르다. 내가 미국 갔을 때가 벌써 3개월 전이야.”
정연미는 놀랍단 얼굴로 말했다.
둘 사이에 1년이란 공백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도 덩달아 밝혀졌다.
“…….”
태건은 가만히 바라만 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정연미는 부산한 몸짓으로 카운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뭐 마시지? 그냥 오빠한테 시켜달라고 할 걸 그랬나?”
“…….”
“이따가 미팅이 있으니까 커피 말고 다른 걸 마실까? 그게 좋겠다. 오빠, 잠깐만.”
그릉.
혼자 떠들던 정연미는 카운터로 향했다.
태건은 그런 그녀를 유심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역시 느낌이 싸 했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단 건 때론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했다.
혼자인 시간은 잠시였고, 정연미가 음료수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목소리가 더 높아져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여긴 다 좋은데 늘 사람이 많은 게 흠이야.”
“연미야.”
“응, 오빠.”
“우리 이야기부터 마무리 지을까?”
태건이 나지막이 권했다.
그 순간 정연미가 멈칫하더니 쓰게 말했다.
“갑자기 무, 무슨 소리야.”
“넌 아직도 내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거 싫지?”
“……오빠. 정말 그 일 계속 해야겠어?”
정연미는 이마를 찌푸리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 얼굴을 보던 태건이 솔직히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애써 마음을 잡고 담담하게 말했다.
“미국 와서도 실망 많았지. 그때 봐서 알겠지만 난 그 일을 놓을 수 없을 거 같아.”
“그럼 나는? 나는 어떤데?”
“마음 가는대로 해. 난 기다릴게. 아니 온다면 웃으면서 맞아줄게.”
태건의 입에서 담담한 말이 흘러나왔다.
정연미도 이 순간이 찾아올 거라 예상한 모양이다.
풀썩.
지치고 허탈한 얼굴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결국…….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
“나 먼저 일어날게.”
스륵.
자리에서 일어난 정연미는 창백한 얼굴로 떠나갔다.
태건은 뒤쫓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쓴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이럴 땐 비도 오고 좀 그래라.’
마음과 달리 하늘은 청명하고 햇살은 눈부셨다.
세상사가 그랬다.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했다.
이대로 물러서진 않는다.
지구가 두 쪽 나도 변치 않을 결심이다.
그러고도 한동안 태건은 커피숍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내 공허함이 밀려왔다.
함께 해 온 시간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았다.
자신은 소방관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대신 접점 없이 지쳐가는 서로를 위해 내린 결정이고 선택이었다.
기다림?
얼마든지였다.
다만 가슴 한구석이 훵하니 뚫린 건 막을 수 없었다.
“술 당기네.”
그릉.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태건은 무거운 얼굴로 움직였다.
* * *
그날 저녁.
태건은 갈빗집 내실에 자리해 있었다.
치지직.
양쪽 테이블을 오가며 홀로 바쁘게 소갈비를 굽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향긋한 고기 내음이 끝내줬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연인과 작별한 자신이 태연하게 고기를 굽고 있단 사실이 기가 막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는 게 이렇지 뭐.”
그 한마디가 진심일 뿐이다.
그렇게 정성들여 소갈비를 굽던 중이었다.
밖에서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팀장님, 여기 아닙니까?
-그런 거 같은데, 한 번 열어봐.
-다른 분들이 계시면 실례잖습니까.
-일단 열어보고 아니면 사과 하나 깎아주면 되지. 됐어, 비켜 짜샤.
오광휘 팀장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방문이 열렸다.
드륵.
역시 오광휘 팀장이 먼저 들어서며 태건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인사 대신 코를 힘차게 벌렁거렸다.
“흡흡. 하아, 진짜 불이 짜증나는데, 고기 굽는 불만큼은 미워할 수 없다니까.”
“팀장님 길 좀……. 막내야!”
최정균이 들어오자마자 까불거리는 성격 그대로 소리쳐 반겼다.
태건도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선배님!”
다음으로 한 명씩 들어서는 선배들을 본 순간 태건의 두 눈이 살짝 흔들렸다.
조규찬, 서순영, 표인철.
예전 화재2팀 선배들이었다.
다들 지금은 화재1팀으로 옮겼다고 어제 오광휘 팀장에게 들었었다.
그래서 마련한 자리였다.
선배들 모두 이렇게 와준 감격에 태건의 목소리가 떨렸다.
“선배님들…….”
그건 선배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큰한 눈빛으로 투박하지만 다정한 첫인사를 꺼냈다.
“짜식 뭐야, 몸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
“여. 강태건이. 짜샤, 뭐 이렇게 혼자 울상이야?”
“막내야. 반가워.”
서로를 향한 끈끈한 눈빛이 진하게 오갔다.
그런 그들을 다른 1팀원들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