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그때 오광휘 팀장이 놀란 얼굴로 분위기를 바꿨다.
“고기부터 구워놓는 센스! 다들 뭐하냐, 막내가 불과 연기와 싸워가며 구워준 고기부터 털어 넣어야지!”
“옳습니다. 앉읍시다!”
“우오, 고기다!”
푸짐하게 차려진 테이블 빈자리가 빠르게 채워졌다.
다들 젓가락을 들다 이상함을 직감하고는 멈칫했다.
“이거 소갈비 아니야?”
“정육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이건 돼지가 아니지.”
“맞습니다. 돼지는 이런 육질과 갈빗대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엄?”
스윽.
모두의 시선이 다시 태건에게로 향했다.
태건은 어느새 술병을 들고 유들유들하게 권했다.
“선배님들, 막내 술부터 한 잔 받으십시오!”
“술은 술이고, 네가 돈이 어딨다고!”
“고기 한 번 살 정도는 있습니다.”
“너 거지라며!”
서순영의 거친 입담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순간 비틀거린 태건은 오해부터 풀었다.
“아직 집을 못 구해서 팀장님 찾아간 겁니다.”
“짐도 하나도 없었다던데?”
“미국에서 본가로 보내놨죠. 요즘 그걸 누가 다 들고 다닙니까.”
태건이 대답함과 동시였다.
스윽.
모두의 시선이 오광휘 팀장에게로 향했다.
“팀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우걱, 우걱. 야, 막내야. 술이나 한 잔 줘 봐.”
“술 찾지 마시고요. 아까는 우리 막내 불쌍해서 어쩌냐고…….”
“안 불쌍하면 된 거잖아. 막내가 미국에서 스테이크 좀 썰어봤는지 아주 잘 구웠어.”
“…….”
다들 허무한 눈빛으로 째려봤다.
전방위 공격에도 오광휘 팀장은 끄떡없이 고기를 탐했다.
그 썰렁한 분위기를 태건이 반전시켰다.
“술부터 한 잔 드시면서 말씀하시죠.”
“나 참.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지?”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허리띠는 풀어주시면 땡큐입니다.”
태건의 농익은 말투에 선배들은 조금 놀라워했다.
“확실히 달라졌네.”
“징그러워. 귀엽던 애가 훅 커버린 거 같아.”
“그래도 죽상으로 만나는 거보다 백번 좋습니다.”
내심 걱정했던지 대화를 나누는 선배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어느새 모두 잔을 채웠다.
누군가 한 마디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이럴 땐 최고참인 팀장이 적격이었다.
오광휘 팀장은 양볼 빵빵한 모습으로 건배사를 웅얼거렸다.
“막내 환영 아우아아…….”
“팀장님 좀.”
“아, 짜식들. 막내 귀국 축하한다. 환영하는 의미에서……. 첫잔은 뭐다?”
“원샷!”
쭈욱.
모두 기세 좋게 한입에 술잔을 털어 넣어 식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식사의 대화 주제는 단연 태건이었다.
“막내, 한 잔 받아야지!”
“감사합니다!”
“어라라, 나도 술 들었는데, 어이쿠. 내 팔 떨어지겠네.”
“얼른 마시고 술 받겠습니다!”
쭉, 쭉!
태건은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마시고 또 마셨다.
반가움만큼 술잔은 마를 틈이 없었다.
시끌시끌한 술자리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조규찬이 우려 섞인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막내야, 이젠 좀 괜찮아?”
“…….”
사악.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선뜻 꺼내기 난해한 질문인 탓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하지 않고는 이 자리의 의미가 없단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건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아무 문제없다,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럼 진실어린 대답은 뭐지?”
“지나간 1년만큼 나아졌습니다.”
“흐음.”
끄덕.
선배들은 미미한 고갯짓으로 동감을 표했다. 그 사고의 아픔은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있던 탓이다.
그때 홀로 묵묵히 술잔을 꺾은 서순영이 질문했다.
“얌마. 다시 현장 뛸 수 있겠어?”
“내일이라도 당장 투입할 수 있습니다.”
“또 개판치는 거 아니야?”
“순영 선배, 현장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태건은 단호한 목소리로 일축했다.
그것도 대답한 상대는 가장 무서워했던 선배였다.
선배들 눈엔 그 하나만 봐도 달라짐을 느꼈다.
“목소리에 확실히 힘이 생겼어.”
“운동 겁나 하더니 깡다구도 늘었나보네.”
“그렇다고 자신감이 쑥쑥 자라나나?”
대견해하는 거와 별개로 의구심은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은 거 같았다.
때마침 배를 어느 정도 채운 오광휘 팀장이 물어왔다.
“막내, 너 도대체 미국 가서 뭐했냐?”
“맞다. 그걸 모르네.”
“그걸 물으면 되는 거였어.”
의표를 찌르는 질문에 다들 감탄했다.
태건은 선배들과 한 명씩 시선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불과 지겹도록 싸웠습니다.”
“…….”
“이젠 어떤 현장에서도 방해되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쿠궁.
태건은 비장한 목소리로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조용히 경청하던 선배들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종래에는 파안대소가 터져 나왔다.
“우하하하! 그래. 그렇게 떵떵거리는 게 차라리 보기 좋네!”
“하하하. 저 새끼 뻥만 늘어서 왔네.”
“낄낄. 야, 그걸 누가 믿냐. 미국에서 소방대원하려면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
“짜식이, 선배들을 대체 뭐로 아는 거야. 그래도 참신했어. 으하하!”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니, 그들 머릿속에 있는 상식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인 범위란 제한이 있었다.
태건은 전혀 다른 경로로 소방 일에 뛰어들었다.
그때 경험들은 지금 떠올려도 간담 서늘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 사실이었지만 태건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굳이 설득할 필요 있나?’
입만 아파질 거 같았다.
좋게 생각하면 한바탕 웃음으로 식사자리 분위기는 한층 더 후끈해졌다.
태건은 그 웃음에 편승해 얼렁뚱땅 대답했다.
“이거 안 통하네요. 사실 마이애미 쪽에 아는 분이 계셔서, 거기서 돈 좀 벌었습니다.”
“잠깐만. 마이애미면 그, 그 해변이 유명하지 않아?”
“말해서 뭐합니까. 아주 죽여줍니다.”
“그 정도야? ……잠시만요. 태건이가 말하잖아요!”
휙휙.
혹한 최정균이 선배들까지 타박하며 집중시켰다.
그만큼 눈빛도 반짝였다.
태건은 입 아프게 여러 말 하지 않았다.
“후후, 정 그러시다면 잠시만요……. 자, 여기요.”
스윽.
휴대폰 사진을 직접 보여줬다.
무심코 바라보던 모두의 두 눈이 띠용하고 떠졌다.
“허어억, 여기가 바로 천국?”
“마, 말도 안 돼!”
“나 미국 갈래. 당장 갈래!”
벌떡!
자리를 박차기까지 하며 열광했다.
태건은 또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그 사진 속에도 평소 동경하던 로망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 요트잖아!”
“우와, 멋지다.”
그 다음 여행사진에도 열광했다.
“여긴 또 뭐야……. 쿠바야?”
“마이애미에서 가깝대. 키야, 칵테일 색깔 너무 예쁘다.”
“이거 시가 물고 있는 꼬락서니 봐라. 배 아프게!”
부러움이 커지고 커져 태건을 노려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태건은 빙긋 미소만 지었다.
그런데 여행에 대한 사진은 그게 전부였다.
정확하게는 즐거운 순간만 남겨둔 거였다.
그 외에는 모두 지워 버렸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게 태건이 정신을 건강하게 지킨 비결 중 하나였다.
선배들이 모르는 태건의 시간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이후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길게 이어졌다.
* * *
시간이 흘러 태건은 오광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끼익.
화장실 문이 열리며 태건이 젖은 모습으로 나왔다.
“개운하니 좋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거실 소파로 향하려 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잠자리 낙점이었다.
같은 시각.
작은 방에서 오광휘 팀장이 나오며 손짓했다.
“그쪽 아니고, 이쪽.”
“그 방에서 자라고요?”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그런 거고. 소파보다는 누워 자는 게 나으니까.”
“오늘 하루만 더 자는 건데요.”
태건은 내일 할 일을 암시했다.
그 말에 오광휘 팀장이 태클을 걸었다.
“당분간 방 구하지 마.”
“네?”
“막내 밤이슬 맞췄단 소문 돌면 나 애들한테 맞아 죽어.”
“……저야, 잡비 안 나가고 좋긴 한데, 팀장님은 정말 괜찮으십니까?”
“나야 청소하고 빨래……. 크흠. 그건 부수적인 거고. 아무튼 그렇게 해.”
오광휘 팀장은 아예 확정지어 버렸다.
태건은 어느새 의심어린 눈초리로 뇌까렸다.
“부수적인 이유가 더 큰 거 같은데…….”
“아, 새끼. 먹여주고 재워준다는데 말 많네.”
“정 그렇게 소원이시라면 며칠 더 있어드리겠습니다.”
태건의 뻔뻔한 대꾸에 오광휘 팀장이 인상을 팍 쓰며 어이없어 했다.
“완전 능구렁이 다 됐네. 들어가서 잠이나 퍼 자.”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태건이 그를 지나쳐 작은 방으로 향했다.
끼익.
안으로 들어서니 싱글침대와 단출한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 누운 태건은 가늘게 미소 지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꽤 안락하네.”
그리고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 * *
시간이 흘러 복직 날이 가까워졌다.
복직 전날.
태건은 충남 공주에 위치한 중앙소방학교를 찾았다.
역대 순직한 소방관들을 기리는 소방충혼탑이 높게 서 있었다.
그 옆엔 커다란 비석에 순직한 소방관들의 이름과 사유가 새겨져 있었다.
-이채용, 박성규.
태건은 어렵지 않게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스윽.
손끝으로 쓰다듬는 손길이 애잔했다.
표정은 가라앉아 있지만 분위기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곧 태건의 입이 열렸다.
“돌아왔습니다.”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더는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드디어 복직 날이 밝았다.
태건은 전신거울에 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었다.
무려 1년 만이다.
감회가 너무도 새로웠다.
이 옷을 다시 입기 위해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실로 끔찍한 시간이었다.
두 눈을 감으면 악몽처럼 자신을 괴롭힐 터였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다시 출발선상에 서 있었다.
“……두 번은 없어.”
제복을 벗는 일이란 의미가 첫 번째였다.
그리고 다른 의미도 있었다.
요구조자를 뒤에 두고 현장에서 나오는 일도 없을 거다.
남은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아픔을, 그 슬픔을.
다시는 누군가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의감?
그따위 성스런 감정은 없었다.
여분의 삶에서 절대 후회하기 싫었다.
그게 정답이다.
이렇게 다시 제복을 입은 가장 큰 이유는 태건, 스스로를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