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준비를 마친 태건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끼익.
방 밖으로 펼쳐진 거실은 오광휘 팀장의 집이었다.
이젠 확실히 룸메이트가 되어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주황색 기동복 차림으로 태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내야……. 아니, 강태건이. 갈 준비 됐냐?”
“네.”
“그럼 출동 아니, 출발하자.”
오광휘 팀장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움직였다.
그리고 그 뒤를 태건이 똑같은 미소를 지은 채 따랐다.
* * *
구디소방서 서장실.
여전히 박민석 서장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살짝 굳어진 얼굴이다.
그 앞에 선 태건이 거수경례를 하며 보고했다.
척!
“안전, 강태건 소방사시보 금일부로 업무복귀를 명받았습니다.”
“늠름해져서 돌아왔구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건은 각 잡힌 모습으로 대답했다.
조용히 바라보던 박민석 서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다음 말을 꺼냈다.
“이 순간, 하나만 물으면 되는 거 아니냐.”
“선배님들과 힘을 합쳐 죄다 꺼버리겠습니다.”
“그 말이 아닐 텐데.”
“팀워크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태건의 대답에 기백이 가득 차 있었다.
박민석 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됐다. 그리고 원래 소방사 승진 케이스지만 보류 중이란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 기간은 한 달이야. 다음 달까지 문제없으면 승진하게 돼.”
“또 같은 문제가 일어나면 잘리겠네요.”
태건의 당돌한 대꾸에 박민석 서장이 피식거렸다.
“안다니 다행이네.”
“한 달 후에 계급장 바꾸러 다시 올라오겠습니다.”
“제발 좀 그래주라. 그럼 가 봐.”
“안전.”
척.
거수경례를 마친 태건은 절도를 갖춰 서장실을 나갔다.
곧 박민석 서장이 혼자가 됐다.
깍지 낀 손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흐려졌다.
“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마무리 짓지 못한 음성이 길게 이어졌다.
스윽.
결재서류를 하나 끌어와 펼쳤다.
그 속엔 태건의 이력서가 존재했다.
그걸 보며 박민석 서장은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며칠 전.
어느 응접실 상석에서 가볍게 다리를 꼰 중년인이 있었다.
그늘이 져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유독 어깨에 태극육각수 2개가 빛났다.
소방감.
육각수 4개인 소방정 박민석 서장보다 2계급 상급자였다.
그런 고위급 인사가 태건의 이력서를 내밀며 물었다.
“박 서장. 이 녀석, 네 밑에 있는 친구지?”
“네. PTDS/SD(외상 후 스트레스)로 휴직 중인 대원입니다.”
“미국에서 이름 좀 날렸다니까, 복직하면 유심히 지켜봐.”
더는 알려고 하지 말란 의미였다.
박민석 서장은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태건의 사진을 눈에 담았다.
그 회상을 마지막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박민석 서장이 태건을 유심히 관찰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었다.
“어디가 특별하단 건지.”
직접 보고도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게 박민석 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같은 시각.
태건은 제복을 벗고 주황색 기동복으로 환복했다.
그리고 곧 화재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태건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둘러봤다.
최정균, 조규찬, 서순영, 표인철.
선배들이다.
“…….”
침묵하는 그들의 표정에 여러 감정들이 녹아 있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씩씩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고합니다. 강태건, 출근했습니다!”
“…….”
짝짝짝.
형식적인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인사는 어제 다 했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반복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얼굴에 기쁨만 담겨 있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걱정이 더 앞서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태건은 그렇게 귀여운 막내일 뿐이었다.
미묘한 기류를 읽은 오광휘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후우.”
낮은 한숨소리는 덤이었다.
태건은 곧 예전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스윽.
‘여전하네.’
책상의 자잘한 흠집부터 사용하던 필기구까지.
모든 게 1년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엄연히 흘러 있었고 태건은 그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런 태건에게 조규찬이 다가왔다.
“커피나 한 잔 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에에엥, 에에엥!
돌연 화재 출동 벨소리가 사무실에 가득 울렸다.
바짝 당겨진 긴장감이 순식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젠장. 월요일 아침부터 뭔 화재야!”
“갑시다. 가서 싹 조져버립시다!”
타다닥!
어느새 전원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맨 앞에는?
강태건이 달리고 있었다.
* * *
화재1팀은 한달음에 차고에 도착했다.
드르륵.
때마침 차고 셔터가 열리고 있었다.
각 소방차로 흩어져 달리는 모두의 모습이 격렬했다.
차자작.
“서둘러!”
“막내 챙겨!”
선배들은 누가 뭐래도 선배들이긴 했다.
이 와중에도 1년 만에 복귀한 태건을 챙기려 했다.
그중 조규찬은 얼른 시선을 좌우로 돌려보며 태건을 찾았다.
“막내야, 어? 뭐야. 막내 어딨어!”
“같이 와서, 제 옆에 있었는데……. 없습니다.”
표인철이 태건이 감쪽같이 사라져 어벙벙한 얼굴로 변했다.
그 순간 화재1팀은 난리가 났다.
“막내!”
“이 자식, 초장부터 뭐하는 짓이야!”
그들의 격한 외침이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바로 그때였다.
텅텅!
“출발 안 합니까!”
어디선가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태건의 다그침이 따갑게 들려왔다.
다들 멈칫하며 소리가 난 장소를 찾았다.
사삭.
“어?”
“어디야!”
곧 대형 펌프차 뒷좌석 창문으로 고개를 뺀 태건을 발견했다.
한쪽 팔을 내놓고 있는 걸 보아 차문을 두드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들 두 눈을 믿지 못했다.
상체만 보였지만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있던 탓이었다.
자신들보다 한 박자 이상 빨랐단 의미다.
1년을 쉬었을 텐데…….
그런 태건의 모습에 다들 멍한 얼굴로 변했다.
“쟤 뭐야.”
“언제…….”
“왜 더 빨라진 거야?”
의구심이 커지려는 찰나 오광휘 팀장의 외침이 귀를 파고들었다.
“뭐긴 뭐야 짜식들아, 선배란 것들이 죄다 빠져가지고. 얼른 안 타!”
“……일단 타자!”
화재1팀은 재빨리 움직였다.
곧 대형 펌프차와 구급차가 다급히 차고를 빠져나왔다.
에에엥, 삐용삐용.
다급한 사이렌 소리를 앞세워 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부아아앙!
그 사이 대형 펌프차 속에선 오광휘 팀장의 간략한 브리핑이 진행됐다.
“공단 내 공장 화재라고 한다. 공단 119안전센터에서 지원요청이야.”
“네!”
“가구 공장이라 목재가 많아서 불이 빨리 번진 거 같다고 해. 공단센터에서 확산을 막는 중이라고 하고, 내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공장근로자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중이야.”
“…….”
요구조자가 있단 소식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공단 내 공장이라면 확산의 문제도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었다.
태건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
마치 방관자의 느낌이었다.
그때 오광휘 팀장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 화재팀은 최대한 빠르게 밀고 들어가서 요구조자 구출부터 진행한다.”
“뒤에서 쏴주고, 앞에서 돌진 작전입니까?”
“그래. 구급과 구조가 서포트할 거고……. 마지막으로 막내.”
“…….”
스윽.
선배들이 일제히 태건을 바라봤다.
“말씀하십시오.”
태건이 응답하자 오광휘 팀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넌 나랑 한 조다. 무조건 내 옆에 있도록 한다. 알겠지?”
“네.”
“다들 명심해라. 통로 확보와 요구조자 구출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구출하러 들어갔다가 구출되는 새끼는 발로 차버린다. 알았지?”
“명심하겠습니다!”
“현장 도착할 때까지 장비 한 번 더 점검하고 긴장 끌어올려. 도착하자마자 투입이니까.”
척.
진지하게 브리핑을 마친 오광휘 팀장은 앞을 바라봤다.
그의 뒷모습에서 진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
차 안에 가득 정적이 흘렀다.
철컥, 철컥.
장비를 한 번 더 점검하거나.
“흐음.”
눈을 감고 명상을 하기도 했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다잡는 거였다.
태건은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너무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잔뜩 굳은 게 아닌가 착각될 정도였다.
그런 태건에게 옆에서 서순영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꺄, 쫄았냐?”
“…….”
“오랜만이라고 얼타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그리고 전처럼 제멋대로 굴면 까버린다.”
“알겠습니다.”
태건의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다.
반면 정작 주의를 준 서순영이 더 긴장하고 있었다.
“얘 또 눈 돌아가면 안 되는데.”
그게 걱정인 모양이었다.
다른 선배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계속 태건을 힐끔거렸다.
갑작스런 현장 출동이라 걱정이 더 길게 느껴졌다.
태건도 그런 주변 상황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 몇 마디로 바뀔 시선이 아니었다.
그래서 침묵을 택했다.
이동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 공단을 가로질러 달린 소방차들이 가구 공장의 정문을 넘어섰다.
에에엥!
커다란 앞 유리로 보이는 끔찍한 전경에 다들 눈에 힘을 줬다.
“이런 씨이.”
“푸우.”
쓴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만큼 현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우선 큼지막한 자재들이 공장부지 곳곳에 쌓여 있었다.
목재, 플라스틱, 석재 등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한가운데 우뚝 선 공장에서는 시뻘건 불과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화르, 화르륵!
화염이 깨진 창문 틈틈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여긴 이제 자신의 구역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위협하는 듯했다.
거기에 휘몰아쳐 올라가는 불길도 보였다.
그걸 본 태건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건방진 새끼, 그게 왜 니꺼야.’
마치 불과 대화하는 듯이 속으로 뇌까렸다.
주인이 엄연히 존재하는 공장이다.
이제부터 무단점거 한 불량배를 내쫓고 되돌려 받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