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현장은 이미 소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앞서 도착한 119안전센터의 펌프차가 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방호스를 연결한 소방관들도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고 있었다.
촤아악!
“좀 꺼져라. 꺼져!”
“더 앞으로 가지 마. 현재 라인 유지해!”
외침에 짜증과 답답함이 가득했다.
그만큼 불길을 잡아야 한단 조급함이 느껴졌다.
그들만 노력하는 게 아니었다.
공장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힘을 더하고 있었다.
“지게차 이쪽! 이쪽 자재부터 뒤로 옮겨!”
“양동이라도 가져와!”
기잉기잉.
지게차가 서둘러 자재들을 떠 날랐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고, 또 도움이 되려 자재를 손으로 나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다들 필사적이다.
누구도,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 공장들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미리미리 자재 옮겨 둬!”
“물이라도 뿌려!”
“이쪽 해결됐으면 저쪽 가서 뭐라도 합시다. 막아야 해요!”
덮어 놓고 달려오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모두의 노력에 주변으로 피해가 확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이란 표현이 적절했다.
버티는 게 전부였다.
불길을 억누르거나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현장에 구디소방서의 대형 펌프차와 물탱크차가 도착했다.
촤자작!
모든 소방차 문이 일시에 개방되며 화재팀이 쏟아져 내렸다.
그 중 오광휘 팀장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네, 센터장님, 바로 투입하겠습니다……. 정균이, 규찬이, 버디들 챙겨서 입구부터 뚫어!”
“연장 챙겨라!”
“가자!”
턱. 턱.
명령과 동시에 선배들이 두 명씩 조를 이뤄 움직였다.
도끼와 망치 등 작업도구를 챙기는 건 기본이었다.
촤르륵!
재빨리 소방호스를 펼치고.
척, 척.
호흡기 커버를 착용하는 등 준비를 갖춰갔다.
태건은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모습이었다.
심지어 도끼를 손바닥에 가볍게 부딪치기까지 했다.
터억.
‘더 기다려야 하나?’
여유로운 게 아니라 초조한 거였다.
그 사이 오광휘 팀장은 펌프차 컨트롤러 앞에 서 있었다.
“물대포 먼저 쏜다, 방수!”
꾹.
버튼을 누르자 펌프차 위에서 굵직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갔다.
대형 펌프차의 위용에 어울리는 굵기였다.
쿠아아악!
그 압력은 사람이 견딜 수준을 훨씬 넘어선 터라 컨트롤러로 방향을 조절해야 했다.
시작부터 방향이 철썩 같이 맞을 수가 없었다.
꾹, 꾹.
오광휘 팀장은 공장으로 뻗어가는 물줄기를 보며 방향을 조절했다.
“옆으로,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 태건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정신없는 오광휘 팀장에게 나지막이 조언했다.
“아래로 10도 정도, 그리고 입구 쪽이니까 직수보다 곡사로 때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 어라? 누가, 어? 너!”
휙!
놀라 돌아본 오광휘 팀장은 태건을 보자 경악했다.
펌프차 물대포 조절법은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던 탓이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컨트롤러를 가리켰다.
“보면서 알려드릴 테니까 팀장님은 조종만 신경 쓰십시오.”
“네가 뭘 안다고!”
“입구 안쪽 2미터 즈음부터 공략하시죠. 우로 이동……. 오른쪽이요. 왼쪽에서 두 번째 버튼, 오른쪽!”
물대포가 움직이지 않자 태건이 인상을 찡그리며 재촉했다.
조절 버튼 위치까지 정확했다.
오광휘 팀장은 눈을 끔뻑거리다 아차하고 눌렀다.
“그, 그래. 알았어.”
꾹. 기잉.
물대포가 미세한 각도 조절을 시작했다.
태건도 그제야 인상을 풀며 마저 조율을 도왔다.
하지만 금세 다시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무 아래쪽입니다……. 좀 더 위로, 수압 줄여서 곡사로 가자니까요!”
“이 새끼가!”
“저한테 뭐랄 땝니까. 저 불 새끼한테 뭐라고 해야지!”
“이게 누굴 핫바지로 보나!”
오광휘 팀장은 경력에 때가 묻는 느낌에 반발심을 내세웠다.
태건은 그래도 꿈쩍하지 않았다.
“팀장님 혼자 하는 거 보다 같이 하는 게 나으니까 돕는 거잖습니까!”
“……넌, 이씨. 됐냐!”
“수압 더 줄여요. 저 자식이 틀어막은 입구부터 밀어내야 할 거 아닙니까!”
“어으씨. 아우씨!”
꾹. 꾹.
오광휘 팀장은 인상을 팍팍 구겨가며 버튼으로 조작했다.
옳은 소리만 하니 따지지도 못하고 속만 들끓었다.
그 사이 태건은 날아가는 물줄기의 도착지점을 면밀히 노려봤다.
활활 타오르던 불과 전초전이 펼쳐질 지점이다.
공장의 널찍한 출입구가 사방에서 뻗친 화염에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변해 있었다.
누구의 출입도 거부한다.
화르르륵!
몰아치는 불길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119센터 소방관들이 공략 중이지만 한 끗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 거센 불길에도 태건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물 들어간다, 주둥이 벌려라.’
촤아악!
속으로 뇌까리는 태건의 머리 위로 굵은 물줄기가 호응하듯 날아갔다.
물줄기가 목표한 지점에 근접해갈 때였다.
태건의 눈에 선배들 모습이 보였다.
둘둘 말린 소방호스를 펼쳐가며 공장으로 접근 중이었다.
촥촥, 탁탁탁!
그 움직임이 꽤 신속했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던 태건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짧지 않나?’
스윽.
태건은 곧 모습을 감췄다.
한편, 컨트롤러에 집중하고 있는 오광휘 팀장은 그걸 몰랐다.
이내 컨트롤러 동작을 멈추며 소리쳤다.
“됐지, 이제 됐지, 새꺄!”
“…….”
답이 들려오지 않자 오광휘 팀장이 거칠게 돌아섰다.
휙!
…….
아무도 없었다.
태건이 사라진 걸 그제야 확인한 오광휘 팀장이 도끼눈이 되어 사방을 둘러봤다.
“이 새끼 어디로 튀었어. 사람 신경 다 긁어놓고 어디로 튀었어!”
“…….”
아무리 성질을 벅벅 내도 대답해줄 태건은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소방호스를 굴리던 선배들 표정이 다급히 굳어졌다.
119 소방관들의 근처까지 왔다.
그런데 길이가 모자라 더 나아가지 못했다.
“턱도 없어, 호스 더 필요해!”
“이쪽도,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에잇!”
타다닥!
다급히 몸을 돌려 대형 펌프차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거리감이 부족해서 발생한 상황이 아니었다.
공장을 휘감은 화염으로 인해 더욱 크게 보이는 착시현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장 코앞이 아니라 깊숙이 들어가야 하기에 소방호스 길이가 충분해야 했다.
그렇게 선배들이 펌프차로 되돌아오다 멈칫했다.
태건이 양쪽 어깨에 소방호스를 하나씩 얹은 채 달려오고 있던 탓이다.
타다닥!
시선이 마주친 순간 태건이 선배들에게 외쳤다.
“거기 있어요!”
“…….”
터덕.
선배들 발길이 저절로 멈췄다.
태건이 소리치지 않아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상당히 다가와 있던 탓이다.
“저거, 무거운데…….”
“뛸 수야 있지만 저렇게…….”
눈으로 보고도 이해가 되지 않아 혼잣말을 뻐끔거렸다.
바로 태건은 선배들에게 도착했다.
어깨에 얹고 온 소방호스를 각각 나눠주며 말했다.
턱, 턱.
“받으세요. 그리고 팀장님 전언입니다.”
“팀장님이, 너한테?”
“심부름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시간 많습니까. 판 깔아요?”
태건이 힘차게 외쳤다.
이치적으로 상당히 옳은 소리라 선배들도 이내 동요됐다.
“전언부터. 빨리!”
“입구 오른쪽에 쪽창에 호스 하나, 그리고 다른 호스는 119랑 교대. 교대한 119호스는 주변 자재에 물 뿌리기.”
“오른쪽 쪽창, 교대, 주변 물 뿌리기. 접수.”
“아직 절정이 아니니까 섣부르게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태건은 빠르게 전달하려는 욕심에 의도치 않게 말실수를 했다.
그걸 귀가 좋은 최정균이 바로 캐치했다.
“네 의견인 거냐?”
“……팀장님 말투 그대로 전달할까요?”
“아니다. 알아들었으니까 넌 팀장님 옆으로 다시 돌아가……. 뭐해. 다들 빨리 움직여!”
사삭!
최정균의 외침과 동시에 선배들은 재빨리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태건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선배들이지만 태건은 서운함 따윈 느끼지 못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불길에 휩싸인 공장을 응시했다.
화르륵.
또 한 번 화염이 휘몰아쳐 솟구치는 게 보였다.
하늘로 솟구치는 꺼먼 연기는 구름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저 새끼, 안에 먹을 게 많은가 보네.”
강하게 씹어뱉던 태건은 다시 몸을 돌렸다.
이유는 하나.
요구조자 위치 확인부터.
타다닥.
달리기 시작한 태건의 얼굴이 서서히 가라앉아 갔다.
태건은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태건의 앞에 도끼눈을 뜬 오광휘 팀장이 노려보고 있었다.
“넌 왜 말도 없이 사라져!”
“저쪽이 더 급했습니다.”
“이제 막 복귀한 놈이 뭘 다 안단 듯이 설쳐!”
“…….”
태건은 깊은 눈빛으로 가만히 응시하기만 했다.
오광휘 팀장은 순식간에 달라진 태건의 분위기를 느끼고서야 기억을 떠올렸다.
“너 진짜 불이랑 좀 싸웠냐?”
“지금 그게 중요하면 고기랑 술 좀 준비해 주시죠. 불길 보니까 바비큐하기 딱 좋은 사이즈인데요.”
“이죽거리기는. 그래도 아직 검증 안 됐으니까 옆에 딱 붙어 있어!”
오광휘 팀장이 못을 견고하고 딴딴하게 박아 버렸다.
하지만 태건은 보란 듯이 그 견고한 못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요구조자 위치 파악은 됐습니까?”
“너, 너어……. 아으씨!”
“하려고 하셨단 거 압니다. 그러니까 하시라고요. 가급적 빨리.”
스윽.
태건은 북적북적한 사람들 쪽으로 손짓까지 했다.
바로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최정균입니다. 팀장님 말씀대로 오른쪽 쪽창 공략중, 효과가 있습니다!“
-띠릭. 조규찬입니다. 119랑 위치교대 완료. 입구가 서서히 열리는 거 같은데 이후 지시사항 말씀해 주십시오!
선배들의 보고가 차례로 들려왔다.
스윽.
태건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공장을 바라봤다.
선배들이 쏘아대는 물줄기들이 확실히 포인트를 공략해가고 있었다.
‘역시 불귀신 동생들.’
포인트는 자신이 알려줬지만 그걸 공략하는 건 순수한 그들의 노하우와 실력이었다.
그 부분에서 태건은 진하게 감탄했다.
결코 그들의 경력과 경험치를 낮춰보지 않았다.
태건이 품은 철칙과 같다.
모든 불 앞에선 겸손을.
모든 요구조자에겐 빠른 손을.
모든 소방관에겐 존경을.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철칙이었다.
선배들과의 트러블은 이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선배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도 개의치 않았다.
태건은 자신이 걸어갈 길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