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그렇게 태건이 선배들에게 작은 존경을 보낼 때였다.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역시나 오광휘 팀장이었다.
“강태건, 내가 언제 얘들한테 그런 소리를 했을까?”
“아직 요구조자 위치 파악 안 됐습니까?”
“……넌 집에 가서 보자.”
으득!
대놓고 이를 부득 간 오광휘 팀장은 재빨리 뒤돌아 달렸다.
뒤에선 태건이 조용히 주먹을 쥐어보였다.
“팀장님 파이팅.”
절대 듣지 못하도록 작게 말했다.
이 말까지 귀에 들어갔다가는 불 속에 던져질지도 모를 일이다.
태건의 시선은 다시 공장으로 향해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미친 듯이 갈고닦았던 경험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불길이 흘러가는 큰 그림을 파악할 정도는 됐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아니야.’
대뜸 부정적인 뇌까림을 속으로 읊었다.
불길이 앞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뚫고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안에 요구조자가 있다면 생존을 기대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태건은 자신의 능력과 감, 경험을 믿었다.
“우회할 방법을 찾아야겠어.”
동시에 공장을 더 넓은 시야로 살피기 시작했다.
공장을 감싼 불길의 흐름을 살피는 듯한 눈길이었다.
화륵, 화르륵!
앞에선 선배들이 불길을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딱 거기만 효과를 보였다.
그 외에 부분들은 절대적으로 화염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흐름이……. 젠장.’
열기를 차단해주는 호흡기 커버 속 태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공장 내부의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요구조자가 몇 명인지, 어느 위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인데 밀고 들어간단 건 삶과 멀어지겠단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절대 못 놓지.’
어떻게 살고 있는 삶인데.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등바등 살아온 자신이다.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결국 태건은 공장을 향해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후르르.
태건이 느끼는 열기가 점점 강해져가는 만큼 공장 입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
삐용, 삐용!
사이렌을 울리며 구조대와 구급대가 공장 정문을 넘어섰다.
곧 하차하는 모습에 이어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모습까지 단숨에 이뤄졌다.
“저쪽으로!”
“우린 여기부터!”
지휘자가 없어 어딘지 모르게 부산스러워 보였다.
태건은 그쪽을 힐끔거리며 덧붙여 중얼거렸다.
“팀장님 소식은 아직인가.”
척, 척.
멈추지 않고 계속 공장과 거리를 좁혔다.
그런 태건의 옆으로 바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화재팀장이다. 훅훅. 구조대는 도로 소방용수 확보부터 서둘러!
-띠릭. 구조대장이다. 접수.
-띠릭. 구급대는 정문 왼쪽으로. 거기 부상자들이 집결되어 있다.
-띠릭. 구급대, 확인.
휙휙.
빠르게 오간 무전이 끝남과 동시였다.
놀랍게도 어수선하던 추가 도착 인원들이 단숨에 정리됐다.
“구조대, 소화전 찾아!”
“두 명은 저쪽, 너랑 너는 나 따라와!”
“구급차 저쪽으로 옮기라 그래!”
“주변 병원 응급실부터 섭외해. 상황 알리고 의사 대기시켜!”
파다닥!
누군가의 한마디에 일사불란해진 모습은 확실히 대단했다.
태건도 조금 의외였다.
‘팀장님 지휘력이 상당한데?’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확실히 보였다.
때마침 오광휘 팀장이 옆에 도착했다.
얼마나 뛰어왔는지 거친 숨을 토하며 타박했다.
“헉헉, 옆에 있으라니까 왜 여기 있어!”
“다들 자리 잡을 때까지 둘러보려고 했습니다.”
“이 자식이. 헉헉. 뭘 둘러봐. 산책 나왔냐!”
“누군가는 빨리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태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넘실거리는 불길 앞에서 의견을 조율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은 태건의 말이 옳았다.
여기서 모두가 함께 불이랑 씨름할 때가 아니다.
불은 언젠가 꺼진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얼마든지 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버틸 수 없었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오광휘 팀장은 베테랑 소방관이다.
태건의 말투, 그리고 눈빛, 이치에 맞는 의견을 대번에 파악했다.
이건 분명 경험으로 체득한 소견이다.
절대 한순간의 기지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현장 도착과 동시에 이어진 놀라운 활약들도 한몫했다.
짜리릿.
오광휘 팀장은 전기가 통한 듯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리고 가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너……. 진짜구나.”
“지금 캠프파이어하는 거 아닙니다.”
“딱 하나만 답해라. 이건 꼭 답해라.”
“…….”
태건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지체 없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이대로 널 풀어놓으면……. 날 실망시킬 거냐?”
“저에 대한 기대치가 낮길 바랍니다.”
“이 새끼, 지금 이 중차대한 순간에 농담 따먹기가 나와?”
“……중요하긴 하네요.”
태건은 싱겁게 답할뿐더러 표정도 그저 그랬다.
건방짐?
아니다.
점점 밀려오는 압박감 속에서 쥐어짠 한 톨의 여유였다.
오광휘 팀장은 경험적으로 느꼈지만 순순히 받아들이진 못했다.
“아으씨,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팀장님.”
“……일단 개줄은 풀어줄게. 내가 바빠서 너까지 챙길 여유가 없는 거야. 알았지!”
“접수했습니다. 그럼.”
휙!
몸을 돌린 태건은 곧장 땅을 박차며 달렸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오광휘 팀장의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센터장님, 평면도 어떻게 됐습니까?
-띠릭. 아직 그리는 중이야. 대략 40퍼센트 정도!
-띠릭. 요구조자 파악은요?
-띠릭. 현재까지 파악된 요구조자는 5명인데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띠릭. 다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화재팀, 꼴통 풀었으니까 긴장해.
빠르게 무전이 오갔다.
곧 마지막 무전 내용에 경악하는 선배들 외침이 들려왔다.
“뭐, 뭐라고. 이제 복귀한 태건이를 프리로 놔줬다고?”
“팀장님이 미쳤나, 진짜 사고 나면 어쩌라고!”
“에이씨, 뭐해. 다들 빨리 입구 뚫어. 막내 아니, 꼴통이 사고 치기 전에 우리가 서둘러야 돼!”
“제엔자아앙!”
쾅쾅쾅!
화재팀은 바짝 조여 오는 압박감에 다급해졌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쏘아지던 두 개의 물줄기가 일순간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재빨리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발수 중인 대원들의 심정이 어떤지를 확실히 알려줬다.
그만큼 화재팀에겐 그 어떤 상황보다 비상이었다.
같은 시각.
태건은 어느새 공장 오른쪽 벽면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곳곳에 위치한 깨진 창문 밖으로 불길이 넘실거렸다.
파바밧!
불꽃도 튀었다.
그 모든 건 불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마수를 뻗는 모습이었다.
외부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자재들이 널려 있었다.
물을 흠뻑 뿌려놨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언제 어떻게 불이 번질지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주변은 공장이 가득한 공단이다.
한 번 번지기 시작하면 그 피해가 얼마나 늘어날지 감히 추측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현장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태건은 그 상황에 쉽게 휩쓸리지 않았다.
냉정한 시선으로 정확히 불길을 파악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 내부로 무작정 밀고 들어가면 곧바로 불길에 휩싸일 터였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절망이란 단어는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
아직 모든 창문이 불에 삼켜지지 않았다. 그쪽을 공략해 내부로 들어갈 출입구를 확보할 계획이었다.
태건은 가까운 창문으로 빠르게 다가가 내부를 살폈다.
새로운 출입구를 확보하기 위한 첫 번째 순서였다.
사삭.
“여기……. 아니야.”
사삭.
“여기도.”
같은 행위가 계속 반복됐다.
화륵, 화륵.
이리저리 불길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함부로 창문을 깬다면 불길이 이쪽으로 향할 확률이 높았다.
몇 번 더 창문 속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척.
어느 창문을 확인한 태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딱이야.”
적당한 장소를 드디어 찾았다.
태건은 호흡기 커버를 착용함과 동시에 도끼로 유리창부터 깼다.
와장창, 후아악!
깨진 창문으로 강렬한 열풍이 엄습했다.
“크윽. 칫.”
호흡기 커버 안쪽이 금세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뻔히 알고 있다고 해도 짜증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상을 찌푸린 그대로 창틀을 딛고 내부로 진입했다.
쿵!
장비 무게 덕에 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픔도 상당했다.
태건은 그 아픔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화르륵, 화륵!
공장 내부에 성난 불길이 솟구치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불바다였다.
바닥, 천장, 벽면, 자재들까지.
불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저쪽에선 화염이 아래서 위로 솟구쳤다.
후루룩!
또 다른 쪽에선 녹아내린 철제 전등이 떨어지고 있었다.
뚝, 촤앙!
그 불이 건자재에 번져갔다.
화르륵!
위치가 너무 가까웠다.
갑자기 일어난 불길을 방화복 하나에 의지해 맞서는 중이다.
“크윽, 흡!”
쉬익, 쉬익.
더해지는 열기에 호흡도 금방 차올랐다.
이런 상황인데 떨어질 때 충격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집중력이 최대치까지 단숨에 솟구쳤다.
다행히 공장 내부가 전부 화마에 먹힌 건 아니었다.
‘저쪽은 이제 옮겨 붙기 시작했고……. 저기는 아직 괜찮아.’
태건은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에 달린 무전기를 눌러 자신의 상황부터 보고했다.
“태건입니다. 오른쪽 창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띠릭. 서순영이다. 인마, 무모하게 밀어붙이지 말라니까!
-띠릭. 서 대원 감정 앞세우지 마……. 강 대원. 나다, 오 팀장. 현재 위치 정확하게 다시.
오광휘 팀장의 목소리는 상당히 침착했다.
태건은 최대한 눈에 보이는 구조물들을 침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장에 크레인 레일이 보이고, 반대쪽에……. 설핏 철계단 같은 게 보입니다.”
-띠릭. 대형가구 제작 파트, 거의 뒤쪽이야. 혹시 후문 보여?
“에……. 불벽이 보입니다. 퇴로가 완전히 막혀 있습니다.”
태건은 가급적 자세히 내부 상황을 알렸다.
그에 맞춰 오광휘 팀장의 무전이 바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