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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37)화 (37/320)

37화

-띠릭. 지금 그쪽으로 소방호스 하나 붙여서 구조대 애들 보냈어. 곧 도착할 거야.

“저는 요구조자 수색 들어가겠습니다.”

-띠릭. 혼자? 이 자식이.

“저 불나방 아닙니다.”

태건이 정색했다.  

그 말뜻이 뭔지 알겠던지 오광휘 팀장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띠릭. 현재 파악된 요구조자는 5명. 그리고 최초 화재발생 후 15분 정도 지난 시점이야.

“……음. 제 주변에는 뭐가 있습니까?”

-띠릭. 거기가 대형가구 제작 파트니까……. 건조장, 검수장이야.

“그럼 반대쪽 철계단 위에는요?”

-띠릭. 크레인 조종실, 그리고 전기실, 소형 창고. 정확한 구조는…….

오광휘 팀장의 설명이 계속 들려왔다.

급조된 평면도를 보고 설명하는 거치고는 상당히 자세했다.

그의 설명이 간결해서 이해하기 쉽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터였다.

그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봤다.

슈슈슉.

상상 속 평면도가 얼추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태건은 무전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주변을 살폈다.

아직 불길이 닿지 않은 장소지만 언제까지 머물 순 없던 탓이다.

그리고 뭔가 계속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뭘까.’

자신을 위협하는 무언가의 정체를 파악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당장 위협이 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일단 요구조자 수색이 우선이다.

태건은 의구심을 안은 채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척. 척.

그 사이 오광휘 팀장의 내부 설명이 끝났다.

-띠릭. ……이렇게 되어 있어. 이해했어?

“네. 지금 의심지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띠릭. 구조대가 거의 도착했을 거야. 다시 얘기하지만…….

그의 무전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방금 넘어온 창문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다, 여기!”

“출입구 확보 시작해!”

콰앙, 쾅!

굉음이 더해졌다.

구조대가 도착해 입구 확보작업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강한 충격인지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두두두.

그 진동은 내부에 쌓인 자재들까지 전달됐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높이 쌓인 자재들과 제작 중이던 가구들이 타들어가는 중이다.

태건은 경계수위를 높이며 안으로 더 진입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쿠릉쿠릉.

이상한 소리가 태건의 귀에 설핏 들려왔다.

“음?”

휙!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활활 타오르는 각목 뭉치가 보였다.

수십 개 굵은 각목들을 양쪽에 플라스틱 끈으로 묶어 놓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끈 중 하나가 이미 불길에 휩싸여 녹아버린 상태였다.

덜렁덜렁.

다른 한쪽도 썩 견고해 보이지 않았다.

‘저거……. 위험해.’

저거다. 

그런데 자신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다.

무너져도 태건에게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의아함에 무심코 주변을 살피던 태건이 멈칫했다.

“저……. 헙!”

태건의 눈에 분명히 보였다.

밑에 사람들이 잔뜩 웅크린 채 연기와 불길을 피하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각목 더미는 주변에서 가장 큰 구조물이다.

미친 듯이 몰아쳐오는 검은 연기 폭탄의 영향권에서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장소였다.

또 불이 닿지 않아 열기를 차단하기에도 효과적이었다.

다들 그 와중에 결코 생각하고 움직인 게 아니었다.

본능이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그들을 그쪽으로 인도한 게 틀림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쳐 있던 그들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거나 좌우로 크게 휘저었다.

“쿨럭, 쿨럭!”

희미한 기침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의 시선 끝엔 정확히 태건이 위치해 있었다.

그냥 텅빈 공간도 아니었다.

화르륵.

허리 높이까지 솟구친 불길이 넘실거렸다.

그걸 뚫고 태건을 발견한 거였다.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짙은지 설명조차 불가했다.

그리고 절망하던 그들은 지금 희망을 손짓하고 있었다.

살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이 보이자 사람들은 손을 흔드는 걸로 멈추지 않았다.

“살려주세, 쿨럭, 컥컥!”

“제발, 컥! 여기!”

연기가 입에 들어가도 멈추지 않고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옷차림과 얼굴.

누가 봐도 먹고 살기 위해 하루 하루 고된 노동의 시간을 거친 사람들이다.

이마에 가득 새겨진 주름 하나만 봐도 충분했다. 

살려야 한다.

또 다른 하루를 위해.

저들에게 혹시 모르게 다가설 행운을 위해서도 말이다. 

그 생각이 들자 절박한 순간에도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래서 이 일이 좋아.”

그 모든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태건은 인지함과 동시에 벌써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사람은?

하나, 둘, 셋……. 끝?

세 명까진 파악했는데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사라락.

짙은 연기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살랑 흔들렸다.

살짝 흩어진 연기 틈으로 바닥에 완전히 몸을 낮춘 두 명이 보였다.

‘있다, 있어!’

동시에 태건의 두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남은 두 명도 저기 있다.

도합 다섯 명.

요구조자들의 숫자와 일치했다.

저들을 구해야 한다.

“좋아, 강태건, 고고!”

망설임 따윈 출동하는 길에 버리고 왔다.

파바박!

바로 두 다리를 박차고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요구조자에게 향하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허리까지 오는 불길은 우스울 지경이다.

뚜둑, 뚝!

위에서 영문 모를 액체가 떨어져 내렸다.

아차한 순간 방화복 어깨에 닿았다.

치이익!

쇳물이 닿은 듯이 그대로 파고들어 방화복이 녹았다.

태건은 재빨리 어깨를 털어냈다.

투둑!

“칫!”

어깨엔 이미 화끈함이 잔뜩 고통을 선사하고 있었다.

잠깐이다.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그럼에도 얼굴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파왔다.

“젠장할 불 녀석!”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무릎 높이의 구조물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낮게 깔린 연기에 가려져 이제 보인 거였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갑자기 허들이 생긴 상황이다.

태건은 당황하지 않았다. 

“에잇!”

촤악!

구조물에 닿기 직전 뛰어올랐다.

그리고 착지하려는 순간 이번엔 앞에 구덩이가 보였다.

터엉!

꽤 넓은 공간이었다.

불길은 없지만 연기로 인해 깊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착지해 한 걸음만 옮겨도 구덩이에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런 미친!”

턱, 휙!

왼발로 착지한 태건은 그 방향으로 급격히 전환했다.

장비의 무게까지 더해진 태건은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우당탕! 텅!

등에 맨 호흡기 탱크로 인해 충격이 두 배로 가중됐다.

“끄으윽, 이런 젠장할 구조는 뭐야!”

욕지거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래도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신속한 움직임 덕분에 요구조자들과의 거리도 상당히 줄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끄으응!

아프지만 용을 써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앞으로 걸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푹!

갑자기 오른발이 아래로 훅 꺼지며 이번엔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아앗!”

터억!

땅에 닿기 직전 간신히 두 손을 뻗어 참사를 막아냈다.

진짜 요지경 공장이다.

인상을 팍 쓴 태건은 오른발이 어디에 빠졌는지부터 확인했다.

스스슥.

태건의 등장으로 흩어진 연기 속에 기다란 도랑이 보였다.

방향이 구덩이 쪽이었다.

“도랑에 구덩이에, 진짜 가지가지 해라!”

코앞까지 왔는데 자꾸 막히자 짜증이 대대적으로 폭발했다.

거기다 후끈함도 더해지고 있었다.

방화복을 입은 자신이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요구조자들은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아, 으, 으아악!”

쑤욱.

도랑에 빠진 오른발을 이를 악물고 뽑아냈다.

겨우 10미터 이동한 거 같은데 온몸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다행히 그 뒤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태건은 요구조자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방관입니다!” 

각목 더미가 계속 신경을 자극했다.

하지만 요구조자들의 상태 파악이 더 시급했다.

“쿨럭쿨럭, 소방…….”

기침이 심해 말도 제대로 못했다.

태건은 재빨리 손으로 붙든 장비를 불쑥 내밀었다.

“여기 보조호흡기입니다. 입에 대고 호흡, 호흡!”

“후욱, 후욱, 크어어!”

“안 돼요. 더, 더!”

“여기, 쿨럭, 옆에…….”

중년인이 깡마른 동료에게 보조호흡기를 끝까지 뻗었다.

자신도 괴로울 터였다.

그럼에도 주변을 생각했다.

이거다.

바로 이런 모습이다.

태건이 정말 이 순간이 보람되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모습이었다.

‘이러면 구할 맛이 넘치지!’

아니더라고 인명 구조는 똑같이 진행된다.

하지만 기왕이면 이런 인간미 철철 넘치는 요구조자를 더 빠르고 안전하게 구조하고픈 건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이어갔다.

이런 시간이 어딨겠냐만, 잠깐이라도 꼭 필요했다.

돌아가며 요구조자들의 호흡을 도와주고 있었다.

“후욱, 후우욱. 으으.”

“한 번만 더요. 옆에서 괜찮다니까 한 번만 더요!”

“으으으. 후우욱!”

거부하다 끝내 숨을 참지 못해 억지로 호흡하는 요구조자도 있었다.

태건은 그들만 독려하는 게 아니었다.

휙휙.

동시에 탈출 루트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계산 중이었다.

나가는 길은 역시 들어온 길을 역으로 되짚어 나가는 게 가장 안정적이었다.

‘구덩이 피해서 도랑. 그 앞에 구조물은……. 뛰기는 힘들 거 같은데.’

요구조자들 상태가 그러했다.

불길 속에선 열기 못지않게 연기가 문제였다.

모든 신체능력을 저하시키는 독약 중에 극독약이다.

태건은 곧 결정을 내렸다.

‘내가 넘겨드리면 돼.’

시간은 걸리겠지만 모험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다.

그 사이 한 번씩 호흡기를 다 돌렸다.

“흐읍, 쿨럭.”

“큭, 크윽!”

기침소리가 더욱 커졌다.

맑은 공기 후 탁한 연기를 마시니 거부반응이 더 강하게 일어나는 거였다.

태건은 다시 처음 요구조자에게 호흡기를 덮으며 말했다.

척.

“다들 옷으로 코하고 입을 가리세요. 최대한 두껍게 해서요. 100만분의 1은 나아질 겁니다.”

“뭐, 쿨럭, 뭐라고요?”

“웃자고 한 소립니다.”

태건이 호흡기 커버 안쪽 두 눈에 반달을 그려보였다.

그러자 요구조자들이 더욱 거세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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