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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38)화 (38/320)

38화

“지금 그럴 쿨럭, 땝니까. 쿨럭!”

“우리는 쿨럭, 지금, 켁켁.”

요구조자들은 기침하면서도 끝까지 노려봤다.

태건은 보조호흡기를 한 번씩 돌려가며 말했다.

“화낼 정신이 드시죠? 그만큼 상황이 좋아진 겁니다.”

“쿨럭, 쿨럭. 그야…….”

처음 정신없이 손을 허우적거린 거에 비하면 확실히 좋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건 상대적인 비교치였다.

당연히 요구조자들은 동의하는 기색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태건은 실없이 던진 농담이 아니었다.

자극이란 화가 났을 때 더 많이 오는 법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었다. 차라리 뒤통수 한 대 후려치는 게 훨씬 빠르고 확실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던진 자극의 일종이었다.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자극이 되었단 건 계산 미스였다.

곧 태건은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다들 남성분들 같은데 군대에서 화생방 해보셨죠. 딱 그런 감성으로 가는 겁니다.”

“정신 못, 쿨럭, 차렸는데……. 쿨럭.”

“바로 그겁니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겁니다. 뒤는 저에게 맡기시고 앞만 보세요. 저기 창문 보이시죠.”

스윽.

태건은 손을 들어 자신이 들어온 창문을 가리켰다.

저 멀리 파란 하늘이 보였다.

요구조자들에겐 곧 자유 아니, 생명이었다.

호흡이 어느 정도 돌아온 지금에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아아…….”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구우우우.

두 눈에 가득 차오른 힘과 의욕은 불길도 밀어낼 기세였다.

태건은 방화복 속까지 따끔함이 파고드는 착각이 들었다.

‘진짜 그렇게 되기 전에 움직여야 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후두둑!

각목 더미의 남은 플라스틱 끈이 결국 녹아 버렸다.

어느새 번져온 불이 각목 더미에 옮겨 붙기 시작했다.

태건은 보조호흡기를 계속 돌리며 비장하게 말했다.

“이제 제가 신호를 드릴 겁니다.”

“……크읍!”

“바로……. 지금. 달려!”

태건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 순간 요구조자들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났다.

가쁜 숨도, 저하된 몸도 다 털어 버렸다.

자신의 수명을 쥐어짜 힘을 만들어낸 듯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 걸음은 빠를 수가 없었다.

턱, 터덕.

이렇게 일어나서 움직인단 자체가 기적이었다.

모두 태건이 책임져야 할 이들이다.

앞뒤로, 양옆으로.

부축하고, 떠밀기도 하고.

태건의 움직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조금씩 이동하던 그때였다.

푸아악!

깨진 창문으로 거센 물줄기가 밀려 들어왔다.

주변에서 기세를 펼치는 불을 잠재울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쪽에도 물방울이 쏟아졌다.

“쿨럭. 하아, 하아아!”

“흐음. 컥. 흐음.”

뜨거움이 밀려나자 요구조자들의 표정부터 달라졌다.

태건도 좋아해야 할 일이었다. 

‘갑자기, 느낌이……. 설마?’

휙!

재빨리 고개를 돌려 물줄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확인했다.

거기엔 불타오르는 각목 더미가 있었다. 그런데 천장에서 떨어지는 액체들이 그 불을 키워가고 있었다.

방화복을 파고든 액체들이었다.

그 융해된 액체에 물이 닿자 폭발하기 시작했다.

푸우! 퍼벙!

크고 작은 폭발에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뿐이면 다행이었다.

그 폭발이 각목 더미의 균형을 흩트렸다.

쿠궁, 쿠구궁.

이쪽으로 넘어질 판이다.

무너지면 피할 수 없는 요구조자들은 그대로 깔린다.

‘젠장.’ 

다급해진 태건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어? 어어……. 방향, 방향 돌려!”

하지만 호흡기 커버에 막혀 멀리 퍼지지 못했다.

강렬한 물줄기는 결국 불타는 각목 뭉치를 직격했다.

콰아앙!

이미 균형이 흐트러진 각목 수십 개가 이쪽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태건은 절망할 틈도 없었다.

“에잇, 이쪽으로 빨리!”

턱, 턱!

각목 더미를 등지고 요구조자들을 닿는 대로 당겨왔다.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려는 심산이었다.

정말 그럴 작정이었다.

뒤는……. 없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알 수가 없었다.

태건은 두 눈을 부릅떴다.

‘데려가야 한다면, 꼭 그래야 한다면……. 나 하나로 만족합시다.’

부탁도 소원도 아니었다.

협박이었다.

어디의 누구에게 하는 소린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움츠려들지 않았다.

각오했던 바다.

언젠가 그 차례가 올 거라 생각했다.

그때가 지금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태건조차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곧 현실로 닥칠 때까지 남은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바로 그때였다.

쏴아악.

사방으로 튄 물방울들이 연기를 옅게 만들었다.

그러자 태건의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었다.

구덩이!

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물줄기가 이번엔 생명의 탈출구를 열어주고 있었다.

태건은 계산도 생각도 할 틈도 없었다.

“저기로 뛰어!”

“에, 에?”

“에잇……. 으아아악!”

터더덩!

태건은 품에 안은 요구조자들을 한 번에 떠밀었다.

그런데 정말 떠밀리기 시작했다.

무려 성인 다섯 명이다.

혼자 힘으로는 말도 안 되는 괴력이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지금 그들에게 기운이 없어 가능했다.

풀썩, 텅!

“크으윽!”

“어윽!”

구덩이에 떨어지는 소리와 비명이 연거푸 들려왔다.

마지막 다섯 번째 비명까지 들렸다.

이젠 태건이 뛰어내릴 차례였다.

“가볼……. 크으윽!”

텅!

등에 묵직한 충격이 일었다.

각목이다.

그렇다면 하나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 예상이 꼭 맞았다.

터더덩!

태건의 등으로 많은 각목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피하면 각목들은 요구조자들을 덮친다.

“크으으으……. 썅!”

우르르.

외마디 비명을 지른 태건의 등 위로 쏟아진 각목이 쌓여갔다.

곧 태건의 모습은 각목 속에 묻혀 사라졌다.

한편.

각목 더미가 무너지는 거대한 소리는 공장 내부를 들썩이게 했다.

우르릉.

“이게 뭔 소리야!”

“안에 확인해 봐!”

창문 밖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구조대원이 창틀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부를 둘러봤다.

무너진 각목 더미로 주변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걸 발견한 구조대원은 경악했다.

“허억!”

“왜 그래!”

“물부터 옆으로 당장 옮겨. 그리고 화재팀, 화재팀장님 호출해. 빨리!”

외치는 그의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다급해했다.

잠시 후.

오광휘 팀장이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

치지직.

무너진 각목들은 불이 꺼져 하얀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주변에도 당장 위협이 될 불길은 없었다.

안전한 출입구를 확보한 거였다.

그런데 문제는 각목 뒤쪽으로 이동할 길조차 보이지 않는단 점이었다.

대번에 파악한 오광휘 팀장의 두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막, 막내야.”

…….

화르륵.

불길이 대신 반응하는 소리를 냈다.

오광휘 팀장은 얼른 자신을 다잡고 무전기를 눌렀다.

띠릭.

“화재팀장이다. 강태건 대원, 응답해라.”

…….

태건의 무전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오광휘 팀장은 재차 무전기를 누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띠릭.

“오 팀장이다, 강태건이. 대답한다, 강태건이!”

-띠릭.

무전기 소리?

오광휘 팀장의 눈은 무전기를 잡아먹을 듯 강렬했다.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

그런데 태건이 아니었다.

-띠릭, 막내가 또 왜요!

“다들 닥쳐. 막내만 대답해. 강태건, 강태건!”

오광휘 팀장의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태건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부르르.

어깨를 떨던 오광휘 팀장이 구조대원의 멱살을 잡아챘다.

“어떤 새끼야. 누가 안에 사람 있는 거 알면서 확인도 안하고 쐈어. 누구냐니까!”

“아이씨, 그러니까요. 뒤질 뻔했습니다.”

“이 새끼가. 너 지금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휙!

오광휘 팀장은 주먹까지 들었다.

그런데 구조대원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아닙니다. 진짜 아닙니다.”

같잖은 핑계에 오광휘 팀장은 열이 머리끝까지 뻗쳤다.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네가 아니라고? 그럼 여기 누가 또 있는데!”

“그쪽 아닙니다. 생사람 그만 잡으세요.”

“이거 봐, 분명히……. 넌 입을 막고 있네?”

구조대원은 정말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그제야 익숙한 목소리였음을 알아챘다.

“헉, 설마……. 막내, 강태건이, 너 어디야. 어디서 씨불이는 거야. 당장 나와!”

“그럼 여기 각목 좀 치워주셔야 하는데요.”

“여기 각목이 어디 각목……. 헤에엑!”

아래를 내려다본 오광휘 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태건이 각목 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던 탓이다.

화재현장이란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놀란 오광휘 팀장이 버럭 소리쳤다.

“모가지 댕강 했냐, 이 시끼야. 거기서 뭐하고 있어!”

“피난처입니다. 진짜 죽다 살았습니다.”

“피난처?”

“요구조자 5명, 전원 무사합니다.”

휙휙.

태건은 고갯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오광휘 팀장은 얼떨떨한 얼굴을 재빨리 털어내고 주변의 구조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뭐해, 이 새끼들아. 빨리 치워!”

“네!”

사삭.

구조대원들은 얼른 달려들어 각목을 사방으로 밀어냈다.

각목 일부는 하얀 김이 풀풀 날 정도로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밀어내기에 급급했다.

곧 각목들이 걷혔다.

안전이 확보된 순간 태건을 시작으로 한 명씩 옆으로 솟아올랐다.

그 인원은 정확히 5명이었다.

약간의 그을음이 묻어 있고, 자잘한 부상이 보였다.

그 외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쿨럭쿨럭.”

문제라면 호흡이 원활하지 않은 정도였다.

요구조자가 멀쩡하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멀쩡해도 정도가 있었다.

길에서 넘어진 수준의 부상은 당면한 화재 규모에 비해 너무도 언밸런스했다.

“어…….”

너무도 당혹스런 전개에 오광휘 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반면 태건은 구조대원들에게 요구조자들을 인계했다.

“밖으로 모셔주십시오.”

“그건 저희가 당연히, 그런데…….”

“무슨 문제 있었습니까?”

순진한 눈망울로 되레 물었다.

태건의 입장에선 그게 당연했다.

‘쌤쌤이지.’

큰일 낼 뻔한 물줄기가 살아갈 길을 제시해 줬으니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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