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구조대원들은 알 수가 없어 어정쩡하게 움직였다.
“그럼 저희는 먼저…….”
“다들 우선 밖으로 나가시겠습니다.”
척. 척.
구조대원들의 안내에 따라 요구조자들은 나란히 따라갔다.
같이 나갔던 태건은 곧 소방호스를 들고 다시 들어왔다.
노즐을 꽉 잠가 물이 쏟아지지 않은 상태였다.
처억.
자세를 잡은 태건이 오광휘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그쪽으로 쏠 겁니다.”
“어? 에! 그건 또 언제 가져온 거야?”
“밖에 나가보니까 놀고 있던데요. 그보다 불부터 마저 꺼야 되지 않습니까.”
착.
태건이 소방호스의 노즐을 당장 열 참이었다.
그 말 틀린 거 하나 없었다.
여기만 불이 소강 상태일 뿐, 아직 화재는 진행 중이었다.
화르륵.
불길을 다시 눈에 담은 오광휘 팀장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태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호스 내놔.”
“제가 가져온 겁니다만.”
“부사수 짬이면 알아서 빠져야 할 거 아니야. 이걸 확!”
“……여깄습니다.”
태건은 뚱한 얼굴로 소방호스 노즐을 건넸다.
오광휘 팀장은 그대로 겨드랑이에 단단히 낀 후 말했다.
“불부터 끄고 얘기하자.”
“…….”
“대답 안 하냐. 그리고 뒤에 안 붙들어?”
“네네.”
처억.
태건은 삐딱하게 대답하며 호스를 붙들었다.
오광휘 팀장은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는지 바로 소방호스 노즐을 열었다.
요구조자가 없다면 인정사정 볼 거 없었다.
흐름도, 기세도 필요 없다.
더는 안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그냥 갈기면 된다.
“엿 같은 불 새끼들아, 다 꺼져버려!”
푸아아악!
힘찬 물줄기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직격했다.
한 시간 후.
가구공장의 불은 전소됐다.
꺼멓게 변한 공장에선 하얀 수증기만 피어올랐다.
화재팀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불씨를 찾아 제거했다.
오광휘 팀장과 태건은 같은 장소에 있었다.
두 사람은 태건이 올라온 자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대체 뭐냐?”
아래쪽에는 대략 1미터 깊이의 구덩이가 파져 있었다.
사각형 구조에 시멘트까지 발라져 있는 걸 보아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 했다.
그걸 같이 보던 태건이 설명했다.
“불연성 페인트 도색 작업장이랍니다.”
“여기 대형가구 제작 파트 아니었어?”
“맞습니다.”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오광휘 팀장은 답답했는지 노려보며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태건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답했다.
“저기 레일 보이시죠.”
“크레인 레일.”
“저걸로 대형가구를 옮기며…….”
태건은 잠시 요구조자들에게 들은 내용을 바로 공유했다.
그제야 오광휘 팀장도 납득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 건조장. 왜 1차 검수 다음에 뜬금없이 건조장이 있나 했더니 그래서였네.”
“천만다행이죠. 으, 흐흐.”
“왜 웃음이, 너 혹시…….”
오광휘 팀장은 태건의 미묘하게 틀어진 웃음소리를 유심히 관찰하다 뭔가 말하려 했다.
그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거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차박차박!
흠뻑 젖은 바닥을 박차고 달려오는 건 선배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너무도 좋지 않았다.
“강태건!”
목소리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선배들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에?”
태건이 의아해할 때였다.
달려오던 선배들 중 유독 과격한 서순영이 그대로 힘을 실어 주먹을 뻗었다.
퍼억!
“크윽!”
얼떨결에 얻어맞은 태건이 짧은 비명을 내뱉었다.
그런데 서순영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터억.
태건의 방화복 깃을 움켜쥐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야, 너 진짜 뒤지고 싶어 안달 났어?”
“…….”
“다 듣고 왔어. 여기 구덩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럼 각목 더미에 깔려 뒤지는 거야, 이 새끼야!”
“그게…….”
태건이 뭔가 말하려 했다.
그러나 서순영의 따가운 목소리가 더 빨랐다.
“닥쳐 새꺄!”
“…….”
“넌 성장이란 걸 몰라? 생각이란 게 없어? 복귀 첫날 첫 출동부터 이따위로 할래!”
서순영은 정말 태건을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뿐이 아니라 가장 따뜻한 성격인 조규찬조차 잔뜩 굳어져 있었다.
“1년 동안 뭐한 거야. 그렇게 돌아와 놓고 보여주는 모습이 고작 이거냐?”
“막내야, 너 거기서 나와야 돼.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짜 죽어, 인마.”
과묵한 표인철까지 진심 가득한 걱정을 보였다.
다들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격한 감정을 내보이고 있었다.
화가 나고, 안타깝고, 걱정되고.
뒤죽박죽 섞인 온갖 감정들이 태건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진심으로 태건을 걱정한다는 점.
그건 확실했다.
그걸 눈치로 알아챈 태건은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이거면 충분해.’
지금 모습으로 백번 설명하고도 남았다.
태건만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알았으면 됐다.
선배들의 자세한 속사정은 당장 몰라도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보람이 차고 넘쳤다.
“하하.”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런 태건을 향한 서순영의 표정은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 자식이, 웃어? 내가 우습단 거냐!”
후웅!
무시당했단 울컥함에 준비동작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태건도 그제야 아차했다.
변명을 하려 해도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저 쇠갈퀴 같은 주먹엔 진심어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단 의미였다.
서순영의 주먹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으윽…….’
맞는 게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든.
있는 힘껏 목을 옆으로 젖혔다.
그때 태건의 눈앞에 손이 불쑥 올라왔다.
터억!
오광휘 팀장의 손이었다.
그 위치는 태건의 왼쪽 볼 바로 옆이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허어.’
태건도 맞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얼마나 찰나였는지 오광휘 팀장이 손으로 막은 순간 태건이 피한 걸로 보였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세 명의 동작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고 봐야 했다.
태건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였다.
오광휘 팀장이 낚아챈 채 먼저 서순영에게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저 자식이 먼저 절 무시했잖습니까!”
“내가 듣기엔 그런 웃음이 아니던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순영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오광휘 팀장에게 닿았다. 서순영은 수긍할 기색을 티끌만큼도 비치지 않았다.
마주한 오광휘 팀장도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찌릿.
두 사람의 시선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느낌이었다.
태건은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오광휘 팀장에게 모두 맡길 생각은 없었다.
휙!
재빨리 두 사이를 파고들었다.
“순영 선배, 우습단 거 아닙니다. 진짜 오햅니다.”
“그럼 뭔데?”
“선배들이 이렇게 오셔서 걱정해주시니까……. 그냥 그게 좋아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겁니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서순영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때 태건의 뒤에서 오광휘 팀장이 덧붙여 말했다.
“내 귀에도 그렇게 들렸어.”
“팀장님.”
“이번에도, 작년에도 현장에선 눈길도 안 줬잖아. 그런데 이렇게 떼로 달려와 걱정해주면 행여나 기분 좋겠다, 이 자식들아.”
스윽.
따갑게 한 소리 한 오광휘 팀장은 서순영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들도 흘겨봤다.
그 시선을 제대로 마주한 선배가 없었다.
“…….”
다들 머쓱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서순영만 오광휘 팀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지고 들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된 데는 팀장님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닙니까. 오늘 복귀한 애를 프리로 놔주는 경우가 대체 어딨습니까!”
“너 지금 나한테 따지냐?”
“네. 따집니다. 제가 틀린 소리 했습니까?”
“이 새끼……. 서순영, 어디 한 번 같이 미쳐볼까?”
핑!
오광휘 팀장의 안광이 번쩍였다.
살벌하게 변한 분위기는 모두를 압도했다.
그 모습에 연상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미친개.
그것도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그가 독을 품으면 박민석 서장도 못 말린단 소문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울컥해 따지던 서순영도 그제야 아차했다.
“……죄송합니다.”
“서순영. 계속 그렇게 위아래 없이 설칠 거냐?”
“아닙니다.”
“최정균, 조규찬, 표인철. 마찬가지야. 아직 상황종료도 아닌데 이렇게 떼로 몰려와?”
“……죄송합니다.”
선배들은 꼼짝 못 하고 사과해야 했다.
팀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때 태건이 오광휘 팀장과 선배들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어 중재했다.
“팀장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괜히 뒷말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한 거 맞잖습니까.”
“…….”
오광휘 팀장의 서서히 눈이 서서히 가늘어졌다.
뭔가 단단히 할 말이 있는 분위기였다.
태건은 그걸 한눈에 간파했다.
그의 입이 열리기 전에 얼른 몸을 돌렸다.
휙!
그리고 선배들에게 선수 쳐 말했다.
“사실 그거 때문에 팀장님에게 혼나는 중이었습니다.”
“…….”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
휙.
서순영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울컥해 뛰어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게 아니란 걸 떠올린 모양이었다.
다른 선배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최정균이 오광휘 팀장에게 말했다.
“잔화정리 마저 하고 있겠습니다.”
“빨리 정리 끝내고 복귀 준비해. 서에 보고하고 혹시 다른 접수사항 있는지도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스윽.
고개 숙여 사과한 선배들은 곧 지시 이행을 위해 멀어졌다.
다시 태건과 오광휘 팀장만 남았다.
태건은 방금 아찔했던 상황을 곱씹었다.
“연달아 얻어터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얼굴은 괜찮아?”
“얼얼합니다.”
“거기만 문제가 아닐 텐데.”
툭.
무심히 말을 흘린 오광휘 팀장이 태건의 산소통을 투박하게 두드렸다.
그 순간 태건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큭, 쓰읍.”
“역시 등으로 저 무식한 각목들을 받았던 거냐.”
“끄응. 어떻게……. 아셨습니까?”
인상을 찡그린 태건이 더듬더듬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