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오광휘 팀장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산소통을 가리켰다.
“뒤에 검댕이가 죄다 묻어 있는데, 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거냐?”
“고개가 그렇게까지 돌아가지 않아서 몰랐네요.”
“내가 확 대갈통을 비틀어서 보여줄까?”
“다음에요. 흐, 흐흐.”
태건은 싱겁게 웃어보였다.
통증을 가라앉히는 중이라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오광휘 팀장은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확히 어떻게 된 거야?”
“뭐, 그러니까…….”
“쏟아지는 각목을 피해서 도색작업장으로 피했단 거네. 그럼 너도 같이 피해도 됐을……. 아, 그럴 상황이 아니었구나.”
“하하.”
태건은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소리만 흘렸다.
그 사이 오광휘 팀장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위험한 요구조자들.
그 위를 덮친 각목 더미.
고민 없이 온몸으로 달려든 태건.
모든 그림을 완성시킨 오광휘 팀장이 씁쓸해했다.
“……빌어 쳐 먹을.”
잘했다고 칭찬하기에는 뭔가 썩 달갑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욕하기에는 요구조자들이 아무런 피해 없이 구조됐다.
결국 누군가는 다쳐야 했고 태건은 자신을 희생한 거였다.
소방관들의 숙명이란 말로 흘려버리기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 녀석이 했던 말들이 점점 사실처럼 느껴져.’
반은 믿고, 반은 불신했다.
그런데 이 현장만 봐도 진실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태건은 반대로 오광휘 팀장을 관찰 중이었다.
‘몇 마디 말로 상황을 모두 알아채다니.’
대단했다.
아까도 느꼈지만 상황 파악과 지휘능력이 상당했다.
‘계속 같이하면 좋을 거 같은데.’
당분간은 함께할 거다.
하지만 순환근무 시스템이라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
그 점이 조금 안타까웠다.
서로에 대한 생각을 마친 후였다.
태건이 넌지시 먼저 권했다.
“우리도 움직여야죠.”
“그래.”
뚜벅뚜벅.
둘 다 현장 밖으로 향했다.
이내 공장 옆으로 뚫린 새로운 출입구로 나왔다.
이어서 대형 펌프차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묵묵히 걸어가던 오광휘 팀장이 돌연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나저나, 제 몸 날려 요구조자들을 전원 무사 구출해 놓고 받은 선물이 싸대기라니. 나 참.”
“이 정도면 나름 저렴한 거죠. 다 떠나서 선배들이 달려와 걱정도 해줬는데요.”
“얼씨구, 좋단다.”
“나쁠 거 없죠.”
태건은 당당했지만 오광휘 팀장은 기막혀했다.
“그러네, 이렇게 모아놓으니까 이제 보이네.”
“뭐가요?”
“넌 니가 알아내. 젠장.”
쿵, 쿵.
오광휘 팀장은 괜히 신경질 내며 앞서 걸어갔다.
이어서 홀로 곱씹었다.
‘채용아, 이 녀석들 대체 뭐냐. 이 복잡하고 멍청한 놈들을 어쩔 거냐.’
절레절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팀원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거였다.
반면, 태건은 오광휘 팀장이 흘리고 간 말에 갸웃거렸다.
‘팀장님은 뭐가 보인단 거지?’
다시 상황을 떠올려 봐도 이해하지 못했다.
당사자라 넓게 볼 수가 없는 거였다. 그만큼 태건과 제 3자인 오광휘의 관점 차이가 상당했다.
그러던 태건은 이내 가늘게 미소 지었다.
선배들이 한달음에 달려온 모습이 다시금 떠올라서다.
‘기분 삼삼하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선배들의 따스한 걱정에 아픔마저도 가라앉는 거 같았다.
잠시 후.
태건은 대형 펌프차에 다가섰다.
오광휘 팀장은 다른 데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앞서 도착한 선배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사용한 장비를 정리 중이었다.
태건은 장비를 얼른 벗으며 말했다.
슥슥.
“얼른 장구류 벗고 돕겠습니다.”
“…….”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시선도 마주하지 않은 채 묵묵히 할 일만 이어갔다.
언제 걱정돼서 뛰어왔냔 듯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그럼에도 태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신입 시절처럼 먼저 다가갔다.
“정균 선배, 저는 뭘 할까요?”
“…….
스윽.
최정균은 말없이 자리를 피했다.
태건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 옆에 있는 표인철에게 다가갔다.
“선배, 호스 마십니까. 같이 말죠.”
“……그럼 네가 해.”
휙.
태건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냉기가 풀풀 풍겼다.
그때 조규찬이 무심하게 한 마디 했다.
“그렇게 무모하게 달려들기만 할 거면 여기서 멈춰.”
“…….”
“넌 아니라지만 우리 눈엔 불나방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터억, 척.
말을 마친 그는 사용한 공구들을 챙겨들고 펌프차 뒤쪽 공구함으로 떠나갔다.
결국 태건의 주변은 썰렁함만 가득했다.
태건은 쓴 미소를 지었다.
‘단단히들 화가 나셨나 보네.’
첫 출동부터 제대로 찍힌 게 썩 달갑지 않긴 했다.
그건 그거고.
둘둘.
앞에 늘어진 소방호스부터 말며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멀리 떠나간 건 아니었다.
함께 정리할 부분들이 있어 펌프차 근처에 있었다.
거리가 가까우니 움직이다보면 부딪치거나 손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슥, 턱.
“…….”
선배들은 아예 반응하지 않았다.
없는 사람 취급하듯 무심, 그 자체였다.
태건은 그래도 미소 지었다.
‘팔자지 팔자.’
그래도 어쩌랴.
지금은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리가 마무리 되어가던 중이었다.
소방관들에게 몇몇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바로 요구조자들이었다. 구급대원들에게 간단히 응급처치를 받았는지 드레싱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태건이 먼저 발견하고 멈칫했다.
“어?”
“소방관님.”
차자작.
다섯 명의 요구조자들이 동시에 도착했다.
태건은 얼른 살펴보며 물었다.
“다들 괜찮으세요?”
“당장 병원 갈 정도는 아니랍니다. 오늘 하루 쉬면서 상태 지켜보고 아프면 그때 가도 된다고 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잘 됐네요.”
태건은 제 일처럼 기뻐했다.
돌연 깡마른 요구조자가 태건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소방관님은 괜찮으세요?”
“저야 괜찮습니다.”
“괜찮기는요. 저희 보호하시느라 각목을 다 등으로 받았잖습니까. 멀쩡할 리가 있겠습니까?”
끄덕끄덕.
옆에 요구조자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그 소리를 가까이 있는 선배들도 같이 들었다.
움찔, 움찔.
“…….”
말은 하지 않았지만 뭔가 눈치 챈 모양이었다.
태건은 몇몇 선배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괜스레 난처해진 태건은 얼른 요구조자의 손을 빼며 말했다.
“같이 숨어 있었는데 무슨 말씀을…….”
스윽, 턱.
깡마른 요구조자는 더욱 붙든 손에 힘을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몰라도, 살려준 분이 어땠는지도 모르겠습니까.”
“맞습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잖습니까.”
“저도 봤습니다. 저희는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다 등으로 받아냈잖아요.”
“그전부터 그렇게 위험한데 달려와 주고, 우리 숨 쉬라고 계속 신경 써주고요.”
요구조자들이 돌아가며 태건을 칭찬했다.
그런데 그들뿐이 아니었다.
“잠시 실례 좀 합시다.”
턱, 턱.
뒤따라온 풍채 좋은 중년인이 종이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태건에게 다가와 불쑥 손을 맞잡고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우리 공장 사람들 살려주셔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요.”
“네? 그런데 누구신지…….”
“여기 사장입니다. 음료수하고 김밥하고 좀 가져왔습니다. 다 같이 좀 나눠드세요.”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저희가…….”
태건이 뭐라고 말하려 했다.
사장은 이미 직감했는지 자기 말을 앞세웠다.
“우리도 그 정도는 압니다. 그리고 설마 은인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겠습니까?”
“은인이라니요. 그냥 제 일을 한 건데요.”
“어이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무리 일이라도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사장의 말에 요구조자들이 얼른 동조했다.
“난 사장님이 월급 10배 준다고 해도 못합니다.”
“진짜 그렇게 막 밀고 들어왔을 땐 구세주를 만난 줄 알았습니다.”
“이 사람아, 구세주를 만난 거지.”
“맞아요. 정말 다 죽은 목숨이었는데, 덕분에. 정말 덕분에 살아있습니다.”
태건을 향한 극찬은 식을 줄 모르고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낯 뜨거운 태건은 이제 얼굴까지 벌게지려 했다.
얼른 이 상황부터 마무리 지어 버렸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저희가 곧 복귀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팀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시간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저희가 배은망덕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잘 받았고, 잘 나눠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태건은 아예 인사를 해 버렸다.
그러자 사장과 요구조자들도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 언제든 지나가다 들어오세요. 진짜 그냥 훅훅 들어오셔서 차도 마시고, 놀다 가세요.”
“알겠습니다. 피해복구 잘하시고요.”
“어휴. 그건 나중에. 사람 목숨이 우선이지요. 어이쿠,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얼른들 가자고.”
슥슥.
사장이 얼른 요구조자들을 밀어내며 자리를 피해줬다.
요구조자들은 그래도 아쉬운지 계속 돌아보고 손을 흔들어줬다.
휙휙.
“고마워요.”
“강태건 소방관님, 평생 그 이름 잊지 않을게요.”
“다음에 따로 만나 소주 한 잔 합시다!”
그들의 인사는 저만치 멀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이제야 주변이 조용해졌다.
태건은 계면쩍은 마음에 괜스레 종이상자를 열어젖혔다.
처억.
“김밥에 음료수에 엄청 많네.”
“…….”
“크흐흠. 선배님들 드셔야죠. 얼른 집으셔야 구급하고 구조도 나눠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태건은 괜히 다른 팀을 핑계 삼아 권했다.
“…….”
선배들은 딱히 반응이 없었다.
아니, 뭔가 진지하게 고심하는 거 같았다.
“선배님들?”
머쓱해진 태건이 다시 불러봤다.
바로 그때였다.
서순영이 빠르게 좌우를 둘러보며 으르렁거렸다.
“구조대 새끼들 어딨어. 빌어먹을 새끼들……. 야, 아까 누가 우리한테 헛소리했어!”
쿵쿵.
구조대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살벌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최정균도 인상을 팍 구기며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야, 구급대. 아까 나한테……. 너였지. 너 이리와. 당장 이리와 새꺄!”
타다, 타다닥!
단숨에 속도를 올려 누군가를 잡으려 뛰어갔다.
태건은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눈을 끔벅거렸다.
“왜 이래?”
그때 조규찬과 표인철이 다가왔다.
그중 조규찬이 민망한 얼굴로 애써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좀 심했다.”
“그래. 태건아, 전해 듣다 보니까 오해가 좀 있었어.”
표인철도 뒤따라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