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태건은 이런 상황이 좀 놀라웠다.
‘쑥스러워 모르는 척 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렇게 직접 사과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상 밖이라 태건도 멈칫했다.
“아닙니다, 뭐……. 이거 참. 이게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스윽.
태건은 괜히 종이상자를 핑계 삼았다.
그러자 조규찬이 그 부분만큼은 명확하게 말했다.
“요구조자들 눈은 정확해. 너도 알잖아.”
“맞아. 너한테만 고맙다고 했으니까.”
선배들의 말은 확신과 단호함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태건은 거기에 뭐라고 부정을 말할 수가 없었다.
대신 김밥과 음료수를 불쑥 내밀었다.
“이거부터 받으시죠.”
“……잘 먹을게.”
“다 같이 고생했는데요.”
“누가 뭐래도 이건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조규찬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태건은 오히려 뻘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불을 혼자 끕니까.”
“…….”
“그럼 전 이거 좀 나눠주고 오겠습니다.”
처억.
태건은 종이상자를 들고 먼저 몸을 움직였다.
솔직히 자리를 피한단 표현이 옳았다.
‘당황스럽네.’
갑자기 저렇게 말을 걸고 사과를 하니 태건이 더 어색했다.
묵직.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졌고 종이상자를 내려다봤다.
음료수와 김밥이 빼곡했다.
“컵라면에서 많이 업그레이드 됐네.”
든든히 요기할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편.
조규찬과 표인철은 복잡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표인철이 조규찬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금 태건이가 했던 말이요. 불은 혼자 끄냐, 그 말…….”
“채용이 형이 우리한테 자주 했던 말이지.”
“그걸 저 녀석도 기억. 아니, 담고 있었네요.”
“인철아. 막내 상황이 너한테 닥쳤다면 어떻게 했겠니.”
질문하는 조규찬의 목소리가 너무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건 대답하는 표인철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들기야 했겠죠. 그런데 결과는 장담 못하겠습니다.”
“그럼 하나 더 묻자. 막내가……. 저런 막내가……. 1년 사이에 어떻게 저리 변한 걸까?”
“안 그래도 저도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주어가 빠졌지만 그날 사고를 뜻하는 대화였다.
조규찬과 표인철은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거 같았다.
더 복잡하기 싫은 건지, 그 후론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최정균과 서순영이 양 무리 속 늑대처럼 활개치고 있었다.
둘 다 구디소방서 내에서 경력상으로 봐도 꽤 고참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깽판 놓고 있었다.
우선 최정균은 구급대원들을 팔로 감싸고 다리를 꼬아 괴롭히며 소리쳤다.
“유언비어 좀 날조하지 마라!”
“아아악!”
붙들린 구급대원들은 아픔에 곡소리를 냈다.
다른 쪽에선 서순영은 구조대원들을 한데 모아 놓고 쓴소리 중이었다.
일명 ‘집합’이었다.
“앞으로 현장에서 확실하지도 않는데 함부로 떠드는 새끼는 내 손에 죽는다.”
“네.”
“그리고 우리 막내한테 관심 꺼.”
휙!
할 말을 마친 서순영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구조대원들은 다들 자신의 목을 얼른 확인했다.
“살아있지?”
“서 선배가 깽판 놓으면 장난 아닌데 오늘은 어쩐 일이냐.”
“이게 더 무서운 거야. 경고까지 했는데 걸리면 소방서 뒤로 끌려가.”
“헙, 다들 입조심 합시다.”
구조대원들은 두 눈 가득 결심을 세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 태건이 종이상자를 들고 왔다.
“선배님들 고생하셨습니다. 이거 간식을 준비해 주셔서 가져왔는데요.”
구조대원들은 움찔하며 얼른 반색했다.
“어, 어어. 그래그래. 우리 몇 명이지?”
“무겁겠다. 일단 적당히 빼자.”
“알겠습니다. 태건아, 네가 고생이 많다. 수고했어.”
구조대원들은 살갑게 굴기까지 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구급대원들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벼워진 종이상자를 들고 펌프차로 향하는 길.
태건은 심히 진지하게 갸웃거렸다.
“선배들이 뭘 어떻게 한 거지?”
자신을 향한 너무도 달라진 반응이 의아하기만 했다.
* * *
다행히 복귀하는 길은 평안했다.
부웅.
낮 시간이라 도로도 크게 복잡하지 않았고, 다른 출동도 접수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들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태건도 속을 든든히 채우고 깜빡 잠들어 있었다.
“…….”
고요한 펌프차 안에 돌연 문자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그 소리에 태건이 번쩍 눈을 떴다.
휴대폰을 들어봤지만 자신의 휴대폰은 아니었다.
“흐음.”
그리고 다시 눈을 감으려 할 때였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 보니 오광휘 팀장과 조규찬이 휴대폰을 확인 중이었다.
‘저쪽인가 보네.’
해당사항이 없으니 이내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오광휘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균아, 저기 잠깐 세워.”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펌프차가 서서히 멈췄다.
끼익.
멈추는 느낌에 태건을 포함한 모두가 눈을 떴다.
도착한 줄 알았다가 도로가에 서 있자 모두가 의아해했다.
“여긴 갑자기 왜?”
“출동 접수 중인가?”
그 소리들을 뚫고 오광휘 팀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태건, 내려.”
“저요?”
척.
태건이 자신을 가리키며 놀라워했다.
오광휘 팀장은 조수석에서 몸을 돌린 후 밖을 손짓하며 말했다.
“저 건물 2층에 한의원 보이지. 냉큼 다녀와.”
“지금 근무 중입니다.”
“그 몸뚱이로 무슨 출동이야. 치료받고 복귀해. 출동 있으면 문자 날릴 테니까. 어서.”
오광휘 팀장은 꽤 단호하게 재촉했다.
태건은 멈칫했다.
‘팀장님이랑 규찬 선배였지.’
휴대폰을 들고 있던 이들이었다.
설마?
휙.
태건의 시선이 바로 조규찬에게로 향했다.
“…….”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다들 의아해하는데 혼자만 저러고 있었다.
태건은 그 모습으로 확신했다.
‘참 어설퍼.’
그래도 신경써주는 건데 무작정 밀어내기만 하지 않았다.
태건은 다시 오광휘 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다녀와도 됩니까?”
“얼른 내리기나 해. 우리도 들어가서 정리하고 좀 쉬게.”
“다녀오겠습니다.”
철컥.
인사한 태건은 이내 펌프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태건은 한의원 치료실에 상의를 벗고 엎드려 있었다.
퍼렇다 못해 보랏빛 멍이 군데군데 심했다.
그 위에 투명한 부항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혈을 했는지 거무죽죽한 피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그렇게 엎드린 태건은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으으으. 좋다.”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기분이 날아갈 거 같았다.
같은 시각.
소방서로 복귀한 오광휘 팀장은 박민석 서장과 독대 중이었다.
탈칵.
찻잔을 내려놓은 박민석 서장 표정이 무척 진지했다.
“1년 사이 베테랑 소방관이 되어 있었다고라.”
“솔직히 제가 알던 강태건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때, 앞으로도 문제없을 거 같아?”
“이제 첫 출동이었습니다. 좀 더 지켜보는 게 우선일 거 같습니다.”
오광휘 팀장이 사뭇 진지하게 의견을 말했다.
박민석 서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계속 좀 잘 지켜봐라.”
“그러려고 방까지 내줬잖습니까. 그나저나 정말 그 분이 태건이에게 관심을 보인다고요?”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몰라……. 같이 산다고 했으니 네가 한 번 찔러 봐봐.”
“일단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오광휘 팀장은 음료수를 들이켰다.
꾸깃.
이어서 텅텅 빈 음료수 캔을 구겼다.
현장에선 내색하지 않았지만 태건의 성숙한 대처는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웠다.
요구조자들의 무사 구조는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뭔가 있긴 한데.......’
* * *
며칠 뒤.
출동했던 화재팀이 소방서 차고에 복귀했다.
철컥.
태건은 신속히 내려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방화장비를 거치대 근처로 가져가 정비하기 시작했다.
뚝딱, 뚝딱.
장비를 다루는 손길이 능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웠다.
그중 방화복을 들어보였다. 상하의 모두 꺼뭇꺼뭇하게 타들어간 흔적들이 꽤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탄내도 꽤 진하게 났다.
“이 정도면 다음 출동부터 입긴 어렵겠네.”
찰칵, 찰칵.
이내 내려놓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후 다른 장비들 정비를 이어갔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자기 장비는 생명처럼 다뤄야 했다.
그건 곧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라 더없이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태건을 향한 선배들 시선이 착잡했다.
“이번에도 위험했어.”
“하지만 요구조자들은 확실히 안전하게 구했죠.”
“머리 아프니까 그만 합시다.”
“맞습니다. 또 출동 떨어지기 전에 장비부터 정비해야죠.”
스윽.
선배들은 곧 몸을 돌렸다.
그러나 한 번씩 저 멀리 있는 태건을 힐끔거렸다.
그 시선이 뜨겁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차갑기도 했다.
한편.
정비를 마친 태건은 곧장 소방행정과로 향했다.
소방행정과.
각종 행정 업무와 장비관리, 홍보교육을 담당하는 사무실이었다.
끼익.
“실례합니다.”
“어?”
태건의 등장에 다들 멈칫했다.
화재팀원이 찾아온 건 특별하지 않지만 태건이라면 조금 얘기가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사실 워낙 유명한 신입인 탓이다.
…….
사무실이 곧 고요해졌다.
안면이 있음에도 대놓고 낯설어하는 게 느껴졌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장비회계팀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이내 재고담당자 앞에 도착했다. 담당자는 이영수 소방사였고, 내근이 많아 그런지 상체보다 하체가 좀 더 튼튼해 보였다.
표정은 늘 스트레스로 찡그리고 있었다.
태건은 이영수에게 간단히 인사부터 했다.
“안전, 안녕하셨습니까.”
“어, 어. 강태건. 화재팀에서 어쩐 일이야?”
“방화복 교체 좀 하려고 합니다.”
그 소리에 이영수 표정이 대번에 확 구겨졌다.
“야, 뭔 소리야. 방화복이 여분이 어딨냐.”
“신청하면 언제 나옵니까?”
“나도 몰라. 그거 알면 내 머리카락이 안 빠지겠지.”
이영수는 마치 기선 제압하듯 쓴소리부터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듬성듬성 빈틈이 보였다.
솔직히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 원래 숱이 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