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빌라 화재현장.
화르륵!
주택가 한가운데 솟은 5층 높이의 빌라 한 채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주민들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눈앞에 참상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히 피신해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엔 안중에 없었다.
타들어간 머리카락도, 불똥이 튀어 구멍 난 옷도, 심지어 맨발인 모습도 개의치 않았다.
아무거나 손에 쥐어진 걸 휘둘러 불길을 잡으려 했다.
이 안에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가족들이 있었다.
“안 돼, 아버지!”
“얘야!”
풀럭, 풀럭.
그 휘두름은 처절하고 간절했다.
하지만 이미 불어난 불길을 멈추기엔 너무도 미약한 손길이었다.
불에게는 인간의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다 태우고 소멸시킬 뿐이다.
그걸 주민들은 몰랐다.
아니,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족이 불 속에 갇혀 있단 사실만으로 이미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미쳐버릴 거 같았다.
비록 자신의 행동이 보잘것없을지라도, 심지어 실낱보다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처절한 손길은 한순간도 멈출 수가 없었다.
주변 거주민들도 벌써 몰려나와 있었다.
그들은 지켜만 보지 않았다.
애타는 빌라 주민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강하게 발동했다. 또 자신들의 거주지까지 화마가 미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물 가져와요!”
“소화기, 집에 있는 소화기들 가져와요!”
“여기 가져왔어요!”
촤악, 푸아악!
길어온 물과 소화기를 뿌리고 또 뿌렸다.
하지만 불길이 밀려난 건 극도로 자그마한 면적일 뿐이었다.
그조차 한순간이었다.
화르륵!
모두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길은 다시 득세했다.
티끌만 한 희망이 사그라져갔다.
“으아아아…….”
“놔, 내가 들어갈 거야, 놔!”
“안 됩니다. 어떻게 들어간다고요!”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
또 이성을 잃고 불길로 향하려는 사람들과 또 말리는 사람들.
그들이 뒤섞인 이곳이야 말로 ‘지옥’이었다.
그때였다.
에에엥.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급격히 커져갔다.
이윽고 골목길 끝에 빨간 소방차가 등장했다.
먼저 발견한 사람들의 얼굴이 화색으로 돌변했다.
“소방관들이다!”
“왔다!”
반가움에 목소리가 찢어지도록 소리쳤다.
잠깐 사이 골목길을 질주한 소방차가 불타는 빌라 앞에 급정거했다.
끼이익, 벌컥!
멈추기도 전에 모든 문이 열리며 방화장비로 중무장한 소방관들이 뛰어내렸다.
화재1팀이었다.
상황은 말 그대로 불 보듯 뻔했다.
파악 따윈 무의미했다.
1초가 시급했다.
지시하는 오광휘 팀장의 발음이 너무도 선명했다.
“연장 챙기고 빨리 기어들어가!”
“…….”
우당탕, 촤락!
대답할 시간조차 아끼며 서둘렀다.
몇 명은 공구통에서 다급히 쇠갈퀴와 도끼 같은 작업도구를 챙겼다.
척, 척.
또 몇 명은 소방호스를 풀고 연결했다.
후룩, 후룩.
지체하는 찰나의 시간조차 아까웠지만 이건 최소한으로 필요한 준비절차였다.
그 짧은 시간.
빌라 주민들이 소방관들에게 달려왔다.
눈물콧물 가득한 얼굴로 다짜고짜 소방관들을 붙들며 애원했다.
“저기요. 빨리요!”
“우리 아버지가, 저기, 아이고, 저기!”
“우리 애가 안 보여요. 전화도 안 받아요. 제발요!”
“우리 집 다 탑니다. 어서 좀, 어떻게 좀!”
간절한 마음은 미어질 대로 미어져 있었다.
소방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었다.
“흠!”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그들의 간청이 미워서가 아니다.
그 아픔을 당장 위로해줄 수 없어서였다.
자신들이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게 없었다.
살린다.
구한다.
그 대전제를 가슴에 박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휘둘릴 수가 없었다.
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게 상책이었다.
“비켜주세요. 그래야 진입할 수 있습니다.”
“놓으십시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휙!
부탁만 하지 않고 매정하게 그들의 손을 뿌리치기까지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변에 도움도 구했다.
“이분들 좀 돌봐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지켜보던 사람들이 얼른 다가와 빌라 주민들을 떼어놓았다.
“이러시면 더 늦어지기만 해요!”
“이리 나와요. 어서요!”
턱턱.
몇 명씩 달려들어 한 명을 겨우 뒤로 물릴 수 있었다.
그만큼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힘은 더 셌다.
그리고 끌려가는 와중에도 처절한 애원은 계속됐다.
“제발 빨리, 제발!”
그런 아비규환 속에도 소방관들은 신속히 준비했다.
반면 태건은 새 방화복을 입고 불이 일렁이는 빌라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오광휘 팀장도 새로운 방화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가와 어깨를 건드리며 한 소리 했다.
툭.
“짜샤. 왜 멍 때리고 있어, 당장 안 튀어 들어가?”
“잠시만요.”
“그러니까 왜!”
“잠시만…….”
스윽.
태건은 아래로 내리는 손짓까지 해보였다.
진정하고 자신을 좀 놔두란 의미였다.
오광휘 팀장은 한껏 째려봤다.
“불 감상 중이냐?”
“쉿.”
“척 보면 몰라? 다 타고 있잖아……. 에잇, 다들 뭐하냐. 빨리 뛰어!”
답답해진 오광휘 팀장은 결국 먼저 몸을 돌렸다.
그런데도 태건은 불타는 빌라만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화르르륵!
5층 구조에 좌우로 세대가 구성되어 총 10세대 건물이다.
그런 파악이 무의미할 정도로 거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도 태건은 계속 뚫어지게 바라봤다.
‘넌 그래서 뭐가 문제냐.’
쭉 살펴본 태건이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전체적인 화염의 기세가 절정에 이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새 방화복 입길 잘했네.’
오늘은 요구조자 구출이 만만치 않을 거 같았다.
번뜩!
이내 눈길을 거두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곧 준비를 마친 태건의 모습은 다른 선배들과 차이가 있었다.
로프를 어깨에 사선으로 둘렀고, 안전벨트엔 비너와 인명구조경보기를 장착했다.
또 도끼와 쇠갈퀴를 좌우에 걸고 있었다.
개인 진압용품 레벨로 보면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
치렁치렁.
걷을 때마다 장비들이 눈을 어지럽힐 정도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처억!
어느새 한 손에 소방호스가 들려 있었다.
“됐어.”
이제 준비 완료다.
뒤에선 주민들의 애원과 절규가 높아져갔다.
그들의 마음,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최후의 한 명까지 포기란 없었다.
차자작.
순간 다짐하며, 두 다리는 바쁘게 빌라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태건의 어깨를 붙든 손길이 있었다.
턱.
“어딜 가, 넌 현장 통제야!”
뒤에서 들리는 단호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서순영이었다.
태건은 어깨의 손을 그대로 밀어냈다.
휙!
“먼저 갑니다.”
“이런 시건방진 새끼. 거기 안 서!”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다시 현장에서 밀어내려는 의도가 가득 느껴졌다.
그 순간 태건이 고개 돌려 그를 바라봤다.
태건의 두 눈엔 불꽃이 일렁거렸다.
그것도 하얀 불꽃이었다.
찌잉!
빌라 삼킨 시뻘건 불꽃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눈빛이었다.
주변에 자욱한 연기마저 밀어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서순영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듯 뒷걸음질 쳤다.
터덕.
“엇…….”
그 순간 태건이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가 더 중요한지 아시잖습니까.”
“…….”
“실례합니다.”
휙!
돌아선 태건이 공동현관으로 내달렸다.
일순간 눈빛에 제압당한 서순영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뭔가 있다.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너, 너…….”
그런 그의 곁을 쏜살같이 지나치는 인물이 있었다.
오광휘 팀장이었다.
타다닥!
“강태건. 내가 여깄는데 왜 니가 먼저 뛰어!”
“팀장님.”
“서순영. 이 상황에 뭘 따져 새꺄, 너부터 정신 챙겨!”
따가운 질책과 함께 오광휘 팀장은 공동현관으로 내달렸다.
그 뒤를 화재팀원들이 차례로 쫓았다.
“갑시다!
“뛰어!”
“…….”
서순영도 이내 표정을 지우며 뛰기 시작했다.
태건에 대한 걱정은 일단 묻어뒀다.
지금 뭐가 더 중요한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화재팀이 공동현관으로 내달리던 중이었다.
인이어에서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구조대 도착, 펌프차 지원합니다. 물대포 발사!
-띠릭. 소방호스 펌프 돌렸습니다!
-띠릭. 구급대, 경찰 도착, 현장 통제 실시합니다!
이어서 도착한 지원군들 소식도 들려왔다.
좋은 소식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다.
촤아악!
공동현관으로 날아가는 굵직한 물줄기가 가장 반가웠다.
같은 시각.
태건이 가장 먼저 공동현관 앞에 당도했다.
화르르륵!
거센 불길이 진입을 허락할 수 없단 기세로 앞을 가로막았다.
불과 첫 만남은 늘 똑같았다.
들어오지 마.
타협 없는 거부부터 내보였다.
하지만 이쪽도 타협할 일말의 여지가 없는 건 똑같았다.
‘길 열어 새꺄!’
찌릿!
두 눈에 힘을 주며 노려봤다.
그와 동시였다.
마치 반발을 하듯 불길이 거친 화염을 쏟아냈다.
푸아아악!
열기가 범상치 않을 정도로 거셌다.
호흡기 커버 안에 후끈함이 가득 차올랐다.
“크윽! 대체 뭐가 타는 거야.”
투정이 무색할 정도로 소방호스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불룩!
지금이다.
신속하게 소방호스 노즐을 열어 물을 쏘았다.
촤아악!
동시에 물의 압력이 몰아쳐왔다.
‘흡, 이 까짓것!’
온몸에 힘을 주며 버텼다.
그 순간을 기다렸단 듯이 머리 위로 펌프차의 물대포가 지원사격을 했다.
콰아악!
소방호스와는 방수량부터 확실히 차이가 났다.
거기에 오광휘 팀장이 절묘한 타이밍에 도착하며 대답까지 해줬다.
“옛날 건물이라 복도도 타들어가는 거야!”
촤아악!
그가 들고 온 소방호스도 힘찬 물줄기를 쏘아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