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일순간 세 개의 굵고 얇은 물줄기들이 쏟아지자 득세하던 불길도 주춤했다.
연기까지 밀어내 공동현관 내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1층 좌우측 현관이 모두 열려 있었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불길이 공동현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 분명했다.
오광휘 팀장의 따가운 짜증이 들려왔다.
“저거? 젠장!
“이 상황에 누가 문 닫고 나오겠습니까!”
“누가 뭐래, 새꺄! 건방지…….”
오광휘 팀장이 안타까움에 괜히 툭 쏘는 뒷말을 이어갈 찰나였다.
타다닥.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태건의 귀가 꿈틀거렸다.
선배들이 온다.
길을 열어야 한다.
그 생각과 동시에 옆으로 몸을 옮기며, 손이 없는 관계로 오광휘 팀장을 발로 밀었다.
터억!
“커윽, 이 새끼!”
“옵니다. 집중!”
태건이 소리친 바로 그때였다.
“지나갑니다!”
휙휙휙.
화재팀원들이 둘 사이를 쏜살같이 지나쳐갔다.
그제야 태건이 과격하게 행동한 이유를 알아챈 오광휘 팀장이었지만 호흡기 커버 안쪽 얼굴이 쀼루퉁하게 변했다.
“짜샤, 말로 해도 알아듣거든!”
“고고, 무브, 무브!”
착착.
태건은 어느새 공동현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졸지에 혼잣말을 하게 된 오광휘 팀장이 뒤따르며 이를 갈았다.
“저게 미국 물 먹더니, 위아래가 카오스네!”
태건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벌써 2층에 올라와 있었다.
여기까지는 앞서간 선배들이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3층까진 진입이 안 된 모양이다.
층계를 따라 밀려 내려오는 엄청난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칫!”
촤아악!
태건은 노즐을 조절해 방사형으로 바꿔 연기를 억제했다.
연기는 분명 위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너무 과하게 발생하면 역으로 밀려 내려오기도 했다.
위의 상황이 더 좋지 않단 반증이기도 했다.
“…….”
연기를 억제하는 태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태건의 인이어에서 선배들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101호 진입, 불길 억제, 요구조자 수색!
-띠릭. 1호 라인 구조.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작은 방, 오른쪽으로 거실, 앞에 안방…….
빠르게 파악한 정보들을 모두와 공유했다.
그리고 현장 내 상황도 계속 무전으로 알렸다.
화마가 들이치는 다급한 상황이라 존대보다 짧고 굵게 무전했다.
-띠릭. 102호 진입, 젠장, 책이 많아, 이쪽에 소방호스 하나 더 지원바람!
-띠릭. 201호 요구조자 1명 발견, 연기흡입 과다, 지금 내려간다!
-띠릭. 202호 진입…….
귀가 따가운 무전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만큼 활발한 수색과 불길 억제가 진행되고 있단 의미와 같았다.
당장 주변이 연기로 가득했지만 무전기 소리가 혼자가 아니란 위안을 줬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아앙!
커다란 폭발소리와 함께 빌라가 흔들렸다.
태건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재빨리 좌우를 둘러봤다.
“뭐야, 젠장.”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혼자만 놀랐을 리가 없었다.
가까운 곳에서 오광휘 팀장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육성과 인이어를 통해 동시에 들려왔다.
“쓰브럴, 장난해! 가스 차단 안 됐어? 빨리 확인해!”
-띠릭. 쓰브럴, 장난해! 가스 차단 안 됐어? 빨리 확인해!
밖에서도 방관하지 않았는지 빠르게 대답이 들려왔다.
-띠릭. 구조대장이야, 신고 접수 받자마자 차단했다고 가스공사 직통라인으로 확인했어.
-띠릭. 그럼 이건 뭔데!
-띠릭. 잔여 가스 아니면 부탄가스겠지.
-띠릭. 빌어 쳐 먹을, 화재팀 이상 보고!
오광휘 팀장의 외침에 선배들 무전기가 차례로 울렸다.
-띠릭. 조규찬 문제없습니다.
-띠릭. 서순영 이상 무.
-띠릭…….
마지막이 태건의 차례였다.
띠릭.
“강태건, 이상 없습니다.”
-띠릭.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움직여, 불에 눈 없다!
그 목소리는 인이어로만 들려오지 않았다.
차자작.
계단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헤치고 오광휘 팀장이 나타났다.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짜샤.”
“컴, 컴!”
타다닥.
태건은 기다렸단 듯이 물을 쏘며 계단 위를 뛰어올라갔다.
더 위험한 장소로 달려드는 꼴이었다.
호흡기 커버 속 오광휘 팀장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저 자슥이 현장만 들어오면 지가 대장인 줄 아네……. 같이 가, 인마!”
차자작!
쓴소리조차 시간낭비란 듯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최고층까지 박차고 올라갔다.
좌우 현관문이 닫혀 있었다.
아래서부터 올라온 검은 연기들이 뭉쳐 있었다. 조그마한 비상 창문으로는 충분히 환기될 양이 아니었다.
그만큼 연기가 절정에 다다른 장소였다.
당장 불은 보이지 않지만 유독가스가 섞인 짙은 연기가 더 문제였다.
얼마나 시야를 차단하는지 플래시로 비춰 봐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호흡기 커버 안쪽까지 슬금슬금 밀려올 정도였다.
촤아악!
“크으윽!”
“뭔 연기가!”
“팀장님!”
“오케이!”
척하면 척이다.
하우스메이트에 걸맞게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처억!
어느새 등을 붙인 두 사람은 얼른 방사형으로 물을 쏴 주변의 연기를 밀어냈다.
습기를 머금은 연기가 뭉쳐져 아래로 조금씩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왜?
띵!
일순간 태건의 두 눈이 갑자기 어지럽게 움직였다.
미국에서 갈고닦아온 경험이 오늘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이리저리 꼬인 연기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래서 올라온 연기가 옥상으로 향하다가……. 막혀?’
번쩍!
태건의 눈빛이 순간 빛났다.
그때 오광휘 팀장도 나름 상황을 분석했는지 쓰게 소리쳤다.
“이거 옥상 문 닫혀 있는 거 아니야?”
“아니요. 열려 있습니다.”
그건 태건의 말이 맞았다.
번쩍, 번쩍.
연기가 조금 가라앉자 얼핏얼핏 햇빛이 비췄다.
오광휘 팀장도 봤는지 더욱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그럼 왜 빠지지 않는 건데……. 여기서 이래봐야 뭔 소용이야. 올라가서 확인부터 할게.”
“아니요. 제가 가겠습니다. 퇴로를 확보해주세요.”
“뭘 다 네 마음대로 하냐!”
“원래 말단이 하는 일입니다. 이거 받으시고 팀장님은 불 좀 꺼주세요.”
턱.
태건은 자신의 소방호스를 떠안기고 그대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양손에 소방호스를 쥐게 된 오광휘 팀장은 황당하기만 했다.
“이럼 내가 어떻게 무전을……. 일단 옜다!”
촤아악!
그는 고민을 뒤로하고 우선 태건의 앞길부터 열어줬다.
동시에 곱절로 강해진 물의 압력을 굳건히 버텼다.
웬만한 소방관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해내고 있었다.
“크윽, 으으으!”
이를 앙다무는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도 흩트리지 않고 끝까지 태건이 나아갈 길을 열어줬다.
태건은 그의 헌신적인 서포트로 단숨에 마지막 계단에 올라섰다.
옥상문은 역시 열려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존재했다.
사람이 옆으로 지나갈 정도의 간격만이 남아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
집안에 공간이 부족해 내놓은 물건들이 비상통로를 막아버린 거였다.
“아, 좀!”
짜증이 나도 당장 따질 곳도 없었다.
잡동사니를 들어 그대로 옥상 문밖으로 분풀이하듯 내던졌다.
턱, 턱.
화분, 낡은 책장 등등.
무겁고 가볍고를 따질 정신도 없었다.
집히는 대로 무자비하게 내던져 버렸다.
우지직, 꽈직!
옥상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공간이 확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린 공간만큼 연기가 빠지는 속도도 빨라지는 게 보였다.
모두 내던질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어느 정도 연기가 빠져나갈 길만 열었으면 됐다.
‘다음!’
휙!
태건은 신속하게 옥상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윽고 옥상에 도착하니 검은 연기 사이사이 맑은 하늘이 보였다.
감상?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개도 어이없어 할 터였다.
태건은 잽싸게 옥상 난간으로 접근하며 무전했다.
띠릭.
“팀장님, 환기로 확보. 거기서 확인됩니까?”
…….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의아해하던 태건은 지금 오광휘 팀장이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챘다.
“아! 맞다.”
짐을 떠넘긴 게 본인이라 움찔했다.
이럴 땐 차라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태건은 옥상 문을 통해 나오는 연기의 양이 늘어난 걸로 오광휘 팀장의 대답을 대신했다.
이어서 한 번 더 무전했다.
“연기 잘 빠지네요. 확인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고 계십시오.”
…….
역시 답신이 없었다.
오광휘 팀장은 양쪽에 소방호스를 낀 채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을 터였다.
“크흠.”
태건은 양심이 살짝 찔렸지만 가볍게 외면했다.
그 사이 난간에 도착했다.
터덕!
난간을 집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연기 사이사이 펌프차, 그리고 구조대가 퇴로 확보를 지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 요구조자는 밖으로 구출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을 구급대원들이 초진하고 적절한 응급처치를 진행 중이었다.
경찰은 일대에 폴리스 라인을 두르고 통제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발을 구르는 이들이 있었다.
역시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집에 남은 요구조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태건은 느긋하게 구경하는 게 아니었다.
상황을 다시금 파악하는 중이었다.
5층 양쪽 집 모두 창문이 일부만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4층에서 올라온 불이 들이치고 있었다.
그래서 불길이 번진 게 분명했다.
“쯧!”
빌라로 진입하기 전에 뚫어지게 바라본 장소가 바로 저기였다.
삭삭.
그 사이 두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선으로 두르고 있던 로프를 빠르게 풀어내는 중이었다.
이 순간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온 거였다.
이 또한 경험의 산물이다.
“읏차!”
휘리릭!
이내 주변에 설치된 안전봉들을 둘러 단단히 결속했다.
이럴 때 쓰라고 건물을 건축할 때부터 만들어둔 소방시설이다.
단단히 묶고 남은 줄은 그대로 밖으로 내던졌다.
팽팽.
줄이 펴지자 비너를 방화벨트에 걸어 단단히 체결했다.
변변한 안전장치 하나 없었다.
오직 얇은 로프 한 줄에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다.
누차 안전을 강조하는 소방관이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다.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야만 해.’
철로 된 현관을 뚫는 시간보다 백번 빠른 길이었다.
터덕!
바로 태건은 난간에 올라가 등을 지고 섰다.
아래는 더 이상 내려다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