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화르륵!
불길이 방금 서 있던 자리에 엄습했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앞으로 움직였다면 불길의 중심에 휘말렸을 터였다.
아무리 강력한 방화복이라도 그건 버틸 수 없었다.
대신 불이 스치는 건 버틸 수 있었다.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서 움직여야 할 상황이다.
한 마디로 외줄타기 같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태건은 멈추지 않고 현관문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태건이 걸은 걸음은 열다섯 걸음 남짓이었다.
고작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 사이 화마를 간접적으로 얻어맞은 태건의 방화복은 위아래 모두 꺼멓게 변해 있었다.
새 방화복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였다.
슈슈슈,.
곳곳이 타들어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끝내 해냈다.
터엉!
터치다운하듯 주먹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흐, 흐으.”
도달했단 기쁨에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였다.
터더더덩.
“야야야야야, 태건이지, 너 막내지, 너 맞지!”
현관문이 요동치며 오광휘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건의 귀에는 달콤하게만 들려왔다.
“아, 팀장님.”
잠깐이지만 너무 그리웠던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긴장을 놓은 건 아니다.
여기까지는 과정이었고, 요구조자를 구출하기까지 한 걸음 더 남아 있었다.
곧장 문고리를 비틀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철컥.
“쯧.”
전자도어락의 플라스틱과 건전지는 이미 녹아 있었다.
하지만 몸체인 쇠는 다행히 무사했다.
살펴보는 사이 현관문의 움직임을 봤는지 밖에서 격한 반응이 왔다.
터더더덩, 덜컹덜컹.
“#%#$#$^.”
뭐라고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만큼 여러 말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 태건의 상황은 솔직히 너무 좋지 않았다.
너무 열기를 많이 머금은 상태였다.
더 지체하면 열기를 이기지 못해 쓰러질 지도 몰랐다.
이젠 태건, 본인의 생명까지도 위험했다.
인정사정 따윈 내다버렸다.
터억!
호흡기 커버를 현관문에 들이박으며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닥쳐!”
다행히 밖에서 반응이 있었다.
…….
요동치던 현관문이 거짓말처럼 멈추고 시끄러운 소리도 사라졌다.
그제야 태건은 수동으로 걸쇠를 돌릴 수 있었다.
끼릭, 치이익!
걸쇠마저 달궈져 방화장갑 속으로 화끈함이 밀려왔다.
“크으.”
그래도 마저 열어야 했다.
터엉!
태건은 온몸으로 현관문을 밀었다.
철컥.
약간의 틈이 생김과 동시에 현관문이 쑥 열렸다.
푸아악!
밖에는 오광휘 팀장, 그리고 선배들이 검댕이 다 된 모습으로 대기 중이었다.
두 손엔 온갖 연장들이 가득했다.
여차하면 문이 아니라 벽이라도 뚫었을 거다.
한 마디 비장했다.
그런 그들은 막상 태건을 보자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
치이익.
방화복이 검게 변해 있고, 온몸에서 풀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한단 건 있을 수 없었다.
그만큼 선배들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게 소방관이다.
반면, 태건은 요동치는 가슴을 빠르게 잠재웠다.
아직 감격할 때가 아니다.
요구조자 구조가 우선이다.
재빨리 옆으로 비켜 길을 열며 입을 열었다.
“제 집은 아니지만 일단 들어오시죠.”
너무도 태연한 반응에 멍하니 바라보던 오광휘 팀장과 선배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뭐……. 뭐라고. 짜샤!”
“그게 지금 할 소리냐!”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 태건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소식을 알렸다.
휙!
“화장실에 요구조자가 있습니다. 어서요!”
“그럼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넌 이리 나와, 새꺄!”
휙!
오광휘 팀장이 태건을 날렵하게 잡아당겼다.
그제야 거실 상황이 모두에게 공개됐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
절정에 이른 화염은 빨간색을 넘어 주황색이 비치기도 했다.
보통 화재보다 훨씬 높은 온도란 의미였다.
그 속을 태건이 아무런 장비도 없이 빠져나왔음을 모두가 목격했다.
“너, 너…….”
“구……. 후우. 구조부터.”
휘익.
태건은 느릿한 손짓으로 떠밀었다.
물론 다들 그럴 생각이었다.
오광휘 팀장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제군들, 소방호스 열고 돌진!”
“인철이, 순영이 좌우로 길 터, 그리고 나랑 정균이는 돌격!”
“이야야야!”
촤아악!
조규찬의 날 선 지시에 맞춰 선배들이 전원 물을 뿌리며 집안 내부로 밀고 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밀물과 같았다.
불과 물.
공존할 수 없는 둘이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물줄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거칠게 불길을 향해 쏟아져 검은 연기를 뿜어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광휘 팀장은 함께 하지 않았다.
옆구리에 끼우고 있던 소방호스 노즐을 태건을 향해 열었다.
푸아악!
엄청난 물이 지친 태건에게 쏟아졌다.
손을 들어봤지만 막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물을 얻어맞아야 했다.
“크으으.”
하지만 반발하지 못했다.
이런 행동 자체가 태건의 상태가 어떤지 직감하고 있단 증거인 탓이다.
이내 방화복이 충분히 젖었는지 시원함이 느껴졌다.
호흡기 커버가 답답했지만 아직 완전히 진화가 된 게 아니라 벗지는 못했다.
그래도 불 속에 있는 거보다 100만 배 정도 좋았다.
“하아아.”
열기가 빠지자 숨도 길게 쉬어졌다.
그때였다.
오광휘 팀장의 방화헬멧이 보이는가 싶더니 바로 충돌했다.
텅!
“크으윽!”
“빌어먹을 놈. 내려가서 보자.”
스산한 경고로 일축했다.
더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건 요구조자들의 구출이 시작된 탓이다.
베테랑 소방관 네 명이 각자 소방호스와 함께 달려든 작전이었다.
게다가 화장실만 집중 공략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서순영과 표인철은 소방호스로 계속 집안의 불길을 밀어내며 길을 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조규찬과 최정균이 한 명씩 들쳐 업고 나왔다.
“수건에 물을 묻혀서 버틴 걸로 보입니다만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화장실 문이 안쪽에서도 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진짜 큰일 났을 겁니다.”
연이은 보고에 오광휘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나한테 브리핑해서 뭐하자고, 빨리 내려가!”
“가고 있습니다!”
타다닥.
벌써 지나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때 502호의 문이 열리며 다른 화재팀원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태건과 달리 제대로 레펠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시간상 태건이 창문으로 뛰어든 걸 보고 곧바로 따라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준비를 갖춘 만큼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그런데 다급한 행동과 목소리는 결코 온전하지 않았다.
“이 안에 요구조자 세 명!”
“또 있어? 불은?”
“피해가 없진 않습니다만 계속 물을 뿌려서 최소화한 거 같습니다. 그러다 부상을 입기도 하고, 연기를 많이 마시기도 했습니다.”
핵심만 간추린 보고로 오광휘 팀장도 재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젠장. 순영이, 인철이. 거기 불 끌 때 아니야. 요구조자들부터 들고 날라!”
“저도, 끄응”
“넌 빠져, 새꺄.”
오광휘 팀장이 온몸으로 밀어버렸다.
그 힘을 견디지 못한 태건은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쿵.
“크윽.”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광휘 팀장은 눈길도 주지 않고 502호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무전했다.
띠릭.
“구조대장, 요구조자 세 명 추가 발견. 도합 다섯 명!”
-띠릭. 모시고 내려와, 빨리!
흘러간 시간만큼 구조대장의 목소리도 다급하게 울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태건의 귀에서도 울렸다.
-띠릭, 모시고 내려와, 빨리!
힐끔.
어깨 속 무전기를 떠올린 태건이 쓴 미소를 지었다.
“너도 열이 식으니까 제정신이 돌아오냐.”
열기에 약해지는 건 사람도 기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곧 선배들이 요구조자들을 어깨에 들쳐 업고 502호에서 나왔다.
아직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게 아니라 열기와 연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오광휘 팀장도 요구조자를 둘러멘 채 선두에 섰다.
“뒤에 인철이, 막내랑 같이 내려와!”
“알겠습니다!”
“일단 후퇴야. 재정비하고 다시 진입해서 제대로 화재진압한다. 크윽. 다리는 왜 이 모양이야!”
순간 후들거린 다리를 원망하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역시 두 개의 소방호스를 홀로 버텼던 게 체력적으로 많은 무리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판단하는 태건의 상황도 그리 좋진 않았다.
“끄응.”
터억.
“괜찮아?”
표인철이 얼른 부축하며 물었다.
태건은 초승달 미소를 그리며 안심시켰다.
“그럼요. 호스 챙겨야죠.”
“내가 할 테니까 넌 그냥 내려오기나 해.”
척. 척.
표인철은 신속히 물 빠진 소방호스들을 챙기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 뒤를 태건이 터덜터덜 뒤따랐다.
턱. 턱.
온몸에 힘이 빠져 서두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내려와 3층을 지날 때였다.
태건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여기는…….”
301호, 302호 모두 문이 열려 있었다.
진입한 흔적이 보였지만 거실에 일어난 화재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그게 너무도 이상했다.
그런 태건의 머뭇거림을 본 모양이다.
표인철이 소방호스들을 끌어안고 내려가며 말했다.
“3층 양쪽 집 따고 진입하던 중에 네 소식 들었어.”
“아…….”
“팀장님이 쌍 소방호스 끼고 혼자 커버 치고 계시더라. 그분도 확실히 대단해.”
“귀감이 되시기에 충분하죠.”
“넌 지금 그딴 소리가 나오지……. 상황 끝나고 보자. 오늘은 진짜 따로 얘기 좀 해야겠으니까. 왜 거기 서 있어. 빨리 내려와.”
턱, 턱.
표인철은 싸늘하게 재촉하며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태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신경이 자꾸 302호에 쏠렸다.
진입하던 중이라면 내부를 완전히 둘러보지 않았을 거란 의미가 될 수도 있던 탓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가롭게 고민할 처지가 아니었다.
몸이 좋지 않은 이유도 있다.
그보다 2층이 완전 소화되지 않았는지 연기가 스멀스멀 오르고 있었다.
태건은 지금도 맨몸이었다.
표인철이 소방호스를 모두 회수했기에 불과 맞설 무기가 없었다.
저 불길을 또 뚫을 자신이 없었다.
……내려가자.
고민 끝에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