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그런데.
“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찝찝함 탓일까?
아니, 그게 맞는 모양이었다.
그 찝찝함의 원인은 현관에 있었다.
아이 신발이 한 짝 밖에 없었다.
다른 한 짝을 신을 틈도 없이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일 터였다.
그렇게 생각을 굳히려 했지만 또 이상한 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거실에 다른 신발 한 짝이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신발장도 불길에 가득 휩싸여 있었다.
거기까지 눈에 담은 그때였다.
스스슥.
자신도 모르게 동공이 확장됐다.
그리고 달라진 시야가 정보를 강제로 알려줬다.
‘불길이…….’
천장 벽지를 타고 신발장에 닿은 모양이다.
그런데 집안 내부보다 이쪽이 먼저 불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럼 신발장에 불이 먼저 닿았다고?
현관까지 나왔던 사람이 불길에 놀라 다시 안으로 숨어들었을 수도 있었다.
이건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저 불길의 흐름으로 그려본 그림이지 확신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살펴본다면 지금 밖에 기회가 없었다.
“……에잇.”
척.
태건은 302호로 몸을 돌렸다.
찝찝함을 남긴 채 현장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미국에서 태건은 특별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더 라스트.
괜한 별칭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모두의 안전을 책임지며 생겨난 유일한 호칭이다.
한국에 왔다고 그 별칭까지 버린 건 아니었다.
‘닉값이 무겁네.’
앓는 소리 한다고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 이름을 어깨에 지고, 책임을 다하는 게 자신의 숙명이다.
그래서 태건은 302호 안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화재팀 소방관들이 우르르 빌라 밖으로 탈출했다.
둘러업고 온 요구조자들을 대기 중인 구조대원과 구급대원들에게 인계했다.
“받아!”
“이쪽으로!”
“여기도!”
턱, 턱.
그렇게 어깨가 가벼워지고 나서야 자신을 챙길 수 있었다.
그들의 방화복은 어느새 곳곳이 그을려 있었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간 상황도 펼쳐졌다.
툭툭.
“칫. 방화복에 불씨는 뭐야. 막판에 닿은 모양이네.”
“헉헉. 그럼 이제 다 구한 거지?”
“팀장님, 확인 좀 해주세요. 푸우우.”
맥이 쭉 빠지는 상황에서도 현장수칙을 앞세웠다.
오광휘 팀장은 역시나 엉망인 모습이었지만 이미 확인에 들어갔다.
터벅터벅.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아직 못 나온 분 없으시죠?”
“……아아악, 아악. 우리 애. 우리 애가!”
눈물콧물 범벅이 된 여성이 오광휘 팀장을 붙들고 절규했다.
그 소리에 오광휘 팀장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애요? 다시 잘 좀 찾아보세요!”
동요하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이, 이런…….”
“저길, 저길 들어가야 된다고…….”
소방관들은 불타는 빌라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소방관도 사람이다.
두려움이 없을 수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리고 빌라의 화재도 계속 진행 중이었다.
1층 두 가구만 대부분 불씨를 잠재웠을 뿐이다.
남은 4개 층은 여전했다.
화르르륵!
격동하는 불길의 기세는 두 번째 접근을 원천 차단할 기세였다.
물대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불을 공격하고 있었다.
촤아악!
그래서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소방관들이 화재진압 작업으로 호응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게 아닌 지금은 보합 상태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들어가야 한다.
요구조자가 있다면 들어가는 게 옳았다.
후들후들.
소방관들의 손끝이 떨려왔다.
재진입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반응하고 있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은 지금, 재진입은 불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웠다.
그건 곧 부상으로 이어진다.
그 위험성이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제, 젠장!”
공포와 신념이 충돌하며 패닉을 일으켰다.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하면?
남은 가족들이 힘들다.
아직 대한민국에서 순직 소방관에 대한 예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죽는다면?
가족이 힘들어진다.
가장의 무게.
그 하나가 소방관들의 발걸음을 잡았다.
그때 마지막으로 나온 표인철이 둘러보다 격하게 놀랐다.
“마, 막내! 태건이가 안 보입니다!”
“뭔 소리야. 같이 내려오라고 했잖아!”
“분명히 그랬는데, 그랬는데…….”
“당황하지 말고 일단 뒤져봐. 소방차 안에서 다리 뻗고 있을 수도 있어!”
오광휘 팀장이 애써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시선은 이미 빌라로 향해 있었다.
지금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뭔지 모를 불안함이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건 다른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멈춰 있지 않고 빨리 무전기를 누르며 호출도 했다.
-띠릭. 강태건. 응답해라 강태건.
-띠릭. 태건아. 너 대체 어디야?
-띠릭. 막내, 막내야!
아무리 불러도 태건의 대답은 없었다.
이내 오광휘 팀장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지시했다.
“닥치고 바닥에 에어매트 도배로 깔아. 그 체력은 되잖아.”
“네?”
“너희도 느끼고 있을 텐데. 그 녀석, 오늘 뭔가 다르단 거 말이야.”
“…….”
“그 녀석은 살아온다. 분명 보란 듯이 살아나온다. 채용이랑 성규가 절대 그렇게 놔둘 리 없어. 그러니까 준비해.”
오광휘 팀장이 비장하게 지시했다.
선배들의 눈빛도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상황은 너무도 좋지 않았다.
태건에 대한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방관으로서 동료를 챙길 때였다.
“저희가 밀고 올라가겠습니다.”
“입구는 뚫려 있습니다. 3층까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두지 않을 겁니다. 아니, 이번엔 저희가 늦지 않게 데려올 겁니다.”
부르르.
온몸이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당장 소방호스를 들고 밀고 올라가겠단 마음이 몸을 잡아끌고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그래도 거부했다.
“안 돼. 지금 공급되는 물의 양으로 호스 3개까지 커버 못해.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단 걸 알잖아!”
“하나면 됩니다. 딱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럼 내가 앞선다. 너희는 내 등만 보고 따라와. 내 앞에 등 보일 생각 따윈 꿈도 꾸지 마라.”
“네, 준비하겠습니다.”
투둥!
그렇게 재진입할 인원이 정해졌다.
재진입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회피하는 건 아니었다.
그 외에 선배들은 벌써 에어매트를 펼치고 있었다.
다시는 현장에 남겨지는 소방관이 없길 바라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한편.
태건은 302호의 거실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무전기로 찾는 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들려왔지만 반응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기능이 저하된 방화복이라 열기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렇게 벌써 두 번째 열기를 감내 중이다.
“끄으으.”
머릿속이 곤죽이 된 듯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구름 위에 떠있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비틀.
순간 다리까지 풀렸다.
쉼 없이 몰아친 몸이 아우성치는 현상이었다.
그만큼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태건은 자꾸만 현관을 돌아봤다.
지금이라면 나갈 수 있다.
더 지체하면 어렵다.
그렇게 간질간질한 유혹이 자꾸 자신을 꼬드겼다.
그런 와중에도 안방과 다른 방들, 그리고 화장실까지 열어봤다.
벌컥, 벌컥.
…….
아무도 없었다.
이만큼 확인했으면 된 거 아닌가.
그 아이는 헐레벌떡 뛰어나가느라 신발이 어디로 튀었는지 확인할 틈도 없었을 거다.
그렇게 타협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때 뒤 베란다에서 소리가 났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다.
그 소리에 흐려지던 눈빛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인위적인 소리가 분명했다.
“틀림없어.”
누군가 있다.
정신이 확 든 태건은 지체 없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처저적.
태건은 잰걸음으로 뒤 베란다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직 불길이 여기까지 들이치지 않았다. 물론 그저 아직 일뿐, 화염의 마수가 뻗쳐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벌써 검은 연기가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뭉게뭉게.
창문이 깨진 건지 연기들이 한쪽으로 걷히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아래쪽의 연기는 옅어져 있었다.
그래서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눈을 가늘게 뜨고 주시하던 태건이 멈칫했다.
그 무언가는 물체가 아니라 잔뜩 웅크린 사람이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직 어린아이가 분명했다.
‘찾았다.’
튀어나오려는 말을 얼른 속으로 삼켰다.
지금 아이는 잔뜩 움츠린 채 공포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여기서 태건이 소리치고 서두른다면 아이는 불안감이 극도로 치솟을 게 분명했다.
물론 한 시가 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다.
이 순간을 트라우마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진짜 구한다는 건 육체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나도 그렇게 고생했잖아.’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매일 악몽에 시달렸었다.
그걸 공유하고픈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태건은 곧 마음을 굳혔다.
침착, 여유.
“그거지.”
동시에 자신부터 가다듬었다.
스스슥.
그리고 쥐어짠 여유를 풍기며 아이에게로 향했다.
아이는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애잔함이 솟구쳤지만 곧장 억눌렀다.
바로 태건은 돌발 행동을 했다.
처억.
방화헬멧과 호흡기 커버를 차례로 벗었다.
그리고 스트레칭하며 산책 나온 듯 태연한 목소리로 첫 마디를 꺼냈다.
“좀 덥지?”
“에? 어? 아, 아…….”
번쩍 고개를 든 아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놀람, 반가움, 안도감, 그리고 울먹임.
모든 감정이 얼굴을 통해 그대로 읽혔다.
태건은 자연스레 외벽에 기대며 자세를 낮췄다.
퉁.
산소통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에 태건이 깜짝 놀라며 돌아봤다.
“웁스, 깜빡했네. 내가 이런다니까.”
“……아저씨 소방관이에요?”
“딱 보면 모르겠어?”
“지금 불났는데, 집이 막 타고……. 있는데요.”
아이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태건은 대충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휙휙.
“그까이꺼 대충 물 좀 부으면 다 꺼져.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할까? 아저씨는 강태건이야.”
“유정현……. 이고 10살, 쿨럭. 이에요.”
기침이 터져 나온 순간 태건의 눈빛이 한순간 가늘어졌다.
‘연기를 마셨어.’
그 양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화가 가능한 정도라면 많이 흡입하진 않았을 거라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