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49)화 (49/320)

49화

그때였다.

와장창!

갑자기 거실 창문이 깨지며 검게 그을린 방화복이 튀어나왔다.

그걸 본 순간 소방관들이 동시에 외쳤다.

“왔다!”

하지만 긴장은 놓지 않았다.

반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모습에 경악했다.

“사, 사람!”

“이번엔 떨어져? 어어어!”

“꺄아악!”

놀라 소리치고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반면 소방관들은 한순간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다들 태건이 떨어지는 걸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그런데 돌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

“아아아!”

두 사람이 내지른 비명은 분명 환희의 포효였다.

그런데 소방관들 귀엔 절규의 비명으로 전달됐다.

같은 소리라도 어떤 관점으로 듣는지에 따라 달리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이내 태건은 에어매트에 떨어졌다.

투웅!

비명을 듣는 순간 이미 소방관들의 두 눈엔 핏발이 서 있었다.

“왜, 왜!”

“빨리 가서 확인해!”

“구급대, 병원에 응급수술 대기시켜!”

“이 자식.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더니!”

우르르!

오광휘 팀장부터 모두가 에어매트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에어매트에는 태건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런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다가가던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섰다.

느낌이 이상했다.

계속 불안했던 가슴 아픈 상상이 현실이 된 거 같았다.

아닐 거다.

아니어야 했다.

별일 아니, 아무 일도 없어야 했다.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태건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더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망설일 때였다.

스륵.

태건의 가로누운 몸이 옆으로 굴렀다.

이어서 더듬더듬 진압헬멧과 호흡기 커버를 끌어올리더니 태건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푸아. 살았다!”

그때 이불에 돌돌 싸인 유정현이 보조호흡기 커버를 들어 올리며 감탄했다.

“우와, 아저씨. 진짜 재밌어요!”

“거 봐. 내 말이 맞지?”

“또 하고 싶은데, 또 하면 안 돼요?”

“안 된다니까. 저길 또 들어가라고? 어후, 난 싫어.”

태건은 이제야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유정현도 그 부분은 이견 없이 깔끔하게 인정했다.

“맞아요. 저긴 아닌 거 같아요.”

“녀석.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쬐금 아픈데 괜찮아요. 전 씩씩하니까요.”

“멋지네.”

슥슥.

태건은 대견한 얼굴로 유정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때였다. 

유정현이 태건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요.”

“응?”

“저도 다 알아요. 저 유딩 아니거든요.”

“지금......”

“씩씩한 초딩이요. 알 거 다 알아요.”

유정현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순간 태건은 멍해졌다.  

너무 태연한 두 사람의 모습에 다들 눈을 끔뻑거렸다.

“괜, 괜찮은 거지?”

“그래 보이는데…….”

“그럼 다행이긴 한데…….”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다.

그 사이 점점 정신이 차려지는지 소방관들의 표정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와락!

“와씨, 사람 놀래키기는!”

“저 꼴통. 어후!”

“저걸 그냥 확, 내가 그냥 확!”

“참아요. 보는 사람 많습니다. 에헤이, 참으시라니까.”

덜컥거린 심장 탓에 울컥한 소방관들도 여럿 보였다.

그때 소방관들 틈을 거칠게 비집고 여성이 나타났다.

눈물콧물을 가득 걸고 발을 동동 구르던 바로 그 아이 엄마였다.

“정현아!”

“엄마!”

“어디 봐, 괜찮니? 정말 괜찮아? 아픈 데 없어?”

“엄마, 나! 어, 엄……. 흐아앙!”

씩씩하던 유정현은 엄마의 품을 느끼자마자 본래 나이로 되돌아갔다.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졌다.

“…….” 

유정현과 보호자는 곧 구급대원들과 자리를 떠났다.

삐용, 삐용!

사이렌을 울린 구급차가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유정현의 상태가 정상일 수가 없었다.

놀람과 흥분으로 당장 이상을 느끼지 못할 뿐, 긴장이 풀리면 후폭풍이 몰아칠 터였다.

그 전에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순서였다.

태건은 아직 에어매트에 누워 있었다.

그 상태로 활활 타오르는 빌라를 이젠 개운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화르륵.

“하아아. 잘 탄다.”

흘리는 목소리에 진한 감탄이 섞여 있었다.

마지막 요구조자까지 모두 구출했단 성취감을 즐기는 중이었다.

모두 이 순간을 위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과 대견함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윽.

태건의 시야에 검은 그림자들이 드리웠다.

최정균, 조규찬, 서순영, 표인철.

역시나 선배들이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다가온 그들은 그대로 태건을 덮쳤다.

“야, 야이, 새끼야!”

“이런, 씨이!”

“허으으. 짜샤!”

탄식과 한탄만 계속 터져 나왔다.

그들에게선 머리끝까지 차오른 공포와 불안이 가득했다.

요구조자를 구하면 박수치고 환호한다?

그건 영화에서나 찾을 일이다.

이게 현실이다.

동료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살아있음을 확인한 순간 온몸에 맥이 풀린 얼굴들.

그게 진짜 이들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 가슴도 울린 모양이었다.

짝짝짝.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박수소리가 시작됐다.

그 박수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거대한 격려와 응원으로 변화했다.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그저 정신없이 손뼉만 쳤다. 

짝짝짝.

박수소리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잠시 후.

소방대원들이 재정비를 마쳤다.

화르륵.

빌라의 화재는 다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소방관들의 눈빛은 더욱 뜨거웠다.

핑!

그 중 오광휘 팀장이 비장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저 지긋지긋한 놈과 인연 끊을 순간이 왔다. 맞나?”

“네!”

“한 톨의 불씨도 남기지 않는다. 전원 방수!”

“쏴라!”

촤아아악, 촥, 촥!

펌프차의 물대포부터 굵고 가느다란 소방호스까지 일제히 물을 뿜었다.

그 물줄기들은 빌라 전역으로 날아갔다.

요구조자가 없기에 거침없이 쏘아댔다. 

오광휘 팀장은 상황에 맞춰 무전기로 컨트롤했다.

띠릭.

“펌프차, 5층부터 공략해!”

-띠릭. 알겠습니다!

“1팀이 1호라인, 2팀이 2호라인.”

-띠릭. 흩어져!

“구조대 역시 2개조로 나눠 1층부터 잔화 정리하면서 따라붙어!”

-띠릭. 움직여!

사사삭.

오광휘 팀장의 한마디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진화 작전을 수행했다.

같은 시각.

태건은 펌프차의 뒷좌석에 장비를 벗고 앉아 있었다. 

“푸우우.”

속까지 파고든 열기에 기다란 숨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턱. 턱.

홀로 얼음주머니를 챙겨 머리에 얹었다.

차가움이 감돌자 태건도 굳은 어깨가 서서히 풀려갔다.

이어서 눈꺼풀도 무거웠다.

“그래도 잠드는 건……. 흐음.”

스르륵.

버티려는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잠들었다.

이내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듣는 꿈을 꾸는지도 몰랐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덜컹덜컹.

흔들리는 느낌에 태건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흐음……. 어?”

선배들이 방화복을 벗고 자리한 모습에 놀랐다.

조수석에서 오광휘 팀장이 고개 돌리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놀렸다.

“우리 막내, 아주 잘 자더라.”

“지금 복귀 중……. 화재진압 됐습니까?”

“얼씨구, 저기 사거리에서 신호만 받으면 소방서다.”

“정말이요? 벌써 어두워졌네요.”

창밖으로 찾아온 저녁을 보고야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잠깐 잠든 줄 알았는데, 꽤 오래 잔 모양이었다.

그때 조규찬이 입을 열었다.

“너……. 아니다. 좀 더 쉬어라.”

갑자기 말을 바꾸는 뉘앙스가 이상했다.

그리고 이제 보니 차 안 공기가 너무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최정균과 서순영, 표인철은 아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너무 낯설어 태건이 어색하게 느낄 정도였다.

스윽.

결국 시선을 돌려 조수석의 오광휘 팀장을 바라봤다.

“…….”

오광휘 팀장도 앞만 보고 있었다.

이내 소방서에 복귀했다.

늘 그랬듯이 모두 자신의 소방장비를 정비했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들어 올린 방화복, 방화장갑, 방화신발, 모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오늘 현장 상황상 이런 모습이 당연하게 보였다.

“이 정도면 일회용이지.”

휙.

태건은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골인시켰다.

그리고 창고에서 새로운 방화장비를 꺼내와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런 순간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모두 그걸 보고 있었다.

“…….”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런 그들 틈바구니에서 오광휘 팀장이 꼬질꼬질해진 자기 방화복을 들며 말했다.

태건과 같이 오늘 새로 착용한 방화복이었다.

“야, 이거 좋긴 좋네. 불에 몇 번 닿았는데 별로 상하지 않았어.”

“…….”

“하나는 확실히 하자. 오늘 새 방화복 아니었음 태건이를 다시 보기 힘들었어. 아니야?”

오광휘 팀장이 답을 바랬다.

선배들은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니들 2차로 진입하려 했을 때 내가 왜 막았는지 이제 감이 와?”

꾸깃.

다들 방화복에 여기저기 검게 타들어간 흔적들이 가득이었다.

“……네.”

“나도 태건이가 100퍼센트 잘했단 건 아니야. 하지만 혼자만을 위한 건 아니더라.”

“…….”

“다들 정비해라.”

처억.

오광휘 팀장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는 정비가 벌써 끝나 있었다.

그러나 본인들은 아직 정비할 게 남았다.

…….

체감되는 차이점에 표정들이 묵직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선배들의 방화장비는 모두 수입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슥슥.

이름을 써넣는 표정들이 다소 복잡했다.

“이따 얘기하자. 이따가.”

“네.”

조규찬의 말에 모두가 묵직하게 대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