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시간이 흘러 화재1팀은 교대를 마치고 퇴근길에 올랐다.
곧 태건은 소방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 앞에 먼저 나갔던 조규찬이 서 있었다.
“이제 나왔냐.”
“기다리셨습니까?”
“그러니까 있겠지……. 따라와.”
스윽.
돌아선 조규찬은 그대로 걸어갔다.
바라보던 태건이 숨을 쓰게 내쉬었다.
“흠.”
썩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알지만 일단 뒤따랐다.
곧 조규찬의 안내로 허름한 노포에 들어섰다.
변두리에 있고 좌석 수도 적었다.
태건도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메뉴판도 없는지 주름 깊은 할머니가 무뚝뚝하게 상을 차려줬다.
턱. 턱.
“…….”
살가운 말 한마디 없이 멀어졌다.
하지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양평해장국은 맛깔스러워 군침이 당겼다.
그때 조규찬이 직접 소주와 소주잔을 가져왔다.
끼릭.
소주병을 따며 첫 마디를 꺼냈다.
“여긴 처음이지?”
“그러네요.”
“우연히 발견했어. 할머니가 좀 말씀이 없으시지만 덕분에 편하게 얘기하긴 좋지.”
쪼르륵.
말하면서 빈 잔을 채웠다.
그러면서 조규찬은 툭 던지듯이 말했다.
“요즘 네 얘기로 소방서가 시끌시끌하더라.”
“화장실에 앉아 있으니까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게 좋냐?”
투박한 질문에 태건이 갸웃했다.
“무슨…….”
“동료들한테 욕먹고, 혼자 불 속에 뛰어 들어가고……. 그렇게 사는 게 좋냐고 물었어. 크.”
턱.
빈 잔을 내려놓은 조규찬의 두 눈이 깊이 내려앉아 있었다.
태건도 심각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쭉!
술을 한 번에 털어 넣고 입을 열었다.
“세상에 욕 먹기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 말 하기에는 너무 행동과 다른 거 아니냐.”
“선배, 그냥 속 시원하게 하고픈 말 하세요.”
쪼르르.
태건은 빈 잔을 채우며 권했다.
그 소리에 조규찬이 한쪽 입꼬리를 차갑게 비틀며 말했다.
“넌 뭐가 그렇게 매사 당당하냐.”
“이상합니까?”
“이상하지. 누구라도 너 같은 상황에서 너처럼 행동하진 않을 거야.”
쭉!
또 한 잔 들이킨 조규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상당히 공격적인 느낌이었다.
태건은 마주한 채 술을 마시고 빈 잔을 내려놓았다.
턱.
“제 상황이 어떤데 그러십니까?”
“벌써 다 잊은 거냐. 고작 1년이야. 너한테는 그 일이 겨우 그거 밖에 안 되는 거였어?”
“지금 그 얘기가 나오는 게 맞습니까?”
“왜 틀려. 그 일부터 지금까지 넌 쭉 똑같아. 혼자 당당하고 건방지고 제멋대로야.”
꽈악!
조규찬은 씹어뱉듯 말하며 빈 잔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쪼르……. 휙!
그때 조규찬이 술잔을 거칠게 옆으로 치우며 으르렁거렸다.
“지금도 봐. 이거 보라고!”
“술 마시자고 데려온 거 아닙니까?”
“넌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데 술이 더 중요하냐?”
텅!
조규찬은 테이블을 내리치기까지 했다.
그런 격정적인 모습은 의외였다.
가장 차분한 줄 알았는데, 서순영보다 더 다혈질이었다.
태건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싸우고 싶으면 으슥한 곳으로 안내하셨어야죠.”
“너…….”
“그리고 왜 당당하냐고요. 그 당당하다란 단어 뜻 그대로입니다.”
“뭐?”
조규찬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래도 태건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쪼르륵.
“그 당당하다를 다른 비슷한 말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이상한 소리 말고, 그냥 말해.”
“떳떳하다, 라고 합니다.”
“…….”
조규찬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쭈욱.
태건은 채운 잔을 비우고 말했다.
“그 일도, 오늘 현장에서도, 심지어 소방서에 어떤 소문이 돌아도 상관없습니다.”
“…….”
“저는, 저에게 떳떳하니까요.”
“너……. 대체 뭐가 떳떳하다는 거야. 대체 뭐가!”
부르르.
조규찬은 두 팔이 진동할 정도로 격분했다.
그 모습이 격정이라면 태건의 모습은 유수와 같이 안정적이었다.
“전 1년 전부터 백 번, 천 번 외쳤습니다.”
“네가 뭘 말했단 거야!”
“……그럼 차분히 제가 뭘 말했는지 한 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릉.
태건은 소주가 떨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본 조규찬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쏘아붙였다.
쾅!
“뭐하는 짓이야. 다시 앉아.”
“똑같은 얘기만 계속 뱅뱅 돌 텐데, 그렇게 시간 때울 필요 없잖습니까.”
“뭐, 이 자식아?”
“남의 말은 그렇게 잘 들으면서, 왜 제 말은 한 번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겁니까.”
구우우.
태건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조규찬이 순간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그래서 말하라는 거잖아.”
“이미 다 했다니까요. 그럼.”
스윽.
태건은 그 말만 남기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막 문턱을 넘으려는 찰나였다.
그때 조규찬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전출 생각 없냐?”
“…….”
우뚝.
태건이 멈추자 조규찬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서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이제 지겹잖아.”
“그러니까 니가 떠나라……. 신선하네요.”
“그만 둘 건 아니잖아. 근무하기 편한 데로 알아봐줄게.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 다시 만나자. 괜찮지?”
“……그럼 선배가 가세요. 날짜 잡히면 연락주세요. 그땐 제가 사죠.”
스윽.
말을 마친 태건은 마저 문턱을 넘었다.
늦은 시간.
아파트 현관문이 열렸다.
끼익.
태건이 들어오자 오광휘 팀장이 번개 같이 나타났다.
그는 환한 얼굴로 반겼다.
“오늘 현장에서 딱 알겠더라, 그 방화복 진짜 끝내주는데……. 넌 왜 세상이 끝난 거 같은 얼굴이냐?”
“규찬 선배랑 대판하고 왔습니다.”
“결국 널 불러내든? 그 새끼도 참. 아무튼 뭐라는데?”
“전출 가랍니다.”
태건은 마지막 대화만 전했지만 쭉 되뇌어 봐도 그게 핵심이었다.
그 소리에 오광휘 팀장이 어이없어했다.
“하! 뭐라는 거야. 그래서 넌 뭐라고 답했는데?”
“선배가 가라고 했죠.”
“니가 가라 하와이, 이런 느낌이었나 보네……. 아주 지랄도 쌍으로 하네.”
오광휘 팀장의 밝던 미소가 어느새 우중충하게 변해 있었다.
태건은 오히려 담담했다.
“크흠. 그 방화복 확실히 괜찮죠?”
“……그래. 그건 인정. 특히 너보고 제대로 성능 확인했지.”
“아. 5층에서요.”
“넌 그 불길을 대체 무슨 수로 빠져나온 거냐. 아니, 그게 그렇게 돼?”
오광휘 팀장은 꾹 누르고 있던 궁금증을 터트렸다.
태건은 이래서 오광휘 팀장이 편했다.
그는 자신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있는 그대로 대해줬다.
조규찬과의 우울한 대화가 잊히는 거 같았다.
태건은 식탁을 턱짓하며 권했다.
“그거 들으시려면 한 잔 꺾어야죠.”
“마시고 온 거 아니었냐?”
“취했음 치고 박고 싸웠을 겁니다.”
“아니라니 다행이긴 하네……. 좋아. 한잔하면서 썰이나 좀 들어보자.”
휙휙.
오광휘 팀장은 손짓하며 식탁으로 향했다.
태건도 대충 겉옷만 벗고 다가갔다.
곧 맥주 캔을 손에 쥔 채 이런저런 대화를 시작했다.
시작은 오늘 화재 현장이었지만 그 후로는 이런저런 주제로 옮겨갔다.
두서없는 그들의 술자리는 자정까지 오래 이어졌다.
* * *
다음 날.
출근한 태건은 황당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출동제한이라니요!”
“어제 방화복 또 태워먹었잖아.”
“사비로 산 거 아닙니까. 그리고 여벌도 있습니다.”
“……그럼 문제없네.”
치직!
오광휘 팀장은 화끈하게 수첩을 찢어버렸다.
그 문제는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최정균이 손을 들며 오광휘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건의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
“요즘 현장에서 체계가 너무 흐트러진 거 같습니다. 각자 경력에 맞게 행동하는 게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말을 마친 최정균의 시선은 태건을 향해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턱을 가볍게 쓸며 최정균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막내랑 버딘데, 내가 관리를 못하니까 뒤로 빼자는 거네?”
“네?”
“그거 아니야? 어차피 짬 차서 안 움직일 거니까 뒷방 늙은이 취급하겠다. 뭐, 이런 거 말이야.”
“그게 어떻게 그런 뜻이……. 전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최정균이 두 손까지 휘저으며 질색했다.
그 순간 오광휘 팀장이 두 눈에 힘을 주며 차갑게 물었다.
“정균아, 너 최근 일주일 동안 현장에서 몇 명 구했냐?”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겠지. 그런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네가 밀어내자는 막내가 구조한 분들은 열 손가락도 모자라.”
“…….”
“여기서 질문, 그럼 내가 누굴 빼야 옳을까?”
오광휘 팀장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스산하게 물었다.
“…….”
최정균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표인철이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했다.
“팀장님, 말씀이 한 쪽으로 쏠리는 거 같습니다.”
“뭐라?”
“태건이랑 같이 사는 게 아무래도 영향을 끼치지 않나 싶습니다.”
표인철은 나지막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오광휘 팀장은 의외로 흔들리지 않았다.
감정의 동요조차 없는지 수더분한 목소리로 불렀다.
“인철아. 내가 지금 몇 명인지 숫자로 말하지 않았니?”
“에……. 그러셨습니다.”
“그 이상 정확한 지표 있으면 가져와.”
“그래도…….”
표인철은 그래도 인정하기 싫단 뉘앙스로 말했다.
바로 그때 오광휘 팀장이 딱 잘라 말했다.
“이 자식들 보자보자 하니까. 막내만큼 구조하고 따져. 아니면 막내만큼 불 끄고 따져. 그게 아니면 입 다물어.”
“…….”
“순수하게 실적 위주로 한 번 포지션 다시 잡아볼까?”
“아닙니다.”
선배들은 결국 본전도 못 찾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화재팀 사무실로 빵이 한가득 배달되어 왔다.
화재1팀은 어리둥절했다.
“누가 빵집 열었냐?”
“여기 안에 뭐가 있는데?”
“뭔데? 어? 어…….”
사락.
열어본 모두가 그대로 굳어졌다.
장문의 편지와 서툰 실력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편지보다 그림에 더 시선이 쏠렸다.
활활 타오르는 빌라, 그 앞에서 물을 뿌리는 소방차와 소방관들.
이틀 전 빌라 화재 현장이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