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51)화 (51/320)

51화

그걸 본 순간 누가 보냈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아, 그때 그 애.”

“정현이.”

“그래. 유정현……. 그 애가 그린 거라고.” 

그건 역시 그림의 일부 때문이었다.

빌라에서 부둥켜안고 뛰어내리는 소방관과 한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누가 봐도 태건과 유정현이었다.

그날 화재에서도 결국 주목을 받은 건 태건이었다.

“…….” 

그 그림은 무뚝뚝한 손길로 태건에게 전해졌다.

휙!

조규찬이 뿌리듯 건네고 멀어졌다.

“…….” 

전체적으로 색감이 밝았다.

그리고 뾰족하게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거 봐, 짜샤. 즐거움은 오래 간다니까.”

태건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런 태건의 옆에 오광휘 팀장이 불쑥 다가왔다.

그리고 태건의 어깨에 자기 팔을 가볍게 얹으며 말했다.

처억.

“얼씨구 등에 날개도 있네.”

“지금도 있습니다. 동심이 있어야 볼 수 있는 투명한 날개입니다.”

“나이가 몇 갠데 동심이냐. 그나저나 이거 액자 담아서 걸자. 다른 팀들 보고 배 아프라고 말이야. 후후.”

화재1팀이 주목받게 한 건수에 눈빛이 반짝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액자가 사무실 벽에 떡하니 걸렸다.

태건과 오광휘 팀장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걸어 놓으니까 사무실이 확 살아나네요.”

“거 봐. 내 말은 진리라니까.”

“참 보기 좋습니다.”

“힘이 나지. 힘이 나고말고.”

끄덕끄덕.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태건은 동봉된 편지를 펼쳐봤다.

유정현이 보낸 건 줄 알았는데, 첫 문장을 딱 보니 아니었다.

“이건……. 저보다 팀장님이 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나? 누가 나한테 이런 걸 다……. 에이. 이건 읽어야지. 흠흠.”

촤악.

편지를 곧게 펼쳐든 오광휘 팀장이 이내 낭독을 시작했다.

“정현이가 우리 전부였습니다.”

“…….”

“지금도 거실창으로 우리 정현이 안고 뛰어내린 소방관분, 그분만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뭐 이렇게 감상적으로 쓰셨냐.”

오광휘 팀장이 삐딱하게 나가자 태건이 힐끗 흘겨봤다.

“흐름 끊어집니다. 막 속에서 몽글몽글한 게 올라오려다 사라졌다니까요.”

“아, 짜식. 더럽게 보채네.”

“계속하세요.”

“요즘 계속 엉겨. 짜식. 흠흠.”

오광휘 팀장이 한껏 째려보고는 편지 낭독을 이어갔다.

“기억하겠습니다. 생명을 위한 그 마음. 진심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501호 어르신은 생명의 소리를 회상하면 지금도 눈물을 흘리시고……. 늘 평안 무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끄읕.”

“흐음.”

태건은 가볍게 눈을 감고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손에 든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쩝쩝.”

안 그래도 맛있는 크림빵이 두 배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 사이 태건은 중간에 언급된 내용을 곱씹었다.

‘생명의 소리라.’

인명구조경보기의 굉음을 그렇게 표현할 줄은 몰랐다.

되뇌고 보니 꼭 틀린 표현도 아니었다.

무엇이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거 같았다.

그래서 마음 속 깊이 담기는 거 같았다.

소방관 일을 놓지 않길 잘했다, 참으로 잘했다.

더 구하고 싶고, 더 불을 끄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았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  *  *

하지만 매일 좋은 일만 가득할 순 없었다.

어느 날, 어느 화재현장.

화마가 몰아치는 장소에서 태건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

태건의 어깨엔 축 늘어진 사람이 존재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가족들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허으으으.”

“크윽!”

시선을 피하거나 두 눈을 질끈 감고 현실을 외면했다.

그런데 살려달란 애원도 없었고, 구하지 못했단 문책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단 느낌이었다.

그런 가족들 앞에 하얀 천으로 가려진 요구조자가 도착했다.

“제가 도착했을 땐 이미……. 죄송합니다.”

푹.

태건은 사과와 함께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가족들은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데려와 주신……. 흐흐윽. 것만으로도 감사……. 크윽.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태건은 씁쓸한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이런 상황에선 기운이 쭉 빠졌다.

이럴 때 원망할 상대는 하늘밖에 없었다.

‘신? 있긴 하는건가?’

도저히 구할 수 없었던 현실에 어깨만 더욱 무거워졌다.

*  *  *

어느새 태건이 복직한지 한 달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화재팀도 실적이란 게 존재했다.

그 실적은 당연히 사상자의 유무로 가늠된다.

구디소방서의 3개 화재팀 중 실적 1등은 단연 화재1팀이었다. 

그 소식은 소방서에서만 알고 있지 않았다.

-구디소방서 소방관들, 살신성인 정신으로 사상자 줄여.

짧게나마 기사가 나기도 했다.

좋은 일로 작성된 기사라 내용도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태건과 선배들의 사이였다. 

강태건.

선배들이 보기에는 죽으려고 난리치는 모습이다.

물론 태건 마음은 전혀 달랐다.

최선을 찾아 늘 헤매일뿐이다. 

오광휘 팀장은 처음엔 지켜봤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박민석 서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쟤들 저대로 두면 크게 어긋날 지도 모릅니다.”

“……기다려 봐.”

“그 말씀만 몇 번째인 줄 아십니까.”

“쓰읍. 보고서나 내놓고 가 봐.”

“후우. 재촉하는 건 죄송하지만 빨리 답을 주십시오.”

척.

오광휘 팀장은 보고서 제출 후 힘없이 돌아나갔다.

박민석 서장은 딱딱한 얼굴로 보고서부터 펼쳤다.

“…….”

신중하게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모두 살핀 후 박민석 서장은 휴대폰을 들었다.

“저 박민석입니다.”

“그래, 박 서장.”

“강태건 대원에 대한…….”

“더는 보고할 필요 없어. 수일 내로 얼굴 한 번 보자고.”

상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질 듯한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며칠 후.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됐다.

태건에겐 소방사로 승진하는 날이기도 했다.

등락 결과는 진즉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남들은 6개월도 길다는 소방사시보를 1년 6개월이나 지냈다.

그래서 감회가 새로웠다.

출근길에 운전대를 잡은 오광휘 팀장이 슬쩍 물었다.

“기분 어때?”

“나쁘지 않습니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참 멀리 돌아왔단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필요했던 방황 같긴 합니다.”

태건은 진심으로 답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화재팀 사무실에 도착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팀원들도 대부분 출근해 있었다.

그런데 낯선 남자들이 보였다.  

“누구지?”

원형 테이블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세 명의 소방관이 있었다.

기동복 차림이 아직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걸로 대충 감을 잡았다.

신입이다. 

태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컵라면 뚜껑 따는 연습부터 시켜야지.”

그건 필요가 아닌 필수의 문제였다.

그때 오광휘 팀장이 슬며시 다가와 태건에게 말했다.

“진급식 하러 올라오라고 하신다.”

“팀장님도 가십니까?”

“그러게 말이야. 요즘은 진급식도 증인을 세우나?”

오광휘 팀장은 듣도 보도 못한 소리에 갸웃거렸다.

반면 태건은 수더분하게 받아들였다.

“트렌드는 늘 변하니까요.”

“아무튼 가보면 알겠지.”

이내 두 사람이 나란히 사무실을 나섰다.

잠시 후.

태건은 서장실에 반듯하게 서 있었다.

그런 앞에는 박민석 서장이 아니라 다른 중년인이 서 있었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멋쟁이 중년이었다.

소개는 앞서 받았다.

우석진 정책과장.

소방청의 정책국 소속 정책과, 수뇌 중에 수뇌부였다.

정확한 계급은 소방감이다.

태건은 마주하고 있는 우석진 정책과장을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소방사 진급에 정책과장이 나서?’

볼 일이 있어 온 김에 진급식을 하는 거라는 설명은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그 옆에는 척 봐도 고위급 소방관이 함께였다. 

일단 진급부터 하자.

그 생각으로 잠자코 있었다.

박민석 서장이 옆에서 진급식을 약식으로 진행했다.

“……위 대원을 소방사로 임명한다.”

그 소리에 맞춰 우석진 정책과장이 직접 태건의 어깨 견장을 바꿔줬다.

척, 척.

하나였던 육각수가 두 개로 늘었다.

이어서 우석진 정책과장이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꾸욱.

둘은 가볍게 악수를 했다.

뒤쪽에선 오광휘 팀장이 눈치를 보며 박수를 쳤다.

‘그래서 난 여기 왜 있는 건데?’

그것도 어려운 상관까지 함께라서인지 더욱 불편해했다.

곧 네 사람이 응접 소파에 둘러앉았다.

상석에 자리한 우석진 정책과정이 미소 띤 얼굴로 물어왔다.

“강 대원, 소감이 어떠한가?”

“기쁩니다.”

“처음도 아닌데 기쁠 게 있나.”

말하는 뉘앙스에 뭔가 뼈가 느껴졌다.

태건은 순간 의미를 몰라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한 건 벌써 잊었나?”

“제가요?”

“발뺌이라, 그럼 ‘더 라스트’라고 불러야 좀 더 와 닿으려나?”

우석진 정책과장이 뜬금없는 별칭을 말했다.

태건은 순간 멈칫했다. 

오광휘 팀장도 모르는 별칭이다. 그런데 우석진 정책국장이 갑자기 언급하니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

태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그런 반응을 예상한 모양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국제 소방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와튼 국장에게 우연히 들었지.”

“…….”

“플로리다에 VFD로 시작해 불과 10개월 사이 FLFD를 거쳐 스모크점퍼가 된 한국청년에 대해서 말이야.”

말을 마친 우석진 정책과장이 태건을 향해 확신에 찬 미소를 그려 보였다.

한편.

한쪽에 자리하고 있던 오광휘 팀장이 눈을 굴려가며 약자를 풀어보고 있었다.

“VFD는 의용소방대인데, 그런데 FLFD? 그리고 스모크점퍼는……. 뭐지?”

“FLFD는 플로리다 주립소방센터의 약칭이야.”

스윽.

몸을 기울인 박민석 서장이 소곤소곤 설명해줬다.

오광휘 팀장은 내친 김에 하나를 더 물었다.

“그럼 스모크점퍼는요?”

“소방공수부대. 대형 삼림화재 같은 재난급 상황발생 시 투입되는 특수소방관.”

“그런 게 있습니까?”

“한 마디로 소방계의 특공대야.”

그 소리에 오광휘 팀장이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허억, 진짜요? ……헙!”

턱.

우석진 정책과장을 인지한 순간 재빨리 입을 손으로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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