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53)화 (53/320)

53화

두 사람은 이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두가 응접테이블 쪽에 모여 있었다.

웅성웅성.

떠들썩한 소리에 오광휘 팀장 표정이 확 굳어졌다.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노는 꼴을 보니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다.

대뜸 버럭 소리쳤다.

“이 자식들아, 출동 대기면 밀린 서류 작업이라도 좀 해라!”

쿠궁.

그제야 사무실이 조용해지더니 모두 이쪽을 바라봤다.

그중 최정균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이렇게 예민하십니까?”

“뭘 예민해. 일하는 시간에 일하라는데!”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책과장님 방문 소식이 들리던데요.”

“네가 그걸 왜 신경 써.”

번쩍!

오광휘 팀장이 눈에 힘을 가득 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모두 직감했는지 움찔하며 책상으로 향했다.

“어흠, 맞다. 예방팀에서 화재예방 순찰 협조 인원 뽑아 달라고 했는데…….”

“저번 출동에서 센터 쪽이랑 장비 섞인 거 잘 분류해 놨던가.”

“난 구급대에 잠깐 다녀올 일이 있었지.”

스스슥.

오광휘 팀장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흩어졌다.

응접테이블이 한산해지고야 팀원들이 모여 있던 이유가 보였다.

신입 소방관 3명이 대기 중이었다.

태건이 먼저 발견하고 한마디 슬쩍 꺼냈다.

“그래서 저 신입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 지금까지 너랑 같이 있었어.”

“그럼 이제부터 알아보셔야겠네요.”

스윽.

태건이 움직이자 오광휘 팀장이 물었다.

“갑자기 어디가?”

“밀린 서류 작업하러요.”

태건은 간단한 대답으로 오광휘 팀장의 입을 막아버렸다.

한편.

오광휘 팀장이 멀어져가는 태건을 향해 투덜거렸다.

“넌 참 한가해서 좋겠다……. 어이 신입들.”

“네!”

“소속 배정 받았냐?”

“못 받았습니다!”

처억!

그들은 잔뜩 굳은 자세로 목청 터져라 소리쳤다.

오광휘 팀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휘휘.

“자세 풀고 쉬고 있어……. 나 잠깐 행정실에 다녀온다.”

오광휘 팀장은 크게 말하고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태건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전혀 예정에 없던 전입이 의아했는데 이젠 감이 좀 왔다.

자신의 대체 인원들이었다.

‘내가 3인분 몫은 한단 건가?’

그렇게 평가해주면 고마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우석진 정책과장과의 대화가 좋지 않게 마무리된 게 문제였다.

저들이 갑자기 붕 떠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심정으로 태건은 신입들에게 다가가 음료수를 하나씩 권했다.

탁, 탁.

“이거 마시면서 긴장들 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뭐, 그럼.”

더 할 말이 없는 태건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곧 오광휘 팀장이 가라앉은 얼굴로 돌아왔다.

“신입들은 당분간 주간 근무만 하면서 업무 숙지하도록.”

“네.”

“선배들하고 유대도 쌓고, 현장 쫓아가서 통제도 하고 그럼 돼.”

“알겠습니다.”

신입들은 목소리 크게 답했다.

오광휘 팀장은 고개 돌려 태건을 찾았다.

“강태건, 막내들 장비부터 챙겨주고 소방서 구경도 시켜주고 그래.”

일부러 태건을 지목한 게 아니라, 원래 맞선임의 역할이었다.

태건도 박성규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아직 생생했다.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입들에게 향했다.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네, 그런데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시간이 좀 지나면요.”

태건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신입들과 함께 움직였다.

사무실을 나서고 가장 먼저 차고 내에 창고로 향했다.

여분의 장비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태건은 한쪽에 쌓아둔 방화복부터 챙겨줬다.

물론 교체를 예상해 미리 구매해놓은 미국 방화복이었다.

“여기 이거 한 세트씩 받으세요.”

부스럭.

받아든 신입들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어? 이거 비닐도 안 뜯은 새 거네요.”

“선배들 거 물려 입는다고 들었는데.”

“이야, 이거 소재가 소방학교 거랑 다른 거 같아.”

다들 얼굴에 감탄이 가득했다.

좋아하는 모습에 태건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그럼 계속 챙기도록 하죠. 여기, 받으시고, 또 여기…….”

턱, 턱.

신입들의 손에 장비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그 후로도 태건은 계속 신입들을 챙겼다.

“받았으면 입어 봐야겠죠?”

“산소통 관리는 거르면 안 됩니다.”

“여기가 체력단련실이고……. 여긴 식당이고…….”

소방서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줬다.

태건은 처음 신입을 맞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이었지 한국에선 처음이었다.

그런 이유로 감회가 조금 새로웠다.

박성규가 자신에게 그러했듯, 조금 느리더라도 꼼꼼하게 챙겨주고 또 불편하지 않게 신경 써 줬다.

그 시간은 그들이 퇴근할 때까지 길게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다음날 아침이 됐다.

당직 근무를 마친 태건과 오광휘 팀장은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 마주앉아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크게 맥주를 들이켠 오광휘 팀장이 짜릿한 얼굴로 탄성을 내뱉었다.

“크아. 역시 근무 끝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최고라니까.”

“그럼요. 최고죠.”

“어제 신입들한테 좀 잘해줬나 보던데? 퇴근할 때 물어보니까 네가 가장 좋은 선배 같다더라.”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죠.”

태건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그 순간 목이 따끔거려 눈을 크게 떴다.

바로 맥주캔을 내린 태건이 목을 가볍게 매만지며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뭔데?”

“오늘 따라 탄산이 세네요.”

태건은 자주 마시는 맥주라 더 의아했다.

오광휘 팀장도 맥주캔을 둘러봤다.

“난 똑같은 거 같은데. 너 혹시 감기기운 있냐?”

“아니요. 평소랑 다른 거라면……. 설마.”

“왜, 뭔데?”

“말을 평소보다 엄청 많이 했습니다.”

태건의 대답에 오광휘 팀장은 어이 없어했다.

“소방서에서 얼마나 말을 안 하면 그거 때문에 맥주 맛이 달라지는 거냐.”

“팀장님 외에는 거의 없죠.”

“그걸 자랑이라고 대답하고 있냐. 신입들을 자주 붙여놔야 되겠네.”

오광휘 팀장이 쓰게 말했다.

반면 태건의 표정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웃자고 한 말은 여기까지였다.

이내 태건이 오광휘 팀장에게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신입들 전입은 역시 그 일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맞아. 행정팀에서도 서울재난본부 인사팀에 제대로 발령 낸 거 맞냐고 확인까지 했다더라.”

“제가 무조건 수락할 거라 확신한 모양이네요.”

태건이 꼬집어 말하자 오광휘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그런 제안을 하면 수락하긴 하지.”

“팀장님도요?”

“나도 욕심 있지. 명예도 챙기고 싶고, 돈도 챙기고 싶고…….”

쭈욱.

대답한 오광휘 팀장이 격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 그의 행동 속에 뭔가 있는 거 같았다.

태건은 눈치껏 화제를 돌렸다.

“괜히 신입들한테 미안해지네요.”

“네가 왜?”

“빨리 팀에 배속돼서 사수한테 집중교육 받아야하지 않습니까.”

“그거 좀 미뤄진다고 문제 있냐?”

오광휘 팀장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태건은 맥주캔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그건 아니지만 형제 같이 챙겨주고 이끌어줄 직속 선배들과 한시라도 빨리 만나는 게 좋죠.”

“서로 오해도 좀 하고, 인상도 좀 쓰고?”

“저희 같은 경우는 드뭅니다. 아니, 두 번은 없어야죠.”

쭈욱.

태건은 속이 복잡한지 얼른 맥주를 들이켰다.

오광휘 팀장도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눈을 굴리던 그가 짓궂은 얼굴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쩌다 ‘더 라면’이 된 거야?”

“라면이 뭡니까.”

“내 마음이지. 얼른 썰이나 풀어.”

오광휘 팀장은 맡겨 놓은 듯이 당당히 요구했다.

태건도 여기까지 밝혀진 이상 구태여 숨기려 노력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픈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하나씩 말을 꺼냈다.

“휴직을 당한 후에…….”

“당하다니, 이상한데서 뒤끝 부리지 말자.”

“크흠. 아무튼 이제 해야 하나 고민하다 소방학교에서 미국 소방시스템에 대해 배웠던 게 생각나서…….”

줄줄줄.

태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시간이 지나자 맥주 캔이 물컵으로 변해 있었다.

오광휘 팀장은 피곤도 잊은 채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 일이……. 이야, 그럴 수가…….”

한국과 전혀 다른 사정이라 더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그만큼 태건의 경험은 다양했고, 출동 횟수도 엄청나게 많았다.

육해공 가리지 않고 범위도 무척 넓었다.

사실 짤막하게 말하려 했었다.

그런데 막상 말을 시작하고 보니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흐르고 흐른 시간은 어느새 정오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제야 태건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겁니다. 휴우.”

말을 마무리 지은 태건은 곧 물컵을 들어 올렸다.

“…….”

오광휘 팀장이 이상하게 말이 없었다.

조금 전부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태건이 슬쩍 불렀다.

“저, 팀장님?”

“……어? 어! 그래. 너 말 엄청 많이 해서 목 아프겠다.”

“그건 괜찮은데,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야. 잘 들었고 시간 많이 뺐었네. 치우는 건 이따가 하고 얼른 들어가 자자.”

스윽.

오광휘 팀장은 조금 급하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길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왜 저러시지?”

태건은 의아한 얼굴로 작은 방으로 향했다.

물어보고 싶지만 피곤함이 더 짙었다.

같은 시각.

안방 침대에 누운 오광휘 팀장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1년 사이에 그랬단 걸 어떻게 믿어……. 그런데 정책과장님까지 나설 정도면 믿지 않을 수가 없잖아. 흐음.”

그는 피곤한데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  *  *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박민석 서장의 호출을 받았다.   

잠시 후.

태건은 서장실 응접소파에 앉아 있었다.

상석에는 박민석 서장이, 반대편에는 오광휘 팀장이 함께였다.

두 사람은 놀랍게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탈칵.

이내 박민석 서장이 찻잔을 내리며 운을 뗐다.

“어제 일이 말이야.......”

그때였다. 

삐리릭.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박민석 서장의 휴대폰인 듯했다.

태건과 오광휘 팀장이 바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박민석 서장이 막았다.

“잠깐 앉아 있어.”

“통화…….”

“본청 정책국이야.”

“…….”

스윽.

태건과 오광휘 팀장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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