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곧 박민석 서장이 전화를 받았다.
“네, 구디서장입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무슨! ……흐음.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박민석 서장 얼굴에 불쾌함이 깊이 자리했다.
태건과 오광휘 팀장은 조용히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후우우, 후우우.”
박민석 서장은 몇 번이나 숨을 내쉬었다.
그런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한 시간 이내로 특별감사팀이 도착한다고 해.”
“특별 감사라니요?”
“나도 의문이야. 이런 경우는 없는데 말이지.”
박민석 서장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감사가 좋은 의미로 진행된 적이 거의 없었다.
특별감사에 대한 소식은 금세 소방서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정말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특별감사팀이 도착했다.
양복차림의 대여섯 명의 특별감사팀 중 가장 연장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낯이 익었다.
다름 아닌 우석진 정책과장과 함께 왔던 인물이었다.
“반갑다. 특별감사팀장이다.”
“…….”
까딱.
화재팀원들은 말없이 고갯짓만 했다.
그 모습에 특별감사팀장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뭐 씹은 표정 넣어두고, 일주일 정도는 자주 얼굴 보게 될 거야. 출동도 대부분 다른 쪽으로 넘길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
“아무튼 대기하기 지겨우면 청소나 해. 그럼 곧 보자고.”
차갑게 비웃은 특별감사팀장과 팀원들이 먼저 나갔다.
옆에서 보던 박민석 서장이 쓰게 말했다.
“좀 쉬고 있어.”
“서장님, 출동까지 센터로 넘긴단 말이 사실입니까?”
“그렇게 됐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이건 아니죠.”
오광휘 팀장이 눈에 힘을 주며 항의했다.
박민석 서장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다.
“오광휘, 괜히 들쑤시지 말고 조용히 있어.”
“저쪽에선 시작부터 선 넘는데,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라니요. 그럼 소방관이 왜 있습니까?”
“거, 자식. 팀장답게 행동해.”
저벅저벅.
씁쓸한 말만 남기고 사무실을 나갔다.
“…….”
사무실은 썰렁하기만 했다.
잠시 후.
최정균이 휴대폰을 두드리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소방학교 동기, 선후배들한테 싹 연락 날렸는데 모르는 일이랍니다. 이거 표적 감사 아닙니까?”
“맞아.”
“맞, 맞다니요. 그걸 팀장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윗물 사정까지 알 거 없잖아. 빌어 쳐 먹을, 다들 오랜만에 땡땡인데 낮잠이나 때리자.”
그릉.
오광휘 팀장은 투박하게 권하며 의자를 창가 쪽으로 돌렸다.
태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았다.
‘안 그래도 맘에 안 드는데…….’
특별감사팀을 보냈단 건 소방서를 속속들이 파고들고 뒤집겠단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건 참아온 역사가 없었다.
끝까지 가보자면 태건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처억!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자세까지 잡았다.
바로 그때 충전 중이던 휴대폰이 울렸다.
-까똑.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역시 오광휘 팀장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지금 네가 나서면 꼴 우스워진다.
그걸 본 태건은 울컥한 얼굴로 빠르게 답신을 보냈다.
토도독.
그리고 그때부터 채팅으로 대화가 대신 이뤄졌다.
-대놓고 시비 걸어온 거 보셨잖습니까. 그런데 참으라고요?
=안 참으면 어쩌겠다고. 넌 지금 길거리에 나뒹구는 소방사 중에 한 명이야.
-그만두려고요. 제가 없으면 모두가 편안할 거 아닙니까.
=참아. 일단 참아.
그 답신을 보자 태건의 볼살이 꿈틀거렸다.
텅!
다리를 크게 구르며 분노어린 타이핑을 쏟아냈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잖습니까.
=아까 서장님 말씀 까먹었냐. 일단 대기타고 있으라고 하셨잖아.
-이번에 무사히 넘어간다고 치면 다음은 없는 겁니까. 확실합니까?
=얘는 뭐 그냥 넘어가는 게 없어. 에이씨, 몰라. 모르겠으니까 니 마음대로 해. 됐지, 끝!
신경질이 가득 담긴 답신이었다.
휴대폰으로만 보내고 끝이 아니었다.
터엉!
“에이씨!”
들으란 듯이 신경질을 크게 뿌렸다.
오광휘 팀장의 그런 반응에 팀원들 모두 움찔거렸다.
“…….”
안 그래도 조용한 사무실이 더 고요해졌다.
오광휘 팀장이 저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다.
태건도 이렇게 되니 함부로 행동하기가 꺼림칙해졌다.
“후.”
쓴 숨을 내쉬며 일단 자리를 지켰다.
어젯밤부터 최악인 기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느릿느릿 흘러간 시간은 어느새 오후가 됐다.
특별감사팀원 중 한 명이 들어와 말했다.
“개별 감사를 시작할 거니까. 위에서 한 명, 아래서 한 명, 이렇게 차례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 말에 태건이 멈칫했다.
‘이 사람들 봐라.’
첫 번째로 자신을 지목할 줄은 몰랐다.
아니,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뭔 소리를 할지 먼저 듣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 판단됐다.
그건 오광휘 팀장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가자.”
“네.”
대답한 태건과 오광휘 팀장은 나란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태건은 홀로 시청각실로 안내받았다.
철제 탁자에 두툼한 서류철이 올라와 있었고, 꽤 성능 좋아 보이는 녹음장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두 명의 특별감사팀원들이 자리해 있었다.
둘 중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남자가 서류를 들추며 입을 열었다.
사락사락.
“고희수입니다. 이런 감사는 처음이실 텐데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몇 번 해봤습니다.”
태건은 첫마디부터 심드렁했다.
고희수의 눈썹이 들썩였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경험이 있으시다면 우리도 편하죠. 이번 특별감사 범위는 아십니까?”
“아니요.”
“소방관 직무에 대한 전반적인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바로 시작해도 될까요?”
“편하신대로.”
태건도 심드렁하게 답했다.
고희수는 이내 서류를 뒤적이던 손을 멈추며 말했다.
척.
“여기 있네요. 방화복을 사비로, 그것도 해외직구로 구매하셨다고요, 왜 그랬던 겁니까?”
“해당 출동 보고서들 안 보셨습니까?”
“제가 질문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본인이 직접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고희수는 마치 기계처럼 말했다.
다른 한 명은 녹취 및 기록 담당인지 조용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답했다.
“교체해 달라는데 안 해주니까 사비로 산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방화복은 1년에 한 번 지급이라고 명시되어 있을 텐데요.”
“큰 불이 일 년에 한 번만 납니까?”
태건이 딱 잘라 물었다.
고희수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왜 유독 강대원만 요청을 한 겁니까.”
“그럼 기능 떨어지는 걸 그냥 입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란 겁니까?”
“그게 아니라 관련 규정이 있는데 왜 더 바라냔 겁니다. 다 국민분들 세금으로 구매하는 겁니다. 그런데 혼자만 바꿔달라. 월권에 세금 낭비 아닙니까.”
고희수는 정나미 떨어지는 목소리로 툭툭 건드렸다.
그 순간 태건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대놓고 시비를 거는 게 훤히 보였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뒤집자.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왔으니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봐요. 말이나 바로 합시다.”
“흐음. 모든 발언은 녹음 중이고, 특별감사 결과는 정책과장님을 거쳐 정책국장님까지 보고 올라갑니다.”
“그럼 잘 녹음하세요……. 1년에 출동이 몇 번인데 방화복을 꼴랑 하나 주는 게 말이 됩니까?”
태건은 사정없이 팩트를 날렸다.
고희수가 멈칫했지만 다시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만 하세요.”
“도끼는 언제 샀는지도 모르고, 고장 난 기계는 고치려면 하세월, 아니면 사비로 고치고, 펌프차는 연식 지난 지 오래고, 또…….”
태건은 둑이 터진 듯 조목조목 따져 말했다.
듣다 못한 고희수가 책상을 내리쳤다.
탁!
“질문에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 발언은 인정되지 않고, 본인에게 불리할 수 있습니다.”
“……불구덩이 떠밀면서 생명 수당이라고는 쥐꼬리만큼 나오고, 기껏 불 끄고 지쳐서 돌아왔는데 보고서 내라고 닦달하고…….”
탁!
“강태건 소방사.”
“……현장에서 다치면 내가 내 돈 내고 병원 가고, 기본적인 물리치료나 재활치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태건은 보란 듯이 하고픈 말을 쏟아냈다.
그럴수록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고희수였다.
결국 듣다 못한 그가 테이블을 반복해 내리치며 말을 끊었다.
탁탁탁.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그래놓고 무슨 특혜 타령입니까. 꼴랑 방화복 하나에 이렇게 들들 볶는 거부터가 잘못된 겁니다.”
“그 발언, 세금으로 과소비를 하잔 말이 소방관으로써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입니까?”
고희수의 목소리가 고압적으로 변했다.
그 순간 태건의 표정과 목소리가 차갑게 돌변했다.
“과소비, 웃기지 마세요.”
“발언 신중하세요.”
“안 준대서 내가 내 돈 주고 샀는데, 그걸 뭐라는 건 무슨 경우지요?”
“강태건 소방사, 지금 특별감사 중입니다.”
“나도 압니다. 거기 녹음 된다며. 과장님하고 국장님 들으시라고, 그러라고 말하잖아요.”
태건은 사정없이 으르렁거렸다.
그 기세에 고희수는 물론, 그 옆에 있던 남자도 같이 움찔했다.
바로 그때였다.
탁.
태건은 녹음기 마이크를 낚아챘다.
그리고 입에 가까이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현장 뛰는 소방관들 장비는 챙겨주셔야 선배님 아닙니까?”
“어어? 그거 안 내려놔요!”
“그리고 적어도 저는 사람 구하고 불 끄는데 보람 느끼고 삽니다. 그거 하라고 소방관 뽑았으면 그걸로 딴죽 걸진 말아야죠.”
“이 사람이, 강태건 소방사, 당장 마이크 내리지 못해!”
“그렇게 불 끄다 순직하신 선배님들 대우는 또 어떻습니까……. 이거 놔요. 놓으라고 했습니다.”
턱.
마이크가 붙잡히자 태건이 고희수를 싸늘하게 노려봤다.
고희수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강태건, 좋은 말로 할 때 적당히 해요.”
“말을 일부러 내 말이랑 시간차를 두고 하네요. 거기만 잘라서 짜깁기하려고요?”
“……없는 얘기 만들어내지 마라.”
“그럼 이 얘기도 알아서 짜깁기해요. 지금 이 순간도 유가족들은 가장의 부재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그 자녀들은 친구들 놀림감이 되고 있습니다.”
태건은 속에 있던 얘기를 다 풀어냈다.
그러자 고희수가 적잖이 당황했다.
“그만 하라니까, 마이크 꺼!”
“건드리지 마세요. 손모가지 날아갑니다. 그리고 임용할 땐 국가에 충성하라고 하셨죠. 충성하다 순직했으면 책임 져야 될 거 아닙니까!”
“이 친구가 정말!”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열심히 제자리에서 일하는 수많은 소방관들 좀 헤아려주십시오. 이상입니다.”
탁!
끝까지 할 말을 마친 태건은 알아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고희수의 눈이 표독스럽게 변해 있었다.
결국 고희수가 입술을 들썩이며 으르렁거렸다.
“강태건, 아주 막나가는 구나.”
“틀린 말 있음 하나만 집어내라니까요.”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본인에게 좋을 게 있을까.”
꾸기깃.
고희수는 종이를 구기며 싸늘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