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60)화 (60/320)

60화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마디 덧붙였다.

“전 그날까지 눈 감지 않을 겁니다. 감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그렇군. 자네가 어떤 심정인지 내 확실히 알았네.”

“…….”

“일단 좀 가라앉히고 차 들어. 그리고 강 대원이 지적한 문제들은 가급적 빨리 여부를 가늠해 답을 주도록 하지.”

후릅.

우석진 정책과장은 먼저 찻잔을 들었다.

그런데 조금 달라진 점이 있었다.

파르르.

손끝이 떨리고 있단 부분이었다.

태건이 두 눈까지 충혈되며 보여준 진심이 허무하게 날아가진 않은 모양이다.

태건도 곧 들썩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 미련하죠? 팀장님, 그리고 성규 선배.’

자조적인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하지만 티끌만한 거짓도 없는 100퍼센트 진심이었다.

이런 자신을 구박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불 앞에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한 명이 모이고, 또 모인다면 분명 헛된 망상으로 끝나진 않을 거다.

분명 그럴 거다.

불과 맞서고, 재해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다.

더는 안타까운 죽음에 몸서리치지 않아도 되고, 남은 가족들이 애통해하지 않아도 된다.

꼭 그날이 올 거다.

태건은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우석진 정책과장과는 얼마 후 헤어졌다.

“오늘은 이쯤에서 일어나지.”

그렇게 뭔가 쫓기듯 떠나갔다.

부웅.

그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야 태건도 다시 차량에 올랐다.

“머리 좀 아프겠지.”

사실 한국의 기존 소방체계로선 혁신에 가까운 제안들이었다.

그걸 타파하는 게 보통 숙제가 아닐 터였다.

부웅.

이내 서울로 출발한 차량엔 여유와 느긋함이 느껴졌다.

태건이 서울에 도착한 건 저녁 무렵이었다.

선물과 짐들을 이끌고 오광휘 팀장의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모두 열리기도 전에 오늘 비번인 오광휘 팀장이 눈에 불을 켜고 맞이했다.

“내 차 무사하냐?”

“그럼요. 그보다 이거, 아버지가 같이 먹으라고 보내주신 겁니다.”

터억.

태건은 약꿀부터 내보였다.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사이라 오광휘 팀장이 대번에 알아봤다.

“오오. 이거슨 약꿀!”

“그리고 이건 어머니가 보내신 겁니다.”

촤락.

아이스박스를 열자 각종 반찬에 오광휘 팀장 눈이 반달로 급변했다.

“아이고, 이렇게 귀한 반찬분들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에 행차하시다니.”

“그러니까요.”

“우씨. 넌 반찬과 꿀이 살렸다. 감사 전화부터 신속하게 해.”

“반찬부터 넣고요.”

“넣지 마. 그거랑 밥 먹을 거야!”

오광휘 팀장은 냉장고로 향하는 반찬부터 다급히 사수했다.

태건의 고민이 해결됐는지는 일절 묻지 않았다.

표정만 봐도 달라진 게 훤히 보인 탓이다.

알아서 말할 거라고 믿는지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건 그의 예상이 옳았다.

태건이 저녁식사를 챙겨주며 1박 2일의 여정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랬습니다.”

진지한 태건의 설명이 끝났다.

어느새 한껏 양 볼이 부풀어 오른 오광휘 팀장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턱.

숟가락까지 떨군 그가 재빨리 입안을 비우고 말했다.

“꿀꺽. 크윽, 큭. 그러니까……. 쿨럭. 정책과장님의 머릿속에 폭탄세례를 퍼붓고 왔다고?”

“물부터 좀 드세요.”

“알았으니까 대답, 짜샤.”

벌컥.

다급히 물컵을 빼앗은 오광휘 팀장이 쏘아붙이고 물을 마셨다.

그 사이 태건은 그가 원하는 대로 대답했다.

“폭탄 세례……. 좀 머리 아프긴 할 겁니다.”

“그게 그 정도가 아닐 텐데.”

“그런데 그게 기본입니다. 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창단해 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나도 동감. 들어보니 네 말이 옳긴 옳아.”

오광휘 팀장은 의외로 호탕하게 수긍했다.

태건이 더 의아했다.

“막 나갔다고 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요.”

“내가 그렇게 꽉 막힌 인간은 아니잖냐. 그래서 네가 보기에 어때, 전부 오케이 떨어질 거 같아?”

“글쎄요. 봐야 알죠.”

태건의 너무도 무덤덤했다.

그 반응에 오광휘 팀장이 숟가락을 들며 우석진 정책과장 대신이란 듯 격분했다.

휙휙.

“남의 머리에 진도 10짜리 초대지진을 일으켜놓고 넌 나 몰라라나?”

“누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고민하면 내 속이 끓지만, 상대에게 던지면 내 속은 편하다고요.”

“……그건 정답이네. 그런 의미에서 반찬 진짜 맛있다. 쩝쩝.”

어느새 그는 태연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변화무쌍한 오광휘의 모습에 태건이 오히려 물었다.

“그렇게 특수소방단 시작되면 근무강도가 엄청 올라갈 텐데, 저 원망하지 않으세요?”

“돈 많이 준다며?”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내가 들어봐도 옳은 소리만 했는데 뭘 따져. 어차피 단장 후보가 된 순간부터 각오했던 일이었어.”

역시란 말이 절로 나올 대답이었다.

그런 그에겐 초지일관하는 부분이 있었다.

소방관의 마음가짐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는 기본소양만큼은 일품이었다.

태건이 가장 신기해하면서도 존경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그런가보다 하고 살지.’

그게 아니었다면 럭비공 같은 성격을 맞추기 어려웠을 터였다.

*  *  *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의 출근길이었다.

우웅웅!

“소리가 원래 이랬나? 부드러워진 거 같기도 하고.”

“그게 원래 엔진소리입니다.”

“어쨌든 잘 나가네. 한 번씩 달려주긴 해야겠어.”

오광휘 팀장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단 듯이 기뻐했다.

그런 그를 보며 태건도 열심히 달린 보람을 느꼈다.

그날 이후 시간이 술술 흘러갔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감감무소식이었다.

태건은 그의 연락만 목 빠지게 기다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화재 출동 탓이었다.

그 화재 신고는 화재의 규모가 크고 작고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 아파트 화재 신고 현장.

태건이 무전기로 현장 상황을 오광휘 팀장에게 보고했다.

띠릭.

“세탁기 과열로 인한 화재로 확인. 요구조자 없음. 전화 정리 중.

-띠릭. 확인 완료. 그런데 집주인도 없어?

“세탁기 돌려놓고 외출한 모양입니다……. 막내들, 방사형으로 뿌리라니까!”

태건이 버럭 소리쳤다.

그 소리에 신입소방관들이 크게 움찔거리며 소방호스의 노즐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쫘아악, 푸아악!

“아으, 어푸푸!”

조절하다 노즐을 손으로 막았는지 얼굴에 물이 튀기도 했다.

뭘 해도 참 어설퍼 보였다.

태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소리 했다.

“옥내소화전 호스도 감당 못하면 펌프차 호스는 어떻게 감당할래!”

“죄송합니다!”

“세탁기만 쏘지 말고 세탁실 위쪽, 구석까지 꼼꼼하게 뿌려야 될 거 아냐!”

“네!”

촤악, 촤아악.

신입소방관들은 잔뜩 얼어 기계처럼 움직였다.

반면 태건은 싱겁게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일부러 긴장시키기 위해 더 소리치는 이유도 있었다.

내부의 텁텁한 공기를 순환시키는 다른 화재팀원들도 손짓과 눈짓으로 태건을 격려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현장.

이번엔 교통사고 현장이었다.

화재팀은 단순 화재 발생 현장만 출동하는 게 아니었다.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도 출동 범위에 속했다.

현재 사고 난 차량들 속 요구조자들은 구조대와 구급대가 힘을 합쳐 구조 중이었다.

그그극!

“그쪽 더 밀어!”

“겁나 찌그러졌……. 끄으응!”

“한 분 나오신다, 들것부터 가져오고 구급대, 세팅해요!”

“구조대, 요구조자 의식 있습니까. 그거부터 확인해 줘요!”

웅성웅성.

흉물스레 찌그러진 차량들 주변에 구조대와 구급대들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사이 화재팀은 다른 이유로 사고 차량 주변에 모여 있었다.

태건이 두리번거리는 신입소방관들에게 매섭게 소리쳤다.

“죄다 몰려다니냐. 선배들이 옆에 바짝 따라 붙어서 뭐하는지 보고 배워야 할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에잇, 얼른 한 명은 엔진룸 보고, 한 명은 누유 확인, 그리고 넌 주변에 인화성 물질이 있는지 확인해. 흩어져!”

태건은 가차 없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요즘 출동 현장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교육 담당으로 굳혀진 탓이었다.

그 이면엔 선배들의 입심이 크게 작용했다.

‘막내들 신경쓰다보면 지가 불구덩이에 들어갈 시간이나 있겠어?’

정확히 그걸 노리고 교육 담당으로 밀어붙였다.

그 작전이 맞아떨어졌는지 태건의 최근 출동 중 위험한 행동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정확하게는 태건이 선배들 계획을 벌써 눈치채고도 순순히 따라주는 중이었다.

물론 최근 대형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선배들에게 배우고, 자신이 경험한 걸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기쁨과 책임감도 한몫했다.

그래야 산다.

저들을 살리기 위해 굴려야 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지.’

하루란 시간도 소중했기에 허투루 보낼 순 없었다.

그런 태건 덕분에 다른 화재 팀원들은 더 위험도 높은 화재방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태건과 선배들 사이엔 알게 모르게 눈치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신입소방관 중 한 명이 땅바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태건 서, 선배님. 누유입니다. 여기 확실히 누유 발견했습니다!”

“어디까지 흘렀는지 확인부터 해!”

“알겠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흡착포 가져와, 서둘러!”

“네!”

“……강태건입니다. 팀장님, 누유 확인, 누유 확인.”

지시를 마친 태건이 곧장 무전기로 상황을 전파했다.

그와 동시였다.

훅!

뒤에서 오광휘 팀장이 불쑥 나타났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사고 현장 가득 소리쳤다.

“지금부터 누구든 불똥 하나만 튀겨봐. 확 튀겨버릴 테니까!”

“네!”

“구급, 구조. 요구조자분들 구조 서둘러. 그리고 경찰 아저씨 저기 서 있는 렉카 아저씨들 대기 좀 시켜주세요!”

타다닥!

오광휘 팀장은 고래고래 소리쳐가며 현장을 전체적으로 조율했다.

그런 그가 가장 바빠 보였다.

또또 다른 출동 현장.

이번엔 주택가의 화재 출동 현장이었다.

진화를 마친 후에 드러난 원인에 모두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벌집 태우려다 2층 다락방을 태워 먹었어?”

“진짜 너무 부주의들 하시다. 부주의 하셔.”

“구조대에 벌집 제거해달라고 연락을 하시지.”

다들 기막힌 이유에 혀를 내둘렀다.

또또또 다른 현장.

이번엔 연립주택이었다.

그런데 화재가 아니라 가스누출 신고였다.

그것도 오인 신고였다.

삑삑.

가스누출기로 반복해 확인했지만 기계는 반응이 없었다.

마침 같이 있는 신고자에게 조규찬이 친절하게 응대했다.

“이상이 없네요. 아무래도 잘못 아신 거 같습니다.”

“킁킁. 윽, 이 냄새. 이거 가스 냄새 맞잖아요.”

“아, 이건 쓰레기 냄새입니다.”

“그럼 그것 좀 치워주고 가세요. 난 또 가스인 줄 알았네.”

휙.

신고자는 뻔뻔한 얼굴로 떠밀고는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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