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다들 허탈한 얼굴로 바라봤다.
“이럴 땐 힘 빠진다니까.”
“잘못 알 수는 있지. 그런데 저러는 건 아니지.”
“갑시다. 철수해야죠.”
“그러다 또 신고할라, 냄새나는 거 밖으로 내놓고 물로 한번 싹 뿌리고 철수하자.”
터덕, 터덕.
완전 무장하고 출동한 게 민망했다.
게다가 분명 화재와 하등의 관계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진짜 계단 구석에서 쓰레기를 찾아 내놓고, 간단하게 청소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슥슥, 벅벅.
힘 빠진 손길이지만 끝까지 마무리는 지었다.
신입소방관들은 선배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철수하던 중 태건에게 물었다.
“태건 선배, 저걸 우리가 왜 하는 겁니까?”
“저건 소방관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청소부도 아니고요.”
억울하고 기막혀하기까지 하자 태건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해주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대체 왜요?”
“이대로 철수하면 또 신고 들어올 테니까. 그럼 또 와야 되잖아.”
“뻔히 아닌 걸 아는데도 또 온다고요?”
“그뿐인 줄 아냐. 민원도 접수 되고, 게시판에 불성실 투서 올라올 거고. 그럼 우리만 행정실 불려가서 인사팀장님한테 깨져.”
태건이 또 다른 현실을 일깨워줬다.
그러나 신입소방관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왜 우리 잘못인데요.”
“별 수 있냐. 앞으로도 명심해. 주민과 트러블은 일단 피하고 볼 것. 그래야 너희들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진짜 세상에 별의 별 사람들 다 있다더니. 이럴 수도 있단 게 놀랍습니다.”
“더 놀랄 일 많으니까 미리 다 놀라지 마라.”
툭툭.
태건은 신입소방관들 어깨를 다독여주며 쓸쓸한 위로를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름 위안을 떠올렸다.
‘구급차를 공짜 택시 취급하는 거보다야 이게 양반이지.’
구조대나 구급대의 기막힌 출동까진 아직 신입들에게 알려주기 일렀다.
그거까지 알면 뒷목잡고 쓰러질지도 몰랐다.
어마어마한 대형 화재도 무찌르는 이들이 바로 소방관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주민 앞에선 그저 스마일맨로 전락하는 게 씁쓸한 단면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드문 편이었다.
현장이 마무리되면 감사 인사들이 쏟아졌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희 가족들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어요.”
“음료수라도 좀 드세요. 많이 힘드셨죠. 고생하셨습니다.”
“사례는 어떻게……. 안 받는다고만 하지 마시고,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몸 둘 바를 모를 정중한 인사말들이었다.
그걸 들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뿌듯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화답이 절로 흘러나온다.
“언제든 무슨 일이 생기시면 꼭 119로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경쾌했다.
-이래서 소방관하는 거야!
오늘도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켰단 자긍심이 철철 넘쳐흘렀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엔 식사 때를 놓치는 우울한 소식마저도 애교로 넘어갔다.
“식당에 밥 없다는데요.”
“뭐해. 컵라면하고 세팅하고 김치 가져와.”
“또요?”
“투정 부릴 시간에 얼른 면 불려서 먹을 생각이나 해. 그것도 다 못 먹고 나가면 힘쓰겠냐. 그리고 막내들은 2개씩이다. 잊지 마.”
찡긋.
태건은 신입소방관들에게 눈짓까지 보냈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화재팀의 의미 있는 전통도 계승 중이었다.
위와 같은 다양한 출동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석진 정책과장의 전화가 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긴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금씩 잊혀져갔다.
문득 생각날 때가 있긴 했다.
그럴 땐?
‘이대로 없던 일이 돼도 나쁘진 않지.’
구디소방서에 하루라도 더 머물고픈 마음이 차고 넘쳤다.
선배들과 트러블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래도 얼굴 보고 지지고 볶는 게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선배들도 태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과 시간엔 다소 날을 세우며 퉁명스레 대했다.
하지만 퇴근길에 오르면 180도 달라졌다.
“태건아, 끝나고 목욕탕 가자!”
“태건쓰. 막내들하고 족발집 앞으로 집합!”
“건아. 오늘 수고했다. 소주에 순댓국 때리고 가서 퍼 자자.”
지켜보는 오광휘 팀장이 늘 어이없어했다.
“저건 뭔 짝사랑들인지. 아, 몰라.”
서로 잘 지내보려 무던히 애쓰는 게 눈에 보였다.
* * *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무더위가 서서히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이고, 찐다!”
“사무실은 에어컨 틀어서 시원하기만 한데요, 뭐.”
“나랑 온도가 안 맞는다니까.”
여기저기서 투덕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싸움이란 오해는 가당치도 않았다.
출동 대기 시간에 화재팀원들끼리 나누는 정겨운 투정들이었다.
그날 오후.
사무실에 고요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 중심엔 지금 막 게시된 공문서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전출명령서. 소방장 오광휘, 소방사 강태건.
그걸 본 태건과 오광휘 팀장의 눈빛이 동시에 빛났다.
번쩍!
‘이 시기에 갑작스런 전출명령이라면.’
‘특수소방단 결성 확정이겠지.’
빠르게 오간 시선이 똑같은 의미를 담고 있자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두 사람만 납득하고 이해하는 내용이었다.
너무도 뜬금없는 소식에 화재1팀은 전원 난리가 났다.
“이게 뭔 등 긁다가 담 오는 소리야!”
“아무리 우리가 말단이라도 갑자기 이러는 건 아니지!”
“무슨 팀장을 지들 마음대로 빼가.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반발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가득했다.
이제 태건과 좀 가까워져간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떠난다니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때 화재팀 사무실 문이 열리며 박민석 서장이 들어왔다.
먼저 발견한 오광휘 팀장이 낮게 외쳤다.
“일동 차렷. 안전, 근무 중 이상 무.”
척.
거수경례까지 하며 소방서 최고 어른이자 책임자에 대한 예의를 보였다.
그러나 박민석 서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톡 쏘아붙였다.
“이상 없기는, 복도에 니들 목소리만 들려.”
“크흠. 게시문 때문에.”
“안 그래도 그래서 왔다……. 화재1팀.”
박민석 서장의 부름에 올곧게 선 모두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네!”
“갑작스런 인사이동에 많은 궁금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아직 대외비긴 하나 관련자니까 간단히만 설명하겠다.”
“네.”
한풀 누그러든 대답과 궁금한 시선으로 금세 물들었다.
박민석 서장은 태건과 오광휘 팀장을 가리키며 재차 입을 열었다.
“위 두 사람은 위에서 계획한 특별부서에 차출되게 되었다.”
“특별부서요?”
“일전에 특별감사에서 두 사람만 개별 감사받은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거라 믿는다.”
“아, 네.”
“그 특별감사의 목적 자체가 두 사람의 역량 파악을 위한 심층 조사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거다.”
사실과 교묘하게 달라진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화재팀원들에게는 의혹들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설명이었다.
“아, 그래서 팀장님하고 태건이만 부른 거였구나.”
“그 다음에는 흐지부지 끝났잖아. 딱, 그거였네.”
“대체 어떤 특별부서를 준비하는데 특별감사까지 동원하는 거야?”
웅성웅성.
대번에 서로를 보며 오가는 목소리로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오광휘 팀장이 얼른 발을 구르며 모두를 다시 주목시켰다.
텅!
“주목.”
“…….”
순식간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때가 돼서야 박민석 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시간부로 오광휘와 강태건은 발령 대기자로 분류되며 개인 물품 정리 실시하도록 해라.”
“네. 그런데…….”
“차기 팀장이 있어야지. 조규찬이.”
박민석 서장이 부르자 조규찬이 얼른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척.
“네, 서장님.”
“화재1팀 잘 끌어갈 수 있지?”
“…….”
“계속 팀장 교육 받았잖아. 그런데 막상 기회가 오니까 망설여져?”
박민석 서장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 순간 조규찬은 복잡한 생각을 미루고 대답부터 내뱉었다.
“아닙니다. 소방서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입 3명은 전부 화재1팀으로 배속한다. 넌 누구 같지 않아서 내가 안심이 돼.”
“크흠. 감사합니다.”
조규찬은 괜히 오광휘 눈치를 보며 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오광휘는 입을 다문 채 표정으로 박민석 서장에게 항의 중이었다.
그 시선에 오히려 박민석 서장이 물었다.
“오광휘, 뭐 하고 싶은 말 있나?”
“……조 팀장 취임 축하한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진 않았다.
물론 박민석 서장이 그런 모습을 신경 쓸 내공은 아니었다.
“아무튼 니들은 바로 짐 정리하고, 끝나면 내 방으로 올라와.”
“알겠습니다.”
“서로 할 말이 많을 텐데 난 이만 퇴장하지.”
“안전, 수고하십시오.”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박민석 서장이 퇴장했다.
잠시 후.
태건은 휴게실에 선배들과 따로 자리하고 있었다.
조규찬 팀장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왜 그동안 한마디도 안 했어?”
“팀장 축하드립니다.”
“내가 지금 그거 말하니. 또 느물느물 넘길 생각 말고 제대로 답해.”
척.
조규찬 팀장이 허리에 손까지 올려가며 위압을 내보였다.
그래도 태건은 싱글싱글 웃으며 답했다.
“도통 연락이 없어서 사장되는 계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언질은 줬어야지. 쯧.”
조규찬 팀장은 아쉽고 또 안타까움에 혀까지 찼다.
그러나 서순영은 반응이 조금 달랐다.
“오 팀장님 아니, 오 선배는 경력도 있고 활약도 쟁쟁하다고 쳐도, 넌 대체 왜 뽑힌 거야?”
“미국 쪽 제 소식을 이쪽에서도 아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너 진짜 미국에서 소방일 했던 거야?”
그 소리에 표인철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답을 재촉했다.
그때 조규찬이 손을 들었다.
“다들 조용.”
“…….”
“태건아, 하나 묻자, 그동안 무모하게 보였던 네 모습은 결국 우리 눈이 삐딱해서 그랬던 거였어?”
“…….”
“넌 잘하고 있는 건데, 정말 우리가 널 그 사고 속으로 계속 구겨 넣고 있었단 거니?”
조규찬 팀장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태건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백날 왈가왈부해도 결국은 제자리입니다.”
“…….”
“언젠가는 정말 속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온다고 확신합니다. 전 그때까지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겠습니다.”
태건이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바로 그때였다.
스피커로 화제출동 벨소리가 따갑게 울렸다.
-에엥엥, 에에엥!
-가건물 화재 신고 접수, 화재, 구조, 구급 전원 출동. 출동차량 펌프차, 물탱크차…….
얼핏 들어도 꽤 크게 일어난 화재 같았다.
반사적으로 수첩에 필기한 막내들이 목소리가 찢어져라 외치며 전파했다.
“출동입니다!”
“전원 출동이랍니다!”
못 들어서 외치는 게 아니라 경각심을 일깨우려 소리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