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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62)화 (62/320)

62화

막내들의 목소리보다 선배들 움직임이 더 빨랐다.

타다닥!

“움직여!”

“달려!”

사무실의 소란이 휴게실까지 강렬히 전달 됐다.

벌써 다들 눈빛은 야무지게 돌변한 상태였다.

핑!

“다녀올게.”

“저도 가야죠!”

“짐이나 싸!”

타다닥!

한 마디씩 내던진 두 사람은 바로 뒤돌아 뛰었다.

그리고 조규찬 팀장이 남았다.

투욱.

태건의 어깨에 묵직하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최근 일주일……. 그때처럼 즐거웠어.”

“…….”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단 생각이 들었어.”

“팀장님.”

스윽.

태건이 불렀지만 조규찬 팀장은 손으로 막으며 자기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모진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하다.”

“…….”

“이 순간에도 여러 생각들이 스치는 내가 참 밉네.”

“애쓰지 마십시오.”

태건이 답하자 조규찬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쓰지 말자.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자. 그럼 세월이 우리를 인도해 주겠지.”

“그런데 출동 안 하십니까?”

“어? 아니, 가야지. 갈 거야.”

“빨리 뛰세요!”

“새끼. 간다!”

타다닥!

조규찬 팀장이 인상을 북 찡그려 보이고는 떠나갔다.

태건은 미소 지었다.

이런 부산한 헤어짐이 차라리 좋은 거 같았다.

그때 오광휘가 휴게실 문틀에 떡하니 기대며 말했다.

“참 니들 요란하다. 요란해.”

“그러게요. 전 사실 신파보다 액션활극을 더 좋아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오디션 합격했잖아. 주연급으로.”

“훗. 말이 그렇게 되네요.”

“정리나 하자. 이따가 쟤들 복귀했을 때 우리가 있으면 서로 얼굴 못 봐.”

퉁.

오광휘는 가볍게 등을 튕기며 문틀에서 벗어났다.

태건도 그 의견엔 백번 동감했다.

“얼굴만 못 봅니까, 그 어색함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벅, 저벅.

상상조차하기 싫은 순간을 얼른 털어버리며 뒤따라 휴게실을 나갔다.

개인물품을 정리하는 시간은 금방이었다.

그 후 태건과 오광휘는 박민석 서장을 찾아갔다.

세 사람은 응접 소파에 자리하고 있었다.

곧 박민석 서장이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오광휘에게 건넸다.

척.

“가다가 고기나 한 접시 사 먹어.”

“평소에 좀 주시지. 이럴 때 주십니까.”

“그럼 받질 말든가.”

박민석 서장은 이미 봉투가 사라진 빈손을 슬슬 비볐다.

반면 봉투를 건네받은 오광휘는 슬쩍 안을 흘겨봤다.

“어디 보자.”

“채신머리 좀 챙겨라.”

“크흠. 또 저한테만 그러십니다.”

“너만 그러니까……. 강태건이, 네가 고생이 많겠어.”

뜻밖의 위로에 태건은 빙글 미소 지었다.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녀석. 그건 그렇고 떠나는 기분은 어떠냐.”

“얼떨떨합니다. 한 시간 사이에 상황이 급변하니까 쫓겨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얼렁뚱땅 헤어져야 청승도 덜 해.”

박민석 서장의 말에 태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그건 또 그렇긴 합니다.”

“그래. 그보다 날 보고 가란 건, 한마디 해주려고. 이제부터 말과 행동 조심해.”

“네?”

태건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박민석 서장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소방청은 힘이 없어. 게다가 이번 일에 워낙 예산이 많이 들어 안 좋게 보는 곳이 있어.”

“........”

“아차하면 특수소방단 통째로 날아가.”

의미심장한 뜻이 느껴지는 조언이었다.

쑤우욱.

태건과 오광휘의 가벼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특히 묵직해진 오광휘가 나지막이 물었다.

“특수소방단 창단을 고깝게 여기는 분들도 계신단 겁니까?”

“그렇지. 게다가 다른 청이나 장관급에서 견제가 들어오면 힘들어질 수 있어.”

“누구를 가장 조심하면 됩니까?”

“그건 나도 몰라. 고작 서장 따위가 어찌 알겠냐.”

박민석 서장은 자신을 깎아내리며 답했다.

그 대답에서 조사는 해봤지만 만족할 성과가 없는 뉘앙스를 풍겼다.

태건은 가만히 듣고 있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변을 잘 둘러보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째 네가 순순하냐?”

“어차피 저희 일은 정해져 있고, 그거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태건의 대답에 박민석 서장이 결국 답답함을 내보였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까 봐 따로 불러서 말하잖나.”

“그럼 저희가 가급적 빨리 활동을 시작해야겠습니다.”

“더 견제가 늘어나겠지.”

“국민들 지지를 받게 된다면 그건 어려울 겁니다.”

태건은 몇 수 앞의 상황을 말했다.

박민석 서장이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더 말하려다 스스로 멈췄다.

“나 참, 그러니까……. 아니다. 네 말이 맞아.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거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음료수마저 마시고 일어나. 그리고 좋은 소식 기다리마. 기왕이면 소방청 위상 팍팍 올려.”

“현장 상황 안 좋다 싶으면 연락 주십시오. 핫라인으로도 지원 요청받겠습니다.”

태건은 장난 반, 진담 반 섞어서 부드럽게 답했다.

오광휘도 그냥 미소만 지어 보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구디소방서였다.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가라앉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긴 늘 이 자리에 있을 거다.

언제든 제집처럼 들어와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갈 수 있는 곳이다.

그걸 알기에 더는 미련을 품지 않았다.

*  *  *

발령 대기를 가장한 휴가는 그날부터 시작됐다.

간만에 퐁당퐁당 교대근무에서 벗어난 태건과 오광휘는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쿨쿨.

자는 게 남는 거란 명언이 괜한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약꿀을 큼지막하게 아침저녁으로 떠먹었다.

확실히 약꿀의 효과가 직빵이었다.

며칠이 지나니 얼굴에 살도 오르고 몸에 힘도 바짝 들어갔다.

“오오, 이 잔근육 꿈틀거리는 거 봐봐.”

“괜히 약꿀이 아니네요.”

“먹고 자고가 최고야. 그런 의미에서 난 좀 더 잔다.”

“쉬십시오.”

한 집에 살면서도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긴, 조금 독특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띠링.

태건과 오광휘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내일 아침 10시까지 우면119안전센터로 오시오.

기다리던 소집 문자가 도착했다.

통보 내용 외에 준비물도 적혀 있었다.

“그럼 준비하자.”

“네.”

사삭.

오광휘와 태건은 그 길로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서로 뻔히 아는데 길게 대화할 거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서초동 소재에 위치한 우면119안전센터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우면센터가 아니라 센터 뒤에 있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하늘색 지붕의 단층 건물이 주 건물로 서 있었고, 그 주변엔 여러 소방훈련용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터억.

어깨에 가방 하나씩 둘러멘 태건과 오광휘가 나란히 서서 바라봤다.

천천히 둘러보던 태건이 한 마디 했다.

“교육기관 같네요.”

“그립네. 나 초임 때만 해도 이런 데가 꽤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습니까?”

“나 때는 말이야…….”

오광휘의 말이 길어질 조짐이 보였다.

얼른 눈치챈 태건은 얼른 말을 돌렸다.

“라떼는 커피라떼죠.”

“에잉? 라떼는 연유라떼지!”

오광휘가 이상한 데서 발끈했다.

늘 느끼는 사실이지만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의미가 없진 않았다.

시시콜콜한 그 농담들이 어깨에 올라탄 긴장감을 한결 덜어줬다.

덕분에 표정들이 금세 가벼워졌다.

태건은 다시금 건물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제 들어갈 때 같습니다.”

휙.

오광휘는 순식간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환영 인파가 없는 걸 보니까 조용히 시작하잔 모양인데, 스리슬쩍 들어가 줘야지.”

“가시죠.”

저벅.

태건과 오광휘가 동시에 걸음을 내딛었다.

그건 특수소방단으로 변신하는 역사적인 첫걸음이었다.

잠시 후.

끼익.

어딘가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섰다.

자그마한 교육실 분위기가 났다.

그 속엔 먼저 도착한 네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새로 합을 맞출 사람들이라…….’

뒷모습들일 뿐이었지만 낯섦이 가득했다.

때마침 4명의 남자들도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

까딱.

서로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탓에 어색한 고갯짓으로 간결하게 묵례만 했다.

그 잠깐 사이 서로서로 살펴보기 바빴다.

태건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모두 30대로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단상 앞에 앉은 덩치 좋은 남자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딱 봐도 근육파네.’

단상이 가려질 정도로 피지컬이 엄청났다.

흑인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이어서 두 번째 남자로 시선을 돌렸다.

‘연예인?’

그런 생각이 스칠 정도로 외모가 준수했다. 

그리고 사교적인지 눈길에 호기심이 그득했다.  

세 번째 남자는 조금 통통한 체격이었다.

수줍음이 많은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워?’

무척이나 소심한 성격인 모양인 듯하다.

과연 특수소방단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마지막 남자는 더욱 독특했다.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고 존재감도 별로 없었다.

마른 몸매에 낯빛도 썩 좋지 않았다.

‘어디 아픈가?’ 

한 명씩 둘러본 태건과 오광휘는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스윽.

오광휘가 슬쩍 기대어 오며 속삭였다.

“딱 봐도 캐릭터들 엄청 독특할 거 같지 않냐?”

“우리도 만만치 않죠.”

“그렇지. 우리도 한 사이코……. 뭐, 나도?”

“흠.”

태건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걸 본 오광휘가 대놓고 째려봤다.

“이 짜슥이…….”

궁시렁.

입이 삐뚤어지게 달싹거렸다.

“…….”

태건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딴 생각 중이었다.

소방교 둘에 소방사 둘이었다.

계급을 보아하니 자신이 또 막내가 될 거 같았다.

‘그건 익숙하지.’

늘 그래왔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특수소방단에 임하는 각오를 더욱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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