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64)화 (64/320)

64화

태건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이해하고 있었다.

‘놀랍겠지.’

미국에서 늘 받아왔던 시선이다.

오광휘 단장은 확실히 하려는지 한마디 더 보탰다.

“이 친구가 한국 유일의 스모크점퍼, 더 라면입니다.”

뭔가 개구진 보탬의 말이었다.

진지하게 앉아 있던 태건이 순간 비틀거렸다.

“또?”

하여간 못 말렸다.

다른 단원들은 의아해했다.

“라면이 뭐야?”

“한국 라면이 외국에서 유명하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라면도 라면인데…….”

앳된 외모가 또 한 번 눈에 밟힌 모양이다.

표정들에서 혼란이 느껴졌다.

태건의 시선은 오광휘 단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라면이 뭡니까.’

‘…….’

오광휘 단장은 아예 외면해 버렸다.

그 표현인 즉, 억울하면 스스로 정정하란 의미와 같았다.

태건은 그 의미를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또 저러시네.’

절레절레.

참으로 독특했다.

그릉.

동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두를 향해 선 태건이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정정부터 하겠습니다. 라면이 아니라 ‘더 라스트’ 강태건입니다.”

“…….”

다들 빤히 바라만 봤다.

그 표정을 읽었지만 태건은 하고픈 말만 이어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짧고 굵게 소개를 마무리 지었다.

이어서 자리에 앉으려 할 때였다.

슥.

두툼한 손이 올라오더니 연예인 같이 준수한 외모의 단원이 물었다.

“고수현 소방사입니다. 강태건 단원도 저와 같은 소방사인 거 같던데요.”

“맞습니다.”

“실례지만 경력이?”

고수현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답했다.

“2년 조금 안 됐습니다.”

그 소리에 고수현의 시선이 오광휘 단장에게로 향했다.

“단장님. 사실입니까?”

“물론.”

“그런데 어떻게……. 저 친구 믿고 특수소방단을 만들었단 게 말이 됩니까?”

텅!

책상까리 후려친 고수현의 반발이 거셌다.

그런데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오광휘 단장이 먼저 태건에게 물었다.

“내가 말할까?”

“제가 하겠습니다.”

“얼마든지.”

스윽.

오광휘 단장은 손짓까지 곁들여 가며 수더분하게 권했다.

이내 태건의 시선이 고수현에게로 향했다.

스윽.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천천히 다른 단원들까지도 훑었다.

그리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말씀대로 제 근무 경력은 보잘 거 없습니다.”

“…….”

“앞으로 함께 생활할 때 잘 부탁드립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고수현이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말에 딴죽을 걸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피잉!

태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들유들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에 거대한 기백이 꽉 들어찼다.

구구구.

마치 태건의 몸이 커진 거 같았다.

실내 모두가 움찔했다.

딴 곳에 시선을 둔 병약해 보이는 단원이 돌아볼 정도였다.

“…….”

무슨 생각인진 몰랐다.

하지만 태건의 모습이 범상치 않단 건 다들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태건은 분위기 하나로 내부를 휘어잡았다.

그 기세 그대로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아닙니다.”

쿠궁!

“…….”

실내가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다른 단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쓸고 있었다.

슥슥.

“어?”

“이게…….”

스스로의 행동을 인지한 모두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태건의 기세에 눌린 거다.

어마어마한 기백에 서늘함을 느낀 게 분명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더 라스트.

이 순간이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됐다.

그런데 독특한 닉네임보다 태건의 강렬함이 더 인상 깊게 남았다.

오광휘 단장이 남몰래 미소 짓고 있었다.

‘하여간 물건이야.’

십수 년 경력자인 자신조차 긴장시키는 간담 서늘한 기백이었다.

내심 흐뭇함을 감춘 그가 단상을 두드렸다.

탁탁.

“자자, 우리 애는 사람 안 무니까 다들 표정 풉시다.”

“에?”

“뭘 다들 그렇게 봅니까. 그럼 계속 소개부터 이어가도록 하죠.”

오광휘 단장은 황당한 시선이 쏠려도 마이웨이로 진행했다.

곧 단원들의 각자 소개가 이어졌다.

먼저 태건에게 딴죽을 걸었던 고수현이었다.

‘썩…….’

태건은 살짝 뚱한 표정이었다.

첫인상이 많은 걸 좌지우지했다.

고수현은 당당하게 자신을 내보였다.

“차세대 떠오르는 슈퍼스타 소방관 고수현입니다.”

“…….”

“알아보는 분도 계시겠지만. 네, 맞습니다. 섹시한 소방관 1위로 선정돼 잡지에 실린 적도 있었지요.”

자화자찬 성격이 엄청 강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화려한 소개였다.

…….

다만 호응이 없었다.

어색한 가운데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눈빛을 슬쩍 교환까지 했다.

‘쟤, 알아?’

‘전혀요.’

‘관심병인가?’

‘아마도요.’

그나마 둘은 반응이라도 있었다.

“…….”

다른 세 명은 아예 시큰둥, 그 자체였다.

다음은 덩치 좋은 단원이었다.

처억!

자리에서 일어나자 산이 우뚝 솟은 거 같았다.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장신이었다.

그 단원은 배에 힘을 딱 주며 목청껏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황, 대, 산. 인사드립니다!”

지이잉!

얼마나 큰 소리인지 교육실이 쩡쩡 울렸다.

“억!”

“윽!”

다들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쓰며 한 소리 했다.

“저기, 좀 조용히 말합시다.”

황대산은 그 말을 못 들은 모양이다.

“저는 119특수구조대 출신으로 서해와 남해 일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살살 말하라고!”

빽!

오광휘 단장이 결국 소리쳤다.

황대산의 눈초리가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뭐요?”

핑!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오광휘 단장이 그 정도에 물러날 위인은 아니었다.

“뭐, 해보자고? 진짜 한 판 떠?”

꽈악.

주먹까지 움켜쥐었다.

그런데 황대산이 돌연 머쓱한 얼굴로 얼른 사과했다.

“소리쳐서 죄송합니다.”

스윽.

자리에 앉을 땐 왠지 작아 보였다.

“쟤, 뭐야.”

스윽.

얼떨떨한 오광휘 단장은 내심 가슴을 쓸고 있었다.

그러나 태건의 눈엔 다르게 보였다.

‘엄청 긴장했어.’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반응이 뾰족했던 거였다.

듬직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 다음은 소심한 단원이었다.

얼마나 소심한지 얼굴이 금세 시뻘개지며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황대산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었다.

“저는……. 이고.”

“크게 좀 말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크흠. 저는 유중헌이고, 아마 확실하진 않지만 운전을 조금 하니까…….”

“뭐라고요? 안 들립니다.”

오광휘 단장은 애써 인내하는지 입술 끝을 들썩이며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에 유중헌이 멈칫하더니 눈을 꽉 감고 소리쳤다.

“헬기 기장입니다. 아, 안전하고 빠르게 현장으로 추, 출동하겠습니다!”

풀썩.

유중헌은 두 손으로 벌게진 얼굴을 감싸며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기장이란 말에 태건은 한 시름 놓았다.

‘차라리 잘 됐다.’

그건 오광휘 단장도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정말 적절하고도 필요한 포지션 담당이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요. 그렇다고 치고, 이제 마지막 분 남았죠?”

스윽.

오광휘 단장의 시선이 음침한 단원에게 꽂혔다.

더불어 모두가 그를 주시했다.

곧 음침한 단원이 소리소문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웅얼웅얼.”

뭔가 말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들리지가 않았다.

순간 오광휘 단장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빡하고 튀어나왔다.

“이 단원 들리게는 말씀해 주셔야죠.”

“이지성, 구급 출신……. 에이씨, 귀찮게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몇 마디 하다 갑자기 불량한 태도로 돌변했다.

그 독특한 모습에 태건도 눈을 끔뻑거렸다.

‘이건 또 뭐야.’

당혹감을 느낀 건 오광휘 단장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지성 단원, 별로 지성적이지 않은 태도에 본 단장은 참 실망스럽습니다.”

“어쩌라고요.”

“어, 어쩔……. 뭐라고요?”

찌릿!

오광휘 단장의 눈에 짜증이 확 솟구쳤다.

그럼에도 이지성은 귀찮아하는 태도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

“에에, 뭐, 열심히 합시다. 파이팅, 아자아자. 됐죠.”

풀썩.

이지성은 건성으로 독려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오광휘 단장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헐.”

태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런데 구급 출신이라고?’

거기서 쫓겨난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되는 성격이었다.

태건은 다시 한 번 단원들을 다시 쭉 둘러봤다.

“…….”

침묵만이 가득 흘렀다.

자기소개만으로는 서로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오히려 각자 품은 독특함에 거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태건의 시선은 이어서 옆으로 향했다.

자리로 돌아온 오광휘 단장도 역시나 쥐어뜯고 있었다.

꽈악.

“내가 이 애들을 이끌……. 이끌…….”

목소리 속에 막막함이 가득했다.

태건이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단장님, 파이팅.”

“이 자식이. 이게 내 일만 되냐!”

발끈한 오광휘 단장이 격하게 반응했다.

꼼지락 꼼지락.

당장이라도 두 손이 태건의 옷깃을 잡아챌 기세였다.

태건은 그런 그의 반응도 덤덤하게 받았다.

스윽.

다가오는 손길을 밀어내며 말했다.

“바람 좀 쐬면 한결 좋아지실 겁니다.”

“그래. 젠장. 답답해서 생각도 좁아지는 거 같아. 나가자!”

벌떡!

오광휘 단장은 기다렸단 듯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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