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65)화 (65/320)

65화

잠시 후.

태건의 제안대로 모두 밖으로 나왔다.

화단 경계석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은 멍함 그 자체였다.

“이건 뭐…….”

“어디 따로국밥집 개업했냐.”

허탈한 목소리가 한 번씩 울렸다.

그만큼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태건은 살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냥 로테이션으로 하자고 할 걸 그랬나?’

처음으로 후회란 감정이 엄습했다.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될 거 같았다.

태건은 곧 오광휘 단장에게 권했다.

“일단 모으죠. 모아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상의해야지 않겠습니까.”

“니가 부르세요. 난 심신 좀 안정시킬 테니까. 끄응.”

오광휘 단장은 머리가 계속 지끈거리는 모양이었다.

결국 태건이 목소리를 냈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 주십시오!”

“…….”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이쪽으로 다가오긴 했다.

‘어렵다, 어려워.’

태건도 이런 동료들은 처음이었다.

곧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거리만 가까울 뿐 어색한 공기는 여전했다.

“…….”

침묵도 계속 이어졌다.

태건은 다시 오광휘 단장에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우뚝.

스스로 멈췄다.

계속 오광휘 단장을 뒤에서 조종하는 느낌 탓이었다.

‘그건 아니지.’

할 말을 하지 못할 입장도 아니었다.

그리고 단장보다 위에 있단 인식을 심어줄 생각도 없었다.

곧 태건은 결정을 굳히고 모두에게 말했다.

“훈련 스케줄부터 자율이라는데, 혹시 의견 있으십니까?”

“…….”

단원들은 서로 미루듯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이지성이 한 마디 했다.

“보통 이런 건 단장님이 하는 거 아닌가?”

퉁명스러우면서 공격적인 흘림이었다.

“그게…….”

태건이 대답하려 했다.

오광휘 단장이 막아서며 나섰다.

스윽.

“잠깐. 이지성 단원,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뭔가 이상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태건이가 날 바지 단장 취급한단 느낌적인 느낌인데, 제가 잘 느낀 게 맞습니까?”

“뭐…….”

불분명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삐딱함이 가득 느껴졌다.

태건의 신경에도 살짝 거슬리는 말이었다.

“오해가…….”

정정하려 운을 뗀 순간이었다.

턱.

오광휘 단장이 또 한 번 손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이지성에게 아니, 모두가 듣게 말했다.

“하나 짚고 넘어갑시다.”

“뭘요?”

“라텔 견장이 밖에서만 필요한 줄 아십니까?”

“…….”

순간 다들 침묵했다.

오광휘 단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여기 온 순간 계급, 경력, 다 내팽개치기로 한 거 아니냔 말입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따지긴 뭘 따집니까.”

오광휘 단장이 야무지게 지적했다.

……끄덕.

미미한 고갯짓에 동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수긍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고수현이 태건을 흘겨보며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그래도 단장님이 계시는데 조금 이름 날렸다고 멋대로 오라 가라는 좀 그러네요.”

“그럼 니가 하세요.”

“아니, 단장님.”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왜 뭔가 하려는 사람 뒷목 잡고 늘어지십니까.”

“그, 어……. 크흠. 아닙니다.”

고수현은 뭐라고 하려다 스스로 입을 막았다.

더 말해봐야 자신만 손해란 걸 직감한 행동이었다.

오광휘 단장은 그렇게 일축해 버렸다.

이 순간만이 아닌, 앞까지 내다본 한 수였다.

이젠 태건이 어떤 말을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단장님도 참.’

신경 써준 오광휘 단장이 고마웠다.

하지만 다른 단원들의 태도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건은 조용해진 기운을 털어내며 운을 뗐다.

“그래서 언제까지 간 보기 할 겁니까?”

“크흠.”

헛기침 소리가 터져 나온 걸 보니 누군가는 찔리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다들 자원한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

“훈련을 시작해도 모자랄 아까운 시간에 대체 언제까지 허비할 겁니까?”

쿠르릉.

태건이 싸늘하게 내뱉자, 마치 먹구름 사이로 천둥이 울리는 듯 했다.   

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졌다.

방금까지 잠잠했던 이지성이 다시 삐딱해졌다.

이내 코웃음 치며 돌아섰다.

“훗, 콩가루네.”

저벅저벅.

냉소적인 말을 하며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태건이 차가운 목소리로 불렀다.

“지성 선배, 뭐 하시는 겁니까?”

“훈련 결정되면 문자로 알려줘요.”

저벅저벅.

이지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멀어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난 사진이나 좀 찍을까.”

척척.

고수현도 알아서 화단 쪽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두 명이 이탈했다.

오광휘 단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와, 이거 완전 뷔페네.”

“뷔페요?”

“차려는 놨는데 먹을 게 없어.”

차진 그의 비유에 태건도 쓴 미소를 지었다.

“진짜 그러네요. 하, 하.”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모두가 이탈한 건 아니었다.

스윽.

시선을 돌려보니 황대산과 유중헌이 남아 있었다.

태건이 혹시나 싶어 물었다.

“두 분은 안 가십니까?”

“무슨 소립니까. 남자는 한 번 결정한 건 되돌리지 않는 법입니다!”

“저분들에게도 좀 말씀해 주세요.”

태건은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황대산은 생각보다 훨씬 과격하게 대답부터 거칠었다.

“확 빼 버립시다.”

“그것도 방법이긴 하네요.”

“유 단원이라고 했던가요. 그쪽도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죠?”

황대산은 유중헌까지 끌어들였다.

그 소리에 유중헌이 깜짝 놀라며 움츠러들었다.

“글쎄요. 전 운전만 잘 하면 된대서요.”

“원 팀인데 포지션이 뭔 상관입니까!”

“죄송합니다.”

꾸벅.

유중헌은 얼른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 모습에 황대산이 당황하며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투가 원래 좀 센 겁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뭔 주의를 한단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꾸벅.

똑같은 장면의 반복이었다.

잠시 지켜보던 태건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꾸욱.

“미국에서도 이런 팀은 없었어.”

진짜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대책이 서지 않는 이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태건에게 오광휘 단장이 다가와 물었다.

“쟤들 진짜 집에 보내 버릴까?”

“좀 더 지켜보죠.”

“네가 웬일이냐? 솔직히 먼저 보내 버린다고 난리 피울 줄 알았는데.”

오광휘 단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태건은 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루는 지켜봐야죠.”

일단 대답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오후가 됐다.

결국 무의미하게 오전을 날려버렸다.

교육실에서 기다렸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누구보다 태건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사람들 진짜.”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두 사람이 확실히 문제였다.

태건은 아직 정신수양이 부족한 나이였다.

텅!

참다못해 책상을 내리쳤다.

그와 동시였다.

“헉, 죄송합니다.”

엉뚱하게도 유중헌이 놀라 사과부터 했다.

이건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저 성격에 헬기 운전을 한다?

하늘에 없는 신호를 홀로 지키면서 안전운전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진짜 대책이 없어진다.

‘미치겠네.’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곧 태건이 일어나며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과장님한테 전화할 거면 여기서 해.”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요.”

태건이 할 수 있는 최후통첩이자 최고의 호의였다.

그렇게 교육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문밖에는 고수현이 눈에 힘을 주고 서 있었다.

그런 그는 태건을 보자마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척.

이어서 도전적인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니가 불을 그렇게 잘 꺼?”

“…….”

“뒷마당으로 따라와.”

휙!

통보한 그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태건은 가만히 있다가 날벼락 맞은 꼴이었다.

“뭐야?”

“쟤, 괜찮은 거냐?”

오광휘 단장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태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봅니다.”

“어쩔 거야?”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초대했겠죠.”

척척.

태건은 어이없는 얼굴로 뒤따랐다.

그런 태건을 바라보는 오광휘는 고개를 저었다.

“따라가는 너도 정상 같진 않아.”

다들 엇박자로 가득인데 이상하게 끼리끼리 보완이 된 느낌이었다.

교육 건물 뒷마당.

태건과 오광휘 단장, 다른 두 단원이 함께 도착했다.

“이게 다 뭐야.”

다들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거기엔 파란 방수천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방화복 세트부터 호흡기 세트 등 화재현장 기본 출동장비가 늘어져 있었다.

그 외에 또 있었다.

화르륵.

저 앞에 빈 드럼통에서 불길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수현이 의기양양한 자세로 태건을 맞았다.

“꼬리 말고 도망가진 않았네요.”

“대체 뭡니까?”

“딱 보면 감이 안 옵니까. 당신과 나, 누가 에이스인지 가려봅시다.”

뜬금없는 도발이었다.

태건은 물론 오광휘 단장도 황당해 했다.

“에이스?”

“갑자기?”

황대산은 턱을 쓸며 흥미로워했다.

“그렇지. 원래 수컷들이 모이면 서열을 정하기 나름이니까.”

“저렇게 불이, 과격한 건 아니어야 할 텐데요.”

유중헌은 걱정을 보였다.

뭐든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어이없어하던 태건은 순간 눈빛을 빛냈다.

반짝.

고수현의 인사말이 다시 떠올라서였다.

-떠오르는 차세대 슈퍼스타 소방관.

태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주목받길 즐기는 타입이라.’

그래서 준비한 모양이었다.

모두 앞에서 자신이 태건보다 뛰어난 인재란 걸 증명받으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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