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짐작한 태건은 확신을 굳히려 고수현에게 물었다.
“저 경방 출신인 거 아십니까?”
“그러니까 지면 더 쪽팔리겠지.”
고수현이 대놓고 도발했다.
스모크점퍼란 타이틀도 허명이라고 깔아뭉개려는 중이었다.
치지직!
그가 내뿜는 눈빛이 사납고 강렬했다.
한편 오광휘 단장은 다른 두 단원에게 권했다.
“우린 좀 앉아서 구경이나 할까?”
“안 말리십니까?”
“세계 2대 볼거리를 놓칠 수가 있나.”
처억.
보란 듯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말한 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다.
“그럼 앉겠습니다.”
“저, 저도…….”
다른 대원들도 눈치챘는지 나란히 자리했다.
고수현은 그걸 보며 한 번 더 태건을 도발했다.
“관람객까지 갖춰졌네.”
“흠.”
“어때, 쫄리면 백기 흔드시던가.”
준수한 외모가 비열하게 보일 정도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태건은 그 도발에도 발끈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까지 조용한 건 아니었다.
부글.
소화 연습으로 도전장을 내밀다니.
이건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며시 물었다.
“제가 이기면 뭐가 있는 겁니까?”
“에이스로 인정하겠습니다.”
“현장에서 지시하면요?”
“따르죠.”
간단한 대답이다.
고수현은 진심인 모양이다.
두 눈에 가득 힘을 주며 대답했다.
태건은 확신을 기하고자 굵직하게 운을 뗐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고수현이 찰떡같이 반응했다.
그 대답을 들은 순간 태건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오호, 반응과 센스가 좋은데.’
삐딱하게만 보이던 고수현이 다르게 다가왔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음에도 이상한 기대감이 서렸다.
태건은 여러 말 하지 않았다.
척.
바로 방수천 앞에 섰다.
“좋습니다. 해 봅시다.”
“그럼 준비…….”
고수현이 손목시계를 보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때 오광휘 단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임은 내가 재 줄게.”
“화이팅!”
“두 분 다 잘 할 수 있어요.”
황대산과 유중헌이 갑자기 응원 모드로 전환했다.
이젠 그들도 즐기기로 한 모양이다.
태건과 고수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
구오오.
뭔지 모를 긴장감이 감도는 거 같았다.
그만큼 고수현은 이 대결에 진심을 담고 있었다.
‘힘껏 부딪쳐 드리죠.’
상대가 의지를 보이니 최선을 다하는 건 예의였다.
태건이 결심함과 동시였다.
뒤에서 오광휘 단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 3초 전. 셋, 둘…….”
“…….”
스스슥.
태건과 고수현의 긴장감이 점점 높아졌다.
곧 오광휘 단장이 마지막 카운팅을 했다.
“하나, 시작!”
휙.
손까지 아래로 거칠게 내리그었다.
시작 신호와 동시였다.
파닥!
태건과 고수현은 동시에 각자 방수천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방화복 착용부터 시작했다.
고수현의 움직임이 의외로 빨랐다.
“흡, 흐읍!”
슉슉.
방화복 착용이 의외로 신속했다.
휘릭.
이어서 산호통을 둘러메는 등의 속도도 날렵했다.
아무 생각 없이 덤벼든 건 아닌 듯했다.
태건은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임이 나쁘지 않아.’
그렇다고 엄청 칭찬할 정도는 아니었다.
구조대 출신인 걸 전제로 보면 괜찮단 의미였다.
그러나 태건의 까탈스런 기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감상을 하던 태건이 가볍게 목을 돌렸다.
두둑.
시선엔 아직 멀었다.
‘슬슬 움직여 볼까.’
속으로 뇌까린 태건도 이내 행동에 들어갔다.
시작부터 서두른 고수현은 삽시간에 방화장비 착용을 끝마쳤다.
정확히 억지로 걸쳤단 표현이 옳았다.
그래도 착용한 건 맞긴 했다.
“착용 완료!”
파바박!
외침과 동시에 앞으로 뛰기 시작하면서 힐끔 옆을 봤다.
태건은 아직 주섬주섬 장비를 착용 중이었다.
그걸 본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역시 허명인 모양이다.
이어서 고수현은 저 앞에 소화기까지 단숨에 도달했다.
파바박.
“이제 내가 에이스야.”
뭔가 성취한 뿌듯함과 자부심이 가득 떠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어엇!”
“와!”
관객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고수현의 옆으로 번개같이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사삭!
한 마리 야조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태건이었다.
터덕!
소화기를 순식간에 낚아채고,
푸와악!
드럼통 속에 타오르는 불을 꺼뜨렸다.
그 모든 게 정말 순식간이었다.
치익.
곧 소화기 작동이 멈춰졌다.
이내 돌아선 태건은 방화헬멧과 호흡기 마스크를 함께 들어올렸다.
드러난 태건의 얼굴엔 덤덤함이 묻어나 있었다.
“제가 이겼네요.”
의미 깊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반면 고수현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건 사기야!”
“…….”
“분명 나보다 늦었어. 그런데 어떻게 더 빠를 수가 있어. 말이 안 되잖아!”
자존심이 구겨졌는지 목소리부터 따가워졌다.
태건의 표정이 어이없게 변했다.
“…….”
뻔히 보고도 수긍하지 못하겠단 반응이 할 말을 잃게 했다.
그때 관람객들이 도착했다.
그 중 황대산이 크게 박수치며 칭찬했다.
짝! 짝! 짝!
“와, 진짜 엄청납니다. 엄청나.”
“괜히 스모크점퍼라고 하는 게 아닌가 봐요.”
“유 단원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난 장비가 알아서 강 단원의 몸에 달라붙는 줄 알았습니다.”
두 사람의 격찬이 이어졌다.
태건은 무거운 방화장비부터 벗을 생각에 그들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정리나 해야겠네.”
이어서 기자재 창고로 향했다.
그런 태건의 옆에 오광휘 단장이 다가와 쓰게 말했다.
“아주 콧대를 찌부러뜨렸던데?”
“적당히 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이럴 땐 슬쩍 져주기도 했잖아.”
오광휘 단장의 의문이 이어졌다.
태건은 그런 그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어쭙잖게 띄워주면 현장에서 사고 터집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궁금한 건 이제 고 단원이 어떻게 나올지겠죠.”
저벅저벅.
걸어가는 태건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곧 태건은 기자재 창고에 들어섰다.
척, 척.
하나씩 벗은 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태건의 옆에 고수현이 도착했다.
“…….”
턱. 턱.
그도 자신이 사용한 장비들을 하나씩 벗어 정리했다.
뭔가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가 감돌았다.
태건에겐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내 먼저 정리를 마쳤다.
스윽.
몸을 돌린 그때 고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졌습니다. 인정합니다.”
“…….”
“황 단원 얘기 들어보니까 장비 착용하고 조율까지 했다던데요. 그런데도 앞서갔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고수현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그럼에도 태건은 조금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
태건의 대답은 너무도 단출했다.
그와 동시였다.
턱.
어깨에 고수현의 손이 올라왔다.
이어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게 끝입니까.”
그때였다.
스륵.
태건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일그러진 고수현을 직시하며 물었다.
“애당초 절 이겨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누가 에이스인지 가리자는…….”
“그래서 가렸습니다. 이제 어쩌잔 겁니까?”
“…….”
고수현의 입이 닫혔다.
그걸 눈치챈 태건이 쓰게 물었다.
“아직도 단순히 제가 더 빨라서 이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까?”
“네,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뭐가 달랐던 겁니까.”
구우우.
고수현의 눈빛이 가늘어지고 기세가 무거워졌다.
태건도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티끌만한 동요도 없이 말했다.
“고 단원은 불만 보고 있었고 전 아니었습니다. 그게 차이였던 겁니다.”
“도대체 뭘 보고 있었단 겁니까.”
고수현이 더욱 따지고 들었다.
그와 동시였다.
태건의 기세가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같은 아우라를 풍겼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 불 속에 있을 누군가.”
“…….”
파르르.
굳세던 고수현의 눈동자가 순간 자잘하게 진동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태건은 더 말하지 않았다.
“…….”
스윽.
몸을 돌려 유유히 기자재 창고를 나섰다.
고수현이 뭘 느꼈던, 뭘 생각하든 그건 당장 묻지 않았다.
이후 그의 행동으로도 짐작하면 그만이었다.
태건은 곧 기자재 창고 밖으로 나왔다.
오광휘 단장과 황대산, 유중헌이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장비 착용 연습을…….”
“그걸 시보 때 했단 건 대단한 건데…….”
“확실히 아무나 스모크점퍼가 되는 게 아닌…….”
중간중간 특정 단어들이 들려왔다.
‘내 얘긴가?’
태건은 바로 짐작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오광휘 단장이 평소 가볍게 보여도 아무 말이나 할 사람은 아닌 탓이다.
그리고 황대산과 유중헌은 꽤 적극적이었다.
아직 속이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별 문제없어 보였다.
‘다른 둘이 문제지.’
뇌까린 태건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