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67)화 (67/320)

67화

그러던 태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벅, 저벅.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없었다.

이지성.

따로 놀아도 정도가 너무 심했다.

‘진짜 아웃시켜야 하나?’

어울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건 팀워크에 있어 엄청난 마이너스였다.

그때였다.

-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태건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출동신호였다.

휙!

반사적으로 기자재 창고로 몸을 돌렸다.

마침 문을 열고 나오던 고수현도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젠장!”

휙!

그는 쓴소리와 함께 다급히 몸을 돌렸다.

달리려던 태건은 그런 그를 본 순간 멈칫했다.

‘칫, 팀워크 훈련 중이지.’

뻔히 아는데도 순간 망각했다.

그만큼 습관이란 쉽게 버려지는 게 아니었다.

그건 태건만이 아닌 모양이다.

“아, 이거 참.”

벅벅.

고수현 또한 민망한지 기자재 창고 문을 닫고 뒷머리를 긁었다.

그런 그를 태건이 주의 깊게 바라봤다.

‘영 꽝은 아니네.’

형식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일순간이었지만 그의 표정에 깃든 다급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의외의 상황에서 속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저쪽에서도 민망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거 출동 소리 좀 바꾸라고 건의할 수도 없고 말이야.”

“저도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휴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오광휘 단장, 황대산, 유중헌의 목소리였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태건이 싱거운 미소를 띠며 그들과 거리를 좁혀갔다.

저벅저벅.

곧 고수현이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

이번엔 태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습관이 참 무섭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기 그런데…….”

고수현이 우물쭈물하며 뭔가 말을 꺼내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타다닥!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태건은 의외의 등장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이지성……. 단원 맞죠?”

“맞는 거 같은데요.”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나는 건지.”

고수현 또한 이지성을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뉘앙스였다.

그 사이 이지성이 근처까지 도착했다.

아니, 오자마자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헉헉. 사이렌 울렸는데 다들 왜 이러고 있습니까!”

“…….”

“뭘 봐요. 뭐 어쩌라고!”

이지성의 울컥한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한 소리 했다.

“그러니까요. 이제 나타나서 뭘 어쩌자고요.”

“단장이란 분이 지금 그런 말 할 땝니까. 사이렌 못 들었냐고요!”

“……당신 여기 왜 왔는데?”

오광휘 단장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찔러 물었다.

그 순간 이지성이 멈칫하며 크게 동요했다.

이제 여기가 어디고, 왜 모였는지 상기한 모양이다.

“아…….”

“아, 는 무슨. 그래도 소방단원이라고 이렇게 나타나 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에 뾰족한 티가 가득했다.

“…….”

이지성은 머쓱한지 고개를 돌린 채 외면했다.

들썩, 들썩.

얼마나 빨리 뛰어왔는지 가슴이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한 태건의 시선이 번뜩였다.

“그래도 나타나긴 하네.”

혼잣말인데 고수현이 받았다.

“그러게요. 거기다 저렇게 숨까지 몰아쉬네요.”

“이거 참.”

태건도 이지성만큼은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고수현이 앞서 끊긴 말을 이어갔다.

“그, 크흠. 그, 뭐냐. 강 단원 말에 가슴이 좀 쑤시긴 합디다.”

“…….”

태건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고수현이 볼을 긁적이며 이어서 말했다.

“무례했던 건 미안합니다.”

“그냥 편하게 선배라고 불러도 됩니까?”

“갑자기요? 이 분은 나보다 더 급발진하시네. 뭐……. 좋습니다.”

고수현은 당황했지만 이내 수락했다.

태건은 그런 그에게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선배, 선배가 에이스하세요.”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진심입니다.”

“이유나 좀 압시다.”

고수현은 의외로 대뜸 말을 놓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예의와 선을 지켰다.

그것만으로도 막돼먹은 성격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태건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말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 이유도 친절히 알려줬다.

“전 그 자리에 관심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뭐 물건 떠넘기듯이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싫으십니까?”

“네. 싫습니다. 그 자리는 내가 노력해서 뺏을 겁니다. 그 전까지는 강 단원이 잘 앉아 있어요.”

고수현은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태건이 의아했다.

“제가 에이스입니까?”

“날 찍어 눌렀는데 당연히 에이스 아닙니까. 이래 봬도 어디서든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몸입니다.”

“그렇군요.”

“사실 스모크점퍼라고 해서 내 나름대로 그렸던 이미지가 있었는데…….”

고수현이 쓰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눈치챈 태건이 슬쩍 끼어들었다.

“많이 달랐던 모양이네요.”

“솔직히 얕잡아 본 거죠.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옹졸하게 굴었습니다.”

“인정을 빨리하시는 거 같습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 말을 꺼내는 고수현의 표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몇 마디 대화였다.

그러나 태건은 삐딱했던 그에 대한 첫인상이 많이 지워졌다.

‘사람은 역시 겪어 봐야 안다더니.’

그렇다고 완전히 호감으로 돌아선 건 아니었다.

편견을 지우고 오롯이 그를 바라보게 된 정도였다.

곧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오광휘 단장이 쭉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침에 만나고 처음이죠? 참 어렵게도 한자리에 모이게 됐네요.”

“…….”

“모인 김에 황 단원이 할 말 있다니까 좀 들어봅시다.”

스윽.

모두의 시선이 황대산에게로 향했다.

황대산은 슬쩍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크흠. 때려치울 거 아니면 앞으로 같이 지내야 하는 입장 아닙니까.”

“그렇죠.”

“서로 가까워지려면 말투부터 좀 바꿀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어색한 서로를 의식한 제안이었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덧붙여 말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나는 찬성입니다. 복잡할 거 없이 공개투표로 합시다. 찬성은 거수.”

오광휘 단장이 간단한 확인 절차를 제안했다.

슥슥.

바로 손이 여럿 올라왔다.

태건도 같이 손을 들었다.

‘가까워지는 게 우선이니까.’

어차피 막내가 확정인 터라 가장 부담 없는 입장이었다.

공개투표 결과는 바로 육안으로 확인 가능했다.

이지성을 제외하고 모두가 손을 들었다.

오광휘 단장은 손바닥에 주먹을 두드리며 선고하듯 말했다.

탁탁탁.

“안건 통과. 이제 내가 반말해도 상관없지?”

오광휘 단장은 기다렸단 듯이 반말했다.

척 봐도 그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니 아무도 불만은 없어 보였다.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자잘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때 태건이 오광휘 단장에게 물었다.

“저는 어차피 막내 삘인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됩니까?”

“나, 대산이, 중헌이, 수현이, 지성이, 너. 태어난 순서가 그래.”

척, 척.

오광휘 단장은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켜 가며 모두에게 인지시켜 줬다.

몇 명 되지 않으니 외우기 어렵지 않았다.

그들 중 태건이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들,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갑자기 막 숙이고 들어오네. 유능한 후배는 피곤한데 말이야.”

고수현이 무던하게 말을 받았다.

짓궂은 미소 속엔 다른 단원보다 호감이 있음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었다.

전화위복인지, 가장 까칠할 거 같던 고수현이 가장 살가움을 보였다.

황대산은 확실히 목청이 크고 화끈했다.

“음하하. 그래. 이런 맛이 좀 있어야지!”

“저도 이게 편한 거 같아요.”

유중헌은 다소 소극적이지만 자기 의견을 확실히 내보였다.

스윽.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이지성에게로 향했다.

“…….”

아무 말이 없어 자연스레 시선이 집중됐다.

이지성은 모두를 크게 둘러본 후 삐딱하게 말했다.

“다 결정해 놓고 뭘 물어.”

톡 쏘는 혼잣말이었다.

그래도 대놓고 거부하진 않았다.

다들 딴죽을 걸지 않았다.

그 이유를 오광휘 단장이 대표로 말했다.

“이제 만난 사이인데 서로 어색하고 낯설겠지.”

“…….”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팀워크 훈련 아니냐.”

“맞습니다.”

다들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어서 다시금 서로서로를 둘러봤다.

아직 같은 소속이란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포용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삐딱하게 굴기도 했다.

다들 각자 개성을 어느 정도 포용하겠단 모양새를 풍겼다.

그 시간들이 지나야 더 가까워지고, 한 팀으로 묶일 수 있음을 알고 있던 탓이다.

서로 시선을 주고 받은 후였다.

태건이 오광휘 단장에게 제안했다.

“기왕 모인 거 뭐라도 손발은 한 번 맞춰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당연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지.”

“기자재 창고 열까요?”

태건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기세였다.

그런데 오광휘 단장이 바로 막아섰다.

“스톱, 훈련이 불 끄는 것만 있냐?”

“그건 아니죠.”

“그래서 말인데, 다들 출동 사이렌 소리에 모인 거잖아.”

“네.”

태건을 포함해 모두가 대답했다.

거기서 오광휘 단장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찡긋거리며 말했다.

“그럼 모의출동 연습이나 해볼까?”

“모의출동이라. 차 끌고 나갈 데도 없잖습니까.”

태건이 의아함을 보였다.

다들 말은 하진 않았지만 태건과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오광휘 단장은 기다렸단 듯이 말했다.

“웨이럴 미닛(Wait A Minute).”

쌩.

그리고 홀로 어디론가 떠나갔다.

태건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황당해했다.

“대체 뭔 콩글리시야.”

“단장님 은근 재밌는 분이네.”

“평소엔 재밌고, 현장에선 확실하고, 그래서 제가 참 좋아하는 분입니다.”

태건은 사실인지라 낯간지러운 말을 당당히 내뱉었다.

다른 단원들을 대할 때와 눈빛부터 차이 났다.

그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이라 끈끈함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나저나.

‘뭘 하시려는 거지?’

오광휘 단장의 계획이 궁금해졌다.

기다림은 잠시였다.

곧 돌아온 오광휘 단장의 손엔 플라스틱 인형이 들려 있었다.

“자, 훈련에 도움을 주실 더미 씨 등장. 헬로, 에브리원.”

휙휙.

오광휘 단장이 장난스럽게 더미의 손을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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