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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68)화 (68/320)

68화

반면 태건은 갑자기 등장한 더미에 의아함을 보였다.

“그건 갑자기 왜 가져오신 겁니까?”

질문과 동시였다.

반짝!

오광휘 단장이 눈빛을 빛내더니 갑자기 입으로 사이렌 소리를 냈다.

“에에엥, 응급환자 발생. 라텔 출동하세요.”

“네?”

“다들 뭘 멍 때리고 있어. 출동명령 떨어졌잖아!”

카르릉!

오광휘 단장이 순식간에 사나운 기세로 모두를 다그쳤다.

다들 현장 출신이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중 태건이 먼저 차고로 뜀박질했다.

“뛰어!”

“급하니까 반말이냐!”

“지성아, 뭘 따져, 일단 달려!”

우다다다!

팽팽하게 당긴 시위를 놓은 듯 쏜살 같이 뛰어갔다.

놀랍게도 그 속엔 이지성도 함께였다.

이내 모두가 차고에 들어섰다.

차고 안에는 은퇴한 펌프차가 훈련용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유중헌이 운전석으로 달려가자 태건이 물었다.

“선배, 펌프차도 운전하십니까?”

“운전은 거의 다…….”

“그래요?”

“일단 타자.”

덜컥.

유중헌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태건도 뒷문을 통해 바로 올라탔다.

“깨끗하네.”

부르릉.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수석과 그 뒷문이 동시에 열렸다.

바로 그때였다.

태건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들이 굼벵이를 쳐 먹었나, 느려 터져도 적당히 느려 터져야 될 거 아냐!”

“…….”

조수석에 올라타려던 오광휘 단장부터 다른 단원들까지 모두 멈칫했다.

태건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있었다.

이 거친 목소리의 주인공이 상상도 못할 인물인 때문이다.

“주, 중헌 선배.”

“넌 뭐하고 자빠졌어. 손 뻗어서 끌어올리든가 뭔 짓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썅!”

“네? 에…….”

“빨리 안 올라와, 응급환자라며, 뒤진 다음 도착할래!”

빵빵!

거친 재촉에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는 덤으로 들렸다.

그 소심하고 부끄럼쟁이 유중헌이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태건은 뒤에서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 이상하더라.’

거친 현장을 날아갈 라텔인데 조종사가 너무 유약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었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몰랐다.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 바뀌는 사람이 있다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변화를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그 사이 다들 당혹감을 뒤로하고 펌프차에 올랐다.

모든 문이 닫힘과 동시였다.

봐아앙!

펌프차가 굉음을 내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차고를 나오자마자 유중헌은 오광휘 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갑니까. 빨리 말해요, 빨리!”

“하, 한 바퀴만 돌고 들어갈. 야야, 앞에. 앞에 봐!”

“보긴 뭘 봐요. 그러니까……. 지금!”

끼기긱.

유중헌이 급히 운전대를 돌려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펌프차 옆으로 우뚝 선 철봉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갔다.

뒤에선 다들 뭔가 붙들고 있었다.

“펌, 펌프차가 드리프트가 돼?”

“다중인격이야, 뭐야.”

태건과 이지성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면 황대산과 고수현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유중헌이, 짜식, 그래. 너도 남자였구나. 그렇지, 너도 그런 한 방이 있겠지!”

“중헌 선배, 나중에 현장 출동하면 나 좀 멋져 보이게 포인트에 딱 맞춰서 내려줘요. 아, 짜릿해!”

응원하고 격려하고 난리가 났다.

조수석에 자리한 오광휘 단장은 진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 얘들이랑 있다가 제 명 못 채우겠어.”

그 말만큼은 정말 진심으로 느껴졌다.

유중헌의 운전은 허세가 아니었다.

휙휙, 슉슉.

코너링은 깔끔했고, 가감속은 부드러웠으며, 펌프차의 모든 기능을 다 숙지하고 있었다.

태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우와.”

육중한 펌프차를 깔끔하게 유턴할 땐 입이 떡 벌어지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기동단원으로서 완벽했다.

그렇다고 단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거친 입담과 공격적인 성향이 뾰족하게 날을 세웠다.

특히 도로에 나오니 더 했다.

빵빵빵!

“저런 삐삐삐가, 운전 똑바로 안 하냐. 확 들이받아 버릴까!”

“중, 중헌아. 진정하고.”

“단장님도 봤잖아요. 저 새끼 좌측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들어온 거 말입니다. 이걸 참으라니, 어떻게 참습니까!”

“네 말이 맞아. 다 옳은데, 우리 진짜 출동하는 거 아니니까 조금만 살살하자.”

오광휘 단장이 절절매며 달래기까지 했다.

잠시 후.

펌프차가 차고로 돌아와 주차됐다.

이어서 유중헌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소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 다들 제 운전 괜찮았나요?”

“…….”

다들 멍하니 바라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의출동 목적까지 잃어버렸다.

그 모습에서 오해를 했는지 유중헌은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푸욱.

홀로 잔뜩 움츠러들며 반성했다.

너무도 상반된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다.

“진짜 정상인이 하나도 없네.”

태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 속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단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도 않았다.

특수소방단.

그 단원들은 어떻게 봐도 라텔, 그 자체였다.

*  *  *

다음 날부터 라텔은 팀 훈련에 돌입했다.

화재, 구급, 구조.

세 가지 파트를 전문단원들이 다른 단원에게 교육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화재 훈련 때는 태건이 앞으로 나섰다.

더 라스트.

그 별칭에 걸맞게 경험을 토대로 준비한 훈련을 진행했다.

특히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이렇게 폐쇄된 문을 강제로 열면 불길이 역류하니까 절대 함부로 열면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이럴 땐 자그맣게 구멍을 낸다든지, 근처에 있는 창문을 깨서 안팎의 기압을 맞추고…….”

“없으면?”

“그럼 벽을 등지고 문을 열어 피해를 최소화……. 그러니까, 이런 식입니다.”

휙, 턱.

태건은 절대 입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직접 몸을 날려 보여줬다.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걸 이해시킬 순 없었다.

단원들이 체득할 때까지 반복했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한 손 거들었다.

“수현이, 그게 아니라니까. 잘 봐봐.”

“네.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이 이해가 잘…….”

“그럼 열외. 나랑 1대 1 교육으로 하자.”

이해가 부족한 단원은 별도 교육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태건의 화재 교육은 한결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구조 훈련은 황대산과 고수현 담당이었다.

“요구조자가 어디에 꼈을 때는…….”

“기본적으로 주변의 안전을 확보하고…….”

“실전에선 각종 유압식 공구를 활용해…….”

“요구조자의 의식 확인이 가장 중요하며…….”

두 사람의 말이 엎치락뒤치락 이어졌다.

그 와중에 해상 구조대와 일반 구조대의 차이도 은연중에 드러났다.

하지만 요구조자를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구조한다는 기본은 똑같았다.

구급에는 이지성이 교관으로 내정됐다.

다들 썩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첫날 발생한 트러블이 계속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이지성은 관심을 두지 않고 마이웨이 급으로 진행했다.

“구급의 기본은 ABC고…….”

슥슥.

화이트보드에 거침없이 영어를 써 내려가는 가는 건 기본이었다.

교육 기자재도 십분 활용했다.

특히 응급상황을 고려해 봉합사로 상처를 임시 봉합하는 법, 그리고 혈관주사와 근육주사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혈관주사 실습하겠습니다. 혈관 잘들 보이시죠. 찌르세요.”

“이거 정맥 맞아? 동맥 아니야?”

“동맥은 다 숨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혈관은 그냥 정맥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확실한 거냐?”

“선배들이 주사기 들 상황이면 이것저것 따질 시간도 없을 겁니다. 그냥 일단 찌르고 봐요. 알겠습니까!”

목소리를 높일 때도 더러 있었다.

삐딱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훈련은 알아서 참가했다.

‘저 선배는 확실히 독특해.’

태건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하게 된 부분은 다행이었다.

*  *  *

그러는 사이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갔다.

아침저녁으로 운동하고, 그 사이에는 단원들끼리 전문분야 지식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평화로웠다.

그런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특수소방단의 평화를 깨는 건 다름 아닌 출동 사이렌이었다.

-에에엥, 에에엥!

오늘도 저 아래 우면119안전센터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시시때때로 울렸다.

그럴 때마다 특수소방단은 순식간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

“…….”

서로 입을 닫고 시선을 피했다.

그건 출동에 응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뚜렷하게 나타났다.

태건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출동 못해서 입안에 가시가 돋는 병이라니.’

어떻게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꿈틀꿈틀.

자신의 몸도 순간순간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저녁 무렵.

태건은 휴게실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후. 뭐 건수 없나.”

라텔은 아직 대외비 상태였다.

어떤 건수가 있다고 해도 공개적으로 출동할 수가 없었다.

그 족쇄가 답답함으로 옥죄고 있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태건은 눈에 띄는 뉴스를 하나 발견했다.

-관악산의 들개들. 등산로 점령으로 등산객 및 인근 대학생들 피해신고 잇따라.

제목을 본 태건은 갸웃거렸다.

“이건 뭔 소리야.”

톡.

일단 기사를 눌러봤다.

이내 화면 가득 떠오른 기사를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어? 어어?”

시큰둥하던 태건의 흐리멍덩한 눈빛이 점점 선명하게 변해 갔다.

그리고 이내 선명한 눈빛이 반짝거렸다.

핑!

“이거야!”

짧은 외침과 동시에 곧장 오광휘 단장을 찾아 달려갔다.

잠시 후.

태건은 휴게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벌컥!

“단장님!”

“쿨럭. 뭐야?”

음료수를 마시던 오광휘 단장이 놀라 바라봤다.

태건은 거두절미하고 휴대폰부터 내밀었다.

샥!

“이 기사 좀 보세요.”

“기사?”

“일단 보세요. 얼른요.”

휴대폰을 떠넘긴 태건은 음료수 자판기로 향했다.

덜컹.

음료수를 뽑아서 돌아와 오광휘 단장 반대편에 마주 앉았다.

조금씩 마시면서 침착하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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